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하나님의 은총을 아는 길 [욥 33: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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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4월호>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서 교제를 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사귀려면 마음을 열어야 하는데 상대가 마음을 열기까지는 사귀면서도 계속해서 탐색을 해야 합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아직 완전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성급하게 거래를 이루려고 했다면 거기에는 실패만 남게 됩니다.이것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적인 감성이나 열성만으로는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한 믿음과 지식으로 다가오지 않으면 교제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다가서려면 영과 진리로 다가서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육신적인 사람이 하나님의 법칙을 무시하고 기도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의 법칙을 말씀하시는데 인간이 그 법칙을 무시하고 자기의 열성이나 헌금, 선행 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했다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육신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롬 8:5-8).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주님을 위해서 한 번 큰 일을 하고 나서 돌아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의 또 다른 일에서 주님과의 교제를 영원토록 이어가는 사람입니다. 과연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영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소유를 주님의 목적을 위해서 합당하게 내어드리고 심지어 생명을 드렸다 해도 보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싫증남과 나태에서 깨어나라고 우리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인간의 나약함, 즉 질병과 노쇠, 죽음의 실상을 보여 주시고, 인간 스스로 자기의 운명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보화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역경과 시련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의뢰하도록 만드십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책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그렇게 행하는 사람과 교제를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돌보심이 얼마나 자상하신가?
I. 주님은 우리를 깨우쳐 주시려고 애를 쓰십니다(14-18절).
『하나님께서 한 번 말씀하시고 두 번 말씀하셔도 사람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도다. 사람이 깊은 잠이 들어 침상에서 곤히 잘 때 꿈이나 밤의 환상 가운데 그분께서 사람의 귀를 여시고 그들의 교훈을 인치듯 확정하시니 이는 그가 사람을 자신의 목적에서 물러나게 하시고 사람에게서 교만을 숨기려 하심이라. 그분은 사람의 혼을 구렁에 빠지지 않도록 붙드시며 그의 생명이 칼에 멸망하지 않도록 붙드시는도다.』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자상하게 우리를 돌봐주십니다. 정말 하나님의 손길로 보호받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자주 주셔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지 않거나 그 말씀에 유념하지 않거나 그 말씀이 자기와 무관하다고 생각해서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셔서 보여 주신 것은 인종이나 성별, 사회적 성취, 교육의 유무, 잘생기고 못생긴 것에 초점을 맞추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즉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조건도 형성하지만 또한 심판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모두 죽고, 지옥행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무관한 인간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딤전 2:4).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조건은 그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글을 알거나 글을 모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롬 10:17). 성경책에 기록된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을 수 있으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어서 믿을 수 있게 되면 성장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면 하나님과 교제가 있게 되고, 교제가 있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행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기의 뜻을 계시하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모세 이전에는 꿈과 환상이나 현현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간접적인 방법이었으나 신명기 34장 이후에는 사람이 친구와 대화하듯이 모세와 마주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앞에 계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다 들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책으로 기록한 것입니다(신 31:24).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나 특정한 무리들에게 무엇을 알려 주시고자 할 때는 그분의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하시는 능력과 방법을 제한해 버리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진리와 무관하게 살면서도 하나님의 계시만을 바라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은 마귀에게 속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주님은 자신을 계시해 주십니까? 아닙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대로 계시를 해주시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을 지상에서 실행하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를 지으신 분의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두며, 속이는 사람은 속게 된다는 것입니다(갈 6:7).
그리스도가 거부되고 성경이 왜곡되는 곳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단 하나의 결정도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판단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 나쁜 것들을 좋은 것들로 바꾸실 수 있다면 진리를 거부하는 죄인들을 위해 좋은 것들을 나쁜 것들로 바꾸실 수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롬 8:28).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환경으로, 질병으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려고 하실 때 깨우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진리에 더 가까워지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돌보심이 얼마나 자상하신가?
II. 인간의 불행은 전능하신 분을 쳐다보게 하기 위함입니다(19-22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기대를 거시고 그들을 430년간의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구출하시어 카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이 기간 동안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충분한 교제 기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보면서도 신뢰받았던 사람은 여호수아와 칼렙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배교했다면 그들 밑에 있는 사람들의 상태는 어떠했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인간들은 충분한 시간을 받고서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데 있어 헛되이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께 신뢰를 두지 않고 소진되고 말 재물에다 두며, 또 한 가지는 자기들의 의를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욥은 인간의 파멸을 자신의 상황으로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욥기를 통해 욥의 삶에서 보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자기 의에 찬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신뢰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병을 허락하십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어도 식욕을 잃게 하시면 보고도 못 먹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별장에 좋은 침상이 있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조금 있으면 뼈만 앙상한 몸으로 장의사의 손에 넘겨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현실이고 이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은 부정적인 것입니다. 여의도의 어떤 목사가 얘기하듯이 인생은 긍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인간의 파멸이 없다면 인간은 자기만족에서 죄악을 행하면서 인생을 말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무관하게 살았던 사람이 기록한 자서전은 출간되자마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서전을 쓰고 출판기념회를 하는데 진리와 무관하게 산 사람은 아무도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리와 더불어 살았다면 남겨 둘 가치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배울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제 동아일보에 13세 소년이 1년 9개월간 백혈병으로 투병을 하다 죽으면서 남긴 글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11살 때 백혈병이 왔다. 너무 억울하고 슬프다. 맞는 골수가 없다고 한다. 엄마를 믿고 용기를 내자. 옆 침대의 아이가 죽었다. 천국에서 잘살기를... 피오줌이 나온다. 누가 나를 좀 살려 주었으면... 바다에 가보고 싶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깨달음을 얻었어. 파란 하늘, 맑은 공기, 이런 걸 느끼기만 해도 큰 행복이라는 것을.” 사람이 생의 한계에 다다르게 되면 애절하다 못해 아주 진지해집니다. 이것은 어떤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우리들, 곧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일입니다.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병마로 인해서 고통받다 죽는 것뿐만 아니라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인생의 짐들을 벗어 버릴 수 없는 가난의 고통과 갈등과 증오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별이 있고 그 결별의 아픔을 겪으며 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전쟁과 늙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으십니까? 인간의 목적과 의도를 패배시키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욥은 결국 자기를 보았고, 알았고,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주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어떤 생각도 주께 알려지지 않을 수 없음을 내가 아나이다. 지식 없이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그러므로 나는 깨닫지 못한 것을 말하였으니 그것들은 내게 너무 경이로워서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내가 간구하오니, 들으소서, 내가 말하겠나이다.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나로 알게 하소서. 내가 주에 대하여 귀로만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보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미워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더라』(욥 42:2-6).
이것이 정답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잘살았던 솔로몬이 내린 결론도 정답입니다.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모든 의무니,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임이라』(전 12:13,14).
인생의 모든 것을 잃고 죽을 지경에까지 이른 욥과 가장 행복하게 살았던 솔로몬이 내린 결론입니다. 우리는 그 두 사람처럼 살지 않았기에 그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알려 주시려고 그 말씀을 기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기도하면 복 받는다고 운운하는 자들은 교회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참으로 많은 교인들과 그의 추종자들을 파멸로 인도하는 그들은 교회놀이를 하는 사기꾼들입니다.
주님의 돌보심이 얼마나 자상하신가?
III. 하나님께서 소망 없는 인간을 새로운 탄생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23- 28절).
3500년 전에 했던 말과 지금 우리의 말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새로운 생명을 얻고, 그 몸값이 피로 지불되었으며, 혼이 구원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부활하여 새 몸을 얻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교들도 구원을 말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자들조차도 자기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복음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난파선과 같습니다. 곧 끝나 버릴 이 땅의 생을 만족하며 살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기의 살 날이 엄청나게 많이 남은 줄 압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 늙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자동차 사고로 죽고, 병들어서 죽고, 전쟁으로 죽고, 재앙으로도 죽고 결국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떻게 살았건 인간이 드러눕는 관 속에는 똑같은 잔해만 있는 것입니다. 회칠한 무덤처럼 겉은 아름답게 보이나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마 23:27).
그렇다면 살아 있는 사람들은 깨끗합니까?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히느니라. 이는 속에서, 즉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간음과 음행과 살인과 도둑질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눈과 하나님을 모독함과 교만과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니, 이런 모든 악한 것은 속에서 나와, 그 사람을 더럽히느니라.”』(막 7:20-23). 이렇게 더러운 인간이 죽었는데 그 관 안에 깨끗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었다면 이런 인간들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썩은 새끼줄 같은 종교를 붙들고 살다가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시작된 나라들은 복이 있습니다. 영국이나 독일, 미국은 국가가 찬송가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도 하나님의 진리에서 돌이켜 배교로 치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가 그분을 믿는 순간 더러운 것을 다 제거하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욥 33:27,28).
욥기 5:7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났습니다. 어두움을 경험하지 못하고 밝은 태양 아래 살았던 사람이 어떻게 빛의 필요를 알 수 있겠습니까? 소진되고 있는 인생에서 진리의 빛을 보게 하시려고 개개인에게 고난을 허락하셨다면 그래도 여러분들이 자기의 의와 소유를 신뢰하면서 살겠습니까?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쳐다보고 은총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서 책을 통해서 그분을 알고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이 길 외에 또 다른 신뢰할 만한 길이 있습니까? 이 길이 가장 정확한 인생의 길인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진리를 아는 길입니다. 이 길을 찾았다면 꾸준히 걸어가야 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요 14:6).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