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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혼. 몸. - 사람의 삼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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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6월호>
영은 인간에게 하나님에 대한 의식(God -consciousness)을 갖게 해 주며, 하나님과 영교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혼은 인간에게 자아의식(Self-consciousness)을 갖도록 해 주며, 인격을 갖추는 능력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의 인격자가 되게 한다. 또한 몸은 인간에게 세상의식(World-consiousness)을 갖도록 해 주며, 오관을 통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도표 II(93년 5월호 13쪽 도표)에서 보았듯이 사람의 몸은 가장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원으로서 외부세계인 세상과 접해 있고, 혼은 몸과 영을 연결시키는 독립적 요소로서 그 둘 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안쪽에 있는 원은 영으로서 성령이 거하시는 지성소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하나님과 영교를 한다. 가장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원으로 표현된 사람의 몸은 흙으로 만들어 졌다(창2:7). 흙을 분석해 보면 96가지 원소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사람의 몸도 흙과 같이 96가지 원소를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외부세계인 세상과의 접촉과 교류는 육체 안에서 혹은 육체를 통해 표현되어 지며, 타락 후에 이 사람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죽을 몸이 되었다. 몸은 기본적으로 타락이후 동물적인 속성과 똑같은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도표참조). 곧 자기생식, 자기보존, 자기만족이다.
혼은, 구약에서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사용할 때는 몸과 동의어로써 자주 사용되어짐을 볼 수 있다(창19:20, 17:14; 레22:6, 11, 23:30; 민31:28). 신약에서는 그것이 ‘마음’, ‘생명’, ‘사람’, ‘혼’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어지고, 특별히 거듭난 사람에게 사용되어 질 경우 그 혼이 드려지는 대상에 따라 “영적인” 사람과 “육신적인(혼적인)” 사람으로 각기 달리 표현되어 진다.
혼은 두 세계, 즉 육체적인 세계와 영
적인 세계에 합류한다. 혼의 역할은 다른 두 편의 활동을 조정하는 것이다. 혼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가장 낮은 육체를 가장 존귀한 영에게 복종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혼은 그 지성을 통하여 인간을 통제함으로써 혼이 다스리는 사고의 세계로 인간을 인도할 수 있다. 영이 사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혼의 찬성과 동의가 있어야 한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혼에 있다. 그러므로 그 결과적인 책임도 혼이 담당하게 된다.
A.T.피어슨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인간 안에 영을 내재케 하셨고, 성령으로 다스리게 하였으며, 그 영으로 하여금 인간과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했으며, 매사를 적절한 역량으로 혼과 몸을 지배케 했다”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인간의 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였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하게 될 자들에게 속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혼을 구원하는 믿음에 속한 자들이니라』(히10:39). 『이는 너희 믿음의 결과, 곧 너희 혼들의 구원을 받음이니라』(벧전1:9). 『그러므로 너희는 온갖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벗어 버리고 너희 혼들을 구원할 수 있는 (마음에) 심겨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약1:21).
혼은 앞에서 설명되어진 육체의 “오관”을 통하여 물질의 현상을 탐구하고 해석하며,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외부세계와 교류를 갖는 역할을 한다. 혼은 육체의 오관과 같은 다섯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상상, 의식(양심), 기억, 추리, 정감이다.
“상상”은 혼의 눈의 역할을 함으로써 시각에 해당한다.
“의식”은 육체의 미각에 해당하는 것으로써 선과 악을 구별하게 해 준다.
“기억”은 육체의 청각에 해당하는 것으로써 이전의 사실들을 녹음기와 같이 재생하여 들려준다.
“추리”는 육체의 후각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실을 비교해 주는 역할을 한다.
“정감”은 육체의 촉각에 해당하며 사람이 촉각을 통해 느껴지듯이 혼은 이 정감을 통해 구체적으로 느끼고 인지한다.
혼은 이 다섯 가지 기능을 통해 자아의 세계를 구축하며 그 나름대로의 독특성을 창출하며 드러낸다. 그것이 바로 인격이다.
이 혼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그것은 지성, 감정, 의지이다.
혼은 인간의 주체로서 영이 죽어 있는 상태에서도 그가 활동하는데 있어 독립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육신에 속하였기 때문에 죽을 몸의 지배 하에 있는 것이다.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그 ‘의지’의 행사에 따라서 좌우되어진다. 이 의지는 지성, 감정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반드시 그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며,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
인간이 타락할 때 인간의 의지까지 타락하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이 의지의 행사로 인간은 하나님을 선택할 수도 있고 세상을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창조될 때 독특하게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다(창 2:17).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로보트나 자동장치적인 기계로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잘 말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영역인 영으로 인간을 다스리기 원하시지만 인간의 의지는 각 사람의 혼에 달려 있으므로 혼의 동의나 찬성을 받지 않으면 그렇게 하실 수 없다. 이는 요한계시록 3:20에서 잘 말해 준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더불어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계 3:20).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며...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문을 여는 주체는 혼이며, 그 혼 중에서도 의지에 의해서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도 이 의지에 의해서이다.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의지까지도 타락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로보트에 불과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인격의 기관인 혼이라는 주체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성경은 이러한 인간을 “살아있는 혼”(a living Soul)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제 더 나아가서 인간의 가장 고귀한 영역인 영에 관해서 살펴보자. 영은 인간의 혼과 육을 통해 외부세계와 물질을 이해한다. 그러나 영의 본질적인 기능은 하나님을 의식하고 반응하며 교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혼’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그것을 수행하게 한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지성소를 비쳐서 밝게 했던 것처럼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캄캄한 지성소의 내부처럼 영은 “암흑의 방”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인간의 타락으로 죄가 들어와 하나님과 교류하는 영의 문을 잠궈 버리고 영을 질식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거듭나기 전까지는 인간의 영은 “죽은 영”으로서 밀폐되어 있고, 혼의 의지로 ‘살려 주는 영’(고전15:45)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기까지는 그 영의 생명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런 연유로 자연인은 “영적인 일”을 알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는 것이다(고전2:14).
그러므로 우리의 영이 거듭나는 것은 혼의 구원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혼은 의지를 통해 성령께서 영의 문으로 들어 오는 입구를 막고 서 있으므로, 성령께서 그 사람의 “죽은 영의 방”으로 들어가 그 영을 살리시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칼”인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의지가 굴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4:12은 이러한 절차를 우리에게 잘 이야기해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양 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판별하느니라.』
누가복음 1:46-47에서는 『내 혼이 주를 드높이며, 내 영이 하나님 나의 구주를 기뻐하였도다』라고 한다. 이 때 이 구절의 시제를 살펴보면 영이 먼저 기뻐하였고(my spirit hath rejoiced), 그 후 혼이 주를 드높이고(my soul doth magnify the Lord)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영이 먼저 기뻐하였고 그리고 나서 혼과 교섭하여 몸의 기관을 통해 감정으로 이를 표현하도록 혼을 구사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거듭난 성도에게 역사하시는 순서는 영-혼-몸의 순서이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나 육신에 속한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순서는 히브리서 4:12에 나와 있는 것처럼 먼저 혼을 통해서이다. 이 혼이 성령의 칼인 말씀에 의해서 찔림을 받고(눅2:35), 성령께서 그의 영을 살리시어 역사하시도록 의지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전쟁터는 바로 이 “혼”이다. 인간은 거듭나는 것 만으로 혼과 육을 지배할 수 없다. 우리의 혼이 영에 순복해야 한다.
『너희가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도표 II에서 보았듯이 우리의 영도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직관과 양심과 영교이다.
‘직관’은 영의 인식(감각)기관이다. 이것은 혼의 육감과 구별되어야 한다. 이 직관은 외부의 영향과는 무관하게 직감한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혼의 지성, 감정이나 의지의 도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즉각적으로 직감한다. 우리는 우리의 직관을 통해 확실히 알지만 반면에 우리의 지성(mind)은 이해를 도울 뿐이다.
‘양심’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기관이다. 이것은 우리의 직관으로 직감된 것을 거의 동시에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관과 양심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종종 혼의 ‘의식’이나 ‘추리’가 우리의 양심의 판단을 정당화시켜 주기도 한다.
‘영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나 느낌, 의도, 열심이나 열정, 종교적인 분위기는 혼을 자극하는 것이나 혼적인 활동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러한 혼의 활동을 통한 종교적인 제사가 아니다. 우리는 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요4:24).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하나님과의 영교는 우리의 혼이나 옛사람, 그리고 겉사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에서 행해진다. 하나님과의 영교는 우리의 예배, 기도, 소망, 경외, 찬양 등의 형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웥치만 니는 우리의 직관과 양심 그리고 영교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양심, 직관, 영교의 세 요소가 같은 상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대등한 기능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심과 직관의 상호관계는 양심이 직관에 따라 판단하며, 직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모든 행위를 정죄한다는 데 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으며 주님의 뜻이 직관적으로 계시되기 때문에 직관은 영교나 예배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가 이 영의 직관과 양심을 혼적인 육감과 의식으로부터 구별할 수 있게 하고, 또 정확하고 분명한 역할을 하도록 하는 방법은 오직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만 실현가능하다. 우리의 거룩함(성화)도 이 두 가지와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써 거룩하게 됨이라』(딤전4:5).
이러한 올바른 직관과 양심의 수행을 통해 우리는 참다운 영교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교제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영과 혼과 몸의 세 가지 기관, 그리고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에 대해서는 뒤에 있는 장들을 통해 성경적으로 하나씩 점차적으로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