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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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쓰임받은 예후 / 교회의 가장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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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5월호>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자연을 관장하시며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그 지혜를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주님은 인류의 역사를 만드신 분이시다. 제국의 흥망성쇠와 개인들의 생사화복도 그분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는 벌레 같고, 썩은 씨앗 같으며, 불면 날아가 버릴 티끌 같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부인하며 대적하는 것을 보면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찰스 다윈은 진화론으로, 칼 막스는 공산주의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로, 스티브 호킹은 빅뱅으로, 미국의 나사는 우주왕복선으로 하나님을 대적했다. 그런 일이 생겨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는 자들 역시 성경의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영원을 사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루살이만큼 사는 인간이 권세와 명예와 업적과 부를 자랑하려고 하는데, 이 역시 가소로울 뿐이다.『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현명한 자는 자기 지혜를 자랑하지 말며 용사는 자기 힘을 자랑하지 말고 부자는 자기의 부를 자랑하지 말라. 그러나 자랑하는 자는 이것을 자랑할지니 그가 깨달아 나를 알아서 내가 이 땅에서 자애와 공의와 의를 행사하는 주임을 아는 것이라. 이는 내가 이 일들을 기뻐함이라. 주가 말하노라』(렘 9:23,24). 또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하나님은 선한 것만을 만드시고 선만을 실행하시는 것으로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악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빛도 조성하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 악도 창조하나니 나 주는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사 45:7). 하나님은 천사들을 부리는 영으로 사용하시어 선한 목적을 이루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권위를 대적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을 혼내주고 말씀대로 벌주고 심판하시기 위해서는 사탄도 들어쓰신다(고전 5:5, 딤전 1:20).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말씀하신 것을 지키시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번 말씀하셔서 기록된 것은 그야말로 취소불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의 죄를 씻지 않고 죽으면 반드시 지옥으로 떨어져야 하는 것은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3:36; 12:48; 14:6, 행 4:12, 롬 6:23).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언의 책이다. 예수의 증거는 예언의 영이다(계 19:10).
하나님께서는 예후를 들어쓰시어 하나님의 예언들을 성취하는 도구로 삼으셨음을 알 수 있다. 선지자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 왕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에 욕심을 내어 사기를 원했지만, 나봇은 조상들의 유업을 다른 사람에게 파는 것이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기에 할 수 없다고 했더니(레 25:23, 민 36:7, 겔 46:18), 그의 아내 이세벨이 부정한 방법으로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착취했었다. 이 일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아합과 이세벨에게 그들이 받을 벌에 대하여 예언하셨다. 아합왕에게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그 자리에서 네 피, 즉 네 몸의 피를 핥으리라.”고 하셨으며 “네 후대를 쓸어 버리고 남자를 끊어 버려 여로보암의 집과 바아사의 집같이 만들 것이라.”고 하셨다(왕상 21:19-22).
이 예언은 열왕기하 9:26에서 정확히 성취되었다. 그의 아내 이세벨에게도 “개들이 이스르엘의 성벽 곁에서 이세벨을 먹으리라.”고 하신 열왕기상 21:23의 예언이 열왕기하 9:30-37에서 정확히 성취되었다. 이 일을 수행하는 데 하나님께서는 예후를 들어쓰셨다. 또 예후는 아합의 아들 70명을 죽이는 일도 성취시켰다(왕하 10:1-11).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예후를 시켜 당시의 바알의 제사장들을 진멸시켰는데, 그는 자신을 바알을 섬기는 열성자라고 소개하면서 바알에게 제사를 지내겠으니 모두 다 예복을 입고 오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들 모두를 진멸시켰으며, 바알의 형상을 부수고 바알의 집을 헐어 야외변소로 만들었던 것이다(왕하 10:19-28). 나는 성경의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긴 가운을 입고 강단에 선 교회협의회 가담 목사들을 연상한다.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 초청하니 모두 긴 예복을 입고 오라고 하면 그들은 다 나올 목사들이다.
그렇다면 예후는 신실하게 하나님의 법을 존중했던 왕이었는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법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두었던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답습했던 자였다(왕하 10:29,3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쓰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1회용이었다. 당신은 하나님께 한 번이라도 쓰임받은 경험이 있었는가? 그 일이 어떤 일이었는가? BB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짓되이 믿음을 고백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드는 것이다. 세상에서 소외당하고, 속임당하고, 신뢰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정의가 불의에게 짓밟히고, 진리가 거짓말에 깔려 있고, 정당함을 호소할 길이 없고,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세태에서 의지할 곳 없는 군상이 바라봐야 할 곳은 하늘뿐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에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마 11:28-30).
누구든지 성경적 지식이 없어도 건전한 눈을 가지고 이 세상을 얼마 동안만 살아보면, 이곳에 신뢰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쉬 감지하게 된다. 왜 그런지 아는가? 이 세상 제도는 마귀가 만들었고, 마귀는 이 세상의 신이 되어 그들의 제도로 인간을 노예로 삼아 굴종의 삶을 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귀는 살인자요, 거짓말의 왕초이다. 모든 속임수, 인성을 파멸시킬 수 있는 담배, 술, 마약, 노름, 향락물, 음란, 동성연애, 창녀짓 등은 마귀의 고안물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기독교란 종교를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교회를 세워 거짓 목사들로 돈벌이하게 하신 것도 아니며, 교단 교세를 확장시킬 빌미를 주시기 위해서도 아니고,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며 또 죽음을 두려워함으로 평생을 노예로 속박되어 있는 자들을 놓아주시려고” 오셨다(히 2:14,15). 마귀에게 노예로 사로잡혀 있는 수많은 군상들이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마귀에게서 풀려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귀의 종들이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새벽기도회에 다닌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을 마귀의 속박에서 풀어 줄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었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을 인류의 죄를 위한 속죄제물로 내놓으셔야 할 이유가 있으셨겠는가? 『우리를 사랑하시어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에서 우리를 씻기시고』(계 1:5)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골 1:14, 개역성경은 ‘그의 보혈을 통하여’ 삭제). 성경은 이처럼 분명하고 확실하고 완전한 계시를 인간들에게 주시어 죄인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날 수 있게 해 놓으셨는데, 말씀을 존중하지도 믿지도 않는 교단 교회 목사들이 긴 옷을 차려입고 교회로 나오라고 손짓하며 새벽에 나오면 갑절로 좋다고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이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은 져도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아 있음이라. 이것이 너희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이니라』(벧전 1:23-25).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시며, 진리시요, 영원한 생명이시다. 성경을 배제하고 인간적인 길을 제시하게 되면 그 길에는 진리도 생명도 없다.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라도 그 끝이 죽음의 길인 것도 있다(잠 14:12; 16:25). 복음은 단순하고 인간의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선명하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기록된 대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면 예수님이 영으로 그 사람 안에 들어가시어 그 사람의 죽은 영을 살려 주신다. 그러면 그의 영은 거듭나고 혼이 구원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는가?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요 5:24)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요 1:1). 거듭나지 않은 채 교회만 다니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고 부질없는 짓이다.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하라고 장려하는 목사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목자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체하는 삯꾼이다. 예수님은 삯꾼을 강도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건물을 세우고 그것을 교회라고 부른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찾아갈 곳이 진리와 무관한 곳이라면 인간은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가 교회 되지 못하고 세상 닮은 강도의 소굴이 될 때 그렇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교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인간의 마음이 황폐화됨을 알아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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