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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길을 무시하면 진노가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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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7월호>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손길 또는 하나님의 손가락"(the finger of God)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하나님은 한 영이시지만 "손가락"을 지니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께서 친히 사람들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빌 2:7,8). 사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며 그 형상은 예수님이셨다고 성경은 말씀한다(고후 4:4, 골 2:9, 히 1:2,3). 그래서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는 물리적인 손이나 손가락, 다리, 발, 눈, 코, 귀, 입, 심장 등을 가지고 계셨다. 사도 요한은 그분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었는데(요일 1:1), 심지어 유월절 마지막 만찬에서는 그분의 품, 곧 가슴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기까지 했다(요 13:23). 그 품 안쪽에는 다섯 번째 갈비뼈로 보호받고 있는 심장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요한은 아주 가까이에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가슴에 귀를 대고 그 영원한 생명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하나님의 손길"은 기본적으로 성령님 자신을 의미한다. 『그러나 만일 내가 하나님의 손길로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그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한 것이 분명하도다』(눅 11:20). 마태는 이와 동일한 사건을 다루면서 하나님의 손길이 "하나님의 영"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마귀들을 쫓아내면 , 그때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한 것이라』(마 12:28). 그 손길은 창조 사역 때도 등장했었다. 당시 『 하나님의 영 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닐고 계셨는데(창 1:2), 다윗왕은 시편 8:3에서 하늘들이 『 주의 손가락 』으로 지어졌고 달과 별들은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정해진 작품이라고 찬양했던 것이다. 출애굽 당시 모세가 막대기로 땅의 흙을 쳐서 이를 만들었을 때 이집트의 마법사들은 그것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깨달았었고(출 8:16-19), 또한 시내 산에서 십계명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내용을 직접 그분의 손가락으로 두 돌판에 기록하셨다(출 31:18, 신 9:10). 이 손가락은 바빌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이 술을 퍼마시며 흥청망청했던 그 궁전에서도 나타나 그 회벽에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이란 글자를 써서 그에게 엄중한 경고를 주기도 했다(단 5:5,25). 그리고 지상에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한 여인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그분께 끌려왔을 때 땅에다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쓰시기도 했다(요 8:1-8).
이상의 내용들은 분명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였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이 주님의 손길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고의로 무시해 버리기 일쑤다. 주님께서 하늘들로 하여금 그분의 영광을 선포하게 하시고 그 손으로 이루신 역사를 드러내게 하셨을 때(시 19:1), 또한 그것들을 통해 그분의 보이지 않는 것들과 영원한 능력과 신격을 나타내셨을 때(롬 1:20), 과연 인간들은 어떤 일을 저질렀는가? 그들은 그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거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분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의 형상과 짐승의 형상으로 바꾸어 버렸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말로 바꾸어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다(롬 1:21,23,25). 19세기경 진리의 말씀을 대적하기 위해 사탄이 내세운 종인 찰스 다윈은 온 세상을 거짓말로 속이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생물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특별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캄브리아기의 최초의 지층이 퇴적하기 훨씬 전에 살고 있던 몇 종의 생물의 직계 자손(쉽게 말해 원숭이의 후손)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질 때면 적어도 내게는 모든 생물의 모습이 훨씬 더 고귀하게 비친다." 즉 인간이 원숭이의 형상을 따른 자손이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대로』(창 1:27)를 "짐승의 형상대로"로 변질시켰던 것이다. 사실 그의 눈에 비친 "고귀한 모습"이란 죄로 인해 망가진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존귀에 처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은 것이다(시 49:20).
또한 흙으로 생명을 창조하는 일은(창 2:7)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이다. 파라오는 이러한 하나님의 손길을 이교도 마법사들의 말을 통해 분명하게 인식했지만, 그는 마음을 완악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고 그런 사실을 고의로 무시한 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 주지 않았다(출 8:19).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 역시 단 하루도 안 지나서 모세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는데(출 32:19), 이는 백성들이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한 결과였다. 그러니까 우상 숭배와 그에 뒤따르는 음행과 벌거벗음과 음란한 춤과 같은 죄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즐기고, 십계명을 기록하신 하나님을 아주 쉽게 무시해 버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벨사살왕 역시 손가락으로 자신에게 엄중한 경고를 주신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았다.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 곧 "그 왕과 왕국을 헤아리고 헤아려서 저울에 달아 보았더니 함량미달임이 드러났고, 결국 그 왕국이 망하고 나누어져 메데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진다."는 뜻이다(단 5:26-28). 벨사살은 그 경고의 문구를 혼자 힘으로 읽을 수도 없었고 해석하여 이해할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이 심판의 경고 앞에 니느웨 왕처럼 겸손하게 처신하지도 않았다(욘 3:5-9).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않았으니, 그저 해석을 알려 준 다니엘에게 선물을 주는 데만 급급했던 것이다(단 5:29).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유대인들은 그 글자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땅의 흙에 남기신 "유일한 기록"이었음에도, 그들은 발로 짓밟아 버렸고 오늘날 그 문구는 찾으려야 찾아볼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을 무시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성경에 대해 지난 6천여 년 동안 인간이 해 온 일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변개시킨 인간은 계속해서 그것을 바꾸고 변질시키고 경청하지 않고 무시하고 부수어 왔다. 읽거나 공부하지 않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알면서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서기는커녕 오직 자기들의 발아래 무참히 "짓밟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 40:8). 『오 주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세워졌나이다』(시 119:89).
이제는 오히려 영원히 서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손길을 무시한 자들을 향해 진노의 심판을 행하시게 된다. "진노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우선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한 죄인들에게 그분의 손가락으로 지어진 하늘로부터 그분의 진노가 계시된다(롬 1:18). 또한 주님께서는 자기들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 대신 짐승의 형상을 모심으로써 주를 거역한 자들의 마음을 버림받은 상태로 내버려 두시어 온당치 않은 일을 하게 하셨다(롬 1:18,28). 결국 그 끝에는 그들에게 사망의 심판이 선고된다. 『그들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이 마땅히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면서도 이 같은 일을 행할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좋게 여기느니라』(롬 1:32). 특히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인간과 짐승의 형상으로 변질시킨 모든 우상 숭배자들을(진화론자들 포함) 심판하실 것인데, 이와 연관해서 스파냐 2:11에서는 『세상의 모든 신들을 굶겨 죽이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보다 더 권위 있는 심판도, 우상들에 대해 이보다 더 능멸하는 말씀도 없다. 다시 말해서 "밥이나 얻어먹는 거지 같은 우상들, 빌어먹기 좋아하는 우상들, 신들, 알라, 부처 등을 굶겨 버리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의 모든 우상들과 신들에 대한 심한 모욕이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는 강력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손길은 이집트의 파라오에게도 진노가 되어 돌아왔으니, 그 진노가 얼마나 극심했는가 하면 당시의 신하들은 파라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얼마 동안이나 이 사람이 우리의 올무가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가게 하여 그들로 주 그들의 하나님을 섬기게 하소서. 왕께서는 이집트가 망하는 것을 아직도 알지 못하시나이까?』(출 10:7) 하나님의 손길을 무시하게 되면 한 개인의 존망은 문제도 아니며, "국가" 하나가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선지자 요나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 앞에서 겸손히 낮아지고 악한 길에서 돌아선 니느웨는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벨사살은 끝까지 망국의 길을 걸어갔다. 바빌론이 멸망할 당시 도성 주변은 이미 페르시아의 군대가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빌론 성읍은 둘러싸고 있는 성벽이 매우 높고 견고했으며 두껍고 육중한 성문들에 유프라테스 강까지 끼고 있어서 어떤 대규모의 군대도 쉽게 쳐들어올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벨사살은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그렇게 거드름을 피우며 태평하게 술이나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단 5:30) 알리는 "하나님의 손가락"(단 5:5 - 숫자 5는 "죽음"을 의미함) 앞에서 그런 요새는 속절없이 무너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바빌론 함락은 그보다 약 175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미 예언되어 있었던바, 페르시아가 그 성벽을 넘으려 해도 넘을 수 없었고 굳게 닫힌 성문을 뚫고 들어가려 해도 성공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을 때 『두 짝 성문들』은 저절로 열려져 아무도 『닫지 못하게』 되었고, 『험한 곳들』은 평탄하게 되었으며 『놋문들』은 산산이 부서졌고 『철빗장』도 둘로 갈라지고 말았다(사 45:1,2). 『보라, 민족들은 통 속에 한 방울 물 같고, 또 저울의 작은 티끌같이 여겨지느니라. 보라, 그는 섬들을 아주 작은 것으로 여기는도다... 그분 앞에 모든 민족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그 민족들이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곧 헛것보다 못하게 여겨지느니라』(사 40:15,17). 이러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역하면서도 하나님의 진노의 손길에서 살아남은 민족이나 국가는 역사상 단 하나도 없었다.
모세가 산 아래에서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기록된 십계명을 깨뜨리던 날, 하나님의 진노로 약 3천 명이 죽었다(출 32:28). 만일 모세의 중보 기도가 없었다면 그 민족 전체가 진멸되었을 수도 있었다(출 32:7-14, 시 106:23). 초림 당시 예수님께서 친히 손가락으로 땅에 쓰신 문구를 짓밟아 버린 유대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결국 하나님이신 그분을 로마의 무법자들의 손을 통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써 구약에서 흘려진 모든 선지자의 피와(눅 11:50,51)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마 27:25) 대한 모든 책임을 안고 그 약속의 땅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대환란 때에는 전무후무한 고난을 통과하게 된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하지 말라!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손길을 무시한 자들의 생각과 의도들을 판별하시어 반드시 그들을 벌거벗은 채로 드러나게 하실 것이다(히 4:12,13). 『나를 거절하고 내 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말한 그 말이 그를 마지막 날에 심판하리라』(요 12:48).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라.』(히 10:31)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