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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행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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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11월호>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다. 일반적으로 행복은 만족에서 오는데,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소유하면 만족하게 되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평생을 수고하며 산다. 반면에 원하는 걸 갖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여기기에 그것을 얻고자 또 수고한다. 그렇게 밤낮 수고해서 원하는 것을 소유하게 되면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소유의 풍부함"이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고 가르쳐 주셨다. 인간이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고(시 49:17), 생명 또한 소유의 풍부함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의하고, 탐심을 조심하라. 이는 사람의 생명이 자기가 소유한 것의 풍부함에 있지 않음이라』(눅 12:15). 그렇다면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 길은, 참된 행복을 방해하고 있는 두 가지가 무엇인지 숙고해 봄으로써 깨닫게 된다.* 끝없는 소유욕이 참된 행복을 방해하고 있다.
인간은 원하는 것을 풍부하게 얻었다 해도 채울 수 없는 욕망 때문에 행복해하지 못한다. 원하던 것이 채워지면 그것에 만족하고 또한 그것을 누리면서 마냥 행복해 할 수 없는, "무한한 욕망"을 지닌 존재인 것이다. 일례로 솔로몬왕은 천문학적인 수치에 달하는 것들을 소유했었지만 다음과 같이 회의적인 고백을 했다. 『만물은 수고로 가득 찼으나 사람이 그것을 표현할 수 없으니, 눈은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귀는 듣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도다』(전 1:8). 세상에 그 무엇으로도 사람의 눈과 귀를 만족케 할 수 없는 것이다. 『눈은 재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전 4:8),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증식으로 만족하지』 못한다(전 5:10). 결코 가득 차지 않는 지옥과 멸망처럼 『사람의 눈도 결코 만족함이』 없다(잠 27:20).
이처럼 인간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처음에 지음받았을 때의 목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이 땅을 다스리는 왕으로 지음을 받았다(창 1:26).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을 다스리는 왕으로 창조된 것이다. 그러한 인간이 죄로 인해 타락했으니, 세상 전부도 아니고 일부분을 많이 소유한다 한들 과연 만족할 수 있겠는가? 마태복음 16:26에서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자기 혼을 무엇과 바꾸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구절은 이런 식으로도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온 세상보다 한 사람의 혼이 훨씬 귀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그 혼과 바꿀 수 없고 또 그 잃어버린 혼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아담 이래로 모든 인간이 그러했고, 솔로몬이 특히 그랬다(전 2:9-11). 이 세상에서 타락한 죄인의 "끝없는 욕망"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결국 그는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지옥으로(잠 27:20)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끝없는 욕망 때문에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감옥에 갇혔던 사도 바울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기뻐했다. 그는 사역을 수행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어떤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기에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단지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극한의 상황에서도 즐거워했던 것은 아니다. 바울이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근본적인 토대는,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주님께만 소망을 두었고, 또 실제로 그분께서 그와 함께하셨다는 것에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생활방식에 탐욕이 없도록 하고 현재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고 권면한 것이다(히 13:5).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자요, 주와 구주가 되시는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 『이러한 백성들은 행복하나니 정녕, 주께서 자기들의 하나님이신 백성은 행복하도다』(시 144:15). 『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하도다. 오 주에 의해 구원받은 백성이여, 누가 너와 같으리요, 그분은 네 도움의 방패시며 네 탁월함의 칼이시로다! 네 원수들이 네게 거짓말쟁이로 드러날 것이요, 너는 그들의 높은 곳들을 밟으리라』(신 33:29).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이 되시고 모든 것을 풍요하게 주시는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분께 소망과 신뢰를 두면(딤전 6:17)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 자기 소유를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방해하고 있다.
말하자면 자신이 가진 것을 천년만년 계속해서 향유하길 바라는 마음에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밤잠을 설쳐 가며 걱정하는 것이다. 그 염려와 두려움의 정도는 소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하다. 전무후무한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렸던 솔로몬이 그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노동자의 잠은 그가 적게 먹든지 많이 먹든지 간에 달지만 부자의 풍부함은 그로 하여금 자지 못하게 하리라』(전 5:12). 『정녕, 내가 해 아래서 했던 나의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도다. 이는 내가 내 뒤에 있을 자에게 그것을 남겨 주어야 하기 때문이라』(전 2:18). 이것은 자신의 죽음을 의식한 데서 나온 고백이었다. 『그가 모태에서 나올 때 벌거벗었으니 그가 왔던 그대로 돌아가며 수고하여 얻은 것은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라. 이것 역시 심한 악이라. 모든 점에서 그가 왔던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위해 수고한 그에게 무슨 이익이 있으랴?』(전 5:15,16) 종국에는 자신이 소유했던 것을 다 잃을 것이기에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도둑맞거나 죽음으로 인해 모두 다 두고 가야 한다면, 사실 그것은 진정으로 소유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날들은 없는 것과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그런 없는 것 같은 날들 동안 무언가를 소유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것이나 진배없다. 그렇게 없는 것을 잡으려 하는 것은 바람을 위해 수고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영원히 소유할 수도 없는 것을 붙잡고 그것으로 행복을 누리려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자"인 것이다. 누가복음 12장에서는 영원하지 않은 것에서 행복을 얻으려 했던 부자를 "어리석은 자"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내 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물건들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편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라."고 말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물으셨다. 『너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혼을 네게서 앗아 가리니 그러면 네가 장만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를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영원히 누릴 것처럼 그것에 목을 매면서 잃어버릴까 봐 노심초사한다. 이렇듯 소유했어도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또 가진 것처럼 보여도 잠깐 보이다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소유를 통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가진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이들을 향해 가장 현명한 대안을 알려 주셨다. 즉 결국에는 사라지고 없어질 땅에다 보물을 쌓아 두지 말고, 결코 잃어버리지 않고 영원히 보장될 수 있는바,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 두라고 하신 것이다(마 6:19,20). 무엇보다도 주님께서는 거듭난 성도들을 위하여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으며 쇠잔하지 않는 유업을 간직해 두셨다(벧전 1:4).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고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골 3:1,2). 눈에 보이는 것들은 결국 무로 돌아가겠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다(고후 4:18).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며(요일 2:17), 그가 받게 될 상급 또한 영원하다(벧전 1:4).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성도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거기에 기록된 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계 1:3). 성경은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행복하다고 반복해서 증거한다(잠 29:18). 그런 사람에게는 땅의 것들은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뛰어나고 영광스러운 보상이 영원한 소유로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서 "소유"를 통해 행복하려고 했지만 결국 비참해졌다. 이것은 자기의 욕망을 따라 사는 자에게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아무리 부유해지고 출세하고 유명해진다고 해도 그의 혼은 메마름만 경험할 뿐 절대 행복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채, 주님을 멀리한 데서 시작된다. 따라서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분을 가까이하고 그분께 소망을 두어야만 참된 행복을 영원토록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