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논단 분류
정체성을 잃은 기독교한국침례회의 장로직제 도입 논의
컨텐츠 정보
- 3,241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7월호>
정체성을 잃은 기독교한국침례회의 장로직제 도입 논의기독교한국침례회(이하 “기침”)는 최근 현행 규약을 수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기침 내부에서 규약 개정안에 대해 찬반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현행 규약은 “침례교회의 이상과 주장”이라는 그들의 믿음과 실행을 열 가지 항목으로 요약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 되심, 성경의 권위, 교회의 의식, 교회의 직분, 교회의 정체, 교회의 회원의 구성과 의무, 교회의 사역, 교회와 국가의 분리, 신앙의 자유 등을 기술하고 있다. 이 “이상과 주장” 다음에 총 9장 31조의 길지 않은 교단의 규약이 이어진다. 대두되고 있는 개정안은 “이상과 주장”을 11개의 항목으로 한 항목을 늘리고, 총 10장 59조로 그 분량을 늘리고 내용을 세분화한 것이다.
논쟁의 핵심이 된 부분은 새로 제시된 개정안의 제8장 교회의 제44조(교회의 직분)의 2항이다. 곧 “안수집사는 개교회의 형편에 따라 장로라 호칭할 수 있어도 당회를 구성할 수 없다.”는 추가된 항목이다. 말하자면 기침 소속 침례교회들도 이제 다른 교단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치며 하나님의 양무리를 돌보는 목사 외에 “장로”라는 직분을 둘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침례교의 정체성을 훼손시키고 변질시키는 일’이라고 하며, 한편에서는 ‘개교회에게 맡기고 규약으로 규정짓지 말자’ 하며, 또 일각에서는 ‘한국사회와 변화하는 세상에 발 맞추기 위한 일’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6월 3일자 <침례신문> 제6면에 기고한 박선제 목사의 주장이다. 『개정안의 내용을 보면 많은 내용으로 대단히 의욕적인 개정안이라 여겨질 수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제44조 2항 ‘장로제도’는 합법적으로 끼여 넣기 위한 법조문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또한 “침례교단에 남아 있는 명분”에 호소하면서 『그렇지 않았다면 세속 사회처럼 대세를 따라 큰 교단의 틀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습니까? 침례를 세례로 바꿔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역설한다. J. M. 캐롤의 <피흘린 발자취>를 언급하면서 그는 『우리 침례교회는 수천만 명의 순교자들을 내면서도 정말 꿋꿋하게 복음의 순수성과 신약 교회의 이상과 그 행정을 주장으로 삼고 타협과 변질 없이 지금까지 그 명예로운 명맥을 유지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우리 침례교회의 이상과 주장을 훼손시키거나 변질시키는 일을 절대 행하여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교단의 정체성만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지난 6월 10일자 <침례신문>에는 남부교회의 최보기 목사의 주장이 실렸다. 그는 핵심적으로 장로직제를 교회에서 실행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은 개교회가 결정할 일이며, 이를 규약에 넣어 개교회에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침례교회의 정체성을 해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즉 장로직제의 성경적 타당성은 제쳐 놓고 이를 실행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개교회의 자유와 판단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자.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양심적이기를 구한다. 전도사와 권사가 성경에 나온 직책인가? 장로와 목사와 감독이 같은 직책이며 경우에 따라 다르게 불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종교 문화적인 역사적 시점에서 장로직제를 두면 복음이 변질되고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는가? 사도 바울이었다면 고린도전서 9장의 정신대로 형제를 유익하게 하며 교회에 유익되고, 성경의 교리에 위배되지 않았다면 오늘에 그가 살아 있다 해도 한국 같은 장로를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유로 장로를 두는 쪽이든 안 두는 쪽이든 상대를 비난하지 말고 하나님의 완전하신 판단에 맡기고 이 문제를 갑론을박하지 말 것과 직제문제는 개교회에 완전히 맡기고 교단적으로는 교리화하지도 말고, 주장하지도 말고, 제한하지도 말 것을 다시 한 번 간곡히 청원한다.』
필자는 기침 소속 교회들과 목회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며 침례교회에서의 장로직제의 문제를 논하고자 한다.
첫째, 기독교한국침례회교단은 왜 “침례교회”라 자칭하면서도 교단을 형성하였는가? 침례교회는 역사적으로 성경적 믿음을 고수한 반카톨릭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임이며, 그 사역원리는 자치적이며 독립적이며 회중 정치를 지향해 왔다. 기침이 자신을 “denomination”으로 부르든, “convention” 혹은 “fellowship”이라 칭하든 왜 교단을 형성하였는가? 물론 지역 교회들의 힘을 모아 복음 전파와 선교 그리고 새로운 교회들을 개척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미 교단을 형성한 기침에게 교단 설립의 정당성은 논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교단이 하나님의 허락하심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 단체라는 가정 하에서 계속 논의해 보자.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성경적인 조직을 지향하고자 규약을 만들었다면 왜 성경에 없는 직제를 만들어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 하는가? 박선제 목사는 한국 교회의 장로직제는 성경에 없는 것으로, 그것을 규약에 넣는 것은 침례교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올바른 주장을 펼쳤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침례교회의 성경적인 전통에 대한 지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보기 목사는 성경에 따른 올바른 신앙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개교회가 편리하게 사역할 권리를 보장받는가가 더 중요한 것인 양 주장하였다. 그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다시 살펴보자면 너무나 자명한 문제를 가지고, 『사도 바울이었다면... 오늘에 그가 살아 있다 해도 한국 같은 장로를 두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성경에 우리가 모르는 사도 바울이 또 한 명이 있는가 보다. 그렇지 않다면 신약성경의 적어도 13권 이상의 성경을 기록한 사도 바울이 자신의 주장에 동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목사는 고린도전서 9장의 원리를 언급한다. 그러나 그의 이해는 너무나 얕기 그지없다. 그가 근거로 삼고자 한 구절은 이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유대인들에게 유대인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율법 아래 있는 것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20). 그러나 동일한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보라. 바울이 자신의 영적 아들이자 하나님의 사역자인 디모데에게 무엇이라 가르쳤는지 보라. 『또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이 규칙대로 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하리라』(딤후 2:5).
최목사는 보라! 그리고 기독교한국침례회교단은 들으라! 반드시 규칙대로 사역해야 한다. 여기서의 규칙은 개교회의 자유성이나 편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규범이다. 사도 바울은 성경의 원리를 파기하면서도 복음을 위해 일하노라 주장할 만큼 위선자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를 담고 있다. 성경이 목사와 감독과 장로가 같은 직분이라 말하면, 여기서 모든 이론과 논쟁은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엡 4:11, 딤전 3:1-7; 5:17, 딛 1:5-9, 벧전 5:1-4). 허접한 인간적인 발상을 더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만약 기침이 하나님의 양무리를 돌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치도록 주께서 선정하신 사람이 아닌 사람을 “장로”라 호칭한다면, 거듭나지 않은 죄인인 수도승들을 신부(神父) 곧 “아버지”라 부르는 로마카톨릭을 비난하지 말라!(마 23:9) 성경에 없는 직분을 발명해 내어 신약 교회의 건전한 실행을 폐기하기는 기침이든 카톨릭이든 오십보백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실리적으로 따지자면 교회 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감투”를 좋아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습성을 이용하여 다른 교단들이 하는 것처럼 평신도의 조직과 세력을 더 굳건히 하여 교회성장을 꾀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셋째, 필자의 질문은 이것이다. 기침의 “침례교의 이상과 주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현행 규약과 개정안은 모두 “이상과 주장”의 2항에서 “교회의 교리와 생활에 대한 유일하고 권위있는 표준은 성경뿐이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왜 기독교한국침례회교단은 “침례교회”라 주장하면서도 로마카톨릭 원문에서 번역된 <개역한글판성경>을 믿고 쓰는가? 매우 모순된 일이 아닌가? 기침은 정통 침례교회를 주장하면서도 변개된 카톨릭 성경을 최종권위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성서침례교단도 동일한 모순 속에 방황하고 있다. 그리고 침례교회의 정체성을 제대로 아는지 대한성서공회에 <개역한글판성경>에서 “세례”만 “침례”로 바꿔달라고 주문하여 받아쓰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진정한 침례교도는 어떤 사람들인가? 역사적으로 이들은 알비겐스, 보도파, 페트로부르시안, 불가리안, 폴리시안, 파테린, 보고마일, 위그노, 아나뱁티스트 등으로 불렸으며, 모두 로마카톨릭에 의해서 이단 취급을 받아왔지만 <표준원문, Textus Receptus>과 이에 근거한 자국어 성경에 기반을 두고 믿음의 건전한 교리들과 신약 교회의 참된 모습을 순교하면서 지켜온 성도들의 무리이다(피터 럭크만, <신약교회사>, 말씀보존학회, pp.72,73). 그런데 시대와 세상이 바뀌고 한국의 상황이 더 에큐메니칼적으로 변해 가니까, 이에 발맞추어 침례교회 내에도 한국의 “장로직제”를 두어야 한다는 것인가? 이것은 분명 성경의 규범에 반한 위반이자, 역사적 순수한 침례교회의 실행에 있어서 타협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다가오고 있다. 죄와 거짓과 불의의 검은 어둠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주를 사랑하는 성도와 교회는 진리의 빛 아래 모이게 하고, 더 이상 한국기독교계에 만연한 타락이 스며들도록 허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 말씀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요 14:15,23).
필자는 기독교한국침례회교단 내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사역자들과 성도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면한다. 진리로 주 하나님을 섬기라!(삼상 12:24)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라!(암 8:11) 세상과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지 말라!(갈 1:10) 비성경적인 교회성장과 성공적인 목회에 대한 야망을 버리라!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딤후 2:2) 세상과 세상과 일치하려는 교회들을 닮으려 하지 말라!(롬 12:2) 사람들의 전통이 아니라 믿음의 전통을 지키라(살후 3:6). 끝으로 성경적인 침례교도의 믿음과 실행에 대해 조금이나마 의식이 있다면, 옛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잠 22:28).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