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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떠나 버리신 교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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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11월호>
밥 존스 시니어 목사는 "이 세상의 모든 나쁜 것은 좋은 것이 왜곡되어 나온 산물이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사랑"이 왜곡되면 불륜, 혼전 동거, 성도착, 동성애 등으로 나타나고, "평화"가 왜곡되면 혁명, 내전, 국지전, 세계 대전, 핵전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량 학살 등으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믿음"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왜곡되고, "경건의 능력"은 경건의 모양이나 오순절 은사주의 운동으로, "성경적인 찬양"은 CCM이나 경배와 찬양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회 복음으로, "성경"은 성서나 인간적인 전통으로, "선교"는 관광이나 영화 선교 및 태권도 선교 등으로, "성경 공부"는 제자 훈련으로, "예배"는 열린 예배로, "헌금"은 물질 강요와 착취로, "침례"는 세례와 유아 세례로, "주의 만찬"은 성만찬으로, "장로와 집사"는 돈벌이 수단으로, "성도"는 교인으로, "교회"는 기업이나 자선 단체 등으로 심하게 비틀어져 버리는 것이다.성경의 "벧엘"이란 장소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본래 벧엘은 그 이름의 뜻이 "하나님의 집"인데, 하늘에 이르는 문이자 하나님의 전으로서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다(창 28:16,17). 이전의 지명이 "이탈 또는 사악함"을 의미하는 "루스"였음을(창 28:19) 감안하면, 벧엘은 길에서 이탈한 사악한 죄인이 하나님의 집을 향해 가는 순례길의 첫 관문이 된다. 야곱도 그의 147년 인생길을 돌아볼 때, 그가 제대로 된 인생 여정을 시작한 첫 출발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는 벧엘이 처음 회심하게 된 때, 곧 주님과의 첫사랑을 간직하기 시작한 때로서 감정적으로나 영적으로 최고의 경험을 하는 순간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종종 벧엘로 올라갈 필요가 있다. 문제는 풀리지 않고, 사면초가에 생활고가 심하며, 영적인 침체에 빠지고, 낙담, 우울, 극심한 고통 등이 몰려올 때마다 벧엘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이는 영적 회복과 새로운 출발이 하나님께서 계시는 벧엘, 곧 "하나님의 집"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멸망할 당시의 벧엘은 더 이상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집이 아니었다. 이는 그 좋은 곳이 나쁜 곳으로 변질되어 금송아지를 숭배하는(왕하 10:29) "우상 숭배의 장소"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또한 범죄의 소굴이자(암 4:4) 예언도 할 수 없는 예배당이(암 7:13) 되고 말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벧엘을 찾지 말고... 벧엘은 아무것도 남지 아니할 것임이라.』(암 5:5)라고 경고하신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에 계시지 않는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율법을 버리자 하나님께서도 그 집을 버리셨다. 이카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이다(삼상 4:21).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집은 마귀들과 우상들이 득실거리는 "강도들의 소굴"(눅 19:46)로 전락하여, 결국 불명예와 수치만 남게 된다. 『그들은 번성할수록 나를 거역하여 범죄하였으니 내가 그들의 영광을 수치로 바꾸리라』(호 4:7).
이 배교한 교회 시대에도 수치스럽게 버려진 하나님의 집들이 많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시지 않고 문밖에 서 계실 정도로(계 3:20) 많은 교회들이 버려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데, 이는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대조했을 때 신약에서만 2,200단어 이상 삭제되고 성경 전체에서는 36,000군데 이상 난도질당한 변개된 성경들, 싸늘한 시체처럼 죽어 버린 설교 강단, 경건의 모양만 번드르르하게 갖추고 경건의 능력은 전혀 없는 거짓 목사와 교인들, 아무런 능력이 없는 찬양, 능력 없는 기도, 능력 없는 설교, 능력 없는 사역 등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교회들 안에 계셔야 할 이유를 단 한 가지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과 탐욕에 찌든 삯꾼 목사들을 보라!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며... 자만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가정집에 몰래 들어가 어리석은 여인들을 사로잡아 죄들을 짊어지게 하여 여러 가지 정욕으로 끌려가게 하는 자들』(딤후 3:2,4,6)이 과연 목사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인가? 이 땅에 소위 내로라하는 대형 교회 목사들이여, 입이 있다면 어디 한번 대답해 보라! 정말로 스스로를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사라고 생각한다면 그 부르심의 증거를 제시해 보라. 바울은 스스로가 "하나님의 일꾼임"을 이렇게 입증했다. 『오히려 모든 일에서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일꾼들임을 입증하기를, 많은 인내와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맞음과 갇힘과 소요와 수고와 깨어 있음과 금식에서 그리하였으며 순결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성령과 가식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과 오른손과 왼손에 든 의의 병기로써 영광과 오욕으로써 또 악평과 호평으로써 그리하였고 속이는 자들 같으나 진실하며,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으며, 매를 맞았으나 죽지 아니하였고, 슬퍼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며,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졌느니라』(고후 6:4-10).
그들은 결코 스스로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꾼들임을 입증할 수 없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버려둔 채 정치판에나 기웃거리고 교인들의 수를 거짓말로 부풀리며 교회 건물이나 헌금 액수 등을 자랑하는 가짜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집』은 마땅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전』(딤전 3:15)이 되어야 하건만, 이들 거짓 목사들은 자기들의 배를 하나님으로 섬기고(롬 16:18, 빌 3:19), 건전한 교리를 버리고(딤후 4:3) 진리를 대적함으로써(딤후 3:8)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 바깥으로 멀리 내쫓아 버리고 말았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가짜 목사들을 어떻게 처리하실 것 같은가? 그들의 영광을 불명예와 수치로 바꾸실 것이다. 『오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이 계명은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고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면, 만군의 주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보낼 것이요 내가 너희의 복들을 저주하리라. 정녕 내가 이미 그것들을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 계명을 마음에 두지 아니함이라. 보라, 내가 너희의 씨를 썩게 하고 너희 얼굴에는 똥, 곧 너희 엄숙한 명절의 똥을 바르리니, 사람이 너희를 그 똥과 함께 치워 버리리라』(말 2:1-3). 구약에서 엄숙한 명절에 제사를 드리게 되면 제물의 내장이나 똥은 진영 바깥에 내다 버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읍의 문들 중에는 분뇨와 쓰레기를 바깥으로 치워 버리기 위해 지나다니는 『똥문』(느 2:13)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들에서는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의 얼굴에 "똥"을 바를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그래서 사람들이 똥을 치울 때 얼굴에 똥이 발라진 제사장들도 함께 치워 버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 배교한 교회들의 목사들을 그렇게 처리하실 것이다. 이것은 실로 모독적인 말씀이다! 그만큼 오늘날의 목사들이 선지자 말라키 시대의 제사장들처럼 완전히 배교하고 타락해 있는 것이다.
에스라가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왔을 당시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하나를 접하게 되는데,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백성들이 성별하지 못한 채 이방인들과 결혼하고 그들의 가증함을 따라 행했다는 소식이다. 특히 백성들을 율법에 따라 올바른 길로 인도했어야 할 고관들과 관원들이 이런 가증한 죄들을 짓는 일에 앞장서 있었고(스 9:2), 그 어느 누구보다도 성별했어야 할 제사장들의 아들들까지 이방 여인들을 취했다(스 10:18).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나게 된 가장 큰 원인들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는데(신 7:3,4), 이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패역하게 행했던 것이다.
실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내가 이 일을 듣고 내 옷과 외투를 찢고 내 머리털과 수염을 뜯고 기가 막혀 앉았는데』(스 9:3). 『선택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요, 독특한 백성』(벧전 2:9)으로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전혀 그에 합당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기가 막혀 하신다. 에스라는 얼마나 기가 찼으면 자기 옷과 외투를 찢고 머리털과 수염까지 뜯었겠는가! 나중에 느헤미야가 이런 동일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는 너무도 기가 막혀서 자기 머리털과 수염이 아니라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한 당사자들의 머리털을 뽑아 버렸다(느 13:25). 오늘날에는 느헤미야처럼 성별하지 못한 성도들의 머리털을 뽑아 버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런 에스라나 느헤미야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할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너희가 그로 인해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라는 말씀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진정으로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깊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성별된 위치를 상실하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실제로 슬퍼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음욕과 다툼과 질투와 분노와 시기와 탐심을 추구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영께서는 실제로 슬퍼하신다. 우리가 육신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죄를 짓는 동안 가장 슬퍼하시는 분은 온 우주에서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분을 슬프게 해 드리는 행동은 시쳇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저버리는 일종의 "배신"이다. 온 마음을 다 주기까지 사랑을 쏟아 부은 상대로부터 배신을 당하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가?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일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구원받은 우리의 마음속에 부어졌고(롬 5:5),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값없이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롬 8:32). 그런 사랑을 쏟아 부은 그분의 자녀들로부터 배반당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실지 숙고해 보라! 이런 이유로 성령 하나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것이다(롬 8:26). 허망한 마음으로 세상 죄인들 틈바구니에 끼어 앉아 더러운 말과 방탕함으로 그들과 함께 시시덕거리고 있거나, 때로는 스마트폰으로, 때로는 TV 앞에서 야비하고 저속한 드라마나 코미디 및 연애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는 신음하시고 슬퍼하신다. 개처럼 세상의 쓰레기통이나 뒤지고 있고 뒤져서 먹다가 속에 탈이라도 나서 토해 버린 뒤에 또다시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다든지, 씻고 나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돼지같이 진창에 뒹굴고 있다든지 그런 식으로 짐승처럼 살고 있을 때 거룩한 영께서는 슬퍼하신다. 세상 사람처럼 행동하고 세상 사람처럼 살고 있을 때, 세상 죄인들에게 위축당한 채 세상을 향해 복음과 진리로 담대하게 호령하지도 못하고 있을 때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께서는 매우 슬퍼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집" 또는 "성전"이 구약 시대처럼 어떤 건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몸"이 바로 성전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지 죄를 짓고 온전히 성별하지 않으면 구약의 경우처럼 "이카봇"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물론 구원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성령 하나님께서는 매우 신음하시는 것이다. 우리 안에 밝혀진 조명을 꺼 버리시어 성경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 아무리 간절히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그 안에서 나타내지 않으신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안에는 영적인 암흑과 불안과 초조가 밀려오게 된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사라진 성전은 성전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성령님을 슬프시게 만드는 성전은 성전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런 성전을 어떻게 하시겠는가? 구약에서 그런 가치 없는 성전을 파괴시키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성전인 우리의 몸을 파괴시키실 것이다. 곧 죽이시는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이는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는 그 성전이기 때문이라』(고전 3:17).
누군가가 잘 말했듯이 "우리의 삶에서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밤새도록 기도해도 부흥과 개혁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싶은가? 성별해야 한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싶은가? 성별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도움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성별"은 거룩한 투쟁이다. 공중에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릴 때까지 반드시 지속해야 할 투쟁이요, 지속해야 할 싸움인 것이다. 죄와 나쁜 습관이 우리의 발아래 완전히 정복될 때까지, 성별을 위한 싸움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