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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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적 갈등의 중심에 선 길자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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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4월호>

지난해 5월, ‘두 명의 조교수 승진 임용 문제’를 계기로 교내 분규 사태를 맞았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이하 ACTS)가 아직까지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총장과 교수․학생 사이에 비방과 불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총장(고세진)의 권력남용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교수들의 파행이라는 두 대결 구도 사이에서 학생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작년 12월 새로이 이사장으로 선출된 길자연 목사(왕성교회)는 사태의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사태 해결에 대한 자신감과 결의에 찬 목소리를 본교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하나님의 깊으신 경륜을 바라보고 기대해 봅시다. ACTS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 ACTS를 통해서 나타날 아세아 복음화를 꿈꾸며 맛봅시다. ACTS의 총장님, 교수님, 학생들, 직원들 모두에게 품고 계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한마음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이사회는 인내를 가지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헌신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런 분규 사태를 자초한 그들 모두에 대해 그분의 선하신 뜻을 품고 계신 것일까? 정말이지 육신적인 갈등과 열매로 점철된 ACTS를 통해 그분의 큰 일을 이루실까? 이는 하나님의 뜻과는 동떨어져 있는 길목사 한 사람의 막연한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성경은 “헌신과 하나님의 뜻”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 12:1,2).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믿음과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고 입증할 수 있는 자격은 세상과 일치한 채 살아가는 자들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신학대학교”란 이름만 있고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는 비성경적이고 육신적인 열매들로 가득 차 있다면, 어찌 그 학교를 가리켜 진리를 가르치고 공부하는 “살아 있는” 신학교라 할 수 있겠는가? 그들,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서 있는 이사회, 총장, 교수들 모두는 하나님의 뜻을 운운할 아무런 자격이 없는 것이다.
“죽어 버린” 신학교에서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길목사의 의도가 아무리 선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관심조차 두지 않으시는 신학교, 곧 육신적 갈등의 중심에 서서 굳이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정당성이나 의로운 명분을 찾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학교를 떠나셨기 때문이다. 이카봇!1)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학교에서 무언가를 해결하러 나선 것 자체가 쓸데없는 일인 것이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롬 8:8). 지금에 와서는 여러 가지 말들이 와전되고 거짓된 비방이 오가는 가운데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지만, 사실 문제 발단의 핵심은 ‘조건부 승진’이라는 잘못된 관행에 있었다. 승진 대상자였던 두 조교수의 논문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논문 내용이 학교의 신학적 입장과 일부 부적절한 면이 드러나자, 교원 인사위원회는 그동안의 관행을 따라 ‘논문을 쓰는 조건으로 승진 임용’해 달라는 건의를 이사회에 요청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관행이 묵살되고 말았다. 이를 두고 교수들의 임용권을 좌지우지하려는 고세진 총장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고, 이것이 총장과 교수들 간의 마찰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700여 명의 학생들이 교수들에 편승하여 총장의 자진사퇴를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수업 거부 및 등록 거부로 이어지다가 지금에 와서는 그 학생들의 제적처리가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길목사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법적인 잘잘못을 따질 것이라 호언장담하였고, 조사 결과를 통해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는 한 육신적인 갈등과 열매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진리를 가르쳐야 할 신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이 가르치는가는 더더욱 중요한 일이다. 그 ‘어떤 사람’을 세우는 중차대한 일에 있어서 ‘조건부 승진’이라는 관행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 학교가 어떤 곳이든 간에 수많은 학생들이 비진리로 오염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했는가를 떠나서 그 논문 내용이 ‘학교의 신학적 입장’과 차이가 있었다면, 어떤 부분이 신학적 입장과 차이가 있었는지를 따져봐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왜 정교수로의 승진 자격이 박탈될 수밖에 없었는지의 진위를 우선적으로 가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내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들의 입지 문제가 중요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들의 서로에 대한 비방의 주된 쟁점들을 살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들에게 논문에 담겨 있는 신학적 입장의 진위를 가리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던 주된 이유를 보면, ACTS의 초교파적인 신학적 입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초교파를 지향하는 자들이란, 한마디로 성경적 진리에 대해 기준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 논문의 내용이 성경적인지 비성경적인지 분별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그들의 신학적 입장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될 게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조건부 승진’이라는 잘못된 관행도 쉽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ACTS의 신학교로서의 기능에 있다. 바른 성경도, 바른 교리도, 바른 신학도 없는 학교에서 무언가 선한 열매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다. 이런 가운데 육신적인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카봇! 하나님께서 떠나신 신학교를 무슨 수로 바로잡겠단 말인가? 더군다나 성경대로 실행하지도 않고 오직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세상을 위해 일하는 길자연 목사에게 사태 해결을 위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육신에 있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본 사태로 인해 ACTS 총장의 거액 연봉 문제도 제기되었고 이제 몇몇 이사들(한철하 이사, 이영덕 이사)의 비리 문제도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2) 현재 ACTS는 50억 원의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 중 20억여 원은 당장 갚아야 할 급한 사안이기도 하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총장의 거액 연봉에 대한 진위 문제는 침묵 속에 사라졌고, 두 명의 이사는 11억여 원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길자연 목사가 신임 이사장이 된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학교 설립자인 한철하 이사의 사직서를 수리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에 대해 한이사의 과욕이 낳은 결과라는 말로 해명했지만, 그 이면에는 9억여 원에 달하는 거액의 비리 의혹을 잠재울 수 있는 명분과 자신의 영향력 행사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요소(한철하 이사가 설립자란 사실을 감안할 것)를 잠재울 수 있는 실리,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는 의도가 숨겨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의 깊은 속마음을 누가 알 수 있겠느냐(렘 17:9,10)마는 그런 의도가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 길목사가 이사장으로 선임되는 과정 자체부터가 의혹투성이였기 때문이다. ACTS 내 학교정의실현추진협의회는, 길목사가 전임 이사장이었던 김삼환 목사(명성교회)에게 모욕을 주어 자진 사퇴를 압박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그가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되는 과정이 적법한 이사회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길목사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물론 지금 누구의 말에 손을 들어 주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진리를 배우지도 못하고 제적상태에 놓여 피해를 보고 있는 학생들 위에 서서, 소위 기독교 지도자들이란 사람들이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가운데 정치계에서나 볼 수 있는 권력다툼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오십보백보다. ACTS 설립자 한철하 이사에게 집중되었던 권력이 지난해 선임된 고세진 총장-김삼환 이사장에게 이동되고 이제는 길자연 이사장에게로 이동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ACTS 내 지도자들은 서로의 권력남용에 대해 때로는 정직하게 때로는 과장하여 비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양무리를 치고 돌보는 목자들이 지녀야 할 권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신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3).
이카봇! 하나님께서 떠나신 학교에서 육신적인 갈등들을 무슨 수로 수습하겠단 말인가? 결국 길목사는 무리수를 두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례로 그는 제적 위기에 놓인 700여 명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법을 어기는 것까지 감수할 뜻을 비쳤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총장에게만 전가할 뿐이다. 길목사는 작년 12월 21일 고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교육부의 어떤 분과 묵인해 주기로 합의했으니 염려 말라”는 말로 “법적 가능성(?)”까지 열어 두기도 했다.3) 그는 그 많은 학생들을 제적시킬 수는 없지 않냐는 단순한 이유로 해명했지만, 사실 학생들의 미등록으로 인해 생기는 손실은 15억 원에 달하기 때문에 재정적 손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8). 육신적인 행보는 육신적인 갈등만을 낳을 뿐이며 그 해결 방법도 육신적일 수밖에 없다. 이카봇!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곳에서는 육신적인 열매와 결과만 있을 뿐이다. 육신적인 갈등의 중심에 선 길자연 목사의 행보에 ACTS 관련자들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으나, 그 열매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성경적 이유와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더군다나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서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 자리에서 떠나는 것이 성경적 처신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은 곳에서 아무리 그 어떠한 열정을 불태운다 할지라도, 그 어떤 것도 육신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떠난 사람(롬 16:17)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벧전 5:6). BB
주석)----------------- 1) 이스라엘이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을 당시, 피느하스의 아내가 출산 후 낳은 아이에게 붙여 준 이름으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라는 의미임(삼상 4장 참조).
2) 크리스챤신문, 2007.3.5, 제4면.
3) 크리스천투데이 인터넷신문, 2007.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