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에 나오는 동식물 분류

전쟁을 위해 준비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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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8월호>

박동일 / 성경대로믿는사람들 기자



성경에서 말은 연이은 기근에 양식을 사는 데 이미 돈을 다 써 버린 이집트인들이, 돈 대신 가축으로 양식을 맞바꾸어 먹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창 47:17). 하지만 말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은 그보다 앞선 창세기 41:43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칠 년간의 풍년과 칠 년간의 기근에 관한 파라오의 꿈을 해석한 요셉을 파라오가 그의 둘째 병거에 앉히는 장면이다.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이집트 파라오의 둘째 병거는 필시 말이 이끌었을 텐데, 이처럼 병거가 등장하는 말씀에서 말이 간접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야곱을 장사하러 갈 때에도 병거들과 기병대가 요셉과 함께했다(창 50:7-9). 이는 당시 이집트에 이미 전쟁을 위한 병거와 기병대가 갖추어져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말은 그 어느 곳보다 전장에서 그 효용 가치가 드러난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이 등장할 때는 기본적으로 군마(軍馬)로서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왕이 늘리지 말아야 할 세 가지 것에 대해 경고하시면서 “말을 늘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왕은 스스로 말들을 많이 번식시키지 말 것이며 그가 말을 번식시킬 목적으로 그 백성을 이집트로 돌려보내지 말지니, 이는 주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제부터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라』(신 17:16). 왕은 말들을 늘릴 목적으로 백성들을 이집트로 돌려보내지 말아야 했다. 이집트는 세상을 예표하므로 주님께서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말이 전쟁에 아주 유용했기에 이스라엘이 군마를 필두로 한 기병대나 병거들을 가지게 되면 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말들과 병거들을 신뢰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 하나님이 아닌 말들을 의지하는 자들이 있을 테지만(시 20:7) 그 말들은 안전을 위해서 부질없는 것들이고 그 막강한 힘으로 아무도 구해 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군대로 구원받은 왕이 없으며 막강한 힘으로 구제받은 용사도 없느니라. 안전을 위해서는 말도 부질없는 것이요, 그 막강한 힘으로 아무도 구해 내지 못하리라. 보라, 주의 눈이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 위에 있으며 그의 자비를 바라는 자들 위에 있어 그들의 혼을 사망에서 구해 내시며 기근 속에서도 그들을 살게 하시는도다. 우리의 혼이 주를 기다리니 그는 우리의 도움이시며 우리의 방패시라. 우리의 마음이 그를 즐거워하리니 이는 우리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신뢰했기 때문이라. 오 주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자비를 우리에게 베푸소서』(시 33:16-22). 이와 관련하여 선지자 이사야도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을 바라보지 않고 말들을 의지하고 병거들을 의뢰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31:1).


다윗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여 군마보다는 주 하나님을 더 신뢰했고 주 하나님만을 더 의뢰했다(시 18:29; 21:7; 22:4,5; 56:11). 그래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을 정복하면서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을 치고 난 뒤 모든 병거의 말들의 힘줄을 끊은 것을 볼 수 있다(삼하 8:4, 대상 18:4). 그런 다윗왕에게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의 방패가 되어 주셨다(시 18:2; 28:7). 이에 반해 솔로몬왕은 말들을 늘리지 말라는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았다. 그는 병거들과 기병들을 모았고 그렇게 모은 병거의 수는 4천여 대에 이르렀다(대하 9:25). 이를 위한 말들을 얻기 위해 이집트로 사람들을 내려 보냈다(왕상 10:28,29). 한 병거 당 말 10필이 끌었기 때문에 기병들이 탈 말들을 제외하고 적어도 4만여 필의 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왕상 4:26). 그 외에도 솔로몬왕은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금을 늘리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말년에 배교하였고, 그의 사후에 왕국이 둘로 쪼개지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에서도 앞서 왕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유사한 명령을 내리시는데, 곧 말들의 뒷다리 힘줄을 끊어 죽이라는 명령이었다(수 11:6). 이는 당시 카나안 땅에 말들을 태양신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유다의 왕들이 따라 행했던 것이다. 『또 그가 힌놈 자손들의 골짜기에 있는 토펫을 더럽혀 아무도 자기 아들이나 딸로 불을 통과하게 하여 몰렉에게 바치지 못하게 하였더라. 또 그가 유다의 왕들이 태양에게 바친 말들을 외곽 지역에 있는 주의 전의 입구, 즉 시종 나단멜렉의 집 곁에서 제하여 버리고, 또 태양의 병거들을 불살랐으며』(왕하 23:10,11).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태양의 신인 아폴로가 불말들이 이끄는 불병거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태양을 이끌었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아폴로는 요한계시록에서 “아폴루온”(계 9:11)으로 불린다. 그는 끝없이 깊은 구렁의 천사이며, 그 이름은 “멸망”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멸망의 아들”(살후 2:3)인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말이 우상인 마귀에게 제물로 바쳐졌을 뿐만 아니라 유다의 왕들이 이방의 풍습을 따라 행할 것을 아셨고 또한 당시 수간에도 말이 쓰였기 때문에(레 18:23) 말들의 뒷다리 힘줄을 가차 없이 끊어 버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성경에서 말이 전쟁을 위해 준비된 군마로서의 위용을 드러내는 것은 욥기 39:19-25에서다. 『네가 말에게 힘을 주었느냐? 네가 그 목을 천둥 같은 소리로 옷입혔느냐? 너는 그를 황충처럼 두려워하게 할 수 있느냐? 그의 콧구멍의 영광은 무섭도다. 그는 골짜기에서 땅을 긁으며 자기 힘을 즐기며 무장한 군인들을 맞으러 나가느니라. 그는 두려움을 비웃고 놀라지 아니하며 칼로부터 돌아서지 아니하느니라. 화살통과 번쩍이는 창과 방패가 그를 향해 덜컹거리고 그는 맹렬함과 사나움으로 땅을 집어삼키며 그 소리가 나팔 소리라고 믿지도 않는도다. 나팔 소리가 나면 ‘하, 하.’ 하며 웃고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대장들의 호령과 외침을 듣느니라.』 욥기 39장에서 우리는 말의 이중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실 말은 민감하고 겁 많고 예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주말들은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도록 “차안대”를 씌우기도 한다. 말의 눈이 얼굴의 양 옆에 있어 시야각이 넓기에 옆과 뒤에서 오는 말까지 보고 그 모습에 놀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리에까지 민감해서 눈뿐만 아니라 귀까지 덮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잘 길들여진 말은 전쟁터를 누비며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올 힘이 있다. 잘 훈련받은 군마는 쏟아지는 포탄, 총탄, 화살 등을 개의치 않고 돌격하라는 명령을 받으면 곧바로 그곳을 뚫고 질주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B.C. 2000년 이후로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지상에서 벌어진 모든 주요 전투에는 기병대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6 ․ 25 전쟁에서 차량이 다닐 수 없는 험지에 포탄을 나르던 “레클리스”라는 말이 있었다.


전장에서 용감한 모습을 보이는 말을 다루는 욥기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에 관한 예언의 말씀으로도 이중 적용이 가능하다(욜 2:1-5, 합 3:8,15, 계 19:11-21). 특히 요한계시록 19장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 흰 말은 초자연적인 말들인데 구약에서는 그 말들이 “불말”(火馬)로서, 불로 만들어진 병거들을 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왕하 2:11; 6:17, 시 68:17, 합 3:8). 즉 흰색을 띤 흰말들이지만, 그 피부가 불로 뒤덮인 말들인 것이다. 따라서 재림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은 불말인 초자연적인 군마들을 타고 내려올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병거들과 함께 내려올 것이다(사 66:15, 욜 2:5, 시 104:3, 살후 1:7,8).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모습을 모방자인 사탄이 그대로 흉내 낸다. 그래서 에스겔 26장에서는 적그리스도의 예표인 느부캇넷살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딤전 6:15, 계 17:14)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어 『왕 중의 왕인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겔 26:7)으로서 등장하는 것을 본다. 이는 역사적으로 성취되었지만 예언적으로는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가 투로에 전쟁을 일으킬 것에 관한 말씀인데, 눈에 띄는 것은 이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말과 병거들을 이끌고 오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기병들을 이끌고 온다는 것이다(겔 26:7).

성경에서 말은 전쟁을 위해 준비된 동물이다.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 땅에서 펼쳐질 아마겟돈 전쟁에서 그 위용을 다시 한번 드러낼 것이다. 그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불말의 등에 올라탄 두려운 군대가 되어 앞서 달려가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피가 낭자한 전쟁을 치르기 위해 큰 물무더기를 통과해 이 땅에 돌아올 것이다(합 3:15, 계 19:14). 그 두렵고 무서운 모습이 요엘 2장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 역시 말에 대한 언급이다. 『그들의 모양은 말들의 모양 같고 그들은 마치 기병들처럼 달리리로다. 그들이 뛰는 것은 산꼭대기들에 있는 병거들의 소리 같고, 그루터기를 삼키는 불꽃 소리와도 같으며, 전열에 배치된 강한 백성 같으리라』(욜 2:4,5). 이것은 이 땅에서의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 하늘에서 준비된 전쟁용 말들이다. 당신도 이 말들을 타고 내려올 것을 확신하는가?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