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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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예장통합의 이단 논쟁 - 2. 지옥강하 교리의 기준으로 삼은 사도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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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11월호>

이재철 목사가 지옥강하 교리의 기준으로 삼은 사도신경은 절대로 신약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기준이 될 수 없다. 지옥강하 교리의 기준은 사도신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도신경은 이교도 카톨릭에 의해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형식적으로 신앙고백을 하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카톨릭 미사 때 암송되는 기도문이 된 것이다. 사도신경은 주님의 사도들과는 무관한 카톨릭의 신조로서, 그들이 ‘사도’라는 말을 따다 붙인 것은 사도적 권위를 계승했다고 거짓 주장하는 카톨릭의 이교적 신조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런 것을 만든 적도, 가르친 적도, 암송한 적도 없다. 역사적으로 사도신경은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신조들을 계속해서 짜깁기하여 정리한 것으로 시기상으로도 그 기원이 사도들과는 전혀 무관하며, 카톨릭이 오랜 기간 그들의 거짓 교리들을 만들어내면서 형성된 것이다. 카톨릭에서 개혁해 나왔다는 개신교는 사도들과 무관한 이교적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지옥강하 교리의 기준으로 삼은 사도신경

중요한 것은 사도신경의 교리적 내용들이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카톨릭 교회 교리문답, 1994>에 따르면,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회’는 카톨릭 교회이며(제830항),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도 “성직자의 성사로 주교들과 사제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죄들을 용서할 권세를 갖는다”(제1461항)는 뜻이다. ‘성도(saints)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카톨릭이 규정한 죽은 성자들(saints)과 기도로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제828,957,1689,2683항). 말하자면 사도신경은 이교도 카톨릭이 성경의 내용을 흉내내어 그들의 반성경적인 교리를 신조로 만든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문제의 “지옥에 내려가시고” 역시 아리안 신조(360년)와 아퀼레야 신조(390년), 베나티누스 폴투나투스의 신조(590년) 등에서 문구를 따온 것으로, A.D. 750년에 가서야 정착이 되었으며, 카톨릭은 이 성경적인 교리를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를 가르치기 위해 써먹고 있다. 이목사는 이런 사도신경을 가리켜 “우리 믿음의 핵심의 핵심”이라며 한국 교계가 삭제한 ‘지옥에 내려가시고’를 복원할 것을 주장함과 동시에,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가 예배 때 주문처럼 반복 암송하는 사도신경에는 왜 “지옥에 내려가시고”가 삭제되어 있는 것인가? 그것은 그들이 주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셔서 인류의 죄를 처리하시고 오셨다는 성경적 진리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지 못하는 것을 삭제하면서까지 예배 때마다 의미 없이 암송하는 헛된 열성을 보이고 있으며, 그런 것을 암송하는 이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해 주는 비성경적인 일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사도신경 이면에 깔린 이교도 교리를 모른다손 치더라도 사도신경이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는 신앙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은, 죄인의 구원은 신조 암송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롬 10:17). 『그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서 그분을 신뢰하였으니 또 너희가 그분을 믿고서 약속의 그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것이니라』(엡 1:13).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도신경이 믿음과 실행의 기준이 되어 버린 한국 교회는 마치 모래 위에 지어진 집과 같이 되어 배교의 홍수와 바람에 극심한 무너짐을 보인 것이다(마 7:24-27).

이재철 목사의 헛된 항변
이목사는 다른 목사들도 죽은 자들을 위해 동일한 일을 했다며 스스로를 변호하고 나섰다. “한경직 목사는 1974년 8월 19일 불교신자였던 고 육영수 여사 국민장 영결식에서 안식을 비는 기도를 드렸고, 새문안교회의 강신명 목사 또한 1979년 11월 3일 불교신자였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 때 개신교를 대표하여 기도했다. 지난 5월 29일에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때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권오성 총무가 기도를, 김삼환 예장통합 총회장이 담임목사로 시무하는 명성교회 성가대는 조가(弔歌)를 불렀다”며 “때문에 서울서노회에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경직 목사, 강신명 목사, 그리고 김삼환 총회장이 담임하는 명성교회도 ‘이단적 행위’를 한 것인가”라고 반문한 것이다. 이목사는 <뉴스미션>과의 인터뷰에서는 “한경직 목사님, 강신명 목사님, 권오성 목사님의 경우에는 대한민국 전 국민이 보는 가운데 생중계됐다. 그렇다면 그분들은 중죄를 지은 것인가.”라면서 그들 모두가 “정말 잘한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한마디로 자신도 정말 잘했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는 성경을 가르친다는 목사들이면서도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 심판이 정해져 있다.”는 히브리서 9:27 말씀도 모르고 있다. 심판이 정해진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죽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인가? 그들은 갈보리 십자가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2천 년 전 갈보리 십자가에서 딱 한 번 보여졌다. 그 뒤로는 그 사랑을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영생이,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진노의 심판이 운명으로 주어져 있을 뿐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죄인들을 위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희생시키신 그 사랑을 거부한 죄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칼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어디에서도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 목사들은 왜 하나님이 시키시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사 자신이 구원의 확신이 없는 죄인이기 때문이며, 사후에 자신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다른 복음”을 전하겠다고 나선 무자격자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너희를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키려는 것이라』(갈 1:7).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들이 이끄는 한국 교회와 주님의 영원한 생명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커다란 구렁’(눅 16:26)이 놓여 있는 것이다.
사도신경 원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음부에 내려가셨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따뜻하게 기도해 주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정신이라는 이재철 목사나, 자기 교단의 비성경적인 헌법을 근거로 그를 정죄한 예장통합이나, 그들 모두 이단 교리를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카톨릭의 이교도 신조를 위해 열심을 내는 이목사와 칼빈의 이단 교리에 매여 있는 예장통합은 모두가 헛된 일에 무익한 논쟁만 일으켰을 뿐, 진리를 위해서는 조금도 쓸모없는 일을 했던 것이다. 그들을 주님의 종인 줄로 알고 그들이 진리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런 비진리의 도가니에서 빠져 나오라는 주님의 준엄한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딤전 6:3-5).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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