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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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를 파멸로 이끄는 민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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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6월호>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Bible Believers)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평범한 믿음” (common faith)이 있다. 이 믿음은 같은 생각, 같은 지식, 같은 영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같은 믿음”(common faith, 딛 1:4)이기도 하다.
이 믿음은 성경에 관한 올바른 관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에 동의할 수 있도록 섭리적으로 인도해 준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무오하게 기록되었다. 둘째, 그렇게 기록된 성경은 시대를 거치면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시 12:6-7) 집대성되고 보존되었다. 셋째, 그렇기 때문에 현재 성도들이 사용하고 있는 성경(번역본이든, 필사본이든) 역시 처음의 원본과 동일한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러한 믿음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읽고, 믿고, 실행하라고 주신 바르게 보존된 성경이 어떤 성경인지를 올바르게 분별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러한 믿음을 견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다른 영의 인도를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최초의 원본만이 무오한 권위가 있고, 필사본이나 번역본은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의 실수나 외부적인 환경요인으로 훼손될 가능성이 있기에 원본만큼이나 완벽할 수 없고 그와 동등한 권위를 지닐 수 없다는 것이 그들만의 “평범한 믿음”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인 믿음을 부인하는 “다른 믿음”일 뿐이다(고후 11:4 참조). 그런 자들은 “원본에 가까운, 보다 더 나은 번역본”을 운운하면서 성경을 변개시키는 파괴적인 비평가들로 자리매김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위선자들에게서 올바른 성경과 변개된 성경 사이를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빼앗아 가시는데, 사실 이런 분별 없는 모습은 배교한 마지막 교회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하다(딤후 3:4). 하나님께서는 그런 배교자들에게 이혼증서 한 장을 써 주심으로 그들을 버림받은 상태로 내버려 두시는데, 이 “이혼증서”(헬 - biblion ajpostasivou)가 바로 오늘날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변개된 “배교한 성경”(apostate bible)인 것이다.
지난 5월 3일, 양화진의 선교기념관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의 한글 성경 출간 1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다. 로스를 중심으로 매킨타이어(MacIntyre), 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등이 함께 번역하고 출간한 한국 최초의 신약성경 <예수셩교젼셔>(1887년)로 보면 올해가 125년이 되는 해이지만, 최초의 한글 성경인 소위 쪽복음 형태의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1882년 2월)와 <예수셩교 요안내복음젼셔>(1882년 5월)로 보면 130년이 되는 해인 것이다.
소위 이와 같은 “로스역”이 한글 성경 역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성경의 역사는 “변개된 성경”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것은 번역을 위해 사용된 저본(底本)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문제다. “저본”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된 성경에서 올바르게 보존된 성경이 나오고, 사탄에 의해 변개된 성경에서 심하게 왜곡되고 변질된 성경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저본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성경과는 다른 믿음, 다른 영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로스는 한글로 성경을 번역할 때, 우선 관리출신의 학자로 하여금 중국어 성경 <신약전서문리>(1852년)에서 1차 번역을 하게 했고, 다음으로 그와 이응찬이 옥스퍼드대학의 제임스 레그 교수로부터 받은 <개역 헬라어 신약 옥스퍼드 판>(1881년)과 영어 <개역성경, Revised Version>(1884년)을 참고하여 2차 번역을 진행했으며, 이것을 다시 관리출신의 학자가 정서해 주면, 그와 이응찬이 재수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사용했던 “세 가지 번역본” 모두가 다 심각하게 오역되고, 삭제, 첨가가 이루어진 변개된 성경들이란 점이다.
그런데 이날 기념예배의 설교자로 나온 민영진 목사(전 대한성서공회 총무)는 매우 분별 없는 말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뒤엎고 있었다(딤후 2:18 참조). 그는 한국 교회에 처음부터 “변개된 성경”을 안겨다 준 존 로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번역대본을 선정함에 있어서 후대에 말끔히 정리된 중세의 그리스어 신약 사본이 반영된 ① 킹제임스 번역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② 원본에 가까운 본문비평을 한 번역대본을 사용한 것이 높이 평가될 만한 일입니다. 만일 이 초기번역이 번역대본으로서 킹제임스 번역이 사용했던 버전을 사용했더라면 지금도 성서를 번역하는 기관에서는 이것 때문에 아주 애를 먹었을 것 같은데, 이때부터 비평본문을 번역대본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③ 한국 교회에서는 줄곧 그 원칙을 지금도 따르고 있습니다』
사실 민영진 목사의 수중에는 “진리의 성경”이 없다. 있다 해도 그것은 참고서적 정도로만 활용될 뿐이다. 또한 그 말씀을 가지고 믿어 본 적도 공부해 본 적도 없다. 그의 손에는 오직 변개된 성경만이 들려 있기 때문에, 그는 원본 타령을 하면서 이러쿵저러쿵 허황된 말장난 같은 주장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딤후 2:15-16). 이런 그의 말을 통해서 바른 원문과 바른 성경에 관하여 그가 얼마나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첫째, 그는 <킹제임스성경>을 저본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상당한 “안도감”을 표시하고 있다. 심지어 그 성경을 사용했다면 오늘날 성경을 번역하는 기관에서 상당한 곤혹을 치렀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보다 더 무지한 주장이 어디 있겠는가! “로스역”이 <킹제임스성경>을 따르지 않고 변개된 <영어 개역성경>이나 <개역 헬라어 성경>을 따랐다는 사실로 볼 때, 그것은 변개된 성경의 계보를 따라 나온 사탄의 성경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번역 자체로도 많은 부분에서 허술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변개된 성경들처럼 상당수의 주요 구절 및 단어들이 삭제되고 변개되었다.
1611년 번역이 완성된 이래로 <킹제임스성경>은 약 800개의 다른 언어들로 번역되어 종교개혁과 영적 부흥을 주도했는데, 이러한 뛰어난 번역본에서 번역되지 않았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성경 역사는 없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성경을 던져 버린 역사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영국은 1884년 변개된 성경(RV)을 택하고 <킹제임스성경>을 버린 대가로 영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미국은 1901년 <미국표준역본, ASV>으로 바른 성경(KJV)을 대체한 대가로 영적인 파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에 견주어 보면 우리나라는 그 시작 자체가 영적으로 몰락한 상태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가 그러하기에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약 130년이 지났음에도 거둘 만한 열매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만일 최초의 한글 성경이 <킹제임스성경>에서 비롯되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영적인 판도는 지금과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둘째, 민 목사는 “로스역”이 원본에 가까운 본문비평을 한 번역대본을 사용했다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성경을 파괴적으로 비평하는 여타 모든 신학자들과 목사들처럼, “원본”을 들먹이고 있는데, 사실 그런 위선자들은 그들 평생에 단 한 번도 “원본”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무엇이 더 높이 평가할 만하다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그분의 구속 사역을 제거하며, 부활과 승천, 재림에 관한 진리들을 가리고, 사탄(마귀)의 정체와 지옥의 실체를 가리며, 다양한 주요 교리들을 변질시키는 등 상당히 많은 구절에서 난도질 되어 있는 “번역대본”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단 말인가? <킹제임스성경>의 우수성으로 보자면 그 번역에 동참했던 번역자들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개역 헬라어 신약 옥스퍼드 판>이나 영어 <개역성경>의 번역진은 그 인격이나 믿음, 개인적인 능력에 있어서 어느 모로 보나 한참 뒤떨어져 있다. 하물며 “로스역”의 번역진은 어떻겠는가? 변개된 성경을 번역하고 출간, 배포한 그들의 노고를 기념하며 그들의 이름을 회자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실로 수치스런 기념예배일 뿐이다.
그런데도 무엇을 더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쭉정이가 밀에게 무엇이겠느냐?”고 말씀한다(렘 23:28). 실로 아무것도 아니다. 불과 같고 바위를 부수어 조각내는 큰 망치와 같은(렘 23:29)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그 변개된 성경들은 무릎 꿇어야 한다. <킹제임스성경>을 비롯한 바르게 보존된 성경이 에베레스트 산이라면, 로스역을 비롯한 변개된 성경들은 동네 야산 정도에 불과하다. 민 목사는 “변개된 성경”과 “왜곡된 성경관”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 이는 그가 진리에 관한 한 정도를 상당히 많이 벗어나 있으면서도, 자신의 어설픈 지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파멸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그는 “로스역”에서 시작된 그 번역 원칙을 한국 교회에서 줄곧 따르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그 원칙은 오늘날까지도 누룩으로 남아 있어 변개된 성경이 낳은 열매들로 홍역을 앓게 하고 있다. 그러한 왜곡된 원칙은 종창처럼 넓게 퍼져 있어, 바르게 보존된 성경 <한글킹제임스성경>(1994년)이 출간된 지 18년이 지났는데도 그런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자들이 여전히 배교한 기독교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사탄은 이 땅에 영적 부흥을 가져올 수 있는 성경이 정착되기 오래전부터 변개된 “로스역”(1882년)을 통해 성도들의 믿음을 혼란 가운데로 몰아넣을 준비를 시작했고, 그 무렵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를 이 땅의 첫 번째 선교사로 보냄으로써(1885년) 성경적인 복음 전파가 이루어지기 전에 “사회복음”과 같은 누룩이 스며들 수 있는 준비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성경적인 현상들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영적으로 보자면 참으로 암울한 기독교 역사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말로 번역된 가장 “정확”하고 가장 “권위” 있는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이 나라에 출간된 이래로 지난 18년 동안 배교자들을 향한 “역습”이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바른 성경을 시작으로 성경적인 복음이 전파되고 성경적인 교리와 성경적인 지식과 믿음이 이 땅에 정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동안에 기독교계 안에서 군림해 왔던 “유명인사들”과 “대형교회들”이 하나둘씩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그들이 무너지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집을 지은 기초가 모래이기 때문인데(마 7:24-27), 그 모래는 지난 130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변개된 성경”이었다.
이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결정해야 한다. 130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한 “변개된 성경”을 붙들 것인가, 아니면 18년밖에 안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읽고 믿으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선정해 주신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붙들 것인가? 만일 여러분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견지해 왔던 “평범한 믿음”으로 인도받고 있다면 그 선택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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