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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도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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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7월호>
『누가 손바닥으로 물들을 헤아렸으며, 뼘[길이]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부피]에 담아 보았으며, 큰 저울[무게]로 산들을 달아보았으며, 작은 저울로 작은 산들을 달아보았겠느냐?』(사 40:12)인류 역사를 보더라도 여러 나라들을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더군다나 그렇게 통일된 왕국을 다스리는 일은 통일하는 일보다 더 만만치 않다. 무력으로 통일한 나라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처리해야 할 여러 가지 제반 사항들이 요구되는데, 그중에서 첫 번째가 “언어 통일”이고, 그다음은 “도량형의 통일”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경제 활동에 필요한 “화폐의 통일”이며, 마지막이 “사상의 통일”이다. 특히 통일된 도량형은 국가의 제반 시설과 경제 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량형”(度量衡)은 길이, 부피, 무게 등을 재는 방법을 일컫는데, 한자의 의미로 보면 “도”(度)는 “길이를 재는 자”를, “양”(量)은 “부피를 재는 되”를, “형”(衡)은 “무게를 재는 저울”을 뜻한다. 도량형으로는 중국에서 시작된 “척관법”과 유럽에서 시작된 “야드파운드법” 그리고 1875년 프랑스에서 조약으로 체결된 “미터법” 등이 있다. 그런데 한 나라 안에서 도량형의 기준이 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힘 있는 자들이 마음대로 잣대와 저울을 조정하고, 힘없는 백성들은 괴로움만 당하는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속이는 저울과 상이한 저울추에 대해 경고하고 계신다(잠 20:23). 도량형은 달력과 함께 언어와 문자만큼이나 국가 권력을 과시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충분한 국력과 기술력을 갖춘 국가만이 독자적인 도량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가 자신들의 도량형을 패전국에 강요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에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척관법”(尺貫法)을 정비해서 전국적으로 시행하게 하는 것이었다. 일본도 1909년부터 우리나라에 자신들의 척관법을 강요했는데, 거리를 나타내는 “자”(尺)와 “리”(里), 면적을 나타내는 “평”(坪), 무게를 나타내는 “관”(貫), “근”(斤), “돈”(錢) 등은 모두 메이지 천황이 1891년에 제정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량형은 오늘날 미터법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전 세계가 사용하는 “미터법”으로까지 발전해 온 이 도량형은 과연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님께서 주신 도량형
하나님께서 그분의 도량형을 인간에게 처음으로 나타내 보이신 것은 “노아의 방주”를 통해서였다. 노아의 방주는 “큐빗”이라는 길이의 단위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는데, 그 길이가 300큐빗, 너비가 50큐빗, 높이가 30큐빗인 커다란 나무 상자 배였다(창 6:15). 그것을 무게로 계산하면 약 21,000톤에 이른다. 하나님께서 만들게 하신 방주는 오늘날의 배처럼 동력이나 방향키가 없었지만, 엄청난 대홍수로부터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했다. 노아의 홍수 당시 내렸던 비는 오늘날 태풍이 몰아칠 때 시간당 내리는 비의 양보다 무려 160배나 많은 양의 비였다. 그것도 40일 밤낮으로 쏟아 부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전 지구적인 홍수를 견뎌야 했던 방주는 과연 안전했을까? 1992년 「한국창조과학회」는 방주의 설계가 얼마나 과학적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 실험을 의뢰했다. 즉 방주가 거센 파도에도 구조적으로 부서지지 않을 수 있는지, 파도에 따라 방주가 흔들릴 때 원래의 위치로 잘 돌아오는지, 방주가 뒤집히지 않고 안정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험을 한 것이다. 그들이 의뢰한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시설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실험 시설로 여기서 실험한 결과에 대해서는 과학적 신뢰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한다. 방주의 크기에 따라 약 21,000톤의 배 모형을 만들어 실험을 진행했는데 노아의 방주는 구조적으로 매우 안전해서 어떤 여객선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30m 이상의 실제 파도 높이에서도 운항이 가능한 것으로 입증되었고, 이론상으로는 43m의 파도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높은 파고가 32m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방주는 매우 안전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노아는 이런 과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방주를 지은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큐빗,” 곧 가로, 세로, 높이의 비율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지혜로 지어졌다. 모세도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척도를 통해 성막을 지었으며, 솔로몬도 다윗에게 영으로 알게 하신 대로 성전을 지었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만들었다(대상 28:11-19). 하나님께서 직접 마련하실 새 예루살렘 역시 그분께서 정하신 도량형에 따라 성벽이 지어진다(계 21:16,17).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도량형으로 『하나님의 건축물』(고전 3:9)도 짓고 계신다.
하나님을 대적한 인간의 도량형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량형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도량형일까? 노아의 홍수 이후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따라 나뉘어 살도록 명령을 받았다(창 10:5,18-20,25,31). 하지만 힘센 사냥꾼 님롯의 자손들은 시날 땅 바벨에서 성읍을 짓고 탑을 쌓기 시작했다(창 11:2-4). 분명 하나님께서는 『땅을 가득 채워 그[땅] 안에서 번성하라.』(창 9:7)라고 명령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경계를 벗어나 하늘에 오르려고 탑을 쌓기 시작했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저 멀리 우주를 정복하려고 탐사선을 쏘아 올리는 것처럼 땅에서 벗어나 번성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온 땅에 한 언어와 하나의 말만 있었기에 탑을 쌓는 데 필요한 통일된 도량형을 갖추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늘은 고사하고 5층 높이의 탑도 쌓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척도가 아닌 자신들의 도량형을 통해 돌 대신 벽돌을, 회반죽 대신 역청을 사용하여 탑을 쌓아 올렸다(창 11:3). 결국 하나님께서는 땅을 가득 채워 그 안에서 번성하라는 그분의 명령을 거슬러 하늘을 향해 탑을 쌓은 그들을 심판하셨으니, 곧 그들의 언어는 물론 척도(기준)까지도 흩어 버리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에 대한 야욕을 멈추지 않는 그들의 후손들은 더 먼 우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숱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하늘들에 앉으신 하나님께서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런 시도들을 비웃고 계신다(시 2:4). 일례로 1999년 미국의 화성 기후 탐사선이 화성 궤도에 진입하려다가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 탐사선은 원래 계획보다 약 100km 낮은 궤도로 진입하려고 했지만 궤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 원인은 “도량형의 불일치”였다. 즉 탐사선을 운용했던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미터법”을 쓴 반면,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은 “야드파운드법”으로 데이터를 전송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고안된 인간의 도량형은 그저 『무로 돌아갈』(고전 2:6) 지혜에 불과하다.
단순함에 숨겨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쇠막대기를 기준으로 시작된 오늘날의 미터법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을 이용하는 첨단 과학으로 더욱 정밀하게 발전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과학은 이처럼 복잡하고 정밀함을 요구한다. 특히 “원주율”(π = 3.141592...)은 모든 과학에 사용되는 무한히 이어지는 “상수”(常數)인데, 2020년 1월 “π”의 소수점 이하의 자릿수는 컴퓨터를 통해 50조 자리까지 계산되었다. 거듭나지 못한 죄인들은 π의 끝없는 소수점 이하 자릿수만큼이나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한편 인간의 정밀한(?) 과학과는 달리 하나님의 계산법은 매우 단순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척도는 쉽고 정확하고 완벽하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척도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다. 노아의 방주와 모세가 지은 성막과 솔로몬이 지은 성전 그리고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치수는 하나님께서 정하셨다. 특히 솔로몬 성전에 있는 “놋 바다”는 지름이 10큐빗이고 둘레가 30큐빗이다(왕상 7:23). 그렇다면 “원주율”(π)은 3.141592...가 아니라 “3”으로 딱 떨어진다. 하나님의 계산법이 잘못되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모든 수치들은 단순하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경계, 곧 지구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아니라면 수학자들이 말하는 π의 복잡한 개념은 사실상 불필요하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인간들의 지혜에 따른 과학을 어리석게 만드신 것이다(고전 1:20).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심으로써 빛이 있었고, 나무 상자 같은 노아의 방주를 통해 전 지구적인 대홍수에서 그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셨으며, 죽은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이리 나오너라.” 하시자 그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기간에 행하신 모든 이적과 기적들 또한 복잡한 수식과 정교한 수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세실 수 있는 정교하시고 놀라우신 분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 저편 셋째 하늘까지 다녀오셨을 때 걸린 시간은 고작 몇 시간 남짓이라는 사실이다(요 20:15-17, 마 28:1-9). 예수님께서 셋째 하늘까지 다녀오시는 그 속도를 인간의 뛰어난(?) 과학으로 어찌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도량형을 주신 목적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길이를 재고 부피를 측정하며 무게를 달아 보라”고 주신 도량형은 우주 정복을 꿈꾸는 과학자들처럼 탐심이나 채우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도량형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신비의 지식을 올바로 깨달아 아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 유한한 인간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날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손으로 직접 재 보아야 하는 것이다. 『보소서, 주께서 내 날들을 손 너비만큼 주셨으므로 내 연수가 주 앞에서는 없는 것 같사오니 진실로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도 다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시 39:5). 또한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우주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엡 3:18) 알아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누가 손바닥으로 물들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큰 저울로 산들을 달아보았으며, 작은 저울로 작은 산들을 달아보았겠느냐?』(사 40:12) 이것을 깨달은 죄인만이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초라하며,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베푸신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게 된다.
이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다(엡 2:22).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영들을 달아보고 계시는데(잠 16:2), 그 저울에 “함량 미달”(단 5:27)이 되어 하나님의 건축물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자리매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 성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엡 4:15).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