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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연합기도회, 기도회인가, 시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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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10월호>
오는 10월 27일 일요일은 소위 “종교개혁주일”이다.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날이 10월 31일이었기 때문에, 개신 교회들에서는 이날을 포함하는 주의 첫날, 즉 10월의 마지막 주일을 특별하게 여겨 기념하는 것이다. 올해는 특별히 거대한 행사가 종교개혁주일에 예정되어 있는데, 이 기사가 작성되는 시점에서는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이하 연합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다.위의 행사를 주도하는 것은 “거룩한방파제”라는 단체이다. 2015년부터 “동성애퀴어축제반대 국민대회”라는 이름으로 행사들을 개최하다가 지난 2023년 “거룩한방파제 통합국민대회”로 이름을 바꿨다. 이 단체엔 한국 기독교계의 “거물”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데, 예컨대 새에덴교회의 소강석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이영훈 목사 등도 대회장을 지낸 적이 있다. 이들은 전 세계를 쓰나미처럼 휩쓸고 있는 동성 결혼 합법화, 차별금지법 제정 등의 흐름이 이 나라 대한민국을 덮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방파제”로서의 역할을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이번 연합기도회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현재까지 그들의 행보는 순탄하다. 최근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옴에 따라 교계에 위기의식이 고조된 까닭에, 교파를 초월하여 금번 연합기도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에는 이 연합기도회를 알리는 교단장·총무 초청 간담회가 있었는데, 이 자리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할 것 없이 수많은 교단들의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는 것이 기독교 언론들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그날 있었던 예배에서는 거룩한방파제의 대회장이자 예장 합동 총회장인 오정호 목사가 “거룩한 동맹이 한국 교회를 살린다”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오 목사는 교단들의 분열이 교리의 차이보다는 정치적 다툼 때문이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한국 교회가 연합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때로부터 며칠 만에 대다수의 대형 교단들이 속해 있는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그리고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 등이 지지와 참여의 의사를 밝힘에 따라 연합기도회의 목표치인 200만 명이 확보되는 일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독일보는 설교 이후에 있었던 간담회의 모두 발언에서 부산 세계로교회의 손현보 목사가 “기독교 국가라 했던 영국이나 독일에서 동성애 법이 통과된 뒤 현재 교회 출석률은 영국 1%, 독일 1.3%에 불과하다”며 “이런 악법을 막지 못하면 1천만 성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교회도 침몰할 것”이기 때문에, “오는 10월 27일 집회에 대해 각 교단에서 지지 성명을 내고, 서울 시내에서 100만 명, 온라인에서 100만 명 등 총 200만 명이 참여한다면, 대법원과 국회 등 국가의 정책도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거룩한방파제 홈페이지의 인사말에도 이용희 교수가 작성한 동일한 취지의 글이 올라와 있다. “정치인들은 표를 먹고 삽니다. 동성애축제에 모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국민들이 동성애축제반대 국민대회에 모여서 집회를 하니까 다수의 국회의원들도 감히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검은 속내가 있다면 숨길 법도 한데, 이들의 입은 그런 부끄러움조차 모르고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막 뱉어 버린 모양새다(마 12:34). 그들의 말을 찬찬히 뜯어보면 “밥줄이 끊길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그들의 활동 이유라는 것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말, 예컨대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오라는 촉구,” “거룩을 위한 결단,” “하나님의 영광”(따옴표 안 표현들은 모두 연합기도회 주최 측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말을 옮겨 온 것이다.) 따위를 아무리 가져다 붙여 포장한다고 해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혹자는 그들의 동기를 어떻게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느냐면서 따져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열매를 보고 판단하면 분명해진다(마 7:20).
그렇다면 금번 연합기도회와 관련된 이들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우선, 그들의 사역은 죄로 방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만일 그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그런 메시지를 멀리 있는 세상 사람들이 아닌 교인들에게 먼저 전파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성경에는 동성애와 같은 죄 외에도 불의, 음행, 사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거림, 비방, 하나님을 미워함, 모욕, 교만, 자기 자랑, 악한 일들을 꾀함, 부모를 거역함, 몰지각함, 약속을 저버림, 무정함, 화해하지 아니함, 무자비함 등 수많은 죄들이 분명히 적시되어 있다(롬 1:29-31). 그리고 그들의 교인들, 심지어는 목사들 가운데도 이러한 죄들이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 그런 죄들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오히려 “판단하려 하지 말고,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동성애와 같은 죄들만 콕 집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애당초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런 일은 주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믿어 영이 거듭나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고전 2:14). 세상 사람들에게 먼저 해야 할 일은 동성 결혼 합법화나 차별금지법 제정이 비성경적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일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죄 문제를 해결 받으라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복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라고 외쳐 대는 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나 위선의 발로일 뿐이라고 하겠다.
또한 그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거룩함”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 정치와 하나님의 백성 사이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라는 주 예수의 말씀에서도 읽어볼 수 있거니와, 성경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제시하신다. 그리스도인이라도 정치적 이슈에 대해 잘잘못을 따져 말할 수는 있다(마 14:4). 그러나 그 잘못을 저지하고자 세력을 형성하거나 위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마 26:52). 그런 일은 이교도들이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행 19:23-29).
만일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정부가 성경적 진리를 외치는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면 어떡하려느냐고 물으려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 순종하고(행 5:29) 처벌을 감수하면 그만이다. 그런 일이야 말로 오히려 자신의 거룩함을 입증할 기회가 될 테니 도리어 즐거워할 만한 일 아니겠는가?(벧전 4:12-14) 진짜 성도라면 비성경적인 법이 시행됨에 따라 사람들이 교회로부터 등을 돌리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이송오 목사는 그런 쭉정이들은 한 트럭을 가져다 줘도 싫다고 늘 말하곤 했다.
그렇다면 연합기도회 측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도 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정교분리라는 성경적 원칙을 어긴 일이 그분께 영광이 될 리가 만무할뿐더러, 백 번 양보해서 그 원칙을 무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의 모임은 육신의 힘으로 문제를 극복해 보겠다는 수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렘 17:5).
그들의 바람대로 200만이라는 숫자를 듣고 겁을 집어먹은 위정자들이 표를 의식하여 비성경적 악법 제정을 포기한다고 하자. 거기에 주님께서 그 일을 이루셨다는 간증이 남을 수 있는가?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주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와 함께한 백성이 너무 많아, 내가 미디안인들을 그들의 손에 줄 수 없나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역하여 자만하며 말하기를 ‘내 손으로 나를 구원했다.’고 말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판 7:2).
『땅의 죄과로 인해 그곳의 통치자들이 많아져도, 그 나라는 명철과 지식이 있는 한 사람으로 인하여 오래가리라』(잠 28:2). 그리스도인은 골방에서 드리는 진지한 기도를 통해 스스로가 국가의 명운을 바꿀 수 있는 “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 같은 “한 사람의 기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을 때에야 비로소 간증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연합기도회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어떤가? 실로 200만 명이라는 “사람의 수”로 무엇인가를 이뤄 보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모임이 “기도회”인가, “시위”인가?
사실 이 세상이 죄악으로 치닫는 것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상을 떠날 때까지는 세상의 타락이 심화되지 않게 해 주시라고 말씀드릴 수는 있을지언정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예언하신 일이다(딤후 3:1-5).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라면 망국의 길을 걷고 있는 이 나라보다, 그 속에서 망해 가는 혼들에게 더 관심을 가짐이 마땅하다. 세상의 멸망이야 막을 수 없는 일이라 해도, 혼들의 멸망은 복음을 전파해서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주님께서 오시는 날까지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혼들을 이겨오기를 원하오니, 이 나라의 복음의 문을 닫지 말아 주시고 위정자들을 통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나라를 지키겠답시고” 모여드는 그 어떤 무리들보다 이 나라를 잘 지켜 내는 사람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