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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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을 복음, 행위 구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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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4월호>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갈 1:8).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이 유지된다”는 올바른 성경적 구원론이 재확인된 것이 500년도 더 지났다. 로마카톨릭이 그들의 “행위 구원론”도 모자라서 “면죄부”를 팔아 부를 축적하고 있을 때,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였던 루터는 거대한 로마카톨릭의 힘 앞에 홀연히 맞서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문 앞에 게시함으로써 중세 암흑시대의 끝을 알린 종교개혁의 샛별이 되었다. 그는 올바른 성경적 믿음을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었고, 성경대로 믿는 위대한 사역자였다.

물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이 유지된다”는 성경적 믿음은 루터가 처음 주장한 새로운 교리가 아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에게 계시되었고, 사도 바울이 믿었으며, 사도 바울을 통해 전파된 바로 그 구원론이며, 이 은혜의 시대를 위한 유일한 성경적 구원론인 것이다. 이 구원론은 에베소 교회 시대에 모든 사도들에 의해 전파된 믿음이며, 스머나 교회 시대에는 노바티안, 퍼가모 교회 시대에는 도나티스트, 두아티라 교회 시대에는 폴리시안, 사데 교회 시대에는 왈덴시안,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에는 재침례교도들로 대표되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면면히 이어져 온 바로 그 성경적 구원론이었다. 물론 사탄의 종교 로마카톨릭이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성경대로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보호하시고, 그들의 믿음이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지게 하셨다.

바울이 사역을 하던 시절에도 올바른 성경적 구원론을 벗어난 무리들이 있었다. 『나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으로부터 그렇게 빨리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게 됨을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너희를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키려는 것이라』(갈 1:6,7). 그리스도의 은혜로부터 벗어나 변질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신약 시대 초기부터 있어 왔으며 오늘날에도 그 세력이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 로마카톨릭이며,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행위 구원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며 이단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카톨릭의 종말은 그것이 무너질 것이라고 성경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다(계 18:2).

오늘날 로마카톨릭식 “행위 구원”의 누룩은 로마카톨릭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기독교계 안에 널리 퍼져 있다. 많은 종파들이 그들의 교리 안에 “행위 구원”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러한 교리에 따라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른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 장로교는 칼빈주의 5대 강령을 받아들여 성경보다 칼빈을 더 우위에 두고 있는데(이것은 사악한 우상 숭배이다), 칼빈주의의 다섯 번째 강령인 “성도의 견인”은 믿음을 행위로 유지해야 한다는 이단 교리이다. 감리교는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로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행위 구원론”을 주장한다. 이것은 단번 속죄를 통해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무시하는 사악한 교리이다. 순복음교회는 방언 등의 은사가 있어야 구원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종파로서, 교인들이 골방에 들어가 방언 연습을 하게 만드는 이단이다. 하물며 “행위 구원”을 말하는 “안식교,” “몰몬교”와 “여호와의 증인”은 더 말해서 무엇 하랴? 이들도 로마카톨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결국 이러한 종파들의 교인들은 행위에 의존해 구원받으려다가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되어 있다(마 15:14).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갈 2:16).

우리나라의 기독교계는 이렇게 스스로가 “행위 교리”에 빠져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분명히 이단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행위 구원”을 이단으로 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 중 일부 학자들과 목사들은 “행위 구원론”을 올바른 구원론으로 착각하기까지 한다. 하물며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이 유지된다”는 올바른 성경적 구원론을 공격하는 자들도 있다. 호서대 신학과 임태수 명예교수, 전 풀러신학교 김세윤 교수, 미국 뉴저지주 사랑과진리교회의 벤자민 오 목사, 전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 박영돈 목사 같은 자들이 바로 그러한 자들이다. 한국 기독교계는 언제까지 이런 “행위 구원론자들”에게 끌려다닐 것인가? 한국 기독교계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루터의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자신들이 거부했음을 자인한 게 아닌가!

임태수 교수는 1977년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가 되었으며, 호서대 신학교 교수와 인문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현재 호서대 신학과 명예교수, 온겨레교회 협동목사, 제2종교개혁연구소 소장이다. 그는 「루터 칭의론의 문제점」이란 글에서 “‘오직 믿음으로’라는 말 자체가 잘못된 말이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은 했지만(롬 3:28), 결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는 말한 적이 없다.”라고 무지한 주장을 했다. 그는 또한 「제2종교개혁 신학강좌」 등을 개설하여 『나에게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되느니라.』(마 7:21), 『이제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약 2:24) 등 교리적으로 대환란 시대에 적용해야 할 구절들을 인용하며 “우리가 루터의 잘못된 구원론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주장했으며,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제2종교개혁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임태수 교수가 인용한 마태복음이나 야고보서의 구절들은 “환란 시대”에 적용되는 구절이지 이 은혜의 시대에 적용되는 구절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는 왜 임태수 교수를 파면하지 않는가? 한국기독교장로회도 임 교수처럼 “행위 구원”을 믿는 것인가?

전 풀러신학교 교수로서 그의 저서 <칭의와 성화>에서 “칭의”(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의롭다고 여겨 주심”)에 관한 잘못된 주장을 펼쳤던 김세윤 박사는 그의 새로운 저서 <칭의와 하나님 나라>에서도 여전히 “종말 때의 칭의는 세례 때 받은 칭의의 확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의 칭의론이 잘못된 근거 위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믿음이 의로 여겨진다”는 성경 말씀을 무시하고 “세례”와 같은 의식, 즉 행위에 칭의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구원”에 관해서도, “구원이 마치 식당 예약처럼 칭의로 예약되었으나 우리 자신이 그 예약을 무시하고 식당에 가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칭의도 그와 같다”라고 주장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도 합당한 행위가 없으면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명백한 “행위 구원” 논리이다. 그러나 성경은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롬 4:5)라고 분명히 선언하신다.

벤자민 오 목사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설교와 강연으로 오히려 “이신칭의” 구원론을 적극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에 정착된 “이신칭의” 구원론을 마귀의 거짓 구원론이라고 공격하였다. 그는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아멘! 그러므로 행함은 구원과는 무관한 것이다. 이것이 너무나 그럴듯한 거짓말이었고, 무수히 많은 교인들이 이 거짓말에 속아서, 아마 제가 아직 안 가보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억울해하고 있을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구원에 있어서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는 것은 거짓 가르침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은 곧 행위가 구원의 근거이고, 또한 행위가 구원을 유지하는 필수적 조건이라는 뜻이다.

전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이자 현재 작은목자들교회의 담임목사인 박영돈은 그의 페이스북에 「값싼 은혜의 복음은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왜곡한 것」이라는 글을 썼다. 그는 그 글에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거룩함의 열매가 없어도 믿기만 하면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라며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서 믿었기에 구원받았다고 굳게 확신하는 것은 마귀가 준 거짓 확신입니다.”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그는 “성경은 분명히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히 12:14).” “주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주를 본다고 했습니다. 죄에서 떠나 순결하고 거룩하지 못한 이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라며 “행위 구원”을 강조했다.

임태수, 김세윤, 벤자민 오, 박영돈 같은 “행위 구원론자들”이 현 교회 시대의 교리서인 로마서에서 빌레몬서까지의 바울 서신은 고의로 무시하고, 환란 시대에 적용해야 할 마태복음, 히브리서, 야고보서의 구절들을 인용하는 것은 그들이 성경에 무지한 자들임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성경은 올바로 나누어 공부해야 한다(딤후 2:15). “행위 구원론자들”은 교회 시대와 환란 시대를 나누지 못하여 무지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하물며 그들은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도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교단에서 강의하고 강단에서 설교하면서 얼마나 많은 거짓 교리의 누룩을 퍼뜨렸겠는가!

대환란 때에는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는다(계 12:17; 14:12). 그러나 현 교회 시대에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이 시대의 구원에 행위를 섞어 넣는 것은 저주받을 이단 교리이다(갈 1:8). 구원에 행위를 결부시키는 것은 성경을 나누어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딤후 2:15). 신학교 교수들과 목사들이 무지하면서도 담대하게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또 그들의 주장이 옳은 줄로 잘못 알고 그들에게서 배운 학생들과 교인들은 제대로 구원받지 못한 채 지옥의 대기자로 줄서 있으면서도 “거룩한 행실”을 통해 구원받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거룩한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 은혜의 시대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받는 것이다. “행위”는 결코 “은혜”가 아니다. 『은혜로 된 것이면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행위로 된 것이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행위는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롬 11:6). 더 이상 마귀의 교리인 “행위 구원론”에 속지 말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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