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절망에서 회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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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7월호>

메르스, 즉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이 우리나라에 스며들어 와서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최초 감염자는 68세 된 남성으로 사업차 바레인에 약 15일간 체류했었는데 5월 11일 확진 판정이 났고, 그를 간병했던 부인도 2차 감염이 되었는데, 현재는 치유된 상태라고 합니다. 그 여인은 자기 남편 한 사람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를 겪고 있는 것을 보고 송구의 마음을 표명했습니다. 6월 11일 현재까지 한국인 감염 환자는 122명이고, 10명이 사망했습니다. 격리 수용된 사람이 벌써 3천8백 명을 넘어섰습니다. 병명은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이며, 첫 환자는 2012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메르스 발생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한국, 요르단, 카타르, 이란, 오만, 튀니지, 알제리, 영국,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오스트리아, 레바논, 말레이시아, 필리핀, 중국, 이집트, 예멘, 쿠웨이트, 미국 등 총 25개국에 이릅니다. 이 중에서 한국만 매우 소란스럽습니다.
메르스의 증상으로는 고열, 오한, 두통, 객혈, 호흡곤란, 구토, 설사, 인후통, 근육통 등이 있습니다. 환자의 침방울과 직접적인 접촉으로 감염 전파됩니다. 공기 전염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발병부터 사망까지는 약 12일이 걸리고, 치사율은 40%에 이릅니다. 문제는 치료 방법이 아직은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가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이 사건은 1347년에 발병했던 페스트, 즉 흑사병을 떠올리게 합니다. 흑사병 창궐은 1351년까지 4년간 지속되었는데, 약 7천5백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숫자였습니다.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자 노동력이 현저히 감소했고, 따라서 산업이 위축되자 고생이 극심했습니다. 거기서 시작된 것이 르네상스 운동이었습니다.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자, 도시 정부들이 재빠른 조치를 취했습니다. 사망자들을 매장하고, 식량을 확보했으며, 격리와 검역을 실시하고, 의료인들을 고용하여 여러 가지 규제 조치를 취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격리 병동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제야 국립의료원을 격리 병동으로 지정했습니다. 방송들은 호떡집에 불난 중국인들처럼 시끄럽기만 합니다. 일이 벌어졌으면 수습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위기관리능력이 부족합니다. 서울시장까지 나서서 독자적으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습니다. 메르스가 서울에만 피해를 줍니까?
예수님 당시 베데스다 연못가에 진치고 있던 환자들의 유일한 소망은 천사가 내려와 그 물을 움직일 때 물에 먼저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들어간 환자는 병이 낫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38년 동안이나 그 소망을 붙잡고 지냈던 환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38년간 소망 없던 환자가 예수님을 만났더니, 물에 들어가지 않고 낫게 되었습니다.

절망에서 회생으로
I.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였습니다(3,4절).
유일한 처방은 베데스다 연못에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첫 번째로 들어간 사람은 무슨 병을 가지고 있든지 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망선고를 받고 태어난 죄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이는 마치 베데스다 연못가에 자기 병을 치유받기 위해 모여든 환자들과 유사합니다. 누구라도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록 치명적인 병은 아닐지라도 자기만 알고 있는 병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웰빙을 말하면서 방송매체를 통해서 온갖 처방들이 나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는 것입니까? 부모들은 무엇을 배웠기에 비만아를 길러 냅니까? 어린 나이에 제대로 길렀더라면 의료비를 많이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 정부는 의료보험료를 올리려고만 하고 사전에 질병억제책을 강구하지 않는 것입니까? 요즘 들어서야 생활체육이 등장했습니다. 전에는 기껏해야 도수체조뿐이었습니다. 방송 매체들은 무엇을 먹고 무엇은 먹지 말라고 합니다. 무슨 체질은 어떤 식품을 먹지 말라고 합니다. 골라 먹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어야지, 당장 먹을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지침은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북한 사람들에게 그런 처방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쪽방촌 거주자들, 무료 급식소에서 그런 지침이 통하겠습니까?
왜 베데스다 연못에 누워 지내는 38년 된 환자가 성경에 등장했을까요? 사형선고를 받고 영이 죽은 채로 태어난 인간은 누구라도 그 환자와 같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까지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 볼 수 없다는 진리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사스(SARS)가 공포스럽고, 메르스만 무서운 것입니까? 나병, 에이즈, 급성폐렴, 급성신부전증, 심장마비, 뇌졸중, 급성간염, 정신질환은 견딜 만합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질병뿐입니까? 전기 누전과 가스 폭발로 인한 화재는 어떻습니까? 5월 21일 오후 5시 반포의 한 빌라에 불이 났는데, 90세의 노모를 둔 62세 된 딸이 90세의 어머니는 집 속에 방치한 채 애완견만 데리고 나왔습니다. 소방차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한 한 경찰관이 불 속으로 들어가 그 할머니를 업고 나왔습니다. 개보다 하찮게 여겨진 여인은 개보다 못한 딸을 키웠던 것입니다.
메르스만 무서운 것입니까?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는 것이 메르스뿐입니까? 화재, 살인, 갈등, 자동차 사고, 음주운전 등으로도 사람들이 죽습니다. 메르스로 인해 음주운전 단속을 중단하고, 초중고교들은 휴업하며, 병원, 음식점, 학원, 극장, 술집 등은 텅텅 비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기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군대는 어떻게 국방의 의무를 해야 합니까? 병이 무서우면 모든 일을 중단해야 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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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38년 동안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던 한 병자가 거기에 있었습니다(5-8절).
38년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긴 세월인가는,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강점되었던 36년보다 더 길다는 것으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여기 앉아 있는 회중 가운데 38세 된 성도들은 자기가 살아 온 역경의 생이 얼마나 길었던가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222개국 중에 평균 수명이 가장 짧은 나라는 스와질란드로 34세라고 합니다. 여기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지내며 자기 병을 낫기 원했던 환자는 스와질란드인의 평균 수명보다 4년 더 많게 누워 지내면서 자기의 병을 낫기 원했습니다. 병들어 일도 못하고, 먹고 배설하는 것도 자력으로 하기 어려웠다면, 그는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자고 나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다른 병자가 물에 들어가 병이 낫고 집에 갔다는 소식을 듣고 눈으로 봤다면 얼마나 부러웠을까요?
베데스다의 자비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자비가 아니라, 천사가 내려와 연못물을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간 한 사람만이 그의 병이 치료되는 제한된 자비였습니다. 거기에 어떤 전제 조건이나 후속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곳에 모여든 환자들은 그곳에 있는 동안 계속 긴장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움직이는 물을 기다리는 삶, 그 은총이 그의 생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그를 치유시킬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그 어떤 죄인이라도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공중에 오실 때 우리는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의 음성을 듣기만 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6-18).
이스라엘 백성들은 파란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했었지만, 카데스바네아를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널 때까지는 3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38년 동안이나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기다렸던 이 환자는 영적으로 볼 때 병든 이스라엘 민족과 같았습니다. 파란 광야에서 38년 동안이나 방황했던 이스라엘 백성 중에 그들이 카나안 땅으로 가게 될 것임을 의심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곳에서 그들은 모두 죽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렸던 사람들은 그 땅으로 가게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약속을 믿지 못했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종교들을 골라잡은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교회라는 곳을 하나 골라잡고, 자기가 편리할 대로 다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왜 그런 곳에 다닙니까?”라고 물으면 답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쓸데없는 일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시고 하나 골라잡아 심심풀이하라고 써 있는 곳이 성경에 있는가 보십시오! 성경은 우리 몸처럼 유기체입니다. 불필요한 말씀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성경은 무오하고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감이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사람이 받아 쓴 것이지, 코란처럼 간질병 환자가 발작이 끝나면 지껄였던 소리를 받아 적은 것과는 다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 환자를 보시고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6절) 그 병자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다 밀어 넣어 줄 사람이 없나이다』(7절).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8절). 그 말씀 한마디로 그의 38년 생애의 고통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불안, 초조, 번민, 요행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의 생애가 그렇습니다. 완벽한 영생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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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예수님은 종교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9절).
페스트가 창궐했을 당시, 어떤 치료책도 없었을 때 일종의 의식으로 대응하려는 미신과 괴담들이 생겨났었습니다. 카톨릭 교회가 의식을 행하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서로에게 채찍질을 하면서 고행을 즐기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었고, 유대인들이 안전하자 그들을 습격해서 분풀이를 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인간 집단에게는 재앙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종교들이 파고들어 푼수 짓을 하는 것이야말로 마귀의 사주를 받은 것입니다. 사스나 메르스는 사촌 간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권면은 의료진과 간병인은 장갑, 마스크, 가운 등을 착용해 환자와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라는 것뿐입니다. 손을 깨끗이 씻고, 몸도 정결케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들 간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과 권면은 성경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대적함으로써 하나님을 이미 진노케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해 놓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들을 용서받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이고, 이 우주에서 하나님 한 분만이 베푸실 수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거나 무시하면 저주를 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명령에 순종하면 질병, 재앙, 사고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영생을 얻습니다.
주님께서는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표를 지닌 성도들 말입니다. 주님께로부터 자비를 받기 원하면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의 목전에 기쁨이 되는 일들을 행함이라』(요일 3:22).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기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17:6에서도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뽕나무에게 말하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겨지라 해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썩은 세상에서는 메르스나 사스보다 더 무섭고 강력한 질병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창궐할 수 있습니다. 대재앙들도 예고 없이 올 수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려면 주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잠 1:24-33). 38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 소망 없이 또 하루를 보내야 했던 그 소망 없는 사람에게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겠습니까?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신 그 일에 대해서, 그들은 그 날이 안식일이므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식일인데 네가 침상을 들고 가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도다』(요 5:10). 당시 유대인 제사장,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못했기에 그들의 종교의 상징을 제시했습니다. 안식일을 38년간 지켰다면 그가 나을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을 때도 『소녀야, 일어나라.』(눅 8:54)는 말씀이 전부였습니다. 또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을 때에도 『젊은이여,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 7:14)가 전부였습니다. 요한복음 11:43에서도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시체에게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하셨더니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단지 그분께서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메르스가 침투한 나라가 25개국이나 되는데 왜 이 나라만 소란스러운 것입니까? 마피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은 정쟁만을 일삼고, 노조 간부들, 로펌, 공기업들 등 “마귀가 내린 직장들”을 보십시오. 철도공사의 채무는 17조 5천억 원이고 매년 5천6백억 원씩 적자가 나고 있습니다. 그들 중 국가를 먼저 생각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내린 벌입니다. 고집 센 이집트의 파라오를 굴복시키기 위해 열 번의 재앙을 내리셨음에도 그가 끄덕하지 않자, 사람이나 짐승이나 첫태생을 죽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을 살리시고 불치의 병자들을 치유시켜 주셨던 것은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믿고 새 생명을 얻으라는 것이었지, 세상으로부터 인기를 얻어 교회를 더 세우고 인정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동안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던 그 환자보다 배나 더 인생을 살았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고투했던 생을 살면서도 고생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40세에 주님을 만난 이래로 저는 단 한 번도 환경이나 질병이나 사람을 두려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사스가 지나갔고, 메르스가 왔어도 제가 주님께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만 생각할 뿐, 그따위 바이러스들이 나를 해치고 죽여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할 것이라고 염려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죽음이 나를 엄습할 때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만 택하라 한다면, 저는 이제 그분을 소유했노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인해 몰살당하기 전에 살려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여기에 실린 “이달의 설교”는 요약된 것입니다. 이 설교의 전문을 포함해 이송오 목사님의 매 주일 설교를 성경침례교회 홈페이지(www.kjv1611.or.kr)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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