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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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와 눈과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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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8월호>

사람이 살면서 누군가를 기쁘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다. 누군가를 기쁘게 했을 때 기뻐하는 상대방은 물론이거니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자신도 역시 기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은 선생님을 기쁘게 한다. 그래서 그는 선생님으로부터 더욱더 사랑을 받게 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말씀 안에서 순종하고 진리 안에서 자라가는 모습은 자신은 물론이요, 그 성도를 인도하는 목자를 기쁘게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누구보다도 기쁘게 해야 할 대상은 바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죄와 형벌로부터 구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이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인지 입증하라.』고 말씀하신다(엡 5:10).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떠한 것을 기뻐하실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기뻐하시는 일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열려 있는 귀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거리에서나 어디서나 복음을 전할 때 주위 환경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들려 주는 복음에 반응을 보이며 귀를 쫑긋하며 듣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기쁜지 모른다. 이런 사람은 필경 좋은 결과를 얻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롬 10:17)고 성경이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말씀을 듣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세는 바로 열려 있는 “귀”인 것이다. 성경은 곳곳에서 닫혀 있는 귀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눈이 있어도 소경이며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들을 데리고 나오라.』(사 43:8)는 말씀처럼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예레미야 5:21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오 어리석고 지각이 없는 백성이여, 이제 이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닫혀 있는 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시며 열려 있는 귀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귀를 마귀에게 내어 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내어 드렸기 때문이다.
그후로 우리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그분의 말씀을 향해 귀를 열어 놓았기 때문에 고사해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성경 구절을 보면 귀는 열어 놓고 있는데 듣지 않는 부류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네가 많은 것을 보면서도 주시하지 않으며, 귀를 열어 놓고서도 듣지 않는도다』(사 42:20). 이처럼 완악한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 귀를 열어 놓고 경청하는 사람의 귀를 기뻐하신다.
둘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눈이 있다. 눈은 우리 몸의 기관 중에서 참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눈이 에덴 동산에서 결정적으로 잘못 사용된 결과 온 인류가 죄인이 되어 버렸다. 그후로도 눈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죄악은 모두 다 창세기 3장을 기원으로 하고 있으니 참으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을 바라봄으로 실족했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바라본 결과 죄를 짓고 말았다. 눈은 아주 중요한 기관이지만 잘못 사용되어질 때는 실패를 가져오게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홍수처럼 밀려오는 죄의 유혹들로 인해서 힘든 싸움을 싸우고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눈을 감고 살아갈 수 없다. 몸의 빛은 눈이라고 했다. 그래서 눈이 순전하면 온몸이 빛으로 가득 찰 것이라고 마태복음 6:22에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비둘기처럼 순전한 눈을 기뻐하신다.
복음을 전할 때 누구나 예외 없이 상대방의 눈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전하기 마련인데 그것은 눈이 마음의 상태를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사람이 열려 있는 귀를 가지고 경청함과 동시에 크게 뜨고 반응을 보이는 그 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듣기에 좋은 것만 듣고 싶어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보기 원한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행동에 대해서 다 기억하고 계시고 어떻게 처리하실지도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녀가 자신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을 눈으로 읽을 때 기뻐하신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 13:3에서 기도하기를 자신의 눈을 밝히셔서 자신이 죽음의 잠을 자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내 원수로 “내가 그를 이겼노라.” 하지 않게 하시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를 괴롭히는 자들로 기뻐하지 않게 하소서.』(시 13:4)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듣는 것도 주의해야 하지만 보는 것 역시도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부분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눈으로 보는 것으로 인해 실족하는지 모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내 아들아, 건전한 지혜와 분별력을 지켜 그것들이 네 눈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잠 3:21)고 말씀하신다. 모든 일에 있어서 지혜와 분별력에 눈을 고정해야 실족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입술이 있다. 눈이나 귀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해도 살 수 있지만, 우리가 아는 바 입은 먹어야 하고, 말해야 하며, 호흡을 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 입 역시도 죄를 짓는 데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브는 금지된 열매를 그 입으로 먹었고 그의 남편 아담에게도 주었다. 이처럼 입은 죄를 짓는 도구로 사용된 후 지금까지 죄의 도구로도 사용되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입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더럽다고 하셨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들이 자기 혀로는 속였으며 그들의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 차고 그들의 발은 피흘리는 데 빠른지라』(롬 3:13-15). 이처럼 입은 엄청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기관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상처받았다’는 말이 있다. 말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눈에 보이는 상처를 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처를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는 말 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사람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같이 교제하는 형제의 말 한마디가 옆에 있는 그 형제를 세워 주기도 하고 실족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입술의 말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우리는 다 실수할 수 있다. 그래서 형제의 실수를 보고 무작정 지적해서 상처를 줄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방법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형제를 배려하는 그런 겸손함과 형제 사랑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말도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데, 하물며 성령의 칼인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더 하겠는가. 그래서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은 이 말씀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죽어가는 혼들을 구령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귀한 일에 사용되는 입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파송되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전파하리요?』(롬 10:14.15) 복음을 전할 때에 복음을 전해들은 죄인이 주저없이 주님을 영접하는 그 입술을 보라.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입술보다도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도 기쁜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기쁘시겠는가? 그래서 그 순간에 하늘에서는 잔치가 벌어진다고 하셨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들로부터 찬양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조성하였나니 그들이 나의 찬양을 나타내 보이리라』(사 43:21). 물론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대신 이방 신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신 우상에게 영광을 돌리곤 했다. 하나님께 사용해야 할 입술을 잘못 사용한 것이다.
반면에 갓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구원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그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는가! 그리스도인들도 때로는 주님을 찬양하는 데 소홀히 할 때가 많은데 우리는 깨어서 모든 일에 주님을 높이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찬양의 제물을 하나님께 계속해서 드리자. 이것이 그의 이름에 감사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열린 귀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는 비둘기처럼 순수한 눈과 주님을 증거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는 입술을 기뻐하신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든 지혜로 너희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되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은혜로 주께 노래하고 또 말에 있어서나 행실에 있어서나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골 3:16,17).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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