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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이단, “그리스도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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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9월호>
한국의 “그리스도의 교회” 교단이 오는 8월 17일부터 19일까지 충주호리조트에서 ‘2009 그리스도의 교회 전국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말씀과 성령으로 든든히 서가는 교회’였고, 그리스도의 교회협의회(회장 이강평 목사)와 서울기독대학교가 공동 주최했으며, 그리스도의 교회 3년 프로젝트(2007-2009년) 가운데 세 번째로 진행한다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지난 2007년에는 75주년을 준비하며 ‘정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2008년에는 ‘지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번 대회에서는 ‘동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만든다는 목적으로 한국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함께 모였다. 이 대회의 주강사로는 미국 사우스이스트 그리스도의 교회 밥 러셀(Bob Russell) 목사가 나섰다.한국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정통”으로 수용한다. 자정능력을 잃은 하천 같은 한국 교회는 스스로의 부패와 폐단과 비성경적인 연합과 이단들을 바로잡을 수 없다. 한국에서 개신교의 일파처럼 통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결코 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집단이 아니다. 자칭 “그리스도의 교회”의 두 가지 오류를 성경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근본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참된 신약 교회인가?
그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교회”(the Church of Christ)라 칭한다. 이 이름은 그들만이 참된 교회라는 의미를 암시하며 그들은 실제로 그들의 창시자인 바톤 스톤과 알렉산더 캠벨에 의해 "그리스도의 교회“가 회복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19세기 초에 출현한 ”그리스도의 교회“에게 필연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십자가부터 약 1,800년 동안 역사상 성경적인 교회가 없었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알렉산더 캠벨이 나타나기 전에 참된 교회는 어디에 있었는가?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주님의 교회가 1,800년 동안 완전히 사탄과 세상에게 패배하여 명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1800년 초에 스톤과 캠벨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된다. 이런 배타적인 주장은 로마카톨릭과 몰몬교와 안식교와 지방 교회의 교리와 유사하다.
한국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표방한다고 했는데,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용어가 한 지역 교회는 물론이며, 그 어떤 교단이나 종파의 명칭으로 쓰이지 않았음을 아는가? 신약성경은 단 한 번 복수로 “그리스도의 교회들”이라는 용어를 쓴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롬 16:16). 물론 이 명칭은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에 있었던 지역 교회들을 말한다. 성령께서 신약 지역 교회를 부를 때 주로 쓰는 용어는 “하나님의 교회”(church/churches of God)이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의 지역모임이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사모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성경대로 실행하는 지역 교회를 말한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침례의 교리는 로마카톨릭의 “침례에 의한 중생” 교리와 일치한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침례를 받아야 구원받고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은 로마카톨릭이 원조인 이단 교리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조상은 로마카톨릭이다. 알렉산더 캠벨의 주장을 직접 살펴보자. 성경을 펼쳐서 독자들 스스로 판단해 보길 바란다.
『예수님의 보혈이 모든 죄들을 깨끗게 했음과 주님께서 침례를 실질적으로 그리고 형식적으로 우리의 죄들을 사하는 매개체와 우리의 행위로 정하셨음을 믿고, 그리스도로 옷 입기 위해 물로 내려가는 자는 침수를 받을 때 그의 죄들을 실질적으로 사함 받는다. 그래서 그는 침수의 행위를 통하여 죄로 말미암아 죽고, 예수님과 함께 묻히고, 거듭나고 혹은 다시 생명으로 일으켜지며 이 생명은 새롭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입고, 그와 함께 묻히고, 그와 함께 일어나고, 우리의 죄들을 사함받고, 새 생명 안으로 들어가고, 성령을 받고, 주를 기뻐하기 시작한다.』
캠벨은 구원과 관련된 축복들을 받는 실제적인 행위로서 침례를 말하는 것이다. 캠벨은 자신의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유대인 사도들을 위한 명령인 마가복음 16:15-18에서 마가복음 16:16을 분리시켰다. 또한 유대인 사도들이 이스라엘의 온 집에게 그들이 유대인 메시야를 살해한 것을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맥락에서 주어진 사도행전 2:14-36의 문맥에서 사도행전 2:38을 분리시켰다. 그리고 사도행전 2:38의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를 “죄들을 사함받기 위해”의 의미로 곡해하여 해석했다. 그리하여 그는 ‘믿음-침례-구원-죄사함-거듭남’의 고리를 만든 것이다. 더 나아가 물침례를 말하는 구절과, 성령침례와 거듭남을 말하는 구절들을 혼용했다. 그리하여 믿음과 “침례”를 조건으로 죄사함, 거듭남, 성령침례, 영생 등이 뒤따라오는 ‘캠벨식 구원론’이 완성된 것이다.
성경에서 거듭남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이 성령의 역사로 살아나는 것이며(엡 2:1, 요 3:5, 딛 3:5), 성령침례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께서 그를 그리스도 안에 넣으셔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와 부활에 우리가 동참토록 하시는 영적 침례이다(고전 12:13, 롬 6:3,4). 물침례는 이미 죄사함받고 구원받은 사람이 우리가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구원받았음을 선한 양심으로 행하는 순종의 행위다(벧전 3:21).
사도 바울은 죄인이 행위가 없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확고하게 선포하고 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바울은 또한 침례가 중생에 필수요소라는 캠벨과 그의 추종자들의 교리를 반박하고 있다.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딛 3:5). 침례는 신약에서 구원에 대한 모형과 간증이지 구원의 필수요소가 아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벧전 3:21).
그렇다면 침례에 의한 중생을 믿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나님의 교회들”을 위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정하신 복음의 일꾼인 사도 바울은 말한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갈 2:16).
알렉산더 캠벨이 그의 멸망의 교리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지옥불에 던져 넣었는지 생각해 보라. 밥 러셀과 이강평 목사와 그들의 교인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죄인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도 아닐 뿐더러 구원받지 못한 죽은 종교인들이다. 이제 자기 기만적인 명칭을 던져 버려야 한다.
또한 “정적인 그리스도의 교회,” “지적인 그리스도의 교회,” “동적인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기 전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고후 13:5).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