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칼럼 분류
하나님의 가족 vs. 마귀의 가족
컨텐츠 정보
- 1,257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7월호>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하며,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라고 사전은 정의한다. 이 가운데 “혼인”이 가족을 이루는 가장 본질적인 방식이고, 혼인을 통해 피의 유전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진정한 가족이라 할 수 있다. 흔히 “가족적”이라고 하면 “가족 사이처럼 친밀한 것”을 의미하는데, 가족은 이익을 중심으로 만남과 결별을 반복하는 이익 집단과 달리 “피가 섞인 친밀한 유대 관계”를 그 특징으로 한다. “피가 섞이지 않으면 언젠가 떠난다.”라는 말은 인생의 뼈아픈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그것은 반복되는 배신과 깨어지는 관계들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절감하는 가운데 깨달은 삶의 고통스러운 진실이다. 인생이라는 고된 여정 속에서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음을 깨닫기까지 인간은 실로 많은 굴곡을 경험하게 되는데, 타인은 매정하게 등을 돌리고 떠나도 한 부모의 피가 흐르는 가족만큼은 혈육의 끈끈한 정으로 인해 위로하고 힘을 보태며 인생을 동행한다. 남과 남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사의 매정함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피가 섞여 있어도 부모나 자녀를 유기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인류 최초의 가족”은 아담과 이브로 이뤄졌는데, 그것은 두 남녀의 성적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 “한 몸”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자기 어머니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결합하리니, 그들이 한 몸이 될 것임이니라』(창 2:24). 아담과 이브에게는 성경에 그 이름이 명시된 카인과 아벨 외에도 다른 자녀들이 있었다(창 4:14). 따라서 당시의 긴 수명을 고려하면, 그 두 사람의 가족은 인류 최초의 가족이었음에도 오늘날의 핵가족(nuclear family), 곧 부부와 두세 명의 미성년 자녀들로 구성된 가족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아담의 가족은 다산하고 번성하며 온 땅을 다시 채우고 그것을 정복할 책임을 부여받았고, 그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인류 전체에게는 하나의 가족으로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릴 권세가 주어졌다(창 1:28).
그런데 그 최초의 가족 안에서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카인의 “시기”(창 4:5,6)가 발단이 된 그 사건은 “처음부터 살인자”라 불린(요 8:44) 마귀가 그 배후에 있었으며,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죄에 대해서만큼은 속수무책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피로 엮인 가족이라 해도, 죄는 기어코 그것을 해체하고야 마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인류를 분리해 버린 것은 바로 “죄”였다.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눅 3:38)이었기에, 그가 타락하지만 않았다면 인류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명맥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첫 조상의 타락으로 인해 들어온 죄는 하나님과 아담의 후손들 사이를 가로막았고 그 둘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고 말았다.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롬 5:12). 『보라, 주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그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나누었고 너희 죄들이 그의 얼굴을 너희로부터 가렸기에 그가 듣지 아니하심이라. 이는 너희 손들이 피로, 너희 손가락들이 죄악으로 더럽혀졌으며, 너희 입술이 거짓을 말하였고, 너희 혀가 사악함을 속삭임이라』(사 59:1-3).
인류의 역사를 “가족의 역사”라고 해야 할 정도로 성경에서 가족은 진리를 계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대홍수를 통과한 노아의 가족은 그의 세 아들인 셈, 함, 야펫을 통해 오늘날의 세 인종으로 전 세계에 퍼져 살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이룬 가족은 그가 사라를 통해 낳은 독자 이삭으로부터 야곱으로 이어지는 유대 민족을 있게 했고, 그가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이집트인 여종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은 오늘날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가장 강력한 적들의 조상이 되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온전케 되려 하는 갈라디아인들을 일깨우기 위해 “사라와 이삭”을 “하갈과 이스마엘”과 대조시킴으로써, 여종과 그녀의 아들을 내쫓았던 것처럼 구약의 율법에 따른 행위를 몰아내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은혜의 구원을 통해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갈 4:21-31).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리브카를 통해 낳은 에서와 야곱으로 가족을 이뤘는데, 야곱이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탈취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언약에 따른 복을 야곱과 그의 후손이 거머쥐게 되었다. 이후 야곱은 형 에서의 위협을 피해 시리아인 라반에게로 도피했다가 그곳에서 라헬과 레아, 또 그들의 몸종인 빌하와 실파를 아내로 얻어 훗날 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열두 아들을 얻게 된다. 바로 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나오신 것이다!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프라타야, 네가 비록 유다의 수천 가운데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통치할 자가 너로부터 내게로 나오리라. 그의 나오심은 예로부터요, 영원부터였느니라』(미 5:2).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과 하나님을 섬김과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조상이며 육신으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영원히 송축받으실 하나님이시라. 아멘』(롬 9:4,5). 성경에서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라!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15에서 예언된 메시아를 오시게 하는 일에 “가족”을 그 통로로 사용하신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 뱀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것을 행하였으니, 너는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저주를 받아 네 배로 다닐 것이며 네 평생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하시고』(창 3:14,15).
가족 안에는 반드시 “아버지”가 있기 마련이다. 뿌리 없는 줄기가 없듯이, 아버지 없이는 가족 자체가 애당초 형성될 수 없다. 아버지는 가족의 뿌리다. 아버지에게는 가족을 다스릴 권위가 있고, 가족을 먹여 살릴 책임이 있다. 가족의 앞날은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에게 달려 있으며, 아버지의 몰락은 곧 가족의 몰락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가족의 운명”인 셈이다. 특히 자녀는 아버지가 누구냐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달라지는데, 이 점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가, 마귀의 자녀인가를 구분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된다.
요한복음 8장에는 예수님과 유대인 사이에 벌어진 “아버지 논쟁”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누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가에 관한 논쟁이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씨인 것을 내가 아노라. 그러나 너희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기 때문이라. 나는 나의 아버지와 함께 본 것을 말하되 너희는 너희 아비와 함께 본 것을 행하는도다』(37,38절). 예수님께서는 『나의 아버지』와 『너희 아비』를 분리하셨다. 『네가 누구냐?』라는 유대인들의 질문에 『내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해 온 대로니라.』라고 응수하신(25절) 주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에 말할 것을 일러 주신 분을 『나의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나 오직 나의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들을 말하노라.』(28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한 분 아버지, 곧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면서 주님의 주장을 반박했는데, 예수님은 음행을 통해 태어났지만, 자신들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났으니(41절)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자들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에 대해 내리신 결론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라 “마귀의 자녀들”이라는 점이었다. 『하나님이 너희의 아버지라면 너희는 나를 사랑하리라.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여기에 왔으며... 그분이 나를 보내셨음이라. 어찌하여 너희는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너희가 나의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42-45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나누신 기준은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있는가에 있었다. 진리를 말할 때 그것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를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분하는 증거로 제시하신 것이다. 이 문제는 요한일서에서도 동일하게 다뤄지는데, 진리를 말하는 성도들의 가르침과 주장에 동의하고 함께 머무는가, 아니면 그 모임을 떠나는가가 어떤 사람의 “영적 소속”을 결정짓는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올 것이라고 너희가 들었던 대로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로써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느니라.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분명히 우리와 계속 함께하였을 것이나 그들이 나감으로 그들 모두가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있으면 너희도 아들 안에, 또 아버지 안에 계속 거하리라』(요일 2:18,19,24).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이 처음부터 들었던 진리를 소중히 지켜 내지만, 마귀의 자녀는 처음에 들었던 진리를 잠시 기쁘게 받아들였다가도 믿음의 뿌리가 없기 때문에(마 13:20,21) 어떤 계기가 되면 자기의 실체를 드러내고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를 박차고 떠나게 된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구원받지 않은 “마귀의 자녀”였는데, 바른 말씀과 거기에서 계시된 진리가 배교한 교회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 나머지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에 유입되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바른 교회의 엄격한 규율과 치리를 견디지 못해 제 발로 빠져나간 것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통해 세상의 오염에서 피했다가 다시 거기에 말려들고 패배하면 그 나중 결과가 처음보다 더 악화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벧후 2:20). 바른 교회에서 종교적으로 잘 소제되었다가 더 악한 악령들이 들어가는 결과를 맞는 것이다(마 12:43-45). 의의 길을 알고 난 뒤에 그들에게 전수된 거룩한 계명을 저버리는 것보다는 알지 못했던 편이 더 나았던 것인데, 그런 자들에게는 “개는 그 자신이 토해 낸 것으로 다시 돌아가고 또 돼지는 씻고 나서 그녀의 진창 속에서 뒹군다.”라는 말씀이 적격이다(벧후 2:21,22). 본래부터 의인들의 회중에 들지 못한 마귀의 자식들이었던 것이다(시 1:5).
영적 세계에는 두 개의 가족이 있다. 하나는 모든 시대의 구원받은 성도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가족”(엡 2:19)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시대의 죄인들로 구성된 “마귀의 가족”(요 8:44)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더 이상 나그네도 타국인도 아니요, 오히려 성도들과 같은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니라』(엡 2:19). 이 구절에서 “너희”는 과거에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에 속하지 않는 타국인이요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었던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한때 멀리 있었던 그들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짐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이 십자가를 통해 한 몸이 되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고 바울은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창조하시고 화평케 하셔서 그 둘이 한 성령을 통해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셨는데, 이로써 그들 모두 “하나님의 가족”이라 불리게 되었다(엡 2:12-19). 현 교회 시대에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신 구주로 믿고 거듭나면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가족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여진다.
말하자면 첫 사람 아담의 타락으로 무너진 하나님의 가족 체계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복하신 것이다. 그분께로부터 하늘이나 땅에 있는 모든 가족이 이름을 부여받은 것인데(엡 3:15), 이 가족은 구약 성도들은 물론, 신약 성도들과 환란 성도들과 천년왕국 성도들을 포함한다. 다만 현 교회 시대에는 거듭나야 그 가족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교계는 어떠한가? 존 칼빈의 “예정론”을 믿는 장로교회들과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알미니안주의 교회들로 가득 차 있어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가족에 속할 수 있는 자격이 전혀 없다. 거듭나지 못한 교인들이 비성경적인 종교 행위라는 사망의 악취를 풍기며 죽음의 그늘 속에 앉아 있는데 어찌 그들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가족이라고 불러 주시겠는가! 장차 교회가 휴거되어 셋째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석』(고후 5:10)을 통해 정결케 되고 나면 교회가 신부로서 참석하는 『어린양의 혼인식』(계 19:7)이 거행될 것이다. 실로 그것은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모든 구성원이 하객이 되어 북적거리는 셋째 하늘의 잔치가 될 것이다. 이 혼인식의 주인공은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인데, 환란 전에 휴거되지 못하여 천상의 혼인식에 참여하지 못할 배교한 교회들은 지상에 남아 대환란을 통과하면서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형상을 숭배하다가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계 14:11). 마귀의 가족의 최종 도착지는 불못이다. 아비의 몰락이 가족의 몰락이듯 아비 마귀의 멸망은 마귀의 자식들의 멸망이 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달리 마귀는 자기 가족을 멸망에서 보호할 수 없다. 마귀의 가족은 그 가족의 머리인 마귀와 함께 운명을 같이하여 불못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계 20:10-15).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