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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교회를 더욱 변질시킬 대안 문화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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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12월호>
침례 신학대학교에서는 지난 10월 17일에 한국기독교학회의 제37차 정기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 교회의 위기와 신학적 답변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학술대회에서 서울신대의 최인식 교수는 "21세기 문화목회에 대한 비전"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 현재 한국 교회의 목회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조금 막연하기는 하지만 대안 역시 제시했다. 그런데 그 대안이라는 것은 교회가 더욱 심각하게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었다.우선 최교수의 현실 분석은 다음과 같다.
1. 개신교가 교회 확장과 성장주의의 기치하에 목회했지만, 전체적으로 성장이 멈추고 오히려 신도 수가 줄어들었다. 그러므로 기존의 전통 목회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
2. 전통 목회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눈에 보이는 제도적 교회를 세우고, 목회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신도들에게 특정 교파의 특정 교리를 가르치고, 신도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것을 우선하며, 개교회의 확장을 향해 나아가는 특징이 있다.
3. 현재 기독교 영성은 약화되었고, 교회는 세속적으로 변질되었다. 전통 목회로서는 영성과 윤리적 삶을 회복하고 21세기 현대사회의 요청을 수용하기가 힘들다. 이에 대한 대안이 바로 문화 목회다.
최교수의 현실 분석은 현재 교회들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모두 퇴보하는 중에 있기 때문에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옳은 분석이다. 그러나 전통 목회 방식 대신 문화 목회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전체 논리는 비정상적이다. 그가 지적한 것처럼 현재 기독교 영성이 약화되고 교회가 세속적으로 변질된 것이 전통 목회 방식 때문인가? 그가 전통 목회의 다양한 특징을 언급했으니, 그 특징들과 현재 교회의 실패 사이에 인과 관계를 따져 보자.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눈에 보이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교회의 세속화의 원인인가?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고 역사상 있어 왔던 교회들의 기본 모습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처럼 눈에 보이는 교회를 명령하신 분이시고(마 18:17),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교회를 세우도록 인도하신 분이시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그 교회에 날마다 더해 주시더라』(행 2:47).
목회자를 중심으로 교회가 운영되는 것이 교회의 세속화의 원인인가? 그것 역시 성경에 기록되고 역사상 있어 왔던 교회들의 기본 모습이다. 목회자 곧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를 선임하는 것은(행 14:23) 그들이 감독자의 역할을 하여 교회를 돌보고(행 20:17,28) 성도들이 복종할 본이 되면서(벧전 5:1,3,5) 무리를 다스리게 하려는 것이다(딤전 5:17).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나 신도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것을 우선하는 것이 교회의 세속화의 원인인가? 그것 또한 성경에 기록되고 역사상 있어 왔던 교회들의 기본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에게 교회를 돌보도록 시키셨는데(행 20:28), 방법은 말씀과 교리로써 하는 것이다(행 20:32, 딤전 4:6, 딤후 4:2).
과거의 교회 역사는 바로 이와 같은 성경적 요소들로 인해서 많은 부흥이 있었음을 입증한다.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는 전통 목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최교수가 전통 목회의 특징에 집어넣었던 다른 비성경적 요소들에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것들은 전통 목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현대 목회 조류의 특징이었다. 바로 교회 확장과 성장만을 지향하는 비성경적 실행들, 성경의 문자적인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특정 교파의 왜곡된 특정 교리들로 가르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최교수는 문제점을 언급하면서도 초점을 흐렸고, 오히려 지극히 성경적이고 올바른 부분들까지도 한데 모아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자기의 대안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들기 위한 왜곡된 상황 분석인 것이다.
최교수가 교회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내놓은 대안은 다음과 같다.
1. 문화 목회 A형 : 현 시대의 지배적인 문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교육, 전도, 설교, 교제, 봉사 등의 활동을 현 시대의 문화적 코드와 맞추어 나간다.
2. 문화 목회 B형 : 한국의 전통 문화를 목회의 영역 안에까지 끌어들인다. 문화의 종교적 본질과 궁극적 관심을 통찰한다. 한국 전통 문화 중 하나인 조상제사 문제를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목회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요컨대, "A형 대안"은 교회의 모습을 현 시대 문화와 맞추자는 것이고, "B형 대안"은 교회의 모습을 한국의 전통 문화와 맞추자는 것이다. 물론 현 시대 문화와 맞춘다고 해서 아예 현 시대의 퇴폐한 문화와도 맞추자는 것은 아니고, 다만 현 시대다운 도구들을 사용하자는 생각일 것이다. 또 한국의 전통 문화와 맞춘다고 해서 아예 한국의 전통 문화 속에 깊이 자리잡은 불교와 유교 등을 따르자는 것은 아니고, 다만 뿌리 깊은 한국인의 심리를 고려해 보자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계선이 모호한 대안으로서, 자칫하면 도리어 아주 심각한 교회의 변질을 가져올 수 있는 대안이다. 본지에서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최교수의 대안과 같은 이런 일들을 실행해 보려다가 비성경적이고 반성경적인 일들을 하고 말았던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들, 기독교 단체들에 대해 다루면서 영적으로 망가진 그들의 실태를 성경과 비교하며 평가해 왔다.
문화라는 것은 인류의 지식, 신념, 행위, 생활방식 등을 포함한 폭넓은 개념이다. 현 시대 문화와 한국의 전통 문화와 맞추는 것을 어디까지 맞추자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성경은 목회에 관해서 이런 식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세상 문화에 대한 정확한 영적 분별력이 없이 이런 방향을 추구해 나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에 경고하신 죄악들을 교회 안으로 대거 유입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교회가 성경에 있는 대로만 하면 세상과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에 주의해 보아야 한다. 『세상과 친구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약 4:4).
교회가 성경에 있는 대로만 하면 재미없어서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무관심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에 주의해 보아야 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요, 아버지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2:16).
교회가 이 세상의 문화와 적극적으로 발맞춰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에 주의해 보아야 한다.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들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엡 2:2,3).
최교수는 나름대로 성경을 읽으며 신앙 생활을 해온 교인들이 그가 주장한 대안을 마음 편히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A형 대안과 B형 대안에 대해 각각 다음과 같은 보완책을 제시했다.
1. "A형 대안"에 대해 : 교회가 교회 밖의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정체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걷어내야 한다. 문화에 정당한 신학적 위치를 자리매김해 주어야 한다.
2. "B형 대안"에 대해 : 추도예배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예수님의 성만찬이 그 신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요컨대, 각각의 대안을 교인들이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의 대안을 지지하는 신학적 설명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대로 대안을 제시하고 성경에서 대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먼저 만들어놓고 성경을 그 대안에 끼워 맞춰 보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명령하지도, 두둔하지도 않는 주장에 무슨 제대로 된 신학적 설명이 있을 수는 없다. 설령 어떤 신학자가 설명을 만들어낸다 한들 그것이 성경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비성경적인 것을 두둔하기 위해서는 오직 비성경적인 신학적 설명만이 가능할 뿐이다. 이미 그가 제시한 사례가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 준다. 최교수는 추도예배에 대한 신학적 근거로 예수님의 성만찬을 제시했지만, 예수님의 성만찬이 추도예배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예수님의 성만찬은 그분이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그분이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이다(고전 11:26).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 전무후무한 위대한 역사적 사건을, 자기 조상이 죽은 것에 비교하여 갖다 붙인단 말인가?
교회가 번성하기 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대책을 찾으려고 해야 한다. 하나님의 방법과 일치하지 않는 대책을 세우고 그것을 두둔하는 신학을 만든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설령 그런 대책을 세워서 교회가 번성했다 해도, 비성경적인 방법으로 성장한 것은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것이 아닌데도 교회가 성장했다는 것은 그 교회는 마귀가 자기편으로 생각하는 교회, 마귀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교회인 것이다.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인가?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있는 교회들은 평안을 누리고 든든히 세워져 갔으며 주를 두려워함과 성령의 위로 가운데서 행하니 그 수가 늘어 가더라』(행 9:31). 『그들이 여러 성읍을 경유하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결정한 규례를 주어 지키게 하니라. 그러므로 교회들이 믿음으로 강건해지고 날로 그 수가 늘어 가더라』(행 16:4,5). 하나님께서 번성시키시는 교회는 그 시대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민족의 전통 문화를 끌어들여서 성장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번성시키시는 교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신약의 복음과 교리와 성경적 원칙에 굳게 섬으로써 성장하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