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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징계, 친아들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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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8월호>
성경에는 구원받은 여러 가지 내적, 외적 증거들이 나온다. 그 가운데 하나가 “주의 징계”이다. 징계가 없다면 구원받지 못한 “사생아”이다. 사생아와 친아들을 구별하는 성경적 기준은 주의 징계에 달려있다. 『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으시는 아들마다 매질하시느니라』(히 12:6). 구원받은 후 이 땅에서의 삶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라가는 삶이다. 훌륭한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징계가 있어야 한다.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가지고 계신 목적은, 그들이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하는 것이다(롬 8:28,29).
조각가는 먼저 마음속에 작품의 형상을 그리고 원석을 찍어 도려낸다. 필요한 부분은 남기고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제거한다. 열매를 기대하는 농부에게 가지치기는 필수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삶에 깊이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유익을 주신다.
징계의 목적은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고침을 받아 성도로서의 달려갈 길을 완주하게 하는 데 있다. 징계의 목적은 정죄하거나 단지 벌을 내리시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유익을 위해 그분의 거룩하심의 참여자들이 되도록 하심에 있다(히 12:10).
그렇다면 징계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먼저 말씀을 통하여 징계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에 대한 찔림을 주신다(시 39:11). 여기에는 책망과 바로잡음이 있고, 의로 훈육하는 것이 있다(딤후 3:16). 또 주의 교훈과 훈계가 있다(엡 6:4). 개인적인 묵상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도 하고, 설교와 교제, 상담을 통하여 징계하시기도 한다.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며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혼들을 위해 깨어 있기를 자기들이 마땅히 설명해야 할 것처럼 하느니라』(히 13:17).
또한 육체의 아픔을 통하여 징계하시기도 한다. 성도가 질병의 치유를 위해 기도할 때 이 질병이 일반적인 질병인지, 징계로 온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또 마음의 고통을 통하여 징계하기도 하시는데,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화평을 빼앗아 가심으로 불안하게 하신다. 환경을 통하여 징계하시기도 하는데, 성도의 사업과 가정에 어려운 일들이 닥칠 때 부주의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징계로 인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징계받을 때의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징계를 받을 때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사랑하시기에 징계하는 것이고, 이 징계가 끝난 후에는 더 성숙시켜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징계를 받을 때 자신이 하나님의 친아들임을 확신하고 감사할 수 있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징계는 없지만, 그 징계를 잘 견뎌 냈을 때의 유익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징계는 우선 화평한 의의 열매를 맺는다. 『징계가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픈 것 같으나 후에 그로 인하여 훈련된 자들에게는 화평한 의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거룩함이 배제된 평화는 모두 거짓 평화이다. 그것은 감정적이고 순간적이며 땅으로부터 오는 평화일 뿐이다. 그러나 주의 징계를 통하여 얻는 화평한 의의 열매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준다. 아버지와의 회복된 교제의 결과에서 오는 안정된 내면의 화평인 것이다.
따라서 징계를 받을 때에는 맥없이 처진 손에 힘을 주고 쇠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고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히 12:12,13). 징계받을 때 믿음으로 견뎌 내야 한다(히 12:7).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견디시고 죄인들의 모순된 행동들을 견뎌 내셨다. 그 결과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심으로 성도들이 따라야 할 발자취를 남겨 놓으셨다. 성경은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라고 권면하며, 그 인내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죄와 맞서서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않았으며』(히 12:4).
징계받을 때 믿음 없는 잘못된 두 가지 태도가 있다. 첫째, 징계를 경시하는 태도이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경시하지 말고』(히 12:5). 자신의 삶에 고통이 따를 때 우선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것인지 겸손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이 징계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죄를 생각나게 하실 것이며, 불순종한 일들과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던 일들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징계를 경시하는 사람은 죄를 경시하는 사람으로,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일 뿐 하나님의 간섭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무슨 사건이 인생 가운데 벌어지면 그 현상에만 매달리지 말고 전체 안목을 통하여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멀어졌는가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일어난 사건을 우연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과 관계로만 한정시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징계를 경시하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지적에 변명하고 변화되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것이다. 그 결과 더욱 육신적으로 되어 자기의 고집이 강해짐으로 모든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 결정하고 처리하려 한다. 마귀는 이를 계속 충동질하여 영적 분별력을 잃게 만듦으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렇게 되면 말씀이 효과적으로 역사할 수 없기에 설교는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 어떤 좋은 권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회복이 불가능해진다. 징계를 경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비웃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더 이상 배울 수 없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도 않게 된다.
둘째, 징계를 받을 때 낙심하는 것이다. 『책망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교만한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낙심한 사람이다(갈 6:9). 낙심한 사람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더 이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다.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는, 믿음이 없는 상태이다. 징계로 인한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손은 맥없이 처져있고, 무릎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아무 의욕이 없게 된다. 이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청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지쳐 낙심된 마음을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로 치유받아야 한다. 그 결과 주의 징계를 통하여 더욱 단련되어 화평한 의의 열매를 맺게 만들어 주신다.
주의 징계에 대해 올바로 순종한다면 친아들로서 풍성한 삶을 살 것이지만, 고집을 꺾지 않거나 불순종한다면 그것은 곧바로 쓴 뿌리로 연결된다. 하나님의 사랑의 수단이 마귀가 이용하는 지독한 덫으로 바뀌게 되면, 하나님의 연단의 과정이 대단히 위험스런 사탄의 시험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에 미치지 못함으로 자신이 괴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속한 가정과 교회의 많은 사람들을 더럽힌다. 영적 분위기가 침체되고 많은 사람을 세워 주지는 못할망정 약하게 만들고 절뚝거리게 만든다. 서로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위축되게 만들며 잘하던 사람마저도 힘이 빠지게 만든다.
징계에 대한 최종 단계는 교회를 통한 징계이다.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급기야 내버려 두셔서(롬 1:28) 사탄에게 넘겨 버리신다(고전 5:5). 하나님으로부터 거부당하는 것만큼 마음을 악화시키는 것도 없다. 배교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인데, 이는 스스로 초래한 일이다. 징계의 선을 넘어서서 배교의 길로 들어섰다면 더욱 상태가 악해지기 때문에 남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밖에는 없다. 두 마음을 품은 에서와 같이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은 경우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히 12:17).
징계를 배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피흘리기까지 죄와 맞서 싸우는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징계를 잘 견딘 후에는 가장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열심히 자신을 돌아보아 혹시 하나님의 은혜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끝까지 참으시지는 않는다.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벧후 3:9).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