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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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더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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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11월호>

『그때 주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 곧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자가 예수의 품에 기대어 있더라』(요 13:23).
주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셨을 당시에 가시는 곳마다 수천의 무리가 따랐지만, 무리는 정작 그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들 중에는 주님께서 몸소 가시려던 성읍에 보냄 받은 칠십 명이 있다. 그들은 선택받은 제자였지만 그들 역시 일거수일투족을 주님과 동행하지는 않았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가까이하시던 제자들은 열두 명이다. 열두 제자는 최후의 만찬에도 함께했는데, 그들은 주님의 사역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놀라운 일들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것들까지는 알지 못했다. 열두 제자 가운데 주님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제자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인데, 그들은 주님께서 재림 때의 모습으로 변형되신 순간을 목격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으시던 이야기들도 따로 듣곤 했다(막 13:3). 주님께서 죽은 소녀를 일으키실 때도 이 세 명과만 동행하셨다. 시간이 흘러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기 직전 괴로워 죽을 지경이 되셨을 때, 주님께서는 이 세 명만 따로 데리고 가셔서 기도를 부탁하셨다. 그들이 주님의 짐을 나눠질 줄 기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언급된 제자는 단 한 명이다. 요한은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시는 주님 곁에 있었고, 그 요한에게 죽음을 눈앞에 두신 예수님께서 모친 마리아를 맡기셨다(요 19:27). 성경은 요한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자"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의심할 나위 없이 "편애주의자"시다. 그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주님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주님과 더 가까운 성도가 있다는 말이다.
주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던 요한에게 비밀이 없으셨다. 요한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주님을 배반할 제자에 관해 언급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 말씀을 듣고 다른 제자들은 "그가 나니이까?"라고 여쭈었지만 주님께서는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그들은 그 배반자가 자신인 줄 알고 슬퍼하다가 자기들 가운데 누가 그 일을 행할까 하여 그들 가운데서 묻기 시작했다(눅 22:23). 하지만 요한은 주님의 가슴에 의지하여 "그가 누구니이까?"라고 여쭙고 주님께 답을 들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빵 한 조각을 적셔서 주는 자가 그니라."고 하시고, 빵 한 조각을 적셔서 시몬의 아들 유다 이스카리옷에게 주시니라』(요 13:26). 주님께서는 요한에게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셨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기 이전의 이름을 알았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다(계 19:13, cf. 요 1:1, 요일 1:1). <한글킹제임스성경>에는 이 이름이 고딕체로 표기되어 있는데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계시록에만 등장한다. 오직 "요한"만이 이 이름에 대해 계시를 받은 것이다.
요한은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알았다. 요한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이 나온다.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이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율법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권면하지만,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은 그보다 한 차원이 높아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보이신 사랑은 죽음을 능가했고, 가장 두려운 심판조차 무릅쓰신, 희생적인 사랑이었다. 요한은 그의 서신서에서 새 계명에 대해 거듭 언급한다. 주님의 사랑을 풍성히 받은 요한의 서신에는 특히 "사랑"에 관한 계시가 풍성하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이는 사랑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으며 또 하나님을 아느니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라』(요일 4:7,8).
주님과 깊은 교감을 나누었던 요한은 부활하신 주님의 목소리만 듣고 그분을 알아보았다. 성경에는 공생애 기간 동안 주님을 가까이 알현했던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기현상이 몇 차례 기록되어 있다.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보았던 마리아는 주님께서 왜 울고 있냐고 물으셔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주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그들의 눈은 가려져서 성경을 가르쳐주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께서 멀리 바닷가에 계실 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목소리만 듣고도 『주시다.』라며 그분을 알아보았다(요 21:7). 그런 요한에게 주님께서는 미래에 있을 교회 시대와 그 후 이 땅에 펼쳐질 대환란, 천년왕국을 거쳐 영원 시대까지 아우르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주셨고, 그는 그 환상을 요한계시록으로 기록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사도 바울도 셋째 하늘로 끌려 올라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들었지만 그 일들을 말하지는 못했다. 그 특권은 요한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부럽지 않은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의 예표이기 때문이다. 요한이 누린 모든 특권이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피로 사신 신부를 온 우주 가운데 가장 가까이하시며 그녀에게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숨김없이 알려주신다(고전 2:16). 『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서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감추어져 왔던 신비의 교제가 무엇인지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려는 것이니 이는 이제 교회를 통하여 천상에 있는 정사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를 알게 하려는 것이라』(엡 3:9,10). 따라서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았다면 자신을 부르시는 음성만 듣고도 주님을 알아볼 것이다. 우리에겐 그 존귀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보좌가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365일 24시간 언제든지 하나님의 음성이 담긴 "성경"을 볼 수 있고 그분께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이 있지 않은가? 이 일에 게으른 사람은 주님께 더 나아가지 못한 게으름과 더 드리지 못한 인색함과 주님을 더 사랑하지 못한 냉랭함만이 생의 말미에 후회로 남을 것이다. 요한을 통해 보여 주신 "주님께 더 가까이"는 그가 예표하는 교회에게 주신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을 남의 일로 여기고 육신을 위해 계획하며 생을 소진한다면, 남는 것은 후회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주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과의 교제를 그 무엇과도 바꾸지 말라. 주님은 바로 이 시간에도 두 팔을 벌려 당신을 기다리신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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