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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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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4월호>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읍이고(잠 10:15) 부자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다(잠 14:20). 그는 거친 말로 대답하면서도 당당하며(잠 18:23) 자신을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만(잠 28:11), 명철을 지닌 사람은 그의 종말을 잘 알고 있다. 즉 자신의 부를 신뢰하는 자는 인생의 말미에 그 부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스스로 자랑하는 자들 중에 어떤 수단으로라도 자기 형제를 구속하거나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몸값을 바쳐 (이는 그들의 혼의 구속은 귀한 것이요, 그것은 영원히 멈추게 됨이라.) 그로 영원히 살고 썩어짐을 보지 않게 할 자는 아무도 없도다』(시 49:6-9). 부자의 "재물"은 그의 형제의 혼은 물론 부자 자신의 혼을 구속하기 위한 몸값도 될 수 없기에, 혼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전혀 유용하지 않은 재물을 의지하고 부를 자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존귀해도 멸망하는 짐승과 같을 뿐이다(시 49:12). 예수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쉬우니라.』(막 10:25)라고 말씀하셨다.재물은 결코 인간이 영원히 살고 썩어짐을 보지 않게 할 수 없다! 이러한 재물의 미혹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주의하고, 탐심을 조심하라. 이는 사람의 생명이 자기가 소유한 것의 풍부함에 있지 않음이라.』(눅 12:15)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소유가 풍부하다고 해서 그의 혼이 구속받고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경고하신 이 말씀은 한 어리석은 죄인이 자기 형제와 유산을 나눠 갖게 해 달라고 그분께 요청한 일에서 발단했다. 『그러자 무리 가운데서 한 사람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선생님, 내 형제에게 말씀하셔서 유산을 나와 함께 나누라 하소서."라고 하니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 위에 재판관이나 재산 나누는 사람으로 세웠느냐?"라고 하시니라. 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주의하고, 탐심을 조심하라. 이는 사람의 생명이 자기가 소유한 것의 풍부함에 있지 않음이라."고 하시고』(눅 12:13-15). 주님을 "유산 분배자"로 삼으려 했던 사람은 그의 아버지가 죽으면서 남겨 둔 유산에서 자신이 공정한 몫을 챙기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지자로서 권위가 있으신 예수님께서 그의 형제에게 무언가를 말씀해 주시기를 원했던 것인데, 주님께서는 이 요청을 단호히 거절하셨다. 왜냐하면 돈에 관한 논쟁에나 관여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는 것이라』(마 18:11).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과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주의하고, 탐심을 조심하라. 이는 사람의 생명이 자기가 소유한 것의 풍부함에 있지 않음이라』(눅 12:15). 문제의 정곡을 찌르신 것이다. 이는 "유산 재분배"를 원했던 사람이 지닌 문제가 바로 "탐심"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유산의 일부를 자기 몫으로 받았고 그의 형제 역시 자신의 몫을 가져갔을 것이 분명한데도, 자기 몫에 불만을 품고 유산을 더 갖고 싶어 하는 자가 "유산 재분배"를 주님께 요청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 문제의 중심에 탐심이 있음을 지적하셨다. 탐심은 쉽게 말해서 『돈을 사랑하는 것』(딤전 6:10)이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탐심에 영향을 받으면서 산다는 것이 인생의 진실이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의하지 아니하고서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너는 탐내지 말지니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정욕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라고 말했다. 탐심은 바울에게도 영향을 준 죄의 근원이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러나 죄가 계명을 통하여 기회를 잡아 내 안에서 온갖 색욕을 일으켰느니라.』(롬 7:8)라고 말하면서 죄와 탐심의 밀접한 관계, 곧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색욕과 탐심의 밀착 관계를 적시했다.
우주로 들어온 "죄의 기원"은 하나님의 보좌를 넘봤던 루시퍼의 "탐심"에서 시작되었다(사 14:13). 최초의 인류를 끝장낸 것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열매에 대한 탐심이었다(창 3:6). 아칸을 끝장낸 것도 바빌론제 옷과 은과 금덩이에 대한 탐심이었다(수 7:21). 예수님께서는 이 탐심의 죄를 주의하고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 무리를 일깨우셨다. 『한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떤 부자의 땅이 수확을 많이 내는지라. 그가 속으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할까?' 하고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들을 헐고 더 큰 것으로 지어서 거기에 나의 모든 곡물과 물건들을 쌓아 두리라. 그리고 나서 내 혼에게 말하기를, 내 혼아,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물건들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편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혼을 네게서 앗아 가리니 그러면 네가 장만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그러므로 자신을 위하여는 보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 앞에 부요하지 못한 자는 다 이러하니라."고 하시더라』(눅 12:16-21).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서 "부자가 어리석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셨다.
첫째, 부자는 땅의 수확이 많아지자 기존의 곳간들을 헐고 더 큰 것을 지어 그의 모든 곡물과 물건들을 쌓아 두려고 했다(16-18절). 그 목적은 『내 곡식... 내가 어떻게 할까?...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혼』이라는 말들에서 볼 수 있듯이, 순전히 "나 자신," 곧 "부자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부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재물을 끊임없이 축적하려 했고 계속 유입되는 재산을 "자기 자신"을 위해 쌓아 두려고만 했지, "자기 자신"이 그것을 전부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는 전혀 무지했다. "자기 자신"은 물론 세상 자체도 그 형체가 사라져 간다는 사실을(고전 7:31) 모른 채, 사라져 가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사라져 가는 세상 재물에만 탐심을 부렸던 것이다. 설령 재산이 후손에게 상속된다 해도 그것이 현명하게 쓰일지 아니면 탕진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전 2:18,19). 차라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었다면 그의 의가 영원히 남았을 것이다(시 112:9).
둘째, 부자는 "혼"과 "몸"을 혼동했다. 『그리고 나서 내 혼에게 말하기를, 내 혼아,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물건들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편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하리라.' 하였느니라』(19절). "혼"은 손에 잡히지 않는 비물질적인 자아이기 때문에, 육신을 위한 양식을 먹거나 마시면서 즐길 수 없고 곳간에 잔뜩 쌓아 놓은 물건들을 사용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혼에게 물건들을 마음껏 즐기라고 했으니, 비유 속의 부자는 인간이 영, 혼, 몸의 삼중 구조로 되어 있다는 진리에 무지한 죄인이었음이 분명하다. 몸이 죽고 난 뒤 혼이 처할 영원한 운명에 대해 무지했기에, 혼을 현 세상에서 육신처럼 만족시키려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셋째, 부자는 자신이 오늘 밤에라도 죽을 수 있는 유한한 존재임을 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혼을 네게서 앗아 가리니 그러면 네가 장만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시니라』(20절). "나 자신"밖에 모르는 부자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너," "네 혼," "네게서," "네가"라는 말씀들로 접근하셨다. "너"만을 사랑하는 "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생명을 좌우하시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강조하신 것이다.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볼 때, 부자는 잠자는 시간 최소 6시간을 빼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18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18시간 동안 무슨 일이 닥칠 것인가에 대해 부자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너희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 오히려 너희가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겠고, 또 이것이나 저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 말해야 할 터인데 이제 너희가 너희의 자만 가운데 기뻐하고 있으니 그러한 기쁨은 다 악하니라』(약 4:14-16).
어리석은 부자는 자만 가운데 기뻐하면서 순간의 제단에 영원을 불사르고 있는 죄인들의 전형이다. 그는 자신이 모태에서 나올 때 벌거벗고 나왔으니, 결국 돌아갈 때도 왔던 그대로 돌아가며 수고하여 얻은 것은 아무것도 손에 쥐고 가지 못한다는 점을(전 5:15) 전혀 깨닫지 못한 천치였다. 영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 물질로 혼을 만족시키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곧 영원을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바보였던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막 8:36) 오, 어리석은 부자여, 그대의 혼을 다 쓰지도 못할 돈과 바꾸지 말라!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암 4:12).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시 9:17).
피터 럭크만 목사는 "성경에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할 때는 결코 정신적으로 모자란 사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오만하고 자기만족에 빠져서 마치 하나님께서 존재하시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라고 했다. 이 비유의 부자는 결코 정신적으로 모자란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영원한 복락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창고에 가득 쌓아 놓은 물건만 있으면 자신의 혼이 무한정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부자들은 모두 그렇게 어리석은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교만해지지 않고 불확실한 재물을 신뢰하지 않으며,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요하게 주셔서 향유케 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딤전 6:17) "그리스도인 부자들"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선을 행하고 선한 일에 부요하며 기꺼이 나누어 주고 아낌없이 베풂으로써 자신들을 위하여 오는 때를 대비한 좋은 기초를 쌓고 있는데, 이는 "영원한 생명을 붙들기" 위함이다(딤전 6:18,19). 영원한 생명을 붙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온전한 상"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손에 붙잡은 것처럼" 실제적으로 풍성하게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사도 바울은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라."라는 명령과 함께 "선한 고백"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도 강조하고 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라. 이를 위하여 네가 또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고백하였느니라. 만물을 살리시는 하나님 앞에서와 폰티오 빌라도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증거하셨던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딤전 6:12-14). 보다시피 디모데도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을 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빌라도 앞에서 "선한 고백"을 하셨다. 디모데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공개적으로 고백했으며, 그 고백에 걸맞게 살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왕이심을 빌라도에게 증거하셨고, 그분의 왕국은 다가올 미래의 재림 때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8:36,37). 다시 말해 바울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선한 고백을 한 성도들에게, 『만물을 살리시는 하나님 앞에서와 폰티오 빌라도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증거하셨던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딤전 6:13,14)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명령," 곧 "돈을 사랑하지 말라.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라."(딤전 6:10-12)라는 명령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부자"는 그가 지닌 "부"를 성경대로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딤전 6:18)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위한 좋은 기초를 쌓을 수 있고, 지상 재림 때 천년왕국에서 통치할 유업을 확보하게 된다. 이것이 "위에" 있는 것들에 투자한(골 3:2) 부자가 갖게 될 복임을 기억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