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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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간 소통을 위해 나선 감리교신학대 교수의 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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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03월호>

작년 12월,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유교, 민족종교 신자들로 구성된 『한국종교발전포럼』이 결성되었다. 종교간 이해와 사회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시작된 이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각 종교에 관한 주제발표를 듣고 이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특히 그들은 종교간 대화와 소통을 위해 "새벽"같이 모였고, 그들의 "이웃종교"를 알고자 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이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지체"들이지(엡 4:25, 롬 15:2), 타종교의 신자들은 아니다. 이들은 자기 의로 가득 차 있는 종교인들이요, 구원받지 않은 진노의 자녀들이며,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죄인들일 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대화"의 대상(행 20:11)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마귀의 진영에서 주께로 이겨와야 할 대상들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타종교와의 일치나 이해를 위해, 대화나 소통, 모임, 회합을 추진하는 것은 좋은 행실을 부패시키는 『악한 사귐』에 불과하다(고전 15:33). 성경은 이 불의한 사귐에 대하여, 결코 있을 수 없는 "관계"이자, "사귐," "조화," "일치"라고 말씀한다(고후 6:14-16).

지난 2월 18일에는, 감리교신학대의 이정배 교수가 기독교를 대표하는 발표자로 나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강의했다. 주제 자체에서도 이미 나타나 있듯이, 이 자유주의신학으로 "무장"되어 있는 종교철학과 교수는 그의 강의를 통해 "파선당한 믿음"(딤전 1:19)을 여실히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바다의 성난 파도처럼 "수치"를 거품처럼 뿜어내고 말았다(유 1:13). 이는 믿음을 저버린 배교한 거짓 교사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얼마나 그가 "철학"에 의해 노략질당했고(골 2:8), 얼마나 그가 매사에 "미신적"이었으며(행 17:22, 바울은 아테네 "철학자들"을 향해 "미신적인 사람들"이라 불렀음), 얼마나 그가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라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했는지(골 2:8,9), 다음에 나오는 그의 주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부활에 초점을 맞춰 초자연적이고 신성화된 예수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당시 로마의 핍박 속에서 지배 이념에 저항했던 사회적 개혁가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임무는 예수와 같이 어려운 세상에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는 일입니다."
실로 이교수는 "신학대 교수"란 이름을 달고서도 결코 "수치"를 모르는 자였다. 이와 같은 그의 "허튼소리"에 대하여,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도무지 납득하기가 힘들었던 한 청중이 의문을 제기하자, 그는 자신의 수치스런 발언을 취소하기는커녕, "개신교단의 물밑에서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 받아들이는 젊은 목회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받아넘김으로써 『악인의 쟁기질』(잠 21:4)을 지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어리석은 주장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인간"이셨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으로 불리셨고(시 110:1) 하나님의 이름을 받으셨다(사 9:6). 동정녀 탄생을 통해(사 7:14)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고(딤전 3:16), 그분의 계심은 "영원부터"였다(미 5: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죄들을 용서해 주셨고(막 2:5-7), 그러한 권세는 하나님만이 취하실 수 있는 권세였다. 그분 스스로가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사실을 주장하셨고(요 10:30), 창조의 능력을 갖고 계셨으며(요 1:3, 히 1:3, 골 1:16), 자연에 대하여도 권세를 갖고 계셨다(눅 8:24, 막 4:39, 마 14:25). 또한 무소부재하시고(마 18:20) 전지전능한 분이시다(막 11:2-6, 마 28:18). 특히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롬 1:4).
이처럼 수많은 "무오한"(행 1:3)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적 인물"로 한정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거나 성경을 사실 그대로 믿지 않는 사람이다. 지금 어려운 교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그분은 부활하지 못하셨을 것이다(롬 1:4).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헛것이 되고(고전 15:17),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 된다(고전 15:14).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지 못한 채 여전히 허물과 죄들 가운데 죽어 있다(엡 2:1,5)는 뜻이 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드려지셨고 우리의 의롭게 하심을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다(롬 4:25). 성경적 진리가 이러한데도, "부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생각"인 양 주장하는 그는 누구의 종인가?

의심 많던 도마가 바로 그 "어리석은 생각"을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했을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경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나의 손을 보고 너의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시니 도마가 대답하여 주께 말씀드리기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하니』(요 20:27,28). 사실 이것은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이기도 하다. 『다만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1). 예수께서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사실은, 그분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로서, 구원받지 않은 거짓말쟁이요, 미혹하는 자인 것이다(요일 2:18-27).

이처럼 이정배 교수를 비롯한 현대의 배교한 수많은 목사들, 신학자들, 교수들, 종교지도자들은 왜 애써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려 하는 것인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고 경배하기를 거부하는 것인가? 그들이 그토록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역사적 인물"로 해석하려는 것은 그들 마음 저변에 불순한 동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경"에 대한 증오심이고, "만왕의 왕"에 대한 증오심이다. 자기들의 배를 하나님으로 삼고 있고 항상 땅의 것들을 생각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해석할 수도 믿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서 이 땅에 다시 오시면 결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분 앞에서 그들의 "수치"가 여실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요일 2:28).
그들은 이러한 "수치"를 감추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과거의 역사 틀" 속에만 가두어 둠으로써 "본받아야 할 위인," "존경받는 사회 개혁가," "위대한 정치적 혁명가" 정도로만 애써 국한시키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사회적 현안에 관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연 이교수의 주장대로 예수님께서는 사회에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도우려고 오신 것인가? 지배 이념에 저항하고 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인가? 결코 아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는 것이라』(마 18:11, cf. 눅 19:10).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은 신실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도다.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라』(딤전 1:15). 바로 이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자신을 내어 주셨다. 이 사실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형성하고 있고, 따라서 교회가 해야 할 임무는 그분이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가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회적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으로부터 돌아서서, 세상의 인간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비성경적인 "사회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을 전하는 자나 믿는 자나 모두 다 저주받게 할 "다른 복음"일 뿐이다(갈 1:7-9).
만일 성경이 틀리고 이교수의 주장이 옳다면, 사도 바울은 역사상 가장 헛된 삶을 산 인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는 그가 구원받은 이후의 남겨진 모든 생애를, 저주받을 사회복음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고전 15:1-4)을 증거하기 위해 전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이런 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행 20:24). 바울은 단 한 번도 사회 개혁을 위해 부르짖지 않았고, 종교간 대화를 위해 "새벽"같이 모이지도 않았다.
"사회복음"은 후천년주의적이고 세상에 소망을 두고 있는 발상에서 나왔다. 사실 이 세상 모든 종교의 지향점은 여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럼 회원 중의 한 명인 윤영달 회장(크라운-해태제과)은 "타종교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종교가 지향하는 점이 결국 하나임을 알게 될 것 같다"고 기대한 바 있다. 그 "지향점"은 하늘에 있지 않고(빌 3:20,21) 땅에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종교포럼은 "발전"포럼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인 셈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일 뿐(한국식기독교 또한 매한가지임) 아무런 생명도 낳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세상과 함께 멸망할 것인데, "종교"를 붙들고 있는 모든 자도 그러할 것이다. 말하자면 종교를 붙들고 있는 모든 자는 그들이 지향하고 있는 "하나의 지향점"이란 것이 결국은 "지옥의 심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어떤 인간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무효화되는 것이 아니다(롬 3:3).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이 많다고 해서 그분의 신성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입으로 반드시 그분을 "주"라고 시인할 날이 오게 될 것인데, 백보좌 심판에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때는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다. 그때가 오기 전, 당신의 호흡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을 "주"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빌 2:9-11).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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