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강단의 거성들 분류

보라! 흰 말을 - 클라렌스 에드워드 노블 맥카트니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8월호>

클라렌스 에드워드 노블 맥카트니
(Clarence Edward Noble Macartney)


우리 시대에 신실하고 위대한 강단의 거성들 가운데 그들의 교파와 관계없이 주님의 재림과 연관해서 행한 들의 설교를 살펴 봄으로써 재림에 관한 성경적인 교리가 과연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자.


클라렌스 에드워드 노블 맥카트니(Cla- rence Edward Noble Macartney, 1879 -1957)는 뉴저지주의 패터슨과 펜실베니아주의 필라델피아에서 사역을 했다. 그 후 피츠버그의 제일 장로교회에서 다시 목회하여 27년 간 사역을 하면서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그의 설교는 주일 예배뿐만 아니라 화요일 정오 만찬에서 더욱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는 특히 성경의 전기를 다루는 데 은사가 있었으며, 이런 점에서 “미국의 알렉산더 휘트”라고 불렸다. 그의 설교는 대부분 일반적인 본문을 다루고 있지만 항상 성경적이고 교리적이고 실제적이었다.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설교는 “겨울이 되기 전에 오소서”(Come before winter)일 것이다.
이 설교문은 <성경의 가장 위대한 본문 ; The Greatest Texts of the Bible>이라는 책에서 선정한 것으로 1947년 아빙돈 콕스베리 출판사에서 발행했으며, 1992년 크레겔 출판사에서 재발행한 것이다. 󰠏󰠏󰠏󰠏󰠏󰠏󰠏󰠏󰠏󰠏󰠏󰠏󰠏󰠏󰠏󰠏󰠏󰠏󰠏󰠏󰠏󰠏 <편집자 주>




클라렌스 E. N. 맥카트니 설교
윤 지 영 옮김

『또 내가 보니 하늘이 열리고 흰 말이 보이더라. 그 위에 앉으신 분은 신실과 진실이라고 불리며 의로 심판하고 싸우시더라』(계19:11).
요한계시록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바빌론이 멸망할 때 땅에서는 애곡이 하늘에서는 기쁨이 있게 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와 짐승과 용이 전복되고 흰 말과 흰 말을 탄 자가 피에 적신 옷을 입고 머리에는 많은 왕관을 쓰고 그 옷과 허벅지에 『왕 중의 왕이요 주 중의 주』라는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보게될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승리한다는 것을 알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승리의 확실성과 그 승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필요성을 살펴보고, 두번째로는 어떻게 해서 그 승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의하여, 또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오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승리의 확실성

바울이 탄 파선한 배에 있었던 선원들이 그들이 어떤 해변으로 가고 있음을 알았을 때 그들은 틀림없이 그 여행이 어떻게 해서 종료되고 있는지에 대해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표류하는 배와 같은 세상 역사의 끝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그런 후에 끝이 오리라』는 말은 사도 바울의 위대한 언급입니다. 끝은 시작과 마찬가지로 논리적이고 필수적인 것인데, 자연의 모든 대상과 과정들은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시작과 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이 밝으면 해가 떠올라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산너머로 지고 날이 끝이 나고, 밤이 시작되면 달과 별들이 떠오르고 마침내 그것들은 희미해져서 사라집니다.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밤이 끝난 것입니다. 작은 개울이 산마루 높은 곳에서 흐르기 시작해서 커다란 강이 되어 그 물로 땅을 축복하고는 강은 마침내 대양에서 강이 끝나게 됩니다.
성경만이 우리에게 인간 역사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끝을 말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의가 절정에 이르는 것을 보는 것도 성경에서입니다. 그 절정의 광채가 요한계시록에서 반사되어 비추고 있습니다. 하늘의 군대와 함께 내려오는 흰 말과 그 위에 탄 분의 모습보다 더 찬란한 광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확실한 승리가 보장되었다는 사실이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승리의 비젼을 갖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인내와 소망에 필수적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보는 것들이 우리가 믿는 것보다 더 강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용기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진리가 승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승리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그 어떤 목사도 승리를 외칠 수 없습니다. 여기 서서 시간의 긴 복도를 내려다 볼 때까지는 어떤 목사도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복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인간 역사의 폭풍우 끝에 무지개를 보는 것도 여기서이며, 이 세상 나라들이 우리 주 그리스도의 나라들이 되는 위대한 날에 울려 퍼지는 천둥 소리를 듣는 것도 바로 여기서입니다. 그 날은 너무나도 찬란한 광채가 넘치는 날이기 때문에 그 날과 비교해 볼 때 지금까지 이 세상에 비췄던 가장 밝은 날이라 할지라도 한밤중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빛도 어두운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이 소망은 로마제국 아래서의 교회에게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때 이교도 제국은 교회를 그 피 속에서 익사시키려고 분투하고 있었고 적그리스도가 그 얼굴에 새로운 가면을 쓰고 거짓말을 퍼뜨리고 진리를 왜곡시키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그 소망은 옛 로마시대의 교회 못지 않게 필요한 사항입니다.
이 세상에서 진저리나게 지속되는 악에 마음이 무뎌지고 무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악은 계속해서 부상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악의 확실한 멸망과 전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끊임없이 짐승과 싸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후에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서실 때, 모든 것이 그 분 발 아래 굴복할 것이고 흰 말과 그 위에 탄 분과 그 머리 위에 많은 면류관들과 하늘의 군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투쟁과 노고와 시기와 미움과 죄와 열정과 피와 죽음이 새 하늘과 새 땅에 굴복하고 그곳에서 의가 거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승리

의의 승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올 것입니다. 인간은 황금시대와 의와 공의의 승리와 우주적인 평화를 고대하고 있지만 이것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 무엇에 의해 끝이 온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점진적인 성장이나 발전을 통해서는 오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가 천년 왕국시대에 접근하게 되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가 발전의 법칙을 통해 운영되고 있으며, 그 법칙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공의와 선과 의의 물결이 점점 높아져서 전세계를 뒤덮을 것이고 불의와 사악의 조직들을 인간이 전복시키고 파괴시킬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시간일 뿐이다. 발전은 시간 문제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류가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도덕적 법칙과는 상관없이 끊임없는 발전만이 있을 것이라는 이 “가설”은 “사실” 앞에서 부서지고 맙니다. 이 “가설”은 제 1차 세계대전으로 거의 전멸되었습니다. 발전이 있으면 반드시 퇴보도 있게 마련이요, 건설이 있으면 반드시 파괴도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걸 만한 모든 것이 점진적인 발전과 교육과 과학이라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현재와 과거의 영원한 재현과 빛과 어둠 사이의 끝없는 전쟁과 인간의 몸을 놓고 싸우는 영원한 투쟁뿐인데, 이는 마치 미카엘과 마귀가 모세의 시체를 두고 싸웠던 것과 같습니다. 과학이 인간 몸의 3대 질병 즉 심장병과 결핵과 암을 정복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지식이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며 상한 마음을 치유케 할 수 있습니까?
어떤 이들은 의와 평화의 승리라는 위대한 끝이 점진적인 진보와 진화의 법칙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이 세상에서 현재 작용하고 있는 영적 힘의 확장과 발전을 통해 이루어 지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계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너무나도 악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진보를 생각해 보십시요. 약속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은 『어떤 여인이 누룩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에 섞어 전체를 부풀게 한 것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을 『어떤 사람이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린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그것은 참으로 모든 씨보다도 작지만 자라나면 푸성귀보다 커지고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보금자리를 만드느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비유가 무엇을 뜻하든지 간에, 열려진 하늘과 흔들리는 땅과 노고와 고통과 저주, 해가 어둠으로 바뀌고 달이 피로 바뀌는 것 등은 확실히 완성을 향한 점차적이고 점진적인 발걸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비유들을 통해서 우리는 선과 더불어 악도 성장하고 발전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독보리의 비유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곡식과 독보리는 추수 때까지 나란히 자라지만 최후의 승리는 지금 세상에서 힘을 발휘하는 종교적인 세력의 확장과 점진적인 발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또 다른 위대한 일을 통해서 올 것입니다. 역사의 절정은 우리 구원의 대장되신 그 분이 직접 전쟁터에 나타나심으로 이루어질 집니다. 그 영광은 요한이 본 것에 비견될 것인데, 즉 흰 말과 그 위에 탄 자가 그 머리 위에 많은 왕관을 쓰고서 정복하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내가 올 때까지 장사하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는 자정에 오실 지도 모른고 그는 제 3시에 혹은 제 4시에 오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몇 시에 오시든지 간에 『주께서 오실 때 깨어 있는 종들은 복이』 있습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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