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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의 이름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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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6월호>

성막의 이름들
성막은 성경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려진다. 첫째, “성막”(tabernacle, 출 25:9)이라는 일반적인 이름으로, 이는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처소를 나타낸다. 둘째, “성소”(sanctuary, 출 25:8; 38:24)로서 거룩한 장소, 따로 성별된 장소의 의미를 지닌다. 셋째, “증거의 장막”(tent of testimony, 민 9:15) 또는 “증거의 성막” (tabernacle of testimony, 출 38:21, 민 18:2, 대하 24:6, 행 7:44)으로 불리는데, 이는 율법의 돌판이 들어 있는 언약궤가 그 안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언약궤는 출애굽기 25:22; 26:33,34 등에서 증거궤라고도 불려진다. 넷째, “하나님의 집”(house of the LORD, house of GOD, 출 34:26, 신 23:18, 수 9:23, 판 18:31)으로도 불리며, 다섯째, “회중의 성막”(the tabernacle of congregation, 출 29:42,44)이나 “회중의 장막”(tent of congregation, 출 40:6,7)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것은 절기 때나 제사 때 회중들이 모두 성막의 문 앞에 모였기 때문이다. 여섯째, “성전”(temple, 삼상 1:9; 3:3)으로도 불려졌는데, 이는 실로의 성막을 말할 때였다. 일곱째, “장막”(tent, 삼하 6:17; 7:6, 대상 17:5)으로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위에 언급한 증거의 장막, 회중의 장막 등으로 말하여질 때였다.

성막의 역사
성경에서 성막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출애굽기 33장에서 보이는 “회중의 성막”(출 33:7)으로 이 성막은 진영 밖에 설치되었고, 브살르엘과 아홀리압이 성막을 만들기 이전에 있었던 성막이다. 둘째로 출애굽기 25:8에서 언급되어진 것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광야에서 지은 성막으로, 성막에 관해 논의할 때 가장 주된 대상이 된다. 셋째로 다윗의 성막이다. 이는 다윗이 새로운 수도 예루살렘에 만든 것으로 언약궤를 이곳으로 가져왔다(삼하 6:12-17). 여기서 다루는 성막의 역사는 물론 두 번째 “성막”에 관한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명령을 받은 후 성막을 만들기 시작했고 드디어 성막이 완성되게 되었다. 이 일은 출애굽 후 둘째 해 첫째 달 첫날에 완성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출 40:17). 성막을 만드는 모든 일을 마치자마자 구름이 성막을 덮었고 주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웠다(출 40:34). 이후로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을 인도하게 된다. 즉 이스라엘 자손은 구름이 걷히면 여정을 진행했고 구름이 걷히지 않으면 이동하지 않았다(출 40:36-38). 이는 하루든지, 이틀이든지 혹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상관없이 구름이 성막 위에 지체하면 이스라엘 자손도 그들의 장막에 머물고 이동하지 않았다(민 9:15-23). 성막은 주님의 임재뿐만이 아니라 인도하심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자, 이제 이스라엘은 첫 번째 행군을 시작하게 된다. 드디어 구름이 걷힌 것이다. 둘째 해 둘째 달 이십 일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걷혀져서 이들은 시내 광야로부터 파란 광야로 이동하게 된다(민 10:11). 50일 만에 구름이 걷힌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파란 광야 카데스에서 그만 주저앉고 만다. 열 명의 정탐꾼들이 가져온 나쁜 소식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으로 이어져서 이들은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진노하셨고 그들은 징계받아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된다.

실로의 성막
광야 생활을 마감하면서 모세는 일백이십 세에 죽고 여호수아가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고 그의 인도하에 이스라엘은 요단을 건넌다. 이들은 먼저 길갈에 진을 쳤으며(수 4:19) 이때 성막 또한 진영 한가운데에 설치가 되었을 것이나, 이는 임시적인 것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이스라엘은 카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다.
약 6년 여에 걸친 정복 전쟁은 끝이 나고 이제 주의 성막은 실로로 옮겨져 설치된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함께 모여서 거기에 회중의 성막을 세웠으며, 그 땅이 그들 앞에 굴복하였더라』(수 18:1). 이때는 이전처럼 임시로 놓여진 것이 아니라 정착된 것으로, 주께서는 처음으로 그분의 이름을 두셨던 곳이라고 말씀하기도 하셨다(렘 7:12). 그 이후 성막은 계속적으로 실로에 위치했고 사람들은 실로로 올라와 만군의 주께 경배하고 제사를 드렸다(삼상 1:3). 실로의 성막은 주의 성전(삼상 1:9; 3:3, the temple of the LORD), 주의 전(삼상 1:24; 3:15, the house of the LORD)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 시절에 그의 두 아들 홉니와 피느하스는 주의 제사장으로 있었으나 모든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었으며, 이들의 행위는 주께로부터 진노를 샀다.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던 시절에,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 간에 전쟁이 있었다. 이 전쟁에서 밀리게 되자 다급해진 이스라엘 사람들은 실로의 언약궤를 진영으로 가져오게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원한 바와는 달리 이스라엘은 전쟁에 패했으며, 하나님의 언약궤도 빼앗기고 홉니와 피느하스도 죽게 된다(삼상 4:11). 이후로 언약궤는 실로의 성막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빼앗긴 언약궤
빼앗긴 언약궤의 행로를 간단히 살펴보자. 필리스티아인들은 주의 언약궤를 아스돗에 두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아스돗을 치셨고 다시 언약궤는 가드로, 에크론으로 옮겨가면서 필리스티아인들의 지방에 일곱 달 동안 있었다(삼상 5:1-6:1). 그러나 계속되는 재앙으로 필리스티아인들은 언약궤를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 보냈다(삼상 6:12). 벧세메스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14마일 가량 떨어진 곳으로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였으며, 필리스티아인들의 평원에서는 약 2마일 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여호수아 21:16에 보면 벧세메스는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성읍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벧세메스인들은 거룩하신 주 하나님께 죄를 범해 오만 칠십 인이나 죽임을 당하였고(삼상 6:19-21), 이들은 궤를 키럇여아림으로 보냈다. 언약궤는 키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서 이십 년 동안 있었다(삼상 7:1,2). 이때는 사무엘 때였으며, 키럇여아림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불과 8마일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다윗의 장막
재판관이었던 사무엘 이후에 사울이 왕으로 통치하고 뒤이어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된다. 다윗은 유다와 이스라엘을 치리하면서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다윗은 그때까지 아비나답의 집에 놓여져 있던 언약궤를 가져오고자 마음먹는다.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다시 옮겨 오자. 우리가 사울의 때에는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대상 13:3). 그러나 다윗은 키럇여아림에서 언약궤를 옮겨오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았다. 수레에다가 하나님의 궤를 실어서 옮겼을 뿐만 아니라, 웃사는 궤에다 손을 대기까지 하여 죽임을 당했다. 이에 다윗은 궤를 다윗 성읍의 자기 집으로 옮기지 아니하고 가드인 오벧에돔의 집에 두었으며 궤는 여기서 삼 개월을 있게 된다.
다윗은 그후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한 장소를 마련한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장(성)막이다. 다윗은 레위인들을 성결케 하여 하나님의 궤를 메어서 가지고 오게 한다. 이는 주의 말씀에 따라 모세가 명한 대로 행한 것이었다(대상 15:12-15). 언약궤는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 빼앗긴 후, 오랜 세월을 거쳐 드디어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그들이 주의 궤를 들여와 그 자리, 즉 다윗이 궤를 위하여 친 장막 한가운데 두니, 다윗이 주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니라』(삼하 6:17). 그러나 위에 언급했듯이 원래 언약궤가 놓여져 있었던 실로의 성막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두 개의 성막, 기브온과 예루살렘에
성경에는 또한 놉의 성막이 언급된다. 사울이 왕으로 있던 시절에 놉에 성막이 있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다닐 때, 놉의 성막에 이르러 “차려 놓은 빵”을 먹었고, 제사장 아히멜렉에게서 골리앗의 칼을 받았다(삼상 21:1-9). 예수님께서는 이때의 일을 언급하시면서 자신이 안식일의 주님이심을 말씀하셨다(막 2:23-28, 마 12:3-8). 당시 놉에는 에돔인 도엑이 머물러 있었고, 도엑을 통해 사울에게 이 일들이 알려졌다. 사울은 격분했고, 아히멜렉을 포함하여 제사장 팔십오 명이 죽임을 당했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이 파괴가 되었다(삼상 22:19).
그 이후 성경은 기브온에 성막이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주의 성막과 번제단이 그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었으나』(대상 21:29). 기브온의 성막은 다윗이 왕으로 있던 시기에 언급되어진다.

같은 기간에 다윗이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궤를 위해 만든 다윗의 장막도 있었다. 그러나 모세의 성막에 있었던 성막의 다른 기명들은 기브온에 남아 있었고(삼상 21:6, 대상 21:29, 대하 1:3-5), 언약궤가 없어도 기브온 성막에서 번제가 드려졌다. 『제사장 사독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도 기브온에 있는 산당에서 주의 성막 앞에서 섬기게 하여 아침 저녁으로 항상 번제단에다 주께 번제를 드리게 하였으니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주의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을 따라 행하게 하였더라』(대상 16:39, 40). 즉 다윗 때에 두 성막이 공존했고(대상 16:37-40), 솔로몬도 성전을 만들기 전에 기브온의 성막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다(대하 1:2-6). 이 두 성막이 합쳐진 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했을 때인데 이때 모세의 원래 성막이 기브온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들이 주의 궤와 회중의 성막과 성막에 있던 모든 거룩한 기명들을 가져왔으니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그것들을 가져오더라』(왕상 8:4, 대하 5:2-5 참조). 이때 언약궤와 성막뿐 아니라 성막의 거룩한 기명들도 함께 옮겨졌다. <다음 호에 계속>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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