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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서 돌이킨 자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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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11월호>
시편 86편은 「다윗의 기도」가 그 표제이며, 대부분 “경건”과 관련된 구절들로 이루어져 있다.『오 주여,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들으소서. 내가 가난하고 궁핍하니이다. 내 혼을 보호하소서. 내가 거룩함이니이다. 오 나의 하나님이여, 주를 신뢰하는 주의 종을 구원하소서. 오 주여,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내가 날마다 주께 부르짖나이다. 주의 종의 혼을 기뻐하소서. 오 주여, 내가 주께 내 혼을 들어올리나이다. 주여, 주는 선하시고 기꺼이 용서해 주시며 주를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자비가 풍성하시나이다. 오 주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음성에 주의를 기울이소서. 내 고난의 날에 내가 주를 부르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응답하실 것임이니이다』(1-7절).
“다윗”은 시작부터 기도하고 있다. 본문에서 보듯이(2,7절) 기도는 그것에 응답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이며, 신뢰는 기도의 가슴에 달린 영롱한 배지와 같다. 표제가 「다윗의 기도」이듯 다윗은 기도하고 있다. 그는 왜 기도한 것인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듣고 응답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히 11:6) 기도의 사람인 다윗은 이 점을 의심하지 않았고(7절) 다른 시편들에서도 살아 계신 주님께 무릎으로 나아갔다. 또한 율법의 말씀들을 가슴 깊이 사랑했던(시 119편) 그는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 내게 들어주소서. 주께서는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나를 구해 주셨으니 나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그러나 주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따로 세우셨음을 알라. 주께서는 내가 부를 때에 들으시리로다』(시 4:1,3). 『오 주여, 주께서 아침에 내 목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나의 기도를 드리고 바라보리이다』(시 5:3). 『주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으니 주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시 6:9).
기도는 성도의 “영적 호흡”이며, 기도에 깨어 있지 않은 성도는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죽은 것이다. 시편에서 기도들이 울려 퍼지고, 구약성경에서 모세, 사무엘, 다윗, 솔로몬,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하박국 같은 선지자들의 기도가 메아리치며, 신약의 복음서에서는 땀으로 범벅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가 핏방울로 맺혀 있고, 복음서를 벗어나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서도 기도가 요청되고 강력하게 명령이 내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날마다 묵상하고 공부한다는 이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경을 믿고 공부하고 전파하는 사람들이 맞는 것인가? 성경을 날마다 붙들고 살면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빵을 입에 문 채 숨을 멈춘 것과 같다. 숨을 쉬지 않으면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음식은 숨과 함께 십힌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말씀을 먹어도 먹는 것이 아닌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성경 묵상과 공부는 절대적으로 무의미하다. 그 일의 끝은 변절이기 때문이다.
『주여, 주는 선하시고 기꺼이 용서해 주시며 주를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자비가 풍성하시나이다』(5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의 원수가 되신 것 같으실 때조차 선하시다. 우리의 자백이 부족해 보여도 기꺼이 용서하시며, 죄인이 그분께 자비를 구하지 않을 때조차 자비로우시다. 주님께서는 죄인들 가운데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시어 오래 참으시고(벧후 3:9),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동일하게 비를 내리신다(마 5:45). 주를 부르는 모든 자에게 자비가 풍성하신 분께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롬 10:13) 받게 하시는 것이다.
“요나”는 이런 하나님을 싫어했다. 주님께서 앗시리아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에서 돌이키셨을 때, 요나는 “내 이럴 줄 알았다.” 하면서 자신이 주님의 부르심을 거역하여 타시스로 도망한 일을 정당화했다. 『이는 주께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며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매우 인자하시고 재앙에서 스스로 돌이키심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 4: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차라리 죽여 달라면서 성내고 따지고 들었던 요나에게도 자비하셨음을 알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그의 말을 일일이 들으시고 반응해 주셨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요나 자신에게도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매우 인자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던 것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세상 죄인들에게 오래 참고 자비하신 것처럼 죄짓는 우리에게도 그러하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판단하면서도 같은 일을 행하는 이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네가 그분의 선하심이 너를 회개하도록 인도하심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관용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무시하는 것이냐?』(롬 2:3,4)
『오 주여, 신들 가운데 주와 같은 이가 없으며, 주께서 하신 일들과 같은 일들도 없나이다』(8절). 신들 가운데 주와 같은 이가 없으시니, 주 그분만이 『홀로 하나님』(10절)이시다. 그분께서는 홀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들을 그들의 모든 군상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만물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만물과 함께 지으셨으며(느 9:6, 욥 9:8, 사 44:24), 홀로 경이로운 일들을 행하신다(시 72:18). 주께서 재림하셔서 사람들의 거만한 눈이 겸손해지고 그들의 교만함도 고개 숙이게 되면 오직 주님만이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사 2:11). 그때에는 세상의 모든 끝이 기억하고 주께로 돌이킬 것이며, 민족들의 모든 족속은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 주님 앞에 경배하면서 그분의 길을 배울 것이다(시 22:27, 사 2:3).
『주만이 홀로 하나님』(10절)이시라는 것은,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들이라고 불리는 (많은 신들과 많은 주들이 있어도)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하나님, 아버지』(고전 8:5,6)께서 계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느니라.』(사 44:6)라고 말씀하셨다.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바로 그분, 곧 유일하신 분임을 표현하는 이름이다. 『내가 그니라. 내가 처음이요, 내가 또한 마지막이라. 내 손이 땅의 기초도 놓았으며, 내 오른손이 하늘들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들이 함께 일어서느니라』(사 48:12,13). 그렇다면 이분은 시작과 끝이요(계 1:8), 처음과 마지막(계 1:17; 2:8)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시겠는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며, 처음과 마지막이라』(계 22:13).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딤전 3:16). 그분께서 재림하시면 『주께서는 온 땅을 치리할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한 분 주께서 계실 것이며, 그의 이름 하나만』(슼 14:9) 있을 것이다. 천년왕국 때 모든 민족이 와서 경배하고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해 드릴 분은(9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 주여,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 안에서 행하리니 내 마음을 모으사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내 마음을 다하여 주를 찬양하며 내가 영원무궁토록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리니 이는 나를 향하신 주의 자비가 크시며 주께서 내 혼을 가장 낮은 지옥으로부터 구하셨음이니이다』(11-13절). 다윗은 자신의 마음이 죄로 인해 잠시 흐트러졌음을 고백하고 있다. 주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모으시어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하신다면, 주의 진리 안에서 행할 것이라고 다윗은 기도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주께서 그의 혼을 가장 낮은 지옥에서 구해 주신, 크신 자비에 감사하면서 자신이 주의 이름을 영원무궁토록 찬양하고 영화롭게 해 드릴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이런 기도를 드렸던 것일까? 다윗이 가장 낮은 지옥에 갈 만한 죄를 지은 것은,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살인”한 일이었다. 간음과 살인, 이 두 죄는 구약에서 그 일에 대한 속죄제가 없는, 무조건 사형을 시켜야 할 가장 큰 죄였으므로(레 20:10, 민 35:17), 다윗은 이 두 가지 죄로 인해 자신이 “가장 낮은 지옥”에 갈 뻔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개별적이긴 해도 동일한 비중으로 다뤄지는 두 죄를 지은 것이다. 『의로운 사람들이 간음하는 여인들의 행실에 따라서, 피를 흘린 여인들의 행실에 따라서 그들을 심판하리니 이는 그들이 간음한 여인들이며 그들의 손에는 피가 있기 때문이라』(겔 23:45). 신약에서도 “간음”을 계속 경고하시는 것은 그 죄가 살인과 더불어 가장 큰 죄에 속하기 때문이다. 『혼인은 모든 면에서 귀한 것이니 침상을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히 13:4). 이것은 간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죄인들에 대한 경고이자, 간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소위 “성도”라고 하는 이들에 대한 경종이다. 지옥에도 “등급”이 있으며(마 11:23,24), 간음과 살인은 가장 낮은 지옥의 형벌을 보장한다. 간음은 실로 무서운 죄인 것이다.
다윗에게 있어서 “가장 낮은 지옥”은 실제적이고 문자적인 장소였다. 그곳은 “불붙은 숯불들”로 가득 채워진 『불 속 깊은 구덩이』(시 140:10)이다. 그가 그곳에 던져지지 않고 율법을 거슬러 특별한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은 『다윗의 확실한 자비』(사 55:3)의 진면모를 보여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점은 실로 그에게서 주의 이름을 영원무궁토록 영화롭게 하며 찬양코자 하는 마음을 활화산처럼 솟구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다윗과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주님의 이름을 영원무궁토록 찬양코자 함이 마땅하며, 바로 그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음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너희는 선택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요, 독특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너희로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니라』(벧전 2:9).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 12:1,2).
다윗은 본 시편을 마무리하면서, 그가 죄를 짓자 교만한 자들이 대적하여 일어났고 폭력을 행하는 자들의 집단들이 그의 혼을 찾았다고 기도한다(14절). 그들은 그들 앞에 주님을 두지 않았던 자들이고(14절), 자기들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던 자들이다(롬 1:28). 하나님의 지식이 없기에 성도들을 박해하고, 결국 멸망하는 것이다(사 5:13, 호 4:6). 그런 교만하고 무자비한 자들이 대적해 온다면, 즉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죄는 공격의 빌미를 주는 허점이다. 돌이켜서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오 주여, 주께서는 긍휼이 충만하시고 은혜로우시며 오래 참으시고 자비와 진리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니 오, 내게로 돌이키시어 나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주의 종에게 주의 힘을 주시어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15,16절). 참회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선을 베푸시면 우리를 미워했던 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 편이 되시어 우리를 향한 도움과 위로를 보여 주시기 때문에(17절) 그들은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다. 성도의 인생은 대반전의 연속이다. 죄를 지었다 해도 회개하고 돌이키라! 하나님께서도 당신에게로 돌이켜 자비를 베푸시고 힘을 주실 것이다. 자비로우신 분께서 그분의 아들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자녀들을 왜 돕지 않으시겠는가. 죄에서 돌이켜 살도록 하라!(겔 18:32)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