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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왜 “나이트클럽“에서 예배한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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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8월호>

하필이면 왜 “나이트클럽“에서 예배한다는 것인가?



온누리교회의 이삭대학부 주최로 지난 7월 3일 주일 오후 1시에 홍대 앞 나이트클럽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열린 집회가 열렸다. 세상으로 나가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자는 취지 하에 그들은 그런 ‘무모한 예배’를 거행했다.
이광재라는 색소포니스트가 희미한 불빛 아래서 ‘You are so beautiful’이라는 팝송을 연주하고, ‘아름다운 사람 박나림과 함께 하는 Let’s talk’라는 코너도 진행되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죄도, 죽음도, 심판도, 복음도 전하지 않는 ‘이상한 찬양’이 새신자가 된 청년들에게 불려졌다. 온누리교회 김사한 전도사는 자신이 홍익대 출신임을 밝히며 8년 전부터 이 같은 열린 집회를 기도로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삭대학부의 류승석 회원은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의 예배와 세상에서의 삶이 이원화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아가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하지만, 하필이면 왜 ‘나이트클럽’인가?
사실, 그리스도인이 영과 진리로 경배를 드리기만 한다면야, 부득이한 경우 나이트클럽이든 데이트클럽이든 건물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쟁이 터져서 나이트클럽에 피신하게 된다면 그곳에서 성도들끼리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드릴 수 있는 것이고, 폭우가 쏟아지고 홍수가 나서 산으로 피했는데, 거처할 만한 곳이 버려진 절간밖에 없다면 불상과 집기, 그림을 모두 내던져 버리고 주님께 경배드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 건물이 멀쩡하게 서 있는데, 그들은 하필이면 왜 나이트클럽에서 예배를 드렸을까?
첫째, 그들은 그들의 양심이 내리는 정죄를 고의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이다. 섹소포니스트 이광재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트클럽에서 예배를 드려도 예수님의 사람이 모인 곳이 교회이며, 이곳에 주님께서 임재하실 것을 믿는다.” 그러나 이 ‘나이트클럽에서 예배를 드려도’라는 말에 주목하자. 이 말은 이씨뿐만 아니라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의 마음에 담겨 있는 말이다. 우리가 이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씨 자신도 나이트클럽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내가 거기서 예배를 드리면 주님께서 받아주시리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이현정 회원은 “처음 이런 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어 당황스럽기도 하다.”고 했다. 말하자면,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양심에 꺼려지는 일을 굳이 행하려고 했던 그들은, 비록 그들의 얼굴에 위선적인 웃음이 스친다 해도 그들의 말에서 떨리는 양심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양심도 증거하고 그들의 이성이 송사하거나 서로 변명하여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여 주느니라』(롬 2:15). 고로 그들은 이미 정죄된 것이다. 그 죄인들의 예배는 주님께 가증스러웠을 뿐인 것이다.
둘째, 그들은 진리 안에서의 자유의 개념을 확대 해석하여, 인간적인 생각에 뭔가 특별해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들이 못하는 것을 우리는 자유롭게 행할 수 있다. 보라. 주님을 섬기는 이 일이 얼마나 자유스러운가! 나이트클럽에서도 하나님은 함께하시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 전례 없는 도전으로 믿음의 유별남을 과시하려는 그들 안에서 ‘진리 없는 교만’을 엿볼 수 있다. 남이 못하는 것을 해냈다는 혼적 만족감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흉내내는 그들은, 자기 멋대로 행했을 때 오는 기쁨을 주님의 평안으로 오인하여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진리의 지식은 나 몰라라하고 사랑만을 강조한다. 그들은 『진리의 사랑』(살후 2:10)이 아닌 ‘진리 없는 사랑’으로 절름발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그들은 『자기들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림받은 마음에 내버려 두시어』 나이트클럽에서 『온당치 아니한 일을 하게』 하신 것이다(롬 1:28). 따라서 정상적이고 상식적이고 건전한 시선으로 보면, “나이트클럽에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 일은 온당치 아니한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주님께 이겨오려고 세상으로 들어가 사랑을 노래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으며 살고 있지요...”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큰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오히려 그들에게 “당신은 저주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저주 받으며 살고 있지요...”를 불러서, 그들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다음처럼 묻게 하는 것이 성경적인 것이다. 『선생님들이여, 내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이까?』(행 16:30) 사랑과 자유만을 강조하여 진리와 하나님께서 주신 교회의 전통을 파괴한 형식으로 새신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 속한 일이 아니다. 반감을 없애서 손쉽게 회원을 끌어들여 세를 불리려는 ‘상술’에 불과한 것이다.
구원받은 주님의 자녀들은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도록 하자. 교회에서의 예배와 세상에서의 삶이 이원화되는 것을 탈피하기 위해서, 삶 자체가 예배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나이트클럽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것이 주님께 기쁨이 되는 것일까? 성령충만한 상태에서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참으로 그들이 구원받은 주님의 자녀들이라면, 혼적 만족과 주님의 임재를 혼돈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그 온당성을 되묻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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