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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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김홍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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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3월호>

지난 1월에도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일간 신문에 전면 광고를 하여 “신의 존재”를 운운하더니, 다시 또 전면 광고를 통해 교회를 홍보했다. 아마 몇 회에 걸쳐서 광고란을 통해 자신의 신학과 교회를 알리려나 보다. 이번 2월 11일에(조선일보) 다룬 주제는 “천국과 지옥”이었다.
『천국과 지옥은 실재하는가?』라는 제목하에서, 그는 이 두 장소의 실체를 말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지옥 가지 말고 천국에 가라고 권면하고 있었다. 일단, 목사로서 죄인들에게 지옥 가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은 좋다. 그것도 안하는 목사들이 수두룩한데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러나 복음 전파를 빙자해서 자신의 신학을 알릴 때면 꽤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지식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분명한 경고와 확실한 소망이 올바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허공에 외치는 외침으로 전락할 수가 있다. 실제로 천국과 지옥에 대한 그의 지식은 너무 혼동스러워서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천상의 나라를 말하다가, 그리스도의 지상 왕국을 말하다가, 다시 영적 나라를 뒤섞어 놓아, 도대체 어디를 가라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에 필자는 이 기회를 빌려 하늘 나라와 지옥에 대한 올바른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주고자 한다.

1. 구원을 받거나 지옥에 가는 존재는 무엇인가?

개역성경은 혼과 영에 대한 구분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몸”과 “영혼”으로 인간을 이분한다. 그런데 김홍도 목사는 데살로니가전서 5:23을 근거로 “영과 혼과 몸”을 구분하는 것 같으면서도, 혼동스러운 말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실 때에,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했는데, ‘생기’는 ‘루아하’로, ‘영’(Spirit)이란 뜻이다. 그래서...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영생하는 존재이며, 육신이 죽은 후에도 천국이나 지옥에서나 영원히 사는 존재이다.』
지금 김홍도 목사는 “영”이 지옥에 간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과 혼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이 둘을 구분한다는 사람이 “영”이 지옥에 간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커다란 이단 교리이다. 전도서 3:21은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누가 알리요?』라고 말씀한다. 개역성경은 여기서 “영”을 “혼”으로 변개시켜서 짐승은 영이 없다고 말해 버렸는데, 성경은 짐승도 영이 있다고 말씀한다. 다만 그 종류가 다를 뿐이다.
사람의 영은 구원받았든 그렇지 않든 무조건 “위로” 올라간다. 왜냐하면, 영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이 살아 숨쉬도록 주신 “호흡”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주셨으니 취해 가시는 것이다. 영은 “바람” 같은 존재이며, 형체도 없다. 그러나 “혼”은 몸과 똑같은 형체로서, 내 안에 들어 있는 진짜 “나”이며, “나의 인격” 자체이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지옥에 간 부자는 저 멀리 아브라함을 보았고(눈이 있다) 대화했고(입이 있다) 손가락으로 물 한 방울을 혀에 떨어뜨려 달라 했으며(손과 혀가 있다) 뜨겁다고 했는데(감각이 있다), 어떻게 영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고통을 당하겠는가? 영은 하나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호흡”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이것은 “혼”이다. 인간의 “혼”이 하늘 나라에 가든지 지옥에 가든지 하는 것이다. 그 혼은 “나 자신”이다. 김홍도 목사는 몸, 혼, 영을 계란의 껍질, 흰자, 노른자로 비유했는데, 그것도 잘못됐다. 영은 공기요 바람 같은 것인데(요 3:8), 노른자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축구공으로 비유하는 게 적절하다. 공 안에 있는 공기가 곧 영과 같은데, 그래서 영이 죽어 버린 죄인들은 바람 빠진 축구공과 같은 것이다.
“영”은 “거듭났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육신으로 태어난 사람이 영적으로 한 번 더 출생한 것을 “거듭남”이라 하기 때문이다(요 3:5). 성령께서 임하시어 죽었던 영을 살리신다. 이때 새로운 영적 출생을 한다. 이것이 거듭남이다. 반면 구원받거나 지옥에 가는 것은 “혼”이다. 혼은 영원히 죽지 않으며, 영원히 고통 중에 있든지 행복 가운데 있든지 할 것이다.

2. 천국과 하늘 나라에 대한 오해

김홍도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늘 나라’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장차 구원받은 성도들이 들어갈 천국이 있는 곳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하늘 나라 안에 천국이 있다는 말인가? 이 문장 하나로 천국에 대한 그의 개념이 엉성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지속적으로 천국과 하늘 나라를 동일시하는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22:5을 인용하면서는, 천국에는 밤도 없고, 등불과 햇빛도 필요없다고 말한다. 또 요한계시록 21:4을 인용하면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어 사망이나 애통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고린도후서 12:2을 인용하면서는, 바울이 “셋째 하늘”에 갔다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그 구절들은 천년왕국 이후 영원 시대에 이 땅 위로 내려올 “새 예루살렘”에 대한 언급이다.
이것은 사실 김홍도 목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인들이 혼동하는 내용이다. 천국과 하늘 나라, 또 하나님의 나라를 같은 나라로 보기 때문에, 성경에 나와 있는 여러 복된 장소들을 혼동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기회를 통하여 이 세 나라들의 차이를 분명히 알기 바란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있다. 이 나라는 영적인 나라로서, 지금 이 땅에서 성도들이 영적으로 들어가 있는 나라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나야 이 나라로 들어간다 하셨으며(요 3:3,5), 또 그 나라는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볼 수 있게” 오는 나라가 아니라고 하셨다(눅 17:20-21). 그래서 이 나라는 거듭난 성도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영적으로 받는 나라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육신으로는 “대한민국”이라는 지상 정부 아래 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영적 정부에 속해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롬 14:17)고 말하여 이것이 영적인 나라임을 말했다.
둘째, “천국”(the kingdom of heaven)이 있다. “하늘”(heaven)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셋째 하늘로 착각을 하는데, 이 나라는 실은 “지상” 왕국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10에서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시오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셨다. 즉 “하늘”에서의 그분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질 “아버지의 왕국”인 것이다. 그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왕국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이 땅의 왕으로 통치하실 “천년왕국”이다(계 20:1-6). 이 왕국은 구약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언한 메시야 왕국이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이 왕국을 예언했으며, 특히 다윗에게 약속된 “영원한 보좌”가 바로 이 왕국이다(삼하 7:16).
실제로 신약성경에서 “천국”이라는 단어는 마태복음에만 나오는데,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셋째 하늘과는 상관이 없다. 침례인 요한이 『너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고 말했을 때, 그것은 메시야 왕께서 오신다는 메시지였다. 마태복음 5장에서는 “천국”을 말하면서(3절) “땅의 유업”을 말하고 있다(5절). 더욱이 10절에서는 “의로 인해 박해를 받는 자들”에게 천국이 주어진다 했다. 만약 천국이 셋째 하늘을 말하는 것이라면, 박해를 받도록 의를 행해야만(즉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인가? 마태복음 10:5-7에서는 천국복음을 말하면서, 이방인 말고 오직 유대인에게만 전파하라고 하셨다. 또한 비록 유대인에게 약속하신 왕국이지만, 교회(그리스도인들)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부이므로 이 왕국에서 통치자가 될 것이다.
셋째, “하늘 나라”(heavenly kingdom)가 있다. 단어가 비슷하여 천국과 혼동하지만, 이 나라는 말 그대로 저 하늘 위에 있는 곳이다. 바울이 올라갔던 셋째 하늘, 하나님 아버지와 그 오른편에 예수님의 보좌가 있는 곳, 성도들이 죽어서 “혼”이 올라가는 그 복된 나라가 바로 “하늘 나라”이다(딤후 4:18).
정리하면 이렇다.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영적으로” 누리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고, 죽어서 “혼”이 올라가는 셋째 하늘이 “하늘 나라”이고, 그들이 “부활”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할 나라가 “천국”이다. 지금 셋째 하늘이나, 앞으로 내려올 새예루살렘에는 주님이 그곳의 빛이시므로 태양도 없겠지만, 천년왕국이라는 땅의 왕국(“천국”)에서는 여전히 태양과 달이 있다.
이러한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라고 말할 때, 그 천국이 하늘에 있는 건지 땅에 있는 건지, 실제적인 나라인지 피상적인 나라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 나라를 실제적 장소로 알지 못하고 어떤 피상적인 “마음의 상태”로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교인들이 하늘에 대한 소망도 없이 종교 생활만 하게 만드는 것이다.

3.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김홍도 목사는 지옥에 대해 나름대로 경고하고 있다. 여러 가지 논조로 결코 지옥에 가면 안 되니 예수님을 믿으라고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두 가지 매우 큰 것을 놓치고 있다.
첫째, 그는 성경으로 지옥을 경고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무신론자들, 즉 루소나 토머스 페인이나 프랜시스 뉴포트 같은 무신론자들의 고백을 예로 들면서 지옥을 경고하지만, 정작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은 제시하지 못했다. 성경에는 지옥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경고들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경고하신 마가복음 9:44,46,48이다. 이 세 구절은 똑같이 『그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한다. 예수님께서 똑같은 말씀을 세 번 반복하셨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며, 결코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개역성경을 비롯한 변개된 성서들에서는 이 세 구절들 중 두 구절이 삭제되어 있다. 지옥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강조를 약화시켜 버린 것이다.
변개된 성경으로 지옥을 경고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마가복음 9:44,46 외에도, 개역성경은 구약에서 “지옥”이라는 단어를 모두 제거해 버렸다. 신약에서도 극소수의 구절에서만 지옥을 놔두었을 뿐이다(단 열세 번만, 킹제임스성경에서는 54회). 진리를 전하려면 진리의 말씀으로 전해야 한다. 지옥을 경고하려면 지옥을 경고한 그 성경으로 경고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니까 피상적인 경고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 그는 지옥을 경고하면서도 지옥이 어디에 있는지는 말하지 못한다. 반면 성경은 지옥이 땅 속에 있다고 말씀한다.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예를 말씀하시면서,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있을 것이라.』(마 12:40)고 말씀하셨다.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죽었고, 그의 혼이 “지옥”에 갔었다(욘 2:2). 예수님께서는 그곳을 “땅의 심장”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몸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혔지만 혼은 지옥으로 가셨었다. 지옥에는 “문들”(마 16:18)이 있으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의 “열쇠”(계 1:18)를 갖고 계신 이유인 것이다. 따라서 지옥은 말 그대로 땅 속에 있는 “실제적인” 장소이다. 김홍도 목사는 지옥이 “실제적인” 장소라고 누누이 말하고 있지만, 그 장소가 어디인지는 알지 못한 것이다.
또한 이사야 34장에는 재림 때의 에돔(“이두메,” 5절) 땅에 대해 예언하는데, 그 땅이 유황과 역청으로 변하며 영원한 불로 타오른다고 말씀한다(9-10절). 이 말씀은 천년왕국 때에 이스라엘 남쪽에 있는 에돔 땅이 실제적인 불못이 될 것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불못의 마지막 단계는 요한계시록 20:10-15이다. 천년왕국이 끝나고 백보좌 심판이 펼쳐질 때, 땅과 하늘은 사라져 버리고(계 20:11), 우주 밖 어딘가에 불못이 마련되어 있어 모든 시대의 죄인들은 그리로 떨어질 것이다. 13절에서는 『사망과 지옥도 그들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니』라고 말씀한다. 즉 지금 죄인들은 이미 그들의 “혼”으로 지옥에 가 있겠지만, 그들은 백보좌 심판 때에 부활하여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몸”을 입은 그 상태 그대로 영원한 불못으로 던져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인의 영원한 운명이다. 이 시대엔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던져진다. 몸과 똑같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혼으로 지옥에 간다.
이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지옥을 피상적인 장소로 안다. 죽음 너머 어떤 저승 세계라고만 생각한다. 신학자들은 지옥을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라고만 말한다. 심지어 이 세상 자체가 지옥이라고도 말한다. 아무도 지옥의 실체를 믿지 않는다. 김홍도 목사가 아무리 지옥이 실제적인 장소라고 소리쳐도, 그곳이 어딘지를 정확히 제시해 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믿지 않고 콧방귀만 뀌게 될 것이다.

결국 김홍도 목사는 하늘 나라와 지옥에 대해 아무것도 제대로 알려 주지 못했다. 사람들에겐 더욱 혼란만 가중시켰고, 더욱더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이제부터 가까운 교회에 나가십시오.”일 뿐이다. 그는 그 말로 이 글을 끝맺는다. 과거에 빌리 그래함도 그랬었다. 열심히 영접 기도를 인도해 놓고, 가까운 교회로 나가라 했다. 도대체 어느 교회에 나가라는 말인가? 카톨릭 교회를 나가라는 말인가, 장로교회, 감리교회에 나가라는 말인가? 이단 교회에 나가도 좋다는 말인가? 결국 어디가 좋은지 모를 터이니 자기 교회로 오라는 말인가? 물론 그것을 바랄 것이다. 이것은 결코 구령자의 자세가 아니다. “가까운 교회에 나가라”는 말은 결코 구령자가 해야 할 말이 아니다. 결국 그는 “광고”를 했을 뿐이다. 금란교회와 김홍도 목사에 대한 일간지 한 면을 가득 채운 대형 광고, 이렇게 또 하나의 광고가 끝났다. 다음 광고가 무엇인지 내심 기대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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