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에 나오는 동식물 분류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동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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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9월호>

개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인간을 잘 따르는, 인간에게 우호적인, 인간에게 충직한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간과 오랫동안 함께해 오면서 쌓아온 친숙한 이미지들 때문에 개는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견으로 여겨지고 있다. “애완동물”은 개나 기타 동물을 키우면서 즐거움과 만족과 위안을 얻는다는 뜻인 반면, 반려견은 그러한 의미를 뛰어넘어 친구요 동반자로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한층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반려견 문화는 일찍이 서양에서 발전했으며, 국내에서도 이제 대학교 별로 “반려동물과”라는 학과가 생기고 또 인기를 누릴 정도로 반려견 키우기가 하나의 문화로서 정착되고 있다.

하지만 개는 친숙한 이미지도 있지만 대수롭지 않거나 하찮은 동물, 또는 부정적이거나 경멸적인 동물로서 취급되기도 하는데, 성경에도 다윗이 골리앗을 대적하며 섰을 때 골리앗이 다윗을 보고 『내가 개이기에 네가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왔느냐?』(삼상 17:43)라고 묻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다윗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피하던 중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는, 사울의 집안에서 한 사람이 나와 다윗왕을 저주하는데 이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어찌 이 죽은 개가 내 주 왕을 저주하나이까? 내가 청하오니, 나로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삼하 16:9)라고 말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마태복음에는 한 카나안 여인이 마귀에게 고통받는 자신의 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라고 주님께 간청하는 장면이 나온다(마 15:21-28). 이때 주님께서는 처음에는 대꾸도 하지 않으시다가 나중에 자신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카나안 여인은 “개들”도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말하며 자신을 한껏 낮춘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창녀의 몸값이나 개로 번 돈은 주의 전에 어떤 서원하는 일로도 가져오면 안 되었다(신 23:18). 이 모두가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표현을 “개”에 빗대어 썼던 것이다.

성경에서 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계속되는데, 개를 무리를 지어 다니는 늑대나 하이에나처럼 죽은 고기를 먹고 사는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들에서 짐승들에게 찢겨진 고기를 보게 되면 자신의 성결을 위해 그것을 개들에게 던져 줘야 했다(출 22:31). 또한 여로보암과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으면 개들이 죽은 고기를 먹듯 그 시체를 먹어 치울 것이라는 저주가 내려지기도 했다(왕상 14:11; 16:4). 그뿐 아니라 열왕기상 21:23에서는 티셉인 엘리야가 아합의 아내 이세벨에게 개들이 이스르엘 성벽 곁에서 그녀를 먹을 것이라고 예언하는데, 예언대로 개들이 그녀의 시체를 먹음으로써 두개골과 발과 손바닥을 제외한 나머지는 찾지 못했다(왕하 9:30-37).

한걸음 더 나아가서 시편 59편에서는 개가 멸망의 아들, 곧 적그리스도의 예표로 사용된다. 시편 59편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니던 사무엘상 19:11-17의 상황을 그리고 있는데, 그렇기에 시편 59편의 1-4절 말씀은 분명 사울로부터 도망가는 다윗에 관한 말씀인 반면, 뒷부분인 5-17절은 그 표현이나 적용에 있어 과거가 아닌 미래, 곧 재림의 때와 관련된 말씀이다. 특히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을 두 번 치러 올라오는 모습을 저녁에 돌아와서 개처럼 짖으며 성읍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 만군의 주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깨셔서 모든 이방을 감찰하소서. 어떤 사악한 범법자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마소서. 셀라. 그들이 저녁 때 돌아와서 개처럼 짖으며 성읍을 돌아다니나이다. 보소서, 그들이 그들의 입으로 악한 말을 내뱉고 그들의 입술에는 칼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누가 들으리요?” 함이니이다. 그러나 오 주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니 주께서는 모든 이방을 조롱하시리이다』(시 59:5-8). 저녁 때 개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이 말씀은 장차 적그리스도가 대환란 기간에 이스라엘을 한 번 친 후 또다시 치러 올라올 것이라는 예언인데, 그와 관련된 예표가 바로 “산헤립”과 “느부캇넷살”이다. 이 적그리스도의 예표들은 이스라엘을 실로 두 번 치려고 올라왔던 것이다(왕하 18:13,17; 24:1,10; 25:1).

개는 또한 거짓 선지자의 예표로도 사용된다. 베드로후서 2:22에서는 개와 관련하여 『그러나 참된 잠언대로 그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니 “개는 그 자신이 토해 낸 것으로 다시 돌아가고 또 돼지는 씻고 나서 그녀의 진창 속에서 뒹군다.” 하였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에서 거듭나지 않은 남자의 모형인 “개”는 베드로후서 2장 전체의 문맥을 살펴볼 때 베드로후서 2:1에서 언급하고 있는 “거짓 선지자”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마태복음 7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진리인데,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6에서 말씀하시기를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들을 발로 밟고, 다시 돌아서서 너희를 찢을까 함이라.』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7장에는 베드로후서 2장에서처럼 개와 돼지가 등장하며, 15절에서는 베드로후서와 마찬가지로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들이라』(마 7:15). 이 구절에서 거짓 선지자의 모형인 “이리”는 갯과에 속한 동물이다. 그렇기에 마태복음 7:6에서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거짓 선지자들”을 향한 말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사도 바울은 개들을 주의하라고 권면한다. 『개들을 주의하고 악한 일꾼들을 주의하며 살을 베어 내는 자들을 주의하라』(빌 3:2). 사도 바울이 주의하라면서 언급한 개는 물론 문자적인 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개는 구절 뒷부분에 나오는 살을 베어 내는 자들, 곧 율법적이고 형식적인 종교 의식을 주장하는 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시편 22:16에서는 『개들이 나를 에워싸고 악인의 무리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그들이 내 손과 내 발을 찔렀나이다.』라고 하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죽으실 것인가를 예언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에워싼 것은 이방의 개들, 곧 로마 병사들이었던 것이다. 또한 요한계시록 22:15에서도 『그러나 개들과 마술사들과 음행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누구든지 거짓말을 즐겨 행하는 자는 모두 다 바깥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함으로써 개들을 사람들과 함께 언급하고 있다. 물론 요한계시록의 말씀에서도 개는 문자적인 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에서 개는 구원받지 않은 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뜻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경에서 개가 갖는 이미지는 극히 부정적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와 대비되는 “개”가 등장한다. 바로 “회색사냥개”이다. 『잘 걷는 것 세 가지가 있고, 정녕, 위풍있게 다니는 네 가지가 있으니, 짐승 중에서 가장 강하여 어떤 것에게서도 물러서지 아니하는 사자와, 회색사냥개와, 숫염소와, 또 그에게 대적하여 일어날 수 없는 왕이라』(잠 30:29-31). 성경은 회색사냥개가 잘 걷는다고 말씀한다. 이는 화평의 복음을 전하며 좋은 일들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아름다운 발을 연상케 한다. 『파송되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와 같으니 “화평의 복음을 전하며 좋은 일들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하였느니라』(롬 10:15).

또한 앞선 잠언 30:29은 회색사냥개가 “위풍있게” 다닌다고 말씀한다. 마치 사자나 왕처럼 다닌다는 것인데, 위풍당당한 왕의 모습은 천년왕국 때 땅을 유업으로 받아 다스릴 그리스도인을 떠오르게 한다(계 20:4,6; 22:5). 본래 사람은, 특히 남자는 토한 것으로 돌아가는 개와 같은 본성을 지녔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고 거듭나게 되면, 잘 걷고 위풍있게 다니는 회색사냥개와 같은 모습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라, 흔들리지 말라,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아니한 줄을 너희가 앎이니라』(고전 15:58). 『깨어 있으라. 믿음 안에 굳게 서라. 남자답게 처신하라. 강건하라』(고전 16:13).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신 구주로 믿고서 구원받았는가? 그렇다면 추수할 곡식이 익어 하얗게 되었지만 추수할 일꾼이 부족하여 일꾼을 찾으시는 이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찾으시는 바로 그 일꾼이 되도록 하라. “신실한,” “대담한,” “용감한”이란 뜻을 지녔고, 히브리어로 개를 뜻하는 “켈렙”과도 연관이 있는 여푼네의 아들 “칼렙”처럼, 주님께서 하신 말씀, 그 약속을 굳게 붙잡고(수 14:6-9) 앞으로 나아가는 바로 그 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파수꾼들은 눈멀었고 무지하며, 말 못하는 개들처럼 짖지도 못하고 잠자고 눕고 졸기를 좋아하는 그리스도인들로 넘쳐나는 이 마지막 때에, 당신은 주님 곁에서 주님을 충직하게 섬기는 “감시견”(watchdog)이 되어야 한다. 주님 곁에 굳게 서서 그 어떤 비진리와도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복음을 전파하며 진리를 수호함으로써 주님을 매우 기쁘시게 해 드리는 “충견”이 되도록 하라.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