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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영적으로 적합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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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2월호>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사역으로 부르시면 그 일에 걸맞는 능력을 주신다. “주님의 명령”은 “명령하신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심”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피조물이 날기를 바라시면 그 생물이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는 영역에 맞도록 날개를 주시듯 말이다. 설교자는 네 가지 면을 적절히 갖춰야 하는데, 이번 호에서는 영적인 측면을 다루고자 한다. 이 부분을 첫째로 다루는 이유는 가장 중요해서이다.1.
대중에게 설교하거나 가르치도록 주님께 은사를 받아야 한다.
이 은사는 성도 모두에게 주어지지는 않으며, 세상 교육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다. 에베소서 4:7-16에 그 사실이 아주 선명하게 나온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람들에게는 은사들을 주셨다.”고 하셨느니라... 그가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 제일 먼저 등장하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는 은사는 기초에 속하기에 더 이상은 필요치 않다(엡 2:20-22). 다음으로 “복음 전도자”는 주로 죄의 채석장에서 일하는데, 전파된 복음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서 죄인의 혼이 타고난 상태와 지위에서 구원을 받는다(롬 1:16). “목사와 교사”는 이 산 돌들을 경건하게 돌봄으로써 모양을 빚고자 애쓰며, 하나님의 말씀을 능숙하게 사용함으로써 그들을 세워 주고 가장 거룩한 믿음으로 지어지게 한다.
그리스도인이 모두 “복음 전도자”나 “목사와 교사”의 은사를 받지는 않지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는 모두 임명을 받았다. 그렇기에 성도는 구원하시고 지키시며 만족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야 하는 특권과 책임을 지닌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게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말씀하셨으며, 요한복음 15:16에서는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선택하여 임명하였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너희 열매가 남아 있어 너희가 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이것은 “못 자국 난 손”의 강력한 임명이며 성도 각자의 몫이다.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은사를 주님께 받았다는 사실이 당사자를 우월한 계급이나 전문가층에 두지도, 동료 성도 위로 승격시키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칠 때,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이 특별한 은사를 주님께 하듯 사용할 뿐이다. 그러니 마치 자신이 다른 성도들보다 낫거나 그들과 다르다는 식의 거만한 태도를 취할 이유가 없다. 성도 각자가 은사를 받았고 주님을 의지하는 겸손한 영 안에서 은사를 사용할 때 모임 전체가 세워지고 지어진다(고전 12:1-14:19).
오늘날 기독교계가 이른바 “성직자”와 “평신도”로 불경스럽게 구분하는 모습은 신약성경에 조금도 나오지 않는다. 단호히 말하건대 그런 구별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나왔으며, 2세기 초에 시작된 이후로 내내 말로 다 못할 해악을 끼쳐 왔다.
회중에게 설교하고 가르치는 성도는 독특한 은사를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는 승천하신 주님께서 그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은사를 주셨음을 깨달아야 한다.
2.
힘닿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받은 은사를 개발하려고 해야 한다. 이 은사를 가진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기필코 발전시켜야 한다.
1) 이 은사는 우선 진심으로 갈망해야 할 대상이다. 주님께서는 『최상의 은사들을 열망하라.』(고전 12:31)라고 권면하시며, 『사랑을 추구하라. 영적인 은사들을 열망하되 특별히 예언을 할 수 있도록 하라.』(고전 14:1)라고도 말씀하신다.
예언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한다”는 의미에서 그치지 않고 “널리 알린다”는 뜻도 포함한다. 즉 듣는 사람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선지자는 주님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다시 한번 명령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열망하고』(고전 14:39). 이런 구절들을 통해 설교자는 무엇보다 주님을 대변하고자 하는 강하고 거룩한 바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주님께서 성도에게 심어 주신 이 열망은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며, 경건하게 생활하고, 주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 속에서 방해 없이 커져야 한다.
2) 받은 은사를 일어나게 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썼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일깨우는 것은... 하나님의 은사를 불일듯 일어나게 하려 함이라』(딤후 1:6). 차나 커피에 넣는 설탕과 같은 방식으로 이 은사를 대해야 한다. 설탕을 휘젓지 않으면 바닥에 가라앉아서 쓸모없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설탕을 넣지 않았다면 음료를 아무리 저어 봤자 단맛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설탕과 휘젓기 둘 다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받지 않은 은사를 일으키려고 애쓰면 우리 말에 경청해야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문제가 일어난다. 솔로몬의 기록에 주의하기 바란다. 『거짓 은사를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누구나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잠 25:14). 이런 장황한 설교자는 심하게 긴말만 늘어놓을 뿐 축복을 담은 상쾌한 소나기를 가져오지 못한다! 청중은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거나 공개적으로 가르치는 은사를 가졌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장 잘 판단한다. 성경의 지침은 다음과 같다. 『또 예언하는 사람은...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판단하라』(고전 14:29).
은사는 맡은 과업에 몰두하고, 뜨겁게 기도하며, 부지런히 성경을 공부하고, 이미 가진 자원을 계속 씀으로써 자극을 받는다. “휘젓기”는 휘젓는 사람 편에서는 노력이 요구되기에 대부분 이 말을 반기지 않는다. 그래서 은사라는 문제는 하나님과 사람이라는 양면을 지닌다. 은사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고, 성실하게 공부하고 신실하게 전념하며 지속해서 사용하는 방법으로 그 은사를 일어나게 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3) 훈련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은사는 사용해야 향상되며 끊임없이 윤을 내야 더 빛난다.
음악, 미술 등 전문 직업에 숙달하려면 연습을 지속하는 방법밖에 없다. 설교하기와 가르치기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숙련된 피아노 연주자나 재능을 보이는 설교자를 쉽게 부러워하지만, 얼마큼의 노력을 집중해서 그런 결과물을 내는지는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영감의 90퍼센트는 땀이다.”라는 명언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각 사람이 받은 은사대로,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섬기라. 만일 누가 말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하고, 또 누가 섬기려거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처럼 하라. 이는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분께 찬양과 권세가 영원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0,11).
곧 살펴보겠지만 이 은사는 청지기직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은사가 맡겨진 유일한 이유는 주인을 대신해 최고로 이익을 내도록 투자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께서 두 가지 비유를 들어 두 가지 측면으로 이 진리를 설명하셨는데, 먼저 므나의 비유에서는 종 각각이 같은 양을 받은 다음 주인에게 『내가 올 때까지 장사하라.』라는 명령을 받는다(눅 19:12-27). 여기서는 종 각자에게 동일한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각각 특정한 은사를 받았기에 일생 동안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 주님께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 다음으로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종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른 양이 주어진다(마 25:14-30). 이번에는 책임이 아니라 능력이 강조된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모든 종은 능력이 아니라 책임에서 동등하다. 누군가가 책임(responsibility)을 “하나님의 능력(ability)에 인간이 반응(response)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참 옳은 말이다. 정리하자면, 므나는 복음이라 할 수 있고 성도 각자에게 맡겨졌기에 주인을 위해 혼들을 이겨오고자 애써야 한다. 달란트 비유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차등을 둬서 은사를 주심을 보여 준다.
4) 방치하면 잃게 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고한다.
『네 안에 있는 은사를 소홀이 여기지 말라』(딤전 4:14). 그리고 다음처럼도 썼다. 『“네가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주의하여 그것을 수행하라.”고 아킵포에게 말하라』(골 4:17). 애석하게도 은사를 소홀히 여기다 주님께 받은 사역을 완수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주님의 일을 마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도우소서! 게으른 종이 므나를 쌌던 손수건은 땀을 닦는 수건으로, 가까이 뒀다가 필요할 때 쓰려고 당시 종들이 허리에 두르던 물건이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 종은 실제로 이렇게 주장한다. 『주여, 보소서. 주께서 주신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손수건에 싸서 간직하였나이다. 당신은 엄격한 분이시기에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였으니, 당신은 두지 않았던 것에서 취하시고 또 심지 않았던 것에서 거두시는 분이시니이다』(눅 19:20,21).
“퇴화의 법칙”이라 불리는 자연에 존재하는 원칙이 있다. 이 법칙은 몸의 한 부분이 고의로 기능을 중단하면 정상적인 수행 능력을 잃는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다리를 쓰지 않으면 걷지 못하게 되는데, 다리를 조절하는 근육이 쇠약해져서이다. 인도에서 소위 “성인”으로 불리는 사람 중에 팔을 너무 오래 들고 지내 온 탓에 더 이상 팔을 내리지 못하는 이도 있다. 어떤 기록에 나오는 한 여자는 실연을 당하자 50년 묵언 서약을 했고, 그 기간이 지난 뒤에 말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긴 시간 사용하지 않자 성대가 위축돼 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부르셔서 설교의 은사를 주셨는데 그것을 소홀히 하거나 갈고 닦지 않으면 능력을 잃어 설교할 수 없게 된다.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는 엄중한 사실을 마음에 새기길 바란다. 다음의 시가 그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한참 전에는 내 재능이 눈부시게 밝았다.
‘써라.’ 주신 분께서 말씀하셨다. ‘더 빛나게 될 것이다.’
사용했더니 얼마나 반짝이던지! 그러던 어느 날,
그저 순간의 충동으로 그 은사를 치워 버렸다.
수년을 흘려보내면서도 만지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그것을 찾아본다. 하지만 가고 없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계속 발전시키는 데 드는 노력이 싫다고 두루 쓰기를 그만두면 좀과 녹이 연합해서 치명적으로 해를 입힐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소리 없이 활동하지만, 숨겨 두어서 쓰이지 않는 보물에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오는가!(마 6:19,20) 우리 가운데 말 그대로 그리스도인 수천 명이 존경받는 설교자요 성경 교사가 됐을지 모른다. 은사를 등한시하지 않고 마땅한 노력과 헌신을 했더라면 말이다. 그들은 성공한 듯 비칠 수도 있으나, 슬프게도 그들의 인생 위에는 분명 “실패”라고 쓰일 것이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반드시 서야 하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우리의 섬김 전부가 정확하게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가 평가되며 그에 따라 주님께 상이나 손해를 받을 것이다(고전 3:10-17). 우리 모두가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칭찬을 듣기를!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라』(마 25:21).
3.
영적인 분위기에서 이 은사를 육성해야 한다.
영적 은사를 사용하려면 영적 능력이 필요하다. 즉 설교자 자신이 영적이어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존경받은 헨리 그로브스가 초기 제자들에 대해 무게를 두고 했던 말을 인용하는 편이 좋겠다. “다름 아닌 영적인 일을 해야 했기에 주님께서 그 일을 할 제자들을 영적으로 만들어 주셨다. 바로 믿음을 심어야 했기에 선교사들을 믿음의 사람들로 만드셨다. 금과 은이라는 우상에게서 나라들을 구해야 했기에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갖지 말라고 하셨다. 지혜라는 우상에게서 사람들을 구해야 했기에 제자들이 어리석어 보이게 하셨다. 힘과 권력이라는 우상에게서 세상을 구해야 했기에 제자들을 약하게 하셨다. 명성이라는 우상에게서 구하고자 제자들을 멸시받게 하셨다. 다시 말하면 보내서 전파하게 할 교리의 모든 면에서 제자들을 본보기로 만드신 것이다. 교회에는 참으로 이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뜻 안에 서 있고자, 또 실행하고자 하는 누구라도 이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교회에서 사역을 하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복음을 전하든 말이다. 가르친 진리대로 살아야 하고, 또한 뿌리내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원리들에 대해 귀감이 되어야 한다.”
설교자가 이와 같이 영적으로 강건한 기질을 유지하려면 영적인 위생 법칙에 따라야 한다. 규칙적으로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야 한다.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냄으로써 천상의 공기로 깊이 숨을 쉬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주님을 섬기는 기회에 즉시 순종으로 응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리의 빵을 자기 인격의 피와 뼈와 근육과 신경으로 바꾸고자 애써야 한다. 이것이 설교자가 주님의 포도원에서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유일한 영적 환경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