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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평화”를 위한 적그리스도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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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09월호>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온 뉴스 매체의 중심이 되었다. 종교 차원을 넘어 온 나라가 들떠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교황은 도착 첫 인사로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했다. 방한 전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는 “사랑과 희망의 복음을 나누려고 한국에 간다.”고 했다. 가난하고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이웃을 품는 차원에서 음성 꽃동네를 방문했고, 세월호 희생자 가족,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 교황의 방한에 대해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가 환영하는 논평을 8월 12일 발표했다. 언론에 따르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모든 교회의 화해와 협력·일치를 위해 노력해 온 우리 교단은, 전 세계 12억 천주교 성도들의 최고 지도자이자 전 세계인들에게 ‘평화의 사도’로 존경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적극 환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자고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이웃 사랑의 지상명령을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도요, 이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다. 그분의 방한을 통해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이 증진되고, 우리 사회의 갈등이 치유되는 계기가 되길 기도한다. 또한 개신교와 천주교, 모든 이웃 종교가 서로의 다름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며, 지속적인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한 마음으로 사회의 구조악에 맞서게 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현 교황은 카톨릭의 목표인 종교통합의 일환으로 로마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오순절 은사주의 교도들의 모임에 직접 나타나 무릎 꿇고 기도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조엘 오스틴 목사를 포함한 15명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기도 했으며, 또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오바마가 주선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의 실패한 평화 회담을 몇 주 후 잠정적으로나마 성사시켰다. 동시에 이슬람, 유대교, 그리고 교황이 기독교를 대표하며 함께 모여 세 종교가 평화와 용서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위해 기도했다. 바티칸이 중심이 되어 모든 종교를 통합해 감으로써, 교황은 점진적으로 온 세상에 평화의 사도로서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미국 유력지 ‘포춘’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1위에 올랐다.
성경에 계시된 적그리스도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화평의 통치자』(사 9:6)를 흉내내어 자신을 하나님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마귀의 가장 뛰어난 능력이다. 『그의 지혜를 통하여 그가 자기 손에 기술을 늘려서 자기 마음속에 자신을 높이고 평화로 많은 것을 멸하리라』(단 8:25). 적그리스도는 이 “평화”라는 말을 통하여 전 세계를 통치하고 지배하고자 한다. 자신을 거룩한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선언해 버리는 죄의 사람을 가장 잘 분별할 수 있는 외양적 특징은 그가 “세계 평화”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 또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그 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그는 대적하는 자며, 또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받는 대상 위에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처럼 보여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느니라』(살후 2:3,4). 죄의 사람은 ‘사랑과 희망의 복음’은 말하면서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해서는(행 4:12, 고전 15:3,4)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어떤 교황이 전 세계 어느 곳을 방문하든 마찬가지다. 자신이 믿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형식적으로나마 한마디라도 하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 온 종교 통합, 정치 통합의 노력이 무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황이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할 때 그는 적그리스도의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내 백성의 딸의 상처를 조금 고쳐 주고 말하기를 “화평이라, 화평이라.” 하나 거기에는 화평이 없도다』(렘 6:14).
반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신 것을 제외하고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이 세상의 화평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다. 『나는 세상을 위하여는 기도하지 아니하고 다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이는 그들이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니이다』(요 17:9). 이 세상의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님만큼 부적합한 분도 없으시다. 왜냐하면 『화평의 왕』(히 7:2)께서는 이 땅의 평화에는 관심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내가 땅 위에 화평을 주러 온 줄 생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노라』(마 10:34).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신인 사탄에게 넘겨주신 세상 제도를 도우시는 데는 관심이 없으시기에, 이 세상의 평화, 복지, 번영, 사회 구원 등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으신다(요일 2:16). 이 세상은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오한다(요 15:18). 예수님께서 주시는 화평은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개별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화평이다. 『내가 너희에게 화평을 남겨 두나니 나의 화평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세상이 주는 화평은 공허하고 일시적이며 이기적이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화평은 내적이며(빌 4:7), 순수하고 영적이며(약 3:17), 가장 온전하고(살전 5:23) 영원한 화평이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이기적이고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공허한 화평으로, 성경에서는 이를 거짓 화평이라고 말하는데(살전 5:3), 화평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사 9:6)를 거부한 사람들에게 세상이 그 보상으로 주는 화평이다. 즉 진리를 배격하고 세상을 더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조류에 편승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세상의 화평을 저주로 선물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엡 2:14,15)과, 다시 오심(눅 2:14)과, 통치(사 9:6,7, 슼 9:10)와 연관되어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롬 5:1),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께 순종해야 하며(갈 5:22), 무엇보다도 “화평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소망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직접 통치하실 때에야 비로소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평화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지, 바티칸, UN 등 이방 나라들의 노력과는 결코 연관되지 않는다(겔 37:25,26).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성경을 존귀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있는 잃어버린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국가와 정부의 권세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데(딤전 2:1,2), 특히 국가를 보호해 주시는 것뿐 아니라, 정부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방해하지 않도록, 복음을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증거하는 데 방해하지 않도록, 개인구령을 방해하는 법을 만들지 않도록, 성경대로 행하는 일에 정부가 방해되는 형태를 취하지 않도록,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잡히고 박해받는 일이 없이 맡은 일을 잘 수행하도록, 그리스도인의 성별된 삶을 사는 데 있어서 방해받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진정한 평화는 화평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철장으로 통치하실 때 가능하다(시 2:9). ‘가난한 자들의 벗,’ 사치와 허영 거부, 낮은 곳을 향한 겸손, 행동으로 실천하는 고결성 등으로 꾸며지는 교황의 외모와 행동을 부추김으로, 교황이 평화를 전하면 진짜 평화가 오는 것인 양, 많은 사람들이 미혹당하고 있다. 진리를 따르지 않으면 세계 평화를 위한 적그리스도의 기도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