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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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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8월호>
"죽음"을 의미하는 "죽을 사(死)" 자는 "부서진 뼈(?)로 변하다(匕)"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뼈에 붙은 살들이 분해되고 백골이 흩어진다는 것이다. 어느 백과사전은 죽음에 대해 "생명 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로서 생(生)의 종말을 말한다. 고등 동물에 한정하면 그 개체를 구성하는 전조직(全組織) 세포의 생활 기능의 정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죽음의 종말은 심장 고동과 호흡 운동의 정지이다."라고 정의한다. 이처럼 "흩어진 뼈들"과 같은 글자들을 조합하여 죽음을 정의한다고 해서, 죽음을 향해 가는 인류의 끝없는 행렬을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다. 성경은 죽은 자들의 "흩어진 뼈들"이 다시 붙어서 부활한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내가 예언하였더니 소리가 나고, 보라, 진동이 있고 뼈들이 모여들어 뼈가 자기 뼈에 붙더라 . 내가 보았더니, 보라, 힘줄과 살이 그 뼈들 위에 오르고 피부가 그 위를 덮었으나 그들 속에 숨이 없더라 ...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오 숨아, 네 바람으로부터 와서 이 살해된 자들 위에 숨을 넣어 주어 그들로 살아나게 하라 ." 하시니라. 그래서 내가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예언하였더니 숨이 그들 속으로 들어갔고 그들이 살아나 그들의 발로 서니 심히 큰 군대더라 』(겔 37:7-10).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는 것이다. 인간을 생물학적 세포들의 결합체로만 인식하고, 모든 세포의 기능이 정지하여 심장이 멎고 호흡이 끊어질 때, 바로 이것만을 죽음으로 본다면, 죽음에 관한 지난 "6천 년의 고뇌"는 아메바의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는 생물학적 죽음이 전부라면 죽음과 그 후의 생에 대해 번뇌하지 않는 단세포 생물이 죽음으로 인해 "쓸데없이" 고뇌하는 "고등 동물"보다 낫기 때문이다.
만일 생물학적 죽음이 생의 끝이라면 인간은 아메바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고뇌가 있음으로 해서 "나는 누구인가?"로부터 시작되는 생의 의미를 알기 위해 또다시 고뇌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비록 생의 모순과 불합리, 그 고달픔과 막막함, 마음의 무너짐과 쓰라림, 실패와 좌절, 상실과 상처, 사고와 재앙, 그 모든 아픔과 슬픔을 넘어섰어도 인간은 결국 죽음의 절벽에 서야 한다. 그 퇴보 불가능한 벼랑 끝에 서서 죽음이 무엇이냐고 번민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다(히 9:27). 그러나 세상의 내로라하는 생물학자, 의사, 철학자, 종교주의자 중에는 죽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답변한 사람이 없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Death>라는 책에서 셸리 케이건(예일대 철학 교수)은 "영혼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결국 "나라는 존재의 소멸"을 죽음으로 본 그는, 그런 이유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했는데, 참으로 그는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인가? 성경은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평생을 노예로 속박되어 있는 자』(히 2:15)임에도 그렇지 않은 척 위선을 떨고 있다고 말씀한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다."라고 말한 뒤, 그 "최고의 발명"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죽음과 그 죽음으로부터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죽음으로부터의 문제는 주 하나님께 속하였느니라』(시 68:20). 모든 것의 절대 기준인 성경, 곧 "하나님의 책"만이 죽음을 알려 줄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이란 실로 무엇이란 말인가?
죽음은 "아담 한 사람"의 "죄"의 결과이다.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롬 5:12).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가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어 모든 사람이 죽게 된 것이다. 아담으로부터 죄를 물려받은 인류는 아담처럼 죄를 짓게 되었고, 아담처럼 죽게 되었다. 죄의 삯은 사망인 것이다(롬 6:23).
그러나 아담의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이 먼저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하셨을 때, 주님께서는 금지된 열매를 먹는 결과로 "죽음"을 경고하셨다. 그런데 아담은 그 열매를 먹은 날에 죽지 않았다. 금지된 열매를 먹은 그가 살았던 연수는 무려 930년이나 되었던 것이다(창 5:5). 아담은 그의 몸이 930년을 살고 죽었으므로, 『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 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경고는 아담의 몸의 죽음을 말씀하신 게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날" 죽은 것은 아담의 몸도 아니고 그의 살아 있는 혼도 아니고 그의 "영"이었다. 이 점은 아담의 형상을 따라 태어난 죄인들에 대한 말씀들에서도 계시된다.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엡 2:1). 이 말씀은 『너희』, 곧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기 전에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 존재들이라고 알려 준다. 상식적으로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몸이 죽어 있었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몸은 그때 살아 있었다. 몸이 아닌 무언가가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요 3:5,6). 주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성령님에 의한 "영의 태어남"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육신이 태어날 때부터 영이 죽어 있기에, 육신의 출생 이후 영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지어진(창 1:26) 아담은 하나님처럼 "살아 있는 몸"과 "살아 있는 혼"과 "살아 있는 영"을 가지고 있었다(창 2:7).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 뒤로는 『자기 모습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창 5:3) 후손을 낳게 되었다. 아담이 상실한 것은 그의 "영"이었다. 즉 아담의 영이 죄로 인해 죽어 버렸고, 결국 그의 모습대로 그의 형상을 따라 태어난 후손들도 모두가 "죽은 영"을 가진 "죽은 자들"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주님께서 『 죽은 자들 로 그들의 죽은 자 를 장사지내게』 하라고 하셨을 때(눅 9:60), 그것은 "영이 죽은 자들"로 "몸이 죽은 자"를 장사지내게 하라는 말씀이었다.
사실 "영의 죽음"의 결과로 일어난 것이 글 첫머리에서 언급했던 생물학적 죽음, 곧 "몸의 죽음"이다. 영의 죽음을 규명하지 못하면 몸의 죽음을 규명하지 못한다. 사람이 왜 죽는가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영이 죽은 아담은 그의 몸 또한 썩고 수치스럽고 약한 것으로 변해 버렸다(고전 15:42,43).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죽어 가는 아담에게 불허하신 것이 있었는데, 바로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 나무"였다.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그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되니, 이제 혹 그가 자기 손을 내밀어서 생명 나무의 과실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함이라 ." 하시니라. 그러므로 주 하나님께서 에덴의 동산에서 그를 내어 보내어 그가 취함을 입은 그 땅을 갈게 하시니라』(창 3:22,23). 죄로 타락한 인간이 생명 나무의 과실을 먹고서 마귀처럼 죄를 지으며 영원히 산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따라서 그 일을 막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생명 나무의 길을 아담에게 차단시키셨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날수가 점점 줄어들어 고작 70-80년 살게 하시려고 인간을 지으신 것이 아니었으나, 죄를 지은 인간에게는 영생의 가능성을 도저히 허용하실 수 없으셨던 것이다.
인간은 몸, 혼, 영의 삼중 구조로 되어 있다. 『화평의 하나님 바로 그분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 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살전 5:23).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한 죽음은 영의 죽음과 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인간은 땅의 흙("몸")으로 지어졌는데 그의 콧구멍에 하나님께서 생명의 호흡("영")을 불어넣으시니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창 2:7). 따라서 죄로 인한 죽음은 영과 몸 이외에도 혼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것을 역설적이게도 "살아 있는 혼"의 "죽음"이라고 말한다. 혼이 살아 있는데 죽은 것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혼은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데도 성경은 이 혼에게 죽음이 있다고 말씀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혼의 소멸"이라는 이단 교리로 혼의 죽음을 설명하려 들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헛소리일 뿐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로 성경의 혼의 불멸 교리를 반박하고 있다. 『...그리스인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영혼 불멸 사상?을 믿은 사람?들"은 이집트인?들?입니다...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중동 지역?을 정복?할 무렵?에는 영혼 불멸 사상?이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이미 대중화?되어 있었습니다...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도 영혼 불멸 신앙?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 사람?들?의 신앙"이 침투?한 결과?라고 지적?했습니다. 요세푸스?는 그리스인?들?의 신앙?이 신화 작가?들?이 지어낸 이야기?를 모아 놓은 산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 문화?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도 이 이교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파수대>, 2017년 제4호, p. 6)
그들은 혼의 불멸 교리를 "마귀들의 교리들" 중 하나라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그 "마귀의 증인들"에게 혼의 불멸 교리가 명백한 성경적 교리라고 가르친다. 요한계시록 6:9,10에서는 『죽임당한 자들의 혼들이... 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여,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을 심판하시어 우리의 피를 갚아 주실 날이 얼마나 남았나이까?』라고 큰 음성으로 "울부짖는다." 몸이 죽은 뒤 혼이 지옥에 간 부자는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그가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식히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눅 16:24)라고 "소리 지른다." 인간은 몸이 죽으면 혼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혼은 몸이 죽은 후에도 고통과 감정과 의사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 자의식을 지니고 있다. 성경은 이 혼의 "죽음"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 바다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그들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니 그들이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 20:12-15). 사도 요한이 본 『죽은 자들』은 천년왕국 이후 백보좌 심판에 서서 그들의 "행위"에 따라 영원한 생명이나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된다(요 5:28,29). 지옥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준다는 말씀을 보면,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처럼 지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던 혼들이 그곳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 "혼들"이 백보좌 심판 때 그들의 몸을 입고(cf. 욥 19:26) 나와 불못에 던져지는 것을 가리켜서 성경은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몸의 죽음(첫째 사망) 이후 지옥에 간 "혼"이 그 지옥에서 나와 그의 몸을 입고 불못에 던져지는 것이 "둘째 사망"이며, 불못에 들어가면 영원무궁토록 밤낮 고통을 받게 된다(계 14:11). 그곳에서 혼이 영원히 사는 것이다! "혼의 죽음"은 혼의 소멸이 아니라 혼이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는 것을 가리키는 성경적인 용어이다.
이 "혼의 죽음"이 바로 "죽음으로부터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죽음으로부터의 문제는 주 하나님께 속하였느니라』(시 68:20). 삶의 문제는 마음에서 나오지만(잠 4:23), 사람이 일단 죽으면 그 죽음으로부터의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 죽은 사람의 혼은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죄인이 살아 있을 때에는 몸의 죽음과 그 이후에 관하여 이러쿵저러쿵 자기 생각을 말하고, 죽을 때까지 자기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지만, 일단 죽은 뒤에는 그에게 어떤 의견도 결정권도 없게 된다. 사람이 죽는 문제와(신 32:39, 시 104:29), 죽음 뒤에 있을 심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히 9:27, 시 9:17).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 곧 "몸"이 무너지면(고후 5:1) 사람의 혼은 자신의 장막을 벗고(벧후 1:14) 하나님의 결정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지옥의 형벌이며, 먼 훗날에는 영원한 불못의 형벌이다. 이러한 결정이 나의 혼에게 주어지기 전에, 아직 몸을 입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접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죄인의 죽은 영이 살아나고(요 3:5,6, 엡 2:1), 혼이 구원받으며(벧전 1:9), 몸 또한 장차 구속을 받게 되어(롬 8:2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과 똑같은 "불멸하는 몸"을 갖게 된다(빌 3:20,21, 요일 3:2).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영과 혼과 몸의 모든 죽음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음부야,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에게 죽음을 무력한 것이 되게 하였고, 죽음의 세력을 가진 마귀의 멸망을 확정했다(히 2:14). 바로 이 주님께서 "사망"을 영원한 불못에 던져 넣으실 것이다(계 20:14). 첫 사람 아담이 가져온 죽음을 "마지막 아담"(고전 15:45)께서 처리하시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