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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리새인이었고 종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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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6월호>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한글킹제임스성경>과의 만남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놓여 있던 필연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된 지금에는 하나님의 자상하신 손길이 나를 진리로 인도하셨음을 깨닫는다.나는 신혼 때 아내를 따라 충북 청주에 있는 작은 개척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아내가 그 교회에 출석한 지 반년 정도 지난 어느 날, 교회를 지나는데 “들어와서 차 한잔 하고 가세요.”라는 말에 가던 길을 멈추고 교회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목회자 부부와 교인 몇 사람이 모여 교제를 나누고 있었는데, 첫 만남이라 다소 어색했지만 그 교회에 먼저 출석하고 있던 아내 때문이었던지 나를 친근하게 맞이해 주었다. “종종 커피 드시러 오세요!”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그 교회에 첫발을 들여놓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담임 목회자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 교회에서 침례를 받고 내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다. 수요 예배, 금요 철야, 새벽 예배, 주일 예배 등 예배란 예배는 빠짐없이 참여했고, 목회자가 이끄는 곳이면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부흥회도 참석하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도 했다. 때로는 은사주의 집회에 가서 “방언을 받아야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과 기도 생활을 할 수 있다.”라는 부흥사의 말에 속아 “할렐루야”를 수없이 반복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소위 방언이란 것을 터득할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 처사였는지를 깨달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 내가 했던 일들은 그저 하나님을 잘 믿어 보겠노라는 순수한 마음이 표출된 것들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다니던 회사에서 수도권으로 인사 발령이 나자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 지인의 인도로 한 장로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내가 하나님께 축복받는 길은 교회에서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차량 봉사로, 주일학교 교사로,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면 자원해서 힘닿는 대로 열심히 섬겼다. 새벽 예배, 철야 예배, 제자 훈련, 단기 선교, 사도신경, 주기도문, 크리스마스, 부활절, 불우 이웃 돕기(바자회),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 등 다양한 종교 의식과 활동, 사회봉사 등 교회에서 하는 일이라면 빠지지 않고 참여하려고 애썼다. 당시에 영적 분별력이 없던 나는 어느 간증 집회에서 “새벽기도회에 출석하는 성도가 신앙이 좋은 성도”라는 쓸데없는 간증을 듣고서 한동안 새벽기도회도 빠지지 않고 나간 적이 있었다. 또 필리핀에 가서 “단기 선교”를 체험하면서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은연중에 자랑하기도 했다.
헛된 종교 생활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성경을 가르칠 준비가 전혀 안 되었는데도 주일학교 유초등부 교사로 섬겼는가 하면, 중고등부, 청년부를 대상으로 강단에서 설교하고 또 성경을 가르쳤다. 매년 12월이면 크리스마스 때 공연할 성극 대본도 준비하고, 성극을 연습하느라 학생들, 청년들을 독려하고, “새벽송”을 돈다고 교인들의 집을 돌면서 찬송을 했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후회가 막심하다. 더욱이 크리스마스는 태양신의 생일로서 로마카톨릭의 “농신제의 날”로 지켜진 이교도들의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엔 성경 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성탄절의 행사에 “산타복”을 입고 동분서주했다. 이렇듯 교회 안팎에서 행해진 종교 활동을 통해, 나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거룩하고 경건하며 선한” 종교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한 육신적인 열성은 나를 점점 더 헛된 종교인으로 깊숙이 젖어 들게 했다.
그러던 중 출석하던 교회에서 담임 목회자가 다섯 번이나 바뀌는 은혜롭지 않은 일들을 목도했다. 그 과정에서 비록 지식은 없을지언정 적어도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순수했던 많은 교인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봤을 때, 이런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다소나마 깨달았다. 우물 안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혀 보니 그런 교회가 한두 곳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많은 개신교회 목회자들이 다들 자기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서 그럴듯하고 거룩한 말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있지만, 실상 그들은 자기들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하고, 내 편 네 편의 편 가르기로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모습들은 이 마지막 때의 배교한 교회들의 참상을 보여 주었다.
그 즈음에 나는 어느 목사에게 상담을 받을 기회가 생겨서 성경에 왜 “없음”이라는 구절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목사는 “원본이 보존이 안 되었기에 잘 모르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는 식의 모호한 답변을 했다. 그래서 내가 “그렇다면 예를 들어 마태복음 17:21은 “없음”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모르면 “모름” 또는 “잘 모름”으로 해야지 “없음”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자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목사님은 당연히 성경을 믿으시겠지요?”라고 묻자 목사는 “물론이지요.”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마태복음 24:35에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재차 질문을 하면서 “목사님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않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얼마간 침묵이 흘렀고, 나는 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채 무안함으로 가득 찬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소위 목사라는 이들은 그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에 대해 설교하지 않고, 거리설교는커녕 구령도 할 줄 모른다. 어쩌다 다른 교회에서 개인 사정으로 “수평 이동”을 해 온 교인들이 들어오면 마치 자기가 그 사람들을 구령한 것처럼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고 교인들의 수가 몇 명인가만을 과시한다. 개신교회의 대다수의 목회 현장이 이런 비참한 실정임을 깨닫고 난 뒤, 나는 내가 속한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한동안 번민했었다.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하나님께 “제발 우리 교회만큼은 교회다운 교회가 되도록 인도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인간적인 열심과 헌신이 참된 믿음인 줄 알았던 내가 성경 지식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도 않은 채 영적 분별력을 갖춘다는 것은 무리였다. 무지에 안주하는 것이 지독한 교만인지도 몰랐다.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에 갈등을 빚고 있을 때에도 개역성경이 하나님의 최종권위이고 성경의 전부인 줄 알았던 그때, 성령님께서는 내게 한 줄기 빛을 비춰 주셨다. 한 지역 교회 모임에 참석했다가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말씀을 읽고 공부하면서 진리에 눈을 뜨게 되었고, 성령님께서 비춰 주시는 큰 빛이 내 안에 들어와 영적으로 어두웠던 눈이 밝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나는 내가 출석하던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면서, 늘 준비된 교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일꾼이 되려고 킹제임스성경신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학사과정을 졸업한 뒤 지금은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또 주말에는 서울솔로몬학교 성경연수원에서 “단기 성경 연수 과정”으로 마음의 빈 공간을 말씀으로 채워 가고 있는 중인데, 벌써 그 횟수가 105기를 넘어섰다. 그리하여 진리를 알지 못했을 때는 막연했던 말씀들이 이제는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나의 보고(寶庫)가 되었다. 언제, 어느 신학교에서, 어떤 성경으로 이런 진리의 말씀을 배울 수 있겠는가? 내 입에서는 <한글킹제임스성경>으로 인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진리의 말씀을 공부하는데 사탄의 방해가 왜 없겠는가? 마귀의 방해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으라.』(엡 6:11)라는 말씀을 수없이 되뇌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성령의 칼, 곧 하나님의 말씀』(엡 6:17)을 평소에 갈고닦은 덕에 수많은 영적 전쟁과 방해꾼들을 이겨 낼 수 있었고, 말씀과 기도가 절실했던 순간순간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했다. 화물 탑차를 끌고 생업의 현장을 치열하게 누비는 속에서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시간을 사서 얻으라.』(엡 5:16, 골 4:5)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나의 갈 길을 달려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일학교 교사로서 체계적으로 준비되지 못해서 하나님께, 그리고 내게 배우는 학생들에게도 항상 부끄러운 일꾼임을 고백하던 중(딤후 2:15), 서울솔로몬학교 성경연수원에서 “주일학교 성경교사 자격증 과정” (12주) 모집 공고를 보고서 기쁨과 설렘 속에 공부하기 시작했고, 엄선된 성경 지식을 습득한 덕에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전과 다르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자신감은 인간적인 노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배운 진리의 지식에서 비롯된 담대함이었다. 이 모든 환경을 조성해 주신 하나님께, 또 진리의 지식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정리해서 가르쳐 주신 모든 교수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어찌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고후 6:14,15) 혹자는 이제 “성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에게 묻는다. 그러면 “성별해야지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해 준다. 그리고 언제 어느 때라도 주님께서 사용하시기에 준비된 자로 나아갈 수 있도록 훈련에 게으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나는 지금까지 35년간 개신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 기간 동안 나의 모습은 바리새인이었고 위선적인 종교인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나와 같이 제도권에 속한 개신교인들이 있다면 부디 하루속히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교회 행사에 길들여진 교인의 길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이 교회 저 교회를 부초처럼 방황하는 구원받지도 않은 교인들을 자기 교회로 끌어들여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며 교적부에 등록하고, 그들에게 종교 활동이라는 미명하에 즐길 수 있는 각종 세상 문화를 “교회 행사”에 연계시킴으로써 그것이 마치 믿음의 생활인 양 가증스러운 일들을 벌이는 곳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다. 그런 비성경적인 곳에서 정신을 차리고 바른 성경과 바른 진리를 믿고 실행하는 성도의 길로 과감히 돌이키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바른 성경으로 진리를 알면 그 어디서든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증인으로서 살 수 있게 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