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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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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7월호>
“...가도가도 황톳길 숨막히는 더윗길길을 가다 신발을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하나 없고
남은 두 개 발가락 잘릴 때까지
천 리 먼 전라도길“
위 시는 문둥이 시인으로 알려진 한하운의 “전라도길”이라는 시의 일부이다. 요즘 한센병 또는 나병이라 불리는 문둥병은 나병균이 피부, 말초신경계, 상기도의 점막을 침범하여 조직을 변형시키는 병으로서, 치료하지 않으면 신경계의 합병증으로 인해 사지의 무감각과 근육의 병적인 증상이 발생한다. 또한 촉감, 통각, 온도 감각이 소실되고 위치감각과 진동감각도 없어져서 결국 앞서 낭독했던 시에서처럼 자신의 몸의 일부가 언제 잘려 나가도 모를 만큼 몸이 썩어 가는 것이다. 아직도 한국에는 소록도라는 섬을 위시하여 전국 89개 정착촌, 14,200명의 한센인들이 격리되어 치료를 받고 있다.
이러한 문둥병은 성경에서 죄를 상징한다. 이는 문둥병과 죄는 둘 다 전염성이 있기에 그 조치가 격리시키는 것이고(레 13:46, 고전 5장), 깨끗게 하기 위해서는 피의 제사가 요구되며(레 14장), 문둥병에 걸리면 점차 감각을 잃어버려 지체가 잘려 나가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듯이, 죄에 빠진 사람도 감각을 상실하여 자신을 방탕에 내어주어 욕심으로 자신을 찔러대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엡 4:19, 딤전 6:10).
마태복음 8장에서는 이 같은 한 문둥병자가 등장한다. 그는 이미 문둥병이 온몸에 퍼진 중증 환자였다(눅 5:12). 온몸에는 악취가 나고 조직이 변형을 일으켜 흉측한 모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만일 자신의 비참한 모습만 본다면,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뒤따랐던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 주님께 나아갔고, 간구했으며, 응답을 받았다.
이는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도 시대 이후로 치유의 은사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치유를 위한 기도는 드릴 수 있다. 또한 죄의 관점에서 더욱 풍성하게 적용이 가능하다. 우리는 죄인이었을 때 갈보리 십자가로 나아갔고, 주님을 만나 깨끗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구원은 이미 받았지만 매일의 죄 가운데서도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주님께 나아가야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문둥병자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주님께 나아가라
『그런데, 보라,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서 주께 경배드리며 말씀드리기를... 』(마 8:2).
성도들은 매일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죄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세상의 때가 묻기도 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멀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세상과 친구가 되어 있을 수도 있으며, 죄 가운데 빠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감히 주님께 나아갈 수도 없다고 자신을 비하하고만 있다면 그것은 사탄이 원하는 것이다. 죄의 찔림을 받는 것은 빠를수록 좋은 일이지만, 죄책감에 짓눌려 있는 것은 길수록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주님께 나아가지 못하게만 하면, 그만큼 성도를 자신의 종으로 오랫동안 머물러 있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재빨리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결코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문둥병자는 주님께 나아와 가장 먼저 경배를 드렸다(마 8:2). 마가복음 1:40에서는 이를 “주께 와서 간청하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씀드렸다.”고 묘사한다. 또한 누가복음 5:12에 따르면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간구한다. 종합해 보면, 결국 이 문둥병자는 주님을 뵙자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고 간청한 것이다. 이것이 주님을 경배하던 문둥병자의 모습이었다.
성도도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께 간절히 나아가야 한다. 만약 ‘꼭 주님이 아니어도 되지만, 그냥 주님께 한번 물어나 보려고’ 살짝 드리는 기도라면 오히려 주님을 시험하는 것이며 결코 올바른 기도의 자세가 아닌 것이다. 주님께 나아갈 때는 의지했던 수많은 우상들을 치워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최상의 자리로 올려드리며, 자신은 그 앞에 엎드려야 한다. 그리고 “오직 주님만이 이 일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온 우주에 오직 주님 한 분뿐입니다.”라는 심정으로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드리라
『...말씀드리기를 “주여, 주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하니 』(마 8:2).
문둥병자가 주님께 다가와서 드린 말씀은 미사여구 없는 직접적인 간청이었다. 그는 미사여구를 사용하는 데 일초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았고, 단지 자신의 필요를 말씀드렸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필요한 치유를 말하면서도 먼저 구한 것은 바로 주님의 뜻이었다. 『주여, 주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 』
이처럼 성도는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한다.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리라 』(마 6:33).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 땅에서 그 뜻을 실행하려는 의지도 함께 드린다는 뜻이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뜻과 생각이 있고, 또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있으시다. 보통의 경우에는 이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사 55:8-9). 따라서 반드시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하셨다(마 26:39). 이는 피를 쏟는 기도였다.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떨어질 만큼 기도하셨다. 우리 주님은 결코 끔찍한 죄가 몸을 파고들어 자신이 그 죄 자체가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다(고후 5:21). 이는 주님에게 버림받는 것이었으며(마 27:46), 그분의 진노의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 마셔야 했던 것이기에(사 51:17), 가능하다면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어하셨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순종하셨다.
주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는 이런 기도일 수 있다. 자신이 가장 원하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면 포기할 각오와 실행할 의지를 드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이다. 따라서 기도는 헌신이다. 주님께 자신의 의지를 드리겠다고, 구체적으로 몸을 드리겠다고 고백하는 헌신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
주님께서는 응답하길 원하신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원하노니 깨끗해지라.”고 하시니,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해지더라 』(마 8:3).
하지만 결코 기도를 무겁게만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왜냐하면 여러분에게는 아주 기쁜 소식이 있는데,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싶어하시며, 그 기도에 응답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문둥병자를 만지셨다.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께서는 문둥병자의 간구에 손부터 먼저 내밀어 만져 주셨다. 그리고는 『내가 원하노니 깨끗해지라. 』고 하셨다. 이는 우리의 연약함을 고쳐 주기 원하신다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과 같다. 그러므로 결코 주님께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에겐 이미 주님의 보혈이 있다. 제아무리 문둥병과 같은 심각한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주님께 그 보혈을 의지해 나가면 우리를 만지사 보혈로 치유하지 못하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주님께 나아가라. 온몸에 문둥병이 걸린 이 사람처럼 여러분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상태가 어떠하든지 단지 주님의 피만 의지하여 주님께 나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분께 여러분의 필요를 말씀드리라. “주님 저는 진리에 관한 한 소경과 다름없습니다. 저를 보게 해주십시오! 주님 저는 진리에 관한 한 벙어리와 다름없습니다. 제게 말씀을 주시어 제가 입을 열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전하겠습니다! 주님 저는 영적 전쟁에서 자주 져서 패배감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저를 일으켜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일어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고쳐 주길 원하신다. 특히 영적인 질병은 더욱 그러하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시겠는가? 우리 주님께 나아가라!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