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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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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1년 08월호>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민수기에서 거의 끝이 난다. 민수기에서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의 땅까지 차지하고(민 32장), 요단을 건널 준비를 한다. 그리고 신명기는 모든 광야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으로 새롭게 진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은 모든 고난과 훈련을 끝내고 새로운 각오로 새 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이스라엘은 이미 과거의 이스라엘이 아니다. 4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대가 교체된 것이다. 출애굽할 때 나온 세대는 대부분 죽고, 광야 생활 중에 출생하여 홍해와 시내 산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 주된 백성들이었다. 출애굽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20살 미만의 사람들만이 노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카데스바네아에서의 불순종에 대한 결과였다(민 14:29-31).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새로운 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들의 부모가 받았던 율법을 다시 반복해 주셔야 했다. 신명기의 기록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다. “신명기”라는 이름 자체도 율법을 반복했다는 의미인데, 이 책을 “神命記,”
즉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申(‘거듭하다’라는 의미가 있음)命記”다. 영어로도 “Deuteronomy”라 하는데, ‘deutero’라는 말이 바로 “반복”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출애굽기에서 명령하신 율법을 다시 반복해서 주신것이다.
신명기는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땅을 주시기 위해 기록된 것이니만큼, 과거 사건들을 통한 교훈을 많이 담고 있다. 즉 그들의 조상들이 이런 잘못을 해서 이런 일을 당했으니, 너희는 그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범죄하고 불순종한 것들은 많지만, 그 중 특별히 기억될 만한 것들은 시내 산에서 금 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것과, 카데스바네아에서 불순종한 것과, 바알프올의 범죄이다. 신명기에서는 이러한 그들의 죄악들을 하나하나 기억나게 하시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를 상기시키시고, 그 죄악들을 범하지 말라고 강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위대하게 그들을 인도해 오셨다. 그분은 홍해를 가르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만나와 메추라기를 시시때때로 주셨다. 심지어 광야 생활 40년 동안 그들은옷도 낡아지지 않았고 신발도 낡아지지 않았으며, 꿀과 새포도주를 먹었다고 기록되어있다(신 29:5; 32:13,14). 그러나 그들은 ‘물이 없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며 틈만 나면 불평하고 원망했던, “목이 곧은”(신 9:13) 백성들이었다.
신명기 1:40에서는 카데스바네아에서의 불순종의 대가로 38년(신 2:14)을 더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음을 보여 주신다. 4:3에서는 바알프올의 범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진멸되었음을 말씀하신다. 9:12-14에서는 금 송아지를 만든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전멸될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 주신다. 특별히 이 사건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멸하여 하늘 아래서 그들의 이름을 지워 버리고 너를 그들보다 더 강하고 큰 민족으로 만들리라.(신 9:14)고까지 말씀하시면서 그 백성들을 멸하시려고 했다. 이 일은 모세가 산에서 십계명 돌판을 받고 내려온 직후에 있었던 일이었다. 십계명은 모세를 통해 맺으신 새로운 언약으로서, 율법 시대의 경륜을 시작하는 법임과 동시에,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들과 구별시키고 이 민족을 통해서 그분의 왕국을 실현하시기 위한 법이었다. 이 법은 그들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 즉 아브라함의 언약을 유대인들을 통해 구체화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의 백성”을 진멸하시고 모세를 통해 새롭게 번성시키겠다는 언약을 반포하려 하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우선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은 그의 열두 아들들에 대해 예언을 했는데, 그 예언들이 무너지게 된다. 특별히 유다에 대한 예언은(창 49:8-10) 유다를 통해 왕을 주시겠다는 것이었는데, 모세는 알다시피 레위 지파이다. 또한 여기서 백성들이 진멸되면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에 커다란 손상이 생길 수 있다. 왜냐하면 이집트인들이 비웃기를 주는 그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할 수 없었고 그가 그들을 미워하였기에, 그는 광야에서 그들을 죽이려고 그들을 인도하여 냈도다.(신 9:28)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코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모세는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들어 주셨다.
성별을 위한 율법
이런 모든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성별”에 관한 명령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로 데리고 나오신 것은 이집트라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시키시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집트에서의 행위들을 자행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카나안 땅으로 들이시기 전에 먼저 광야로 이끄셨던 것은 그 땅의 악한 풍습들을 따르지 않도록 철저히 훈련시키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바알프올의 음행에 가담했다(민 25:1,2). 이 범죄는 시혼과 옥을 멸한(민 21장) 다음에 벌어진 것이었기에, 카나안 땅을 바라보는 이 새로운 세대에게도 해당되는 범죄였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철저히 성별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모든 명령들을 반복하셔야만 했다. 사실상 율법 자체가 성별을 강조하는 법이지만, 신명기에서 이 법들에는 특별히 “양자택일”의 개념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 즉 그들 앞에 축복과 저주가 있으니, 그들이 율법을 잘 지켜 행하면 복을 받을 것이요, 율법을 행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보라,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노니, 만일 너희가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들을 복종하면 복이요, 만일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들을 복종하지 않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에서 벗어나서 너희가 알지 못하였던 다른 신들을 따라가면 저주니라(신 11:26-28).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상징하기 위해서 요단을 건너가면 그리심 산 위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 위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하셨다(신 27:12,13).
결국 복과 저주는 이 백성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선악 간에 택하는 대로 그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 백성을 위대한 손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또한 그들을 번성케 하시고 위대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신 것같이 위대한 일을 겪어 본 민족은 일찍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땅에 사람을 창조하신 그 날 이래 네 이전에 있었던 지난날들에 관해 지금 물어 보고 또 하늘 이편에서부터 저편까지 이렇게 큰 일이 어디 있었으며, 그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물어 보라. 어떤 백성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네가 들은 것처럼 듣고서 살아 있느냐?(신 4:32,33) 그러나 이러한 위대한 약속은 그들이 율법을 지킬 때에만 유효한 것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손을 놔 버리면 언제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저주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따라서 모세와 맺으신 이 율법이라는 언약(“모세의 언약”)은 다분히 조건적인 언약이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조건적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무조건적으로 씨의 번성과 큰 땅을 약속하셨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에서는 그러한 복이 율법 준수라는 조건 하에 주어지는 것이다.
신명기 6:25에서 만일 우리가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주 우리 하나님 앞에서 이 모든 계명들을 지켜 행하면, 그것이 우리의 의가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율법을 지키는 것만이 이 “복과 저주”라는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옳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에게 시내 산에서 받은 율법을 자세하게 반복해 주시는 것이다. 5장에서 십계명을 반복해서 말씀하신 이후로, 7장과 12장에서는 우상 숭배의 금지와 앞으로 세워질 성전에서 경배해야 할 것을, 14장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대한 저주를, 14장에서는 음식에 관한 법을, 15장에서는 안식년의 법과, 주인과 종의 법을, 16장에서는 명절들에 관한 법과, 17장에서는 왕에 관한 법을, 18장에서는 제사장과 선지자에 대해서와, 19장에서는 도피 성읍에 관한 법과, 20장에서는 전쟁의 법에 관해 말씀하신다. 21장부터 25장까지는 시체, 형제 관계, 간음, 이혼 등 성별과 관련된 다양한 규정들을 말씀하시고, 26장에서는 첫열매와 예물에 대해 언급하신 후, 27장에서는 이 모든 것들을 준수함과 연관해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신다.
“팔레스타인의 언약”
그런데 신명기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이 “복과 저주”에 대한 양자택일 명령은 자연스럽게 그 “땅”에 대한 언약으로 이어진다. 즉 그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면 “그 땅에서” 번성할 것이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율법을 준수함과 연관해서 이스라엘이 받게 될 복이나 저주는 단순히 그들의 생로병사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반드시 “그 땅”에서 그들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명기 28-30장에서는 카나안 땅에서 받는 복과 저주에 대해서 자세히 제시해 놓고 계시는데, 그래서 신학적으로는 이 부분을 “팔레스타인의 언약”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언약은 시내 산에서가 아니라 모압 땅에서 맺어졌다(신 29:1). “모세의 언약”이 율법 자체를 말한다면, “팔레스타인의 언약”은 그 백성이 그 땅에서 복받는 조건, 불순종함으로 그 땅에서 쫓겨나는 것, 그리고 그들이 회개할 때 다시 그 땅으로 돌아오는 것 등을 포함하는, “땅”과 관련된 언약이다. 하지만 이 언약도 결국은 율법을 준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른 결과인 것이기에, 이 언약은 “모세의 언약”의 한 부분으로 놓여질 수 있다(본지 2000년 1월호, 통권 94호, 「세대주의 특강 5」 참조).
특이한 사항은 그 땅에서의 복과 저주를 말하는 이 부분에서 복에 관한 부분은 28장 1절에서 14절까지, 열네 구절뿐이고, 징계와 저주에 관한 부분은 15절부터 68절까지, 쉰네 구절이나 된다는 것이다. 또 29장 전체도 사실상 저주에 관한 부분이다. 이처럼 복보다 저주를 강조하시는 것은, 광야 생활 40년 동안에 목이 곧고 완고한 그들의 모습을 보셨으므로 그 땅에 들어가서는 그러한 일들을 절대로 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인 것이다. 그들이 광야에서의 일들을 교훈으로 삼지 못한다면 이 말씀들 그대로, 성읍 안에서도 저주를 받고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다(신 28:16). 하늘은 그들에게 놋이 되고 땅은 그들에게 철이 되어 비가 멈출 것이며(28:23,24), 전쟁에서는 패배할 것이고(28:25), 아내와 포도원을 빼앗기며(28:30), 전쟁과 기근과 곤충들로 먹을 것이 없게 되어(28:38-40) 심지어 자기 자식들까지 먹게 되는 비극을 가져올 것이다(28: 53-57). 그들은 결국 그 아름다운 땅에서 뽑혀져 전 세계로 흩어져 버리게 될 것이다. 주께서 너희에게 선을 행하시고 너희를 번성케 하시기를 기뻐하신 것같이 주께서 너희를 멸하시며 너희를 망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리라. 또 너희는 네가 차지하려고 들어갈 그 땅에서 뽑히게 될 것이니라. 주께서는 너를 땅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모든 민족 가운데 흩으시리니 네가 거기서 너나 네 조상이 알지 못하는 나무와 돌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기리라(신 28:63,64).
이 정도의 저주라면 가히 대환란의 모습이기까지 하다. 그들은 이 저주의 말씀처럼 B.C. 606년에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에 의해, A.D. 70년에 로마의 티투스에 의해 멸망했고, 19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쫓겨다녔다. 지금 그들은 자기들의 땅에 돌아와 있지만, 마태복음 24장 등에 있는 “대환란”에 관한 예언을 보건대, 그들은 대환란 때 다시 한 번 극심한 환란을 당할 것이다. 그래서 신명기 28,29장에 있는 이러한 저주의 말씀은 역사적으로 과거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미래의 대환란 시대에도 적용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언약에는 회복에 관한 예언이 포함되어 있다(신 30장). 주 너의 하나님께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대로 너와 네 자손이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여 그분의 음성에 복종하면 그때는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사로잡힘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어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를 흩으셨던 모든 민족들로부터 너를 돌이켜 모으시리라(신 30:2,3). 이것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나(창 15:18-21), 이것도 역시 “회개”라는 그들의 상태에 조건지워진다. 지금 그들은 자기들의 땅에 있지만 여전히 회개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므로 지금 그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있다 해도 이것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며, 그들이 대환란을 겪은 후 진정으로 민족적인 회개를 할 때에야 비로소 이 “팔레스타인의 언약”은 이루어져, 천년왕국의 복이 이 땅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에서 제시되는 율법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항은, 율법이 단순히 엄격한 법으로만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법”으로 제시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신명기에서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지니라.(신 6:5)는 말씀을 본다. 약간의 서술은 다르지만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신명기에는 9번이나 제시된다. 이는 출애굽기에서는 단 한 번(출 20:6)만 제시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신명기에서 볼 수 있는 매우 큰 특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율법을 단순히 무섭고 두렵고 강압적이고 속박적인 법령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것은 신약적인 개념에서 은혜와 비교해 보아서 그렇다는 것이지(롬 7장), 율법 자체는 사도 바울도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고, 또 영적이다(롬 7:12-14). 더욱이 신명기에서 제시되는 율법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또한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는 이 말씀은 전체 율법을 둘로 요약할 때 첫째 계명으로 제시될 만큼 중요한 말씀이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그렇게 요약해 주셨는데, 이것은 율법의 모든 세부 사항들을 하나로 묶었을 때 그 기본 정신이 되는 것이며, 또한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는 신실한 자로 여겨졌고 의로운 자라고 여겨졌다(신 6:25). 모세 또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자로 여겨졌으며(히 3:2), 다윗은 전심으로 주의 법규들을 지키겠다고 고백했다(시 119:69).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들과 규례들을 지켰고, 그로 인해 주님 앞에 의를 주장하기도 했다(시 18:20-24).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운데 그분의 법을 지켰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은 두려워해야 할 분이지만, 동시에 사랑해야 할 분이기도 하다. 그분의 법 또한 두려움으로 지켜야 하지만, 또한 사랑함으로 신실하게 지켜야 한다. 신명기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다 발견한다. 그 법을 무시한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가혹한 심판으로 말미암아 그 법의 위엄을 발견하지만, 또한 그분을 사랑함이 그 법을 지키는 동기가 되어야 함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3500년 전의 이스라엘에게만 한정되는 말씀일 수 없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교훈을 준다. 우리는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그분을 두려워해야 하며, 바른 길을 가기 위해 그분의 법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충만한 사랑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 더욱이 자신의 피값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가 사랑의 동기로 그분의 법을 따르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