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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의 완전 배교를 꿈꾸는 이종성 한국기독교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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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12월호>
지난 2007년 10월 20일부터 11월 10일까지 <한국장로신문>에는 4회에 걸쳐 “21세기를 빛나게 할 일꾼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인 이종성 박사의 글이 실렸다. 그 글에서 이원장은 기독교계의 각 종파의 특징과 현황을 열거한 후에 장단점을 열거해 놓았다. 그리고 한국장로신문인 만큼 장로교에 초점을 맞추어 21세기에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제시를 해 놓았다. 그런데 그의 분석은 편파적이고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비성경적이었고, 방향 제시 또한 비성경적이었다.우선 그는 4회에 걸친 연재 글 중 첫 번째 글에서 기독교계의 종파를 다음과 같이 4가지로 분류했다. 각 항목에 대한 설명은 이종성 박사 자신의 설명을 인용한 것이다.
(1) 로마 천주교 : “로마 천주교가 제일 오랜 역사와 양적으로 많은 교인수를 가지고 있다... 천주교의 교직제도는 교황과 추기경과 감독과 사제로 나누어지며 모든 교직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이며 평신도는 전적으로 교회의 지도하에 있다.”
이종성 박사는 로마카톨릭교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아무런 분석도 하지 않았다.
(2) 동방 정교회 : “동방 정교회는 로마 천주교회와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강하다. 주요 교리는 로마 천주교회와 대동소이하나 성상숭배를 엄수하고 있다. 이 점에서 동방 정교회는 다른 교단과 현저하게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
이종성 박사는 동방 정교회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아무런 분석도 하지 않았다.
(3) 프로테스탄트 교회 :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특징은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하여 교회의 사역을 분담하는 데 있다. 성직자인 목사는 설교와 목회와 예전집행(세례, 성만찬)과 축도를 담당한다. 평신도의 대표로서의 장로는 교인을 대표하여 목사의 목회사역을 도우며 교회의 여러 가지 사업을 주도하며 교인들을 잘 교육하고 규율을 지키게 하고 재정문제를 관리한다. 프로테스탄트 교회 중 장로교회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각기 맡은 직분을 분담하여 합의하에 교회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제도로서 이 제도를 통하여 성직자의 전행을 막고 모든 교인의 의견을 반영하는 공동 의회를 구성하는 민주주의 제도에 따르는 교회이다.”
이종성 박사는 장로교회 체제에 대해서는 단순히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직자와 평신도 간에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좋은 제도라고 평가한 것이다. 단점은 언급도 하지 않았고, 성경적인지 여부도 평가하지 않았다.
(4) 개교회주의와 조합교회 : “로마 천주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조직이 잘된 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개교회주의를 신봉하는 교회가 많이 있다. 미국의 조합교회, 침례교회, 군소교회가 이에 속한다. 이 교회는... 개교회가 그 교회 안에서 가지는 모든 프로그램을 그 교회가 단독적으로 처리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가지고 있는 교회는 모든 침례교회와 조합교회와 대다수의 독립교회다. 그 결과 단일적인 정책을 세우거나 타 교단과의 공동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통일적인 태도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리고 교리적인 문제에 있어서 신학적인 견지에서 공동으로 가르치고 지도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에 이단적인 교회로 전락된 교회가 많이 있다. 미국에 사이비 이단이 많이 있는 이유가 이와 같은 개교회주의자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국 교계에 이와 같은 개교회가 많이 생겨 교계를 매우 어지럽게 하고 있다.”
이종성 박사는 침례교회를 비롯하여 교단이 아닌 독립교회의 체제에 대해서도 단순히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직도 잘 되어 있지 않고 통일성도 없고 사이비 이단으로 쉽게 전락하며 교계를 어지럽히는 악질적인 제도인 것처럼 평가한 것이다. 장점은 언급도 하지 않았고, 성경적인지 여부도 평가하지 않았다.
이상 4가지 교파에 대한 이종성 박사의 분석은 편파적이고 주관적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균형이 깨진 설명을 한 것이다. 물론 <한국“장로”신문>에 실은 글이니 그처럼 편파적으로 장로교 제도에 아부해야 대다수의 구독자들이 좋아하겠지만, 그것은 학자적인 양심도, 그리스도인다운 자세도 아니다. 비록 그가 두 번째 글에서는 장로교회에서 목사들과 장로들 사이에 퍼져 있는 심한 알력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목사와 장로가 회개하고 서로 협력해서 세계복음화를 위해 일하자는 주장을 했지만, 그는 이런 부정적인 부분을 첫 번째 글, 곧 각 교파를 분석하는 곳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종성 박사는 장로교 제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그저 믿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 날들을 향한 예언과 권면까지도 기록되어 있는 성경에, 또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시려고 영감으로 주신 성경에(딤후 3:16,17), “교단”은 전혀 언급되거나 추천되지 않았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인간들의 전통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도를 전혀 추천하지 않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하는 성도들을, 거대해지고 비둔해져서 비성경적인 교리나 실행들을 쉽게 뜯어고칠 수도 없는 굳어진 제도 조직 속에 넣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는 목사(목자)와 장로, 감독이 모두 같은 직분을 말하는 것이지, 서로 별개의 대립하는 직분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장로는 감독이며(행 20:17,28, 딛 1:5,7) 장로는 목자다(벧전 5:1-4). 교회 내의 직분에 대해서는 감독과 집사만 언급되며(빌 1:1, 딤전 3:1,8), 서로 구분된 목사와 장로, 또는 권사, 안수집사, 그냥 집사 같은 직분은 성경에 제시되지 않는다. 장로교의 제도가 인간적인 발상에 의해 생겨난 것임을 알려 주고 계시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자세도 안되어 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남보다 특별히 수고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온갖 “직위”에 올라앉아, 지나가다가 발에 걸리는 것이 온통 교회 직분인 것처럼 되어 버린 현실이 한국 장로교회 제도의 결실이다.
물론 교단이든 개교회이든, 목사와 집사이든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이든 간에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을 수 있고, 사람들이 얼마나 진실되게 섬기느냐, 얼마나 육신적으로 활동하느냐에 따라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성경에 제시되지 않은 방식을 오히려 고수하며, 하나님의 지혜로 성경에 제시된 방식에 대해서는 편파적으로 비방하는 것인가? 이종성 박사는 올바른 신학자로서의 자세가 되어 있지 못하다.
어떤 교회의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이 성경의 진리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서 벗어나 사이비 이단으로 전락할 수준인데, 단지 그 교회가 교단의 통제하에 있다는 이유로 그 장애물에 걸려서 더 이상 전락하지 않은 것이라면, 이미 그 교회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없는 교회다.
이종성 박사는 또 “지식과 교양”의 수준에 따라 교파가 다르게 발전했다며, 종파들을 사회 계급에 따라 분류했는데, 그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식과 교양의 수준에 따라 교파가 다르게 발전했다. 특히 미국 사회에서 이 현상이 나타난다. 상류계급은 성공회, 장로교회, 조합교회...의 대다수가 이에 속한다. 중류계급은 장로교회, 감리교회, 루터교회, 침례교회 일부가 이에 속하고, 하류계급은 침례교회, 감리교회, 군소교단, 대다수의 독립교단, 많은 이민교단교회가 이에 속한다.”
장로교에 호의를 보이며 편파적인 분석을 하는 이종성 박사가 이런 통계를 제시하며 나름대로 어떤 우월감을 느꼈을지 예상이 된다. 그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장로교회는 사회의 상류계급과 하다못해 중류계급에 속하지, 절대로 하류계급에는 안 속한다!
이 통계가 사실이라면, 이 자료는 사실상 장로교회의 현황이 성경적인 기준에서 멀리 벗어났음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 어쩌다가 그 교회가 사회의 상류계급 내지 기껏해야 중류계급까지만 즐기는 인간의 모임으로 전락했단 말인가?
성경 :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육신을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자도 많지 않으며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자도 많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선택하심은 지혜로운 자들로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선택하심은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선택하신 것은 없는 것들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만들려 하심이라. 그리하여 아무 육체라도 그분의 면전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되리라』(고전 1:26-29).
이박사 : “설마 그럴 리가.”
성경 :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경청하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난한 자들을 택하시어 믿음 안에서 부요하게 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그 왕국의 상속자들로 삼으신 것이 아니냐?』(약 2:5)
이박사 : “에이, 아닐 거예요.”
성경 :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이박사 :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종성 박사는 그의 마지막 4번째 글에서 목사와 장로들에게 다시 잘 화합하도록 권면을 준 후, 다음과 같이 비전을 제시한다.
“한국장로교회가 해야 할 또 하나의 급선무는 남북이 통일되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모든 장로교회의 교단이 하나의 장로교단으로 합동하는 일이다... 한국장로교회가 대동단결할 때, 한국장로교회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장로교회와 전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나아가서는 로마 천주교회와 힘을 합하여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공사를 크게 진척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교회의 통합을 성취한 후에 거기서 출발하여 남북통일을 말하고 조국통일을 추진해야 한다. 그 때가 되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공사를 마치고 이 나라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시리라고 믿는다.”
나름 대로 “감동적인” 비전을 만들어내려고 애썼지만,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며, 결말이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종성 박사는 결국 로마카톨릭과 하나가 되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가 첫 번째 글에서 비성경적이고 비기독교적인 교리와 실행들로 점철된 로마카톨릭에 대해 아무런 비평도 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목적 때문이었다. 그가 침례교회를 비롯한 독립교회들에 대해 편파적인 비방을 한 것도 바로 이런 목적 때문이었다. 그의 비전에 방해가 되는 것은 오직 반카톨릭을 표방하며, 결국 마지막 때에 친카톨릭으로 돌변한 프로테스탄트 교회들마저 반대하는 침례교회와 같은 독립교회들이다. 현재 거대한 교단들은 모두 친카톨릭 세력으로 바뀌었지만, 이 “게릴라 같은” 독립교회들은 눈에 가시인 것이다. 이종성 박사는 자신이 알든 모르든 간에 적그리스도를 위한 신학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마지막에 로마카톨릭을 등에 업고 나타날 것이다(계 17:3-18, 본지 통권 169호 “로마카톨릭교 경사에 환호하는 사회” 참조). 이종성 박사의 비전은 장로교와 전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연합하여 거기에 합류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전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는 공사가 잘 마무리될 무렵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배교가 만연하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며, 그의 사악한 활동이 전 세계에 만연할 때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예수님의 재림은 이루어질 것이다(살후 2:3-8). 이종성 박사가 한 것 같은 주장은 성경에서 “미혹”이라고 정의되어 있다(살후 2:3).
이종성 박사와, 그 같은 사람을 원장으로 모시고 있는 한국기독교학술원이라는 단체, 그리고 그 같은 사람의 글을 여과 없이 연재해 주는 <한국장로신문>이라는 기독교 언론 단체는 신학적으로 완전히 빗나가 있음을, 이박사의 4회에 걸친 연재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