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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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게 된 무신론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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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11월호>

월터 루이스 윌슨(Walter Lewis Wilson) / 장은혜 옮김




나무랄 데 없는 의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현실이 이상하고 슬프다. 밤낮없이 고통 받는 환자를 돌보느라 생을 쓰건만, 죽음이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한지 알건만, 죽어 가는 혼의 안전에 관해서는 아무 대비가 없다. 그들은 자기 혼을 위해서도 준비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글은 캔자스의 작은 마을에 살던 한 의사의 이야기이다.


화이트 씨는 기독교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복음을 멀리했고 성경을 무시했으며 기독교의 원칙을 꽤나 반대했는데 바로 “죄”를 사랑해서였다. 기독교로 자유롭고 안락한 삶의 방식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에 죄를 그만두기보다는 그 종교를 없애 버리려 했다. 그렇게 해서 양심이 편해지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감사하게도 나는 화이트 씨가 사는 지역에 초청을 받아 어느 장로교회에서 여러 차례 집회를 갖게 됐다. 교회에 도착해 늘 그랬듯이 담임목사에게 그곳 의사들의 영적 상태도 물어봤다. 몇몇은 교회에 우호적이고 가끔 예배에도 참석하지만, 몇몇은 비협조적이고 모임은 다 멀리한다고 했다. 특히 화이트 씨는 적대감이 심해서 자신의 무신론 신조와 사악한 이론을 환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드러냈고, 그리스도인과 논쟁해서 이기면 고소해하며 흐뭇해한다고 했다.


의사라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인체가 얼마나 신비로운 기적인지를, 정신 과정이 얼마나 놀랍게 작동하는지를, 몸을 망가뜨리는 죄로 인간이 얼마나 참담하게 짓밟히는지를, 게다가 어둠 속에서 죽는 것이 얼마나 비극인지를 보지 않는가! 무엇보다 의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마음을 변화시키시며, 의를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는 능력을 혼에 심어 주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솔직히 의사는 자기가 몸에만 뭔가를 할 수 있지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성도는 평안과 위로가 넘치는 가운데 죽는 반면, 악인은 두려움과 공포, 절망에 압도되어 죽는 모습을 보면서 의사 스스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기도 한다.


화이트 씨에 대해 듣고 나서 그의 병원에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는데 선뜻 승낙을 얻었다. 더구나 그가 데려간 원장실에 한 그리스도인 교수 사진이 걸려 있어서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아, 윌슨 교수님 사진이네요! 교수님을 좋아하셨나 봅니다. 그분 강의가 유익했나요?”라고 묻자 그가 반색하며 답했다. “그럼요. 제가 제일 좋아하던 교수님이셨어요. 식견이 뛰어나시고 판단도 건전하신 그리스도인이셨지요. 또 본인 지식을 제가 잘 기억하게끔 설명해 주셨답니다.” “그러셨다니 기쁩니다. 실은 윌슨 교수께서 제 부친이셨거든요. 아버지께 배운 제자에게 그런 칭찬을 들으니 좋네요.” 그러자 직전까지 형식적이고 딱딱하던 그가 갑자기 자세를 완전히 바꾸더니 희색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요! 제가 크게 존경하는 윌슨 교수님의 자제를 만나게 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로교회에 설교자로 오셨나 보군요.” “맞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시간을 좀 내셔서 모임에 참석하시면 어떨까 해서요. 그러길 잘했다고 하실 겁니다.”


이제 화이트 씨는 나를 아주 친근하게 대하며 맞은편에 앉기를 권했다. “부친께서 제게 기독교에 관해 알려 주려고 애쓰셨지만, 뭐가 특별한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전 무신론자라 성경이 사실이라고도, 하나님이 존재한다고도 믿지 않습니다. 가끔은 그리스도인처럼 나도 믿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지만요.”라며 마음을 털어놨다. 그간 살아오며 이런저런 문제를 겪다 보니 생각이 더 신중하고 깊어진 듯 보였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일하고 계시다는 신호로 여겨졌다. 나를 초청한 목사의 의견과 달리 어쩌면 그가 복음을 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우리는 누군가가 드러내는 적대감과 반감을 실제보다 더 크게 받아들이는데, 막상 다가가면 겉보기같이 강퍅하지 않음을 자주 발견한다. “선생님, 성경에서 무엇을 믿지 않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참되고 정확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많을 텐데요. 그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서 그러시는 건 아니지요?” 성경이 진실하지 않다고 뭉뚱그려 말하는 사람에게는 성경의 어디를 가짜라고 자신하는지 밝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그래야 답으로 나온 구체적인 범위 안에서 그를 상대하다가 그가 딛고 선 발판을 잡아 뺄 수 있다.


“딱히 어디라기보다... 모두 다 믿지 않습니다. 제겐 성경이 동양 이야기와 전설에 당대 문명으로 색을 입힌 책 정도로만 보여요.” 나는 다시 물었다. “선생님, 성경이 개미, 나무, 중력, 강수에 대해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왕국들의 흥망, 인생에서 죄로 얻는 악한 결과를 다루는 부분도 진실하지 않다고 의심하세요?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또 왕은 의와 공평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성경의 명령도 부정확하다고 생각하시고요? 선생님께서 이런 기본 원칙을 부정하신다니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화이트 씨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부분은 다 믿어요. 성경에서 제시하는 윤리 규범이나 도덕 기준보다 훌륭한 잣대가 없지요.” “그나마 감사한 일이네요. 선생님께서 성경의 일부라도 사실로 믿으시고, 거짓이 아니라고 인정하시니 제 마음이 훨씬 가볍습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정확히 성경 어디가 거짓이고 정확치 않아 보이시나요?” 그러자 대번에 답했다. “전 누구라도 벌하는 하나님은 믿지 않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서 영원히 불타게 한다고 나오잖아요? 정말 혐오스러워요. 그런 인격을 가진 하나님과는 조금도 연관되고 싶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비열하고 더러운 사람들을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런 부류도 똑같이 복과 특혜를 영원히 누리기를 바라시나요? 하나님이라면 그런 사람들의 죄와 악함은 못 본 체하고 다 친구로 삼아서 영광스러운 집으로 데려가 함께 살아야 옳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아닙니다만, 지옥에서 벌을 받아야 한다는 점은 믿지 않아요.” 화이트 씨는 점점 심각해졌고 진지하게 문제에 몰두했다. “그럼 하나님께서 그런 악인들을 어떻게 하셔야 할까요?” “죽은 다음에 개심하도록 여러 단계를 두면 되지, 영원히 불타야 한다니... 납득하지 못하겠어요.” 계속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환자가 방문해 일어나야 했다.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요?”라고 그가 서둘러 말했다. “오늘 저녁에 ‘선하신 하나님께서 악한 죄인을 벌하실까?’라는 제목으로 설교합니다. 원하시던 주제이니만큼 들으시면 크게 도움이 되리라 여겨지는군요.” 그는 다른 계획을 미루고 꼭 가겠노라고 약속했다.


강단에 앉아서 화이트 씨가 출입문으로 들어오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두 번째 찬송을 부를 즘에 들어와 뒤쪽에 앉았다. 사전에 목사에게 성령님께서 그의 어두운 마음에 빛을 비춰 주시기를 기도드리자고 부탁한 상태였다. 설교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심판하시되 하나님의 판단에 따라 벌하신다는 점에 집중했다. 사람이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심판하다 보니, 하나님도 거기에 맞춰 죄인을 심판하고 벌하는 존재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다음 예화 한 편이 화이트 씨의 신념을 흔들어 놓았다. “여러분에게 열 살 난 딸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갈색 눈에 사랑스러운 곱슬머리를 한 예쁜 아이죠. 아버지는 그 외동아이를 마음 깊이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일을 마치고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가까운 숲에서 고통과 공포에 찬 비명이 연이어 크게 들려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아니겠어요? 아버지는 들고 있던 짐을 내던지고 소리가 나는 덤불 쪽으로 마구 달려갑니다. 아이는 어떤 잔악무도한 자에게 목이 졸리고 맞아서 끔찍한 모습이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라면 자신이 아이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아버지란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여기서 잠시 멈춰 회중이 상황의 심각성과 아버지의 심정을 충분히 공감하게끔 뒀고, 특히 화이트 씨의 표정을 살폈다.


회중은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답은 너무나 분명했다. “곧바로 그 인간 괴물에게 달려들어 온 힘을 쏟아 제압하지 않겠습니까? 경찰에 넘겨 합당하게 처벌받도록 조치하지 않겠어요? 증오와 복수심으로 그 짐승을 때려눕히고는 딸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이런 행동 모두가 가정의 보물인 그 아이를 사랑한다는 증거지요. 여러분이 딸을 사랑하는 만큼 폭행범에게 사정없이 대할 텐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셔야 할까요? 자기 아들을 미워하고, 욕하고, 조롱하고, 쫓아내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에게 말이죠. 하나님께서 이렇게 답하십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예화가 끝나자 화이트 씨는 의문을 해소하고 마음을 정한 듯 보였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기에 그의 원수들을 벌하시며, 하나님께 동의하지 않는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최대 적인 사탄을 따르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


다음 날 아침,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아들여 성도가 된 화이트 씨를 진찰실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이 펼친 논리가 잘못됐음을 인정했고,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내리신 판단을 받아들였다. 나는 그에게 요한일서 5장 12절을 말해 주고 나왔다. 『그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당신에게도 그 생명이 있기를 바란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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