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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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예장통합의 이단 논쟁 - 1. 예수 그리스도의 지옥강하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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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11월호>

성경에 따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이 짊어지신 인류의 죄를 불태우기 위해 땅의 심장에 위치한 “지옥”에 내려가셨다.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있을 것이라』(마 12:40). 이뿐 아니라 에베소서 4:9,10에서도 『따라서 그가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먼저 내려가셨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내려가셨던 그가 모든 하늘들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니 그가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려 함이니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옥강하 교리를 천명하고 있다. 주님은 “땅의 더 낮은 부분들”인 지옥에 내려가 우리 죄를 다 쏟아놓고 부활하신 것이다. 다윗 역시 주님 자신의 “혼”을 인류의 죄를 위한 속죄제물(사 53:10)로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예언하였다.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며 또 주의 거룩하신 분으로 썩어짐을 보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그가 미리 앞을 내다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한 것은, 주의 혼이 지옥에 버려지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육신도 썩어짐을 보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라』(행 2:27,31).
예장통합 소속 이재철 목사(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가 한국 교회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에 “음부에 내려가시고”(descendit ad inferna; He descended into hell)가 삭제되어 있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장했다가 이단 시비에 휘말려 그에 대한 논란이 들끓었었다. 본지는 211호 기자의 논단에서 『성경을 믿지 않는 자들의 “지옥강하 논쟁”』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미 이 문제를 다룬 바 있다. 요약하자면 이재철 목사가 자기 교회 성경공부 교재 중 하나인 『성숙자반』(홍성사) 293페이지 하단부에 “자신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감격 속에 사는데, 형제가, 부모가, 자식이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그 자체로도 비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은 그들을 위해 기도조차 해줄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복음이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따뜻하게 기도해 주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정신일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핵심의 핵심인 사도신경이 예수님께서 ‘음부에 내려가셨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예장통합 서울서노회가 ‘이단적 행위와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행위’로 이목사를 노회 기소위원회에 기소한 것이다. 서울서노회는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바른 신앙으로 성도들을 인도할 의무를 위배하고 있다.”면서 이목사가 교단 헌법 중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편 교리 제4부 제3장 6조와 제10장 4조에 의거한 교리를 크게 위반했고, “이러한 피고발인의 발언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성경 말씀과 신조에 나와 있는 내용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며, 교회의 신성과 질서를 훼손시키는 죄과 행위라고 본다.”면서 이목사를 정죄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지 211호의 기사를 참고하기 바라며, 이번 특집에서는 그들이 교리적으로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다뤄 보고자 한다.

베드로전서 4:6을 잘못 해석한 이재철 목사
한국 교회 10대 설교자 중 한 사람이라는 이재철 목사는 서울서노회의 위 같은 고발에 대해, 이목사 자신은 『성숙자반』 291~292페이지에서 사도신경의 “음부에 내려가시고”를 근거로 “예수 믿지 않고 지옥에 간 사람들도 전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섣불리 속단하거나 확대해석은 안 된다”며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정사항이지 우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명명백백하게 밝혔다고 반박한 바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반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지옥에 간 사람 중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일부가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음을 은연중에 제시하고 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정사항이지 우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그의 반론은 사후구원론의 이단 교리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자, 자신의 비성경적인 믿음의 완곡한 표출인 것이다.
사후구원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그의 이단 교리는 베드로전서 4장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목사는 “성경 해석과 관련하여 베드로전서 4장 6절의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라는 구절에 대한 목사님의 해석은 무엇인가.”라는 <뉴스미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성경이 기록될 때는 장과 절이 없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성경은 장으로 나눠져 있지만, 당시는 파피루스에 다 붙어 있었다. 베드로전서 3:18에 육체로는 죽었지만 영으로는 살림을 받아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는데, 그 영들은 노아 때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로 규정돼 있다... 그러면서 베드로전서 4:6에서 죽은 자들 가운데도 복음이 전해졌다고 나온다. 붙어 있는 파피루스를 생각한다면 그 죽은 자가 누군지는 간단히 나타난다.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됐다고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구원받았느냐 그건 모른다... 그런 구절이 있기 때문에 장례식에 갔을 때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에게도 따뜻하게 기도해 줄 수 있지 않느냐고 연결시킨 것이다.” 이목사의 이 주장은 간단히 말해서, 베드로전서 3:18-20의 “감옥에 있는 영들”과 4:6의 “죽은 자들”을 동일한 인물들로 봄으로써 비롯된 것이다. 바른 말씀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통해서 그 구절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그가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서 전파하셨으니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을 때에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 몇 명뿐이니 곧 여덟 혼들이라』(벧전 3:18-20).
『이런 연유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과 일치하여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과 일치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4:6).
이목사는 베드로전서 3,4장의 이 구절들이 장과 절이 없던 파피루스 원본에서는 다 붙어 있었던 구절들이라면서 “감옥에 있는 영들”과 “죽은 자들”을 동일시했다. 그러나 원본에 붙어 있었던 구절들이므로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논리적 비약이다. 장, 절이 구분되었건 그렇지 않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경이 문맥상으로, 또 성경 전체적으로 구절들이 짝을 이루어 계시해 주는 진리뿐이다. 『너희는 주의 책을 찾아 읽으라. 이것들 중에는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고, 하나도 자기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바로 나의 입이 명령하였고, 바로 그의 영이 그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16).
모세의 율법하에서 구원받지 못한 혼들은 히브리어로 ‘스올’(시 9:17, 사 14:15, 합 2:5)이요 헬라어로 ‘하데스’(마 11:23, 눅 10:15, 행 2:27,31, 계 1:18)라 불리는 ‘지옥’에 갔으며, 율법하에서 구원받은 혼들은 “아브라함의 품”(눅 16:23)으로 표현되는 ‘낙원’에 가 있었다. 또한 지옥과 낙원 사이에는 “커다란 구렁”(눅 16:26)이 놓여 있었다. 최초의 히브리인인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의 조상이며, “아브라함의 품”은 모세의 율법하의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곳이었다. 지옥에 간 유대인 부자의 외침을 들어 보라. 그는 유대인 나사로를 품에 안고 있는 아브라함을 가리켜서 ‘아버지’라고 불렀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그가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식히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눅 16:24).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의 조상(father)인 것이다(마 3:9, 눅 3:8). 그러나 오늘의 베드로전서 3:18-20에는 유대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감옥에 있는 영들”과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가족들뿐이다. 베드로전서의 이 구절들은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 이전의 어느 특정 시기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19과 3:20에서 감옥에 있는 “영들”과 방주에서 구원받은 여덟 “혼들”이 분명히 대조되고 있음을 볼 때에, “감옥에 있는 영들”은 죽은 사람의 “혼들”이 아님이 분명하다. “감옥에 있는 영들”은 아브라함 이전의 노아의 날에 “순종하지 아니하던 영들”이었다(20절). 히브리서 1:7,14이 천사들을 “영들”과 “섬기는 영들”로 계시하고 있는데, “감옥에 있는 영들”이란 감옥에 있는 범죄한 천사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들은 노아의 시대에 『자기들의 처음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유 1:6)로서, 이들이 바로 창세기 6장에서 땅에 내려와 사람의 딸들과 결합하여 거인들을 낳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오직 “천사들”만을 지칭하며(욥 1:6; 2:1; 38:7), 주님은 이 범죄한 천사들을 영원한 사슬에 묶어서 헬라어로 “타타루스”라 불리는 지옥의 지하 감옥에 심판 때까지 가둬 두신 것이다(벧후 2:4, 유 1:6). 말 그대로 그들은 확정되고 변경할 수 없는 형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들과 같은 것이다.

베드로전서 3:19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이동하셔서 타타루스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고 말씀한다. 우리는 여기서 “복음”이 전혀 언급되지 않으며 단순히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고만 말씀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사슬로 묶어 큰 날의 심판 때까지 흑암 속에 가두어 두신”(유 1:6) 그 영들에게 가셔서 “복음”을 전파하신 것이 아니다. 큰 날의 심판 때까지 가둬 두셨다는 천사들에게 주님이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해석해 버리면, 우리는 성경을 모순된 책으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완벽하고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딤후 3:16).
주님이 범죄한 천사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을 전파하셨을까? 베드로후서 2:4과 유다서 1:6에 따르면, 감옥에 갇힌 범죄한 천사들은 “심판 때까지” 갇혀 있다. 정해진 형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미래의 심판을 선포하는 것뿐이다. “너희들은 여기 이 감옥에 심판 때까지 봉해져 있으라.”고만 전파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천사들의 심판에 관해 『너희는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물며 이생에 관한 일들이랴?』(고전 6:3)고 하였다. 구약의 범죄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신약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심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전서 4:6에서는 “복음”이 “죽은 자들에게도” 전파되었다고 말씀한다. 우리는 “죽은 자들에게도(also to them that are dead)”라는 표현에 유의해야 한다. 영적으로 죽은 지상의 죄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므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면 이것이 영적으로 죽은 죄인들 외에 또 다른 “죽은 자들”을 언급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하세계로 가셨을 때 주님은 『아브라함의 품』(눅 16:22)이라 불리는 『낙원』(눅 23:43)과, 『불꽃 가운데서 고통』(눅 16:24)을 받는 『고통의 장소』(눅 16:28)라 불리는 『지옥』(눅 16:23)에 다녀오셨다. 주님께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말씀은 바로 이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구약 성도들에게 가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말씀이다. 목적은 그들도 “육체로는 사람과 일치하여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과 일치하여 살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신 주님은 지하 낙원에 있던 그들을 낙원과 함께 셋째 하늘로 사로잡아가셨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갔고 사람들에게는 은사들을 주셨다.”고 하셨느니라』(엡 4:8). 현재 낙원이 구약 시대와 달리 셋째 하늘에 위치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가 셋째 하늘로 끌려 올라갔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끌려 올라가서...』(고후 12:2,4).
말하자면 베드로전서 3:19의 “감옥에 있는 영들”은 4:6의 “죽은 자들”이 아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하세계로 내려가셔서 두 부류에게 다른 내용을 전파하셨음을 말씀하고 있다. 타타루스라는 감옥의 영들에게는 사슬에 묶인 채 심판 날까지 갇혀 있을 것을 선포하신 것이고, “죽은 자들” 곧 구약 성도들에게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신 후 그들을 낙원과 함께 통째로 셋째 하늘로 데려가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시어 셋째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신 현 신약 교회 시대에, 개신교 목사들처럼 장례식에서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성경을 모르는 이들의 인본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주님은 더 이상 지하세계의 죽은 자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으시며, 현재는 재림의 날을 준비하고 계신다.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현 교회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사람들은 죽음과 동시에 셋째 하늘 낙원으로 옮겨지고, 믿지 않은 사람들은 죽음과 동시에 결코 꺼지지 않는 불 속인 지옥으로 떨어진다(시 9:17, 막 9:43,44). 그것으로 영원이 결정되며 더 이상의 자비는 없다. 그러므로 『보라, 지금이 기뻐 받아들여진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후 6:2)는 말씀에 죄인들은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이재철 목사를 정죄할 자격이 없는 예장통합
이목사를 정죄하기 위해 서울서노회가 들고 나온 “예장통합 헌법” 역시 가관이 아니다. ‘제1편 교리’의 ‘제4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장 6조에는 『하나님이 선택을 입은 자들을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하신 것과 같이 자기의 뜻의 영원하시고 가장 자유로우신 목적을 통하여 그것에 필요한 모든 방법을 미리 정하셨다... 그러므로 택함을 받은 사람은 아담 안에서 타락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받으며... 때를 따라 역사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에 이르도록 실제로 부르심을 받는다. 그들은 또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화되고...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때까지 그리스도의 힘의 보호를 받는다. 택함을 받은 자 외에는... 아무도 구속을 받거나, 실제로 부르심을 받거나, 의롭게 되거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거나, 성화가 되어서 구원을 받지는 못한다.』고 되어 있으며, 제10장 4조에서는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가령 그들이 말씀의 전도...를 통하여 부름을 받고 성령의 일반적 역사...를 소유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바로 오지 못한다. 따라서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창세 전에 택함받은 사람은 비록 죄인일지라도 ‘그리스도의 힘의 보호’를 받다가 ‘때를 따라 역사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에 이르도록 실제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칼빈의 이단 교리인 예정론을 가르치는 예장통합은, 그 이단 교리를 근거로 이목사를 정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단이 또 다른 이단을 정죄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영원한 정죄로 정해져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무슨 관련이 있으며, 그것이 어찌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는가? 그와 같은 것을 믿음에 의한 구원이라면서 교세를 자랑하고, 성경에도 없는 교회성장을 꾀하고 있는 그들이 참으로 한심하지 않은가! 예장통합은 자신을 낮춰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 뿐만 아니라(빌 2:5-8),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신(고후 5:14) 주님의 십자가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는(딤전 2:4)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대적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랑한 사도 바울은 그런 이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을 가리켜 십자가의 원수들이라고 하였다(빌 3:18). 그들이 전하는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는 무관한 것이다. ‘교회의 신성과 질서를 훼손시키는 죄과 행위’는 이재철 목사뿐만 아니라 예장통합도 동일하게 범하고 있다. 예장통합은 누군가를 정죄할 자격도 없으면서 자기 교단의 이단 교리 목사를 정죄한 것이다. 『너 위선자여, 먼저 네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뽑아 내라. 그러면 네가 밝히 보고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리라』(마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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