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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나간 신학대학, 미쳐가는 한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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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11월호>
필자가 학창 시절, 그러니까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간다. 당시 교회들에서는 중고등학생부에서 『문학의 밤』, 『찬양의 밤』 같은 문화행사들을 많이 하곤 했었다. 아직 CCM이나 록 콘서트가 교회들에서 흔히 행해지기 전이었다. 찬송이나 성시 낭송, 연극 같은 것들을 발표하면서 학생들은 나름대로의 기독교 문화를 즐기곤 했다. 그래도 불려지는 찬송이나 공연되는 연극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수한 내용의 것들이 많았었다.당시는 1980년대,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7080 시대”였다. 세상에서는 통기타와 밴드 음악과 디스코와 록 음악이 유행하던 시대, 교회들도 이런 유행에 둔감할 리 없었다. 당시 필자가 다니던 교회에서도 『문학의 밤』을 했는데, 한번은 학생회에서 어떤 고등학교의 밴드부(록 밴드)를 초청했었다. 원래는 복음성가 몇 곡을 부르기로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무대에 올라간 그 밴드는 갑자기 당시에 유행하던 7080 록 음악을 불러 버렸다. 순간 학생 청중들은 미칠 듯이 환호했고, 당시 보수적이었던 그 교회는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날 저런 풍경은 더 이상 희한하지 않게 되었다. 교회를 발칵 뒤집을 일은 더더욱 아니다. 온 교회들이 록 음악에 미쳐 있고, 세상 문화에 흠뻑 취해 있기 때문이다. 말은 “찬양”이라 하지만, 가사만 적당히 기독교적 냄새가 나게 만들어 놓고 음악은 세상 음악을 실어 놓았기에, 사실상 전혀 “찬양”이 아닌 것이다.
얼마 전에 신문에 난 광고를 하나 보았다. 매 학기 때마다 잊지 않고 내는 서울신학대학교의 『인문학 강좌』 광고다. 벌써 제5기라 하니 아무래도 그들은 그 일을 꾸준히 하려나 보다. 이번에도 역시 거듭나지 않은 여러 학자들, 정치인, 경제인들을 불러서 성경과는 관련 없는 강좌들을 마련했다[이에 대해서는 본지 241호(2012년 4월)에 게재된 필자의 칼럼 『세상 닮기에 안간힘을 쓰는 서울신대』를 참조할 것.] 많은 신학교들이 일반대학이 되기 원해 노력하고, 또 그 성과를 이뤄 일반대학화되기도 했다. 서울신대는 그런 전철을 밟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여러 차례에 걸쳐 인문학 강좌들을 개설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게재한 광고는 단지 인문학 강좌뿐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또 하나의 광고가 눈에 띄었는데, 다름 아니라 외국 유명 밴드의 초청 공연 광고였다. “스티브 갯”이라는 유명 드러머(drummer)인데, 그는 복음성가 가수도 아니다. 단지 세상에서 팝과 재즈 드럼으로 유명한 사람일 뿐이다. 그들이 와서 연주하는 것도 세상 음악이다. 그 광고의 기가 막힌 카피를 보라: “아바(ABBA)의 명곡과 드럼의 전설이 서울신학대학교에서 만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바는 1970-80년대에 유명했던 팝 그룹이다. 그런데 도대체 아바와 서울신대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드럼의 전설과 서울신대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세상 대학들은 축제 등을 하면서 세상 가수들을 데려다 놓고 춤추며 진탕 취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신학대학은 그러면 안 되지 않는가? 신학대학은 교회들을 이끌어 갈 일꾼들을 기르는 곳이다. 신학교가 망가지면 교회는 자연히 망가진다. 그래서 사탄은 일찍이 신학교들로 침투하여 배교를 이끌어 냈다. 서울신대 역시 그렇게 사탄에게 당해서 배교한 신학교인 것이다.
이것은 CCM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배교다. CCM은 그래도 기독교 음악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졌다. CCM은 말만 기독교 음악이지 모든 곡조와 음률은 세상 음악과 동일하여, 록, 발라드, 재즈, 트로트, 댄스 등 세상 음악의 장르가 그대로 CCM에서 사용된다. 그 CCM이 교회들에서 연주되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명목상으로나마 기독교 음악의 테두리에 있다. 하지만 서울신대에서 이번에 초청하는 연주자들은 완전히 세상 음악가들이다. 도대체 신학교와 교회들이 어디까지 가야 하겠는가? 이젠 교회 내에서 대중가요 콘서트를 보게 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필자가 어릴 때 다녔던 그 교회는 바로 30년 후의 한국 교회의 미래를 예견해 주었던 것이다.
음악과 연관해서, 신학교들의 배교를 조금 더 살펴보자. 이번에 서울신대에서 이러한 초청공연을 준비한 것은 그 학교에 “실용음악과”가 신설된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신학교들에는 “교회음악과”(혹은 “종교음악과”)가 있다. 아무래도 음악이 많이 쓰이는 분야는 교회다 보니, 찬양을 위해 이러한 학과는 있을 법하다. 주로 클래식 음악의 코스를 밟는데, 말하자면 일반대학교 음대의 축소판이다. 그런데 현대 교회음악이 실제로 세속화되어 가면서, 클래식한 음악만 다루는 교회음악과와는 다른 형태의 음악과가 요구되었다. 그것이 바로 실용음악과이다. 세상 대학에서도 실용음악과가 많은데, 클래식한 음대와는 다른,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음악을 배우고 가르친다. 말하자면 대중음악을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세상 학교들 못지않게 신학교들에서 인기가 많다. 왜냐하면 교회들이 CCM과 세상 음악을 부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중음악의 주된 무대는 록 콘서트장만이 아니다. 바로 교회가 그 주된 무대인 것이다.
이렇게 신학교들은 목사만이 아니라 가수들을 양성해 낸다. 그리고 그 목사들은 교회들을 그 가수들에게 내주어 공연장으로 삼는다. 그 가수들은 그 교회들에 회원들과 돈을 모아다 준다. 그렇게 그 둘은 하나가 된다. 그 둘은 한 뿌리, 즉 배교한 신학교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목사들은 인문학으로 무장한, 아니 그보다는 인문학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된다. 차마 자신을 철학자나 문학가로 부르진 못하지만, 그들을 동경하는, 그래서 항상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향해 있는 마음으로 목회를 하게 된다.
상황이 이럴진대 왜 그들은 신학교라는 이름을 갖고 있을까? 과감하게 일반대학 승격을 위해 구체적인 준비를 하라. 신학교라는 이름은 그런 학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서울신대가 무엇을 하든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그들이 인문학 강좌를 하든 개똥 철학을 하든, CCM을 부르든 재즈를 연주하든 말춤을 추든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신학교라 부르지는 말라. 그 학교 내에서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 성경, 복음, 구원, 속죄, 부활, 교회 같은 단어는 쓰지 말라. 그 학교 나오면 목사가 되는가? 가능하면 목사가 되지 말아 달라. 그냥 인문학 분야에서 일하거나, 가수가 되라. 그것은 어차피 우리와 상관없는 “세상”의 것들이니 신경쓰지 않겠다. 하지만 교회를 세우지는 말아 달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 교회들로 모일 텐데, 그들을 지옥으로 보낼 작정인가? 어차피 그들을 구령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을 능력도 마음도 없지 않은가?
자, 이것은 비단 서울신대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 나라 신학교들 전체의 문제이고 교회들 전체의 문제이다. 전에는 신학교들이 자기들 교단 교리에 집중하여 비성경적 교리를 추구하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교리적 문제는 뒷전이고 아예 세상을 향해 가고 있다. 그래도 전에는 세상과 구별된 모습은 가지려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서울신대가 이러한 광고를 버젓이 일간 신문에 하는 것을 보라.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마치 사람들이 거리에서 옷을 벗고 다니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과 같다. 동성연애를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과 같다. 집단으로 말춤을 추면서도 미친 짓인지 모르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그러한 무지에 빠져 있는 것은, 온 세상 모두가 그렇게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스스로를 이상하게 느끼게 될 정도이다.
이것이 바로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모습이다. 이 라오디케아인들에게 하나님의 절대 진리는 더 이상 없다. 세태들에 맞춰 흐르는 인간의 권리만 중요할 뿐이다. 성경은 뒷전이고 인간들의 마음, 인간들의 생각만이 중요하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생각을 이렇게 말씀한다. 『마음의 상상이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창 6:5).
라오디케아 시대는 교회 시대의 마지막이다. 그래서 라오디케아 시대의 끝은 적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가 이루어진다. 적그리스도는 “때와 법을 변경시키는” 자이다(단 7:25). 무엇보다 마음의 법을 변경시킨다. 과거에는 그래도 사람들의 양심이 어느 정도 있어서 도덕법이 사회를 지탱했지만, 이제는 그 양심의 법마저도 틀어져 버렸다. 바로 적그리스도의 영이 지배해 버렸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양심을 파괴해 가면서 그가 나타날 길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마지막 부분인 것이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바로 그 일들이 신학교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