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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반드시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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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10월호>
누군가가 필자에게 한국 교회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이스라엘의 회복과 재림”이라고 말할 것이다. 구원, 믿음, 은사 같은 단어들은 교회들 안에서 그것도 의미가 왜곡된 채 지나칠 정도로 난무하지만, 유독 두 용어만큼은 바다의 파도 소리를 산골짜기에서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전혀 들어 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는 무천년주의에 함몰되어 애초부터 믿음의 흔적도 없이 “사회 복음”으로 시작된 교회들이니,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의 핵심 교리이자 상호 밀접한 관계에 놓인 이 두 교리를 말할 리가 없는 것이다.신약성경을 펼쳐 보면 바울이 사역할 당시에도 가증한 무천년주의에 대한 경고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을 일깨워 주어 말씀들에 관해 다투지 말라고 주 앞에서 당부하라. 이는 아무런 유익함도 없고 오히려 듣는 자들을 파멸시킴이니라.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그들의 말은 종창처럼 퍼져 나갈 것이며 그들 가운데는 후메내오와 필레토가 있느니라. 그들은 진리에 관해서는 정도를 벗어나서 부활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말하여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뒤엎고 있느니라』(딤후 2:14-18).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말씀들에 대해 다투는 자들”을 언급했다. 디모데가 사역했던 에베소 교회에 모종의 교리적 논쟁이 있었던 것인데, 정작 말씀들에 대해 다투었던 당사자들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었고, 또 얼굴을 붉힌 채 언쟁하는 모습을 지켜본 자들은 신앙에 대해 강한 회의감을 느껴 실족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논쟁에 관한 해법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딤후 2:15)하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면 말씀들에 대한 논쟁이 그칠 것이라는 얘긴데, 우리는 그러한 해석법을 가리켜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라고 부른다. 오직 그것만이 성경을 교리적으로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이며, 그 법칙을 떠났을 때는 “믿음을 뒤엎는” 일만 남게 된다. 당시 그런 일을 조장한 자들이 “후메내오”와 “필레토”였는데, 그들은 진리에 관해서는 정도를 벗어나 부활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말함으로써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뒤엎고 있었다. 믿음이 뒤엎어지면 배가 파선한 것과 같아서 더 이상 항해할 수 없게 된다. 화물도, 화물을 실어 나르던 사람들도 바다에 빠져서 인명과 재산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온다. 이처럼 끔찍한 일이 부활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주장함으로써 육체의 부활을 가려 버린 “두 무천년주의자”에 의해 영적인 영역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 자들로 인해 교회는 믿음의 항해를 지속할 수 없게 되고, “배교의 바다”에서 파선한 채 모든 것이 끝나 버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두 무천년주의자는 에베소서 2:1의 “영의 부활”(『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로 모든 부활이 끝난 것으로 간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종결될 “첫 번째 부활”을 부인하는 죄를 범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그들이 그 위에 앉았는데 심판이 그들에게 주어졌더라. 또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사람들의 혼들도 보았는데, 그들은 그 짐승에게나 그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표를 그들의 이마 위에나 손에도 받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을 통치하더라. 그러나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 나머지는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리라. 이것이 첫 번째 부활이라』(계 20:4,5). “첫 번째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 때 함께 일어난 “구약 성도들의 부활”(마 27:52)과 교회의 휴거 때 있을 “신약 성도들의 부활”(살전 4:16, 고전 15:52) 그리고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목 베임을 당한 “환란 성도들의 부활”(계 20:4)을 포함하는 부활이며, 휴거 이후 대환란 끝에 있을 환란 성도들의 부활로 완성된다. 이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한 성도들은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통치하는 복을 누리게 된다(계 20:5). 특히 유대인 환란 성도들의 “환란 후 휴거”(계 11:12; 14:1)와 “재림”(계 19:14, 솔 6:13)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복과 연관된 결정적인 요소들이다. 그 유대인들은 주님과 함께 땅으로 내려와 아브라함과 그의 씨인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바로 그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창 15:18-21).
문제는 이와 같은 성경적 교리를 믿지 않고 무천년주의의 이단 교리를 따르면, 그 사람의 믿음은 뒤엎어진 것이 되고, 또 그런 교회는 사탄에게 넘겨진 교회가 된다는 데 있다. 『믿음과 선한 양심을 붙들라. 어떤 사람들은 믿음에 대한 선한 양심을 내던지므로 파선하였느니라.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는데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준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배우게 하려는 것이라』(딤전 1:19,20). 사탄에게 넘겨진 교회가 되지 않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분의 문자적인 천년왕국 통치를 거부하는 무천년주의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재림을 가르치는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를 수용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대비할 때 사탄의 교회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재림 때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는 말씀들이 성경 곳곳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비유나 상징적인 내용으로 보면서 문자적인 회복을 거부하는 이단 교리를 수용한 것은 자신이 스스로 마귀의 올무에 사로잡힌 일이기에(딤후 2:26), 그 민족의 회복에 관한 증거들을 온전히 깨닫고 그러한 교리적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첫째, 신명기 30장에는 “아브라함의 언약”에 근거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약속되어 있다. 『그때는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사로잡힘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어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를 흩으셨던 모든 민족들로부터 너를 돌이켜 모으시리라... 네 조상들이 차지했던 땅으로 너를 데려오시리니 그리하면 네가 그것을 차지할 것이요, 그분께서는 네게 선을 행하시고 네 조상들보다 너를 더 번성케 하시리라... 이는 주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기로 맹세하신 그 땅에서 너로 살게 하려 하심이라』(3,5,20절). 이 약속은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이나 어떤 유대인의 영적 회심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네 조상들이 차지했던 땅』(5절)과 관련된 “물리적인 회복의 약속”이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로 인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반드시 회복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에 관한 언약” 때문인데,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창 15:12)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인 언약”을 체결하심으로써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 날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네 씨에게 주었으니, 켄인들과 크니스인들과 캇몬인들과 힛인들과 프리스인들과 르파인들과 아모리인들과 카나안인들과 기르가스인들과 여부스인들의 땅이니라.” 하시니라』(창 15:18-21). 바로 이 아브라함의 언약에서 이스라엘은 반드시 본토로 회복되어야 할 당위성을 얻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이 직접 체결하신 언약 때문에 아브라함의 육신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반드시 그 약속의 땅에 살게 하셔야 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21장에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지만, 24장에서는 무화과나무의 회복을 말씀하셨다. 『주께서 아침에 그 도성으로 돌아오실 때에 시장하셔서, 길가에 있는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에 가셨으나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시자, 그 나무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 네게서 영원히 열매가 맺히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니, 그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리더라』(마 21:18,19). 『무화과나무의 한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면, 여름이 가까운 줄 너희가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것을 보면 그 일이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
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최초의 인류가 그 잎을 엮어 만든 치마로 자신의 죄의 수치를 직접 가리려고 했던 것처럼(창 3:7) “자기 의에 빠져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는(롬 10:3)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시장하셔서 찾아간 무화과나무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신 주님께서는 그 나무를 저주하여 말라 버리게 하셨는데, 이것은 초림 때의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이후 1,900년 동안 지상에서 어떤 영적 열매도 맺지 못하는 민족적 무능력에 빠질 것을 보여 주신 사건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 가서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이것은 대환란과 재림을 다루는 24장의 문맥에서 결론적으로 언급하신 말씀으로서 무화과나무에 비유되는 이스라엘이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게 되면 대환란과 재림이 문들 앞에 이른 줄 알라는 뜻이었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독립 국가를 세웠을 때 그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로써 그들이 민족적으로 회복될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죄로 인해 저주하기도 하시지만, 그 민족을 완전히 소멸하지 않으시고(말 3:6, 렘 31:35-40) 반드시 회복시키기도 하시는 분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분께서 체결하신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인해 그 백성을 반드시 그 약속의 땅에 살게 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스라엘이 소멸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지키실 수 없게 되고, 그 민족을 위한 약속의 땅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공허한 곳이 되고 만다.
셋째, 현재 본토로 그 일부가 돌아와 있는 이스라엘은 대환란 기간에 다시 쫓겨나고 흩어져서 고난을 겪은 뒤에 민족 전체가 회복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 날에 이새에게서 한 뿌리가 있어 백성의 깃발로 서리니 이방인들이 그것을 찾을 것이며 그의 머무는 자리가 영화로우리라. 그 날에는 주께서 다시 두 번째로 손을 펴사 남아 있는 그의 백성의 남은 자들을 회복시켜 앗시리아와 이집트와 파드로스와 쿠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의 섬들로부터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그가 민족들을 위하여 한 깃발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내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의 네 모퉁이로부터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함께 모으시리라』(사 11:10-12).
우리가 이 예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날”이라는 단어와 “그날에는 주께서 다시 두 번째로 손을 펴사 그의 백성의 남은 자들을 회복시키신다”는 표현이다. “그날”이 어떤 날인가는 앞의 문맥에서 분명히 드러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악한 자를 죽이실 “재림 때”인 것이다(사 11:4). 또한 맹수들과 여린 짐승들이 함께 거하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고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집어넣는 때, 곧 자연계가 회복되는 재림 때이며(사 11:6-8), 그날에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이기에 주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사 11:9). 이러한 문맥 속에서 10절에서는 계보상 다윗의 아비인 이새에게서 나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백성의 깃발로 서시면 이방인들이 그분을 보고 몰려들 것이고(사 2:2), 또한 그분께서 머무시는 자리가 영화로울 것이라고 말씀하는데, 이 역시 재림 때 일어날 일이다. 특히 『그 날에는 주께서 다시 두 번째로 손을 펴사 남아 있는 그의 백성의 남은 자들을 회복시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사 11:11)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번의 회복”이 있을 것임을 보여 준다. 즉 “첫 번째 회복”은 유대인의 남은 자들이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다 차자 에스라와 느헤미야 때 사로잡힘에서 풀려나 본토로 회복된 사건을 말하고, 주님께서 “두 번째로 손을 펴서 이루실 회복”은 앞으로 대환란 기간에 또다시 흩어질 현세대의 이스라엘을 재림 때 그 남은 자들만 본토로 회복시키실 사건을 가리킨다.
말씀을 의심하고 상징으로 보는 자들이 이런 진리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재림 때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성경의 증거는 넘쳐 난다. 특히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받는 구원을 강조함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회복과 재림 또한 강조했다.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거부한 동족의 죄와(롬 9:30-32) 주께서 그들의 죄를 정결케 하시어 회복시키시는 과정을(롬 11장) 로마서에 기록한 것이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롬 11:26).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구약의 약속들이 영적으로 교회에 넘어왔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간과한 것은, 교회가 “구원의 교리”에 있어서 올바로 서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과 관련된 교리” 또한 올바로 깨닫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바울은 조만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꺾어 버리시고 이스라엘을 본래의 가지에 다시 접붙이실 것이라고 예언했다(롬 11:21-24). 구원의 교리에만 집착한 나머지 이스라엘의 회복과 재림을 무시하는 것은 로마서를 제대로 읽는 방법이 아니다. 말하자면 행위 구원을 가르치면서 무천년주의를 표방하는 한국 교회는 로마서 전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인즉, 그러면서도 스스로 교회라고 자처하니 한심할 따름이다. 재림 때 주님께서는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거민들 위에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 주실 것이다(슼 12:10-14). 그러면 이스라엘이 마음에 할례를 받아 회개할 것이고(신 30:6), 그날에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거민들에게 “죄와 불결을 씻는 샘”이 열려 그들이 정결케 될 것이다(슼 13:1,2). 이렇듯 “마른 뼈들”처럼 한때 소생의 희망이 전혀 없었던 이스라엘은 뼈들에 살과 힘줄이 붙고 피부가 덮이는 것처럼 회복될 것이다(겔 37:1-14). 이스라엘의 회복,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성경의 명백한 진리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