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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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달석 목사의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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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10월호>

“진리냐 지식이냐”


서달석 목사는 전에도 그가 펴낸 잡지를 통해 필자에 대하여 두 번 이상, 또 럭크만 박사에 대하여 한 번 신랄하게 비평한 적이 있다. 그래도 대응할 아무런 가치가 없어 그대로 묵과했었는데, 이를 악용하여 다시 자신의 의견이 마치 성경적인 것처럼 발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기에 이를 묵과해서는 안된다는 판단 하에 바쁜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그가 제시하고 있는 이론이 진리의 지식이 아닌 것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자신의 무지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성경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한지 모르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최소한의 규범이 있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윤리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규범은 어디까지나 성경적 규범이어야 하며, 만일 어떤 사람이 성경적 규범에서 벗어난 말을 하면, 그리스도인은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서 목사가 필자의 글을 비평하면서 제시한 근거는 스스로도 입증하지 못하는 비성경적인 지식이었다. 그의 제목 「진리냐 지식이냐」는 참으로 잘 선정한 제목인 것 같다. 그가 얼마나 성경에 무지한지 이번 기회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여러 성도들은 그의 거짓 지식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의 앞을 떠나라. 너는 그에게서 지식의 입술을 보지 못하리라.』(잠14:7)

서 목사에게는 여러 가지의 문제점이 있는데 첫째, 자기의 편견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서 목사는 장로교 목사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침례교 목사가 되었다. 이러한 그의 행실처럼 그의 성경적 지식의 기반도 매우 취약함을 알 수 있다. 전천년주의를 따르다가 다니엘의 70째 주가 이미 끝났다고 하는가 하면, 구원받고 난 후에 지은 죄는 자백할 필요가 없다고도 하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다고 하는 등, 그의 교리는 신학체계가 서지 않은 사람의 교리 같아 보인다. 짐작컨대 그는 어떤 사람의 책을 읽다 보면 그 쪽으로 마음이 쏠리고, 이 책을 읽으면 이쪽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 같다. 그래서 마치 매 5년마다 교리를 바꾸는 카톨릭처럼 서 목사도 수없이 교리를 바꾸어, 그를 추종하는 교인들에게 혼란에 혼란을 더하게 하고 있다.
둘째, 그는 하나님의 시간과 노력과 돈을 낭비케 만든다. 자기가 럭크만 박사나 필자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안다고 자랑하려는 듯,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지식으로 공격함으로써 바쁜 사역자의 시간을 낭비시키는 점이다.
셋째,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하며,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는 그것이 거짓 교리이든 아니든,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를 주든 말든,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게 분별없는 사람이 목회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며, 부흥집회를 하고, 방송설교를 한다고 하며 심지어 고소까지 하니,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다.

우리 나라에 배교의 물결이 일어 교회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여기저기서 비성경적 교리들이 은사주의로 포장되어 판을 치고 있을 때, 방향감각을 상실한 교인들은 진리에 갈급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복음주의를 표방한 서 목사와 같은 사람이 나와서 반카톨릭을 외치며 사람들을 모았으나, 정작 거기에도 빈 강정뿐이었다. 그가 로마 카톨릭을 대항해서 싸운다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를 신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로마 카톨릭과 싸운 것이 아니라 사람을 모으기 위한 인기작전을 폈던 것뿐이다. 마치 은사없는 사람들이 은사를 자랑해서 사람을 모으듯이 말이다. 그는 로마 카톨릭과 싸울 “말씀”이 없다. 이제부터 필자는 그가 럭크만 박사와 필자에 대해 쓴 글을 말씀의 잣대로 비평하고자 한다.


1. Peter S. Ruckman 박사의 저서에 대하여

서 목사는 미국 어느 침례교의 몇몇 목사들의 이름을 들어 럭크만 박사의 책들을 평가절하하고 있는데, 럭크만 박사의 책들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존경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귀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진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갓 이단 서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성서침례교 신학교, 밥죤스 대학, 테네시템플, 남침례교 신학교 등의 많은 학교들이 럭크만의 저서를 금서로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 속에 있는 엄청난 보화를 볼 눈이 없기 때문이다.
서 목사는 피터 럭크만 박사의 책을 놓고 시비하는데, 성경을 믿지 못하고 학자를 믿는 사람은 그 학자와 함께 망한다는 사실을 유의하기 바란다.
내가 미국에서 성서침례신학교를 다닐 때 한 교수가 놀랄 정도로 성경을 잘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 학생들은 그가 그런 지식을 어디서 배웠을까 하고 의아해했었다. 그런데 그 학기가 끝나기 전 우리는 그 지식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 교수는 럭크만의 <마태복음 주석서>를 자기 책상 속에 넣어 두고 혼자만 써먹고 있었던 것이다.
말씀보존학회의 학회지 <성경대로믿는사람들>에는 펜사콜라성경신학원 출신들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월간지는 국내는 물론이요, 미국, 독일, 러시아 등지의 선교사와 목회자들이 구독함으로써 진리에 많이 눈뜨고 있다. 서 목사 및 그 미국 친구들이 무엇을 알아서 럭크만 박사를 평가하겠는가? 그들이 책을 1만 5천 권이나 읽었는가? 아니면 킹 제임스 성경을 150번 이상 읽었는가? 아니면 책을 150권 이상 썼는가? 칼빈 이래 500명 이상의 성경 주석가들이 범한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할 수 있겠는가? 아니 단 한 가지라도 찾아낼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할 수 없으면서 어떻게 럭크만 박사를 평할 수 있단 말인가?
성경교리에 관한 한 거짓 교사들을 묵과하면 많은 어린 영혼들이 오염될 것이 분명하기에 필자는 그의 오류를 밝히기로 했다. 필자는 서 목사가 쓴 글을 조목조목 성경으로 밝혀서 그의 지식이 얼마나 비성경적인가를 이번 기회에 밝힐 것이다. 학회지 지면 관계상 두어 번에 걸쳐 소개함을 독자 여러분께서는 양지해 주시기 바란다.


2. “이송오 목사는 대환란설을 주장하고 있다.”는 말에 대하여

서 목사는 주장하기를 “다니엘의 70번 째 주 7년은 지났고 역사 전체가 환란이다. 환란은 성도들이 받고 진노는 불신 세상이 받는다.”라고 했다(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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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목사의 주장 1.
서 목사는 “구원을 얻는 날부터 성도들은 환란을 받고 예수님 때부터 재림 때까지 항상 환란기간이다.”라고 하며,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요16:33), 스테반의 죽음(행7:59), 베드로가 감옥에 갇힘(행12:1-2), 환란 성도의 휴거(계7:4),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롬5:3), 바울이 받은 고난(고후11:23-33), 하나님의 징책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고난으로 형벌을 주심(살후1:5,6) 등의 성경 구절들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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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서 목사의 성경 지식이 성경이 말씀하는 것과 얼마나 거리가 먼 지 단적으로 증명되었다.
첫째, 다니엘의 70째 주가 지나갔다고 가르치는 목사는 이 세상에 서 목사뿐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휴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70째 주가 지나갔다는 말은 성도들이 휴거되고 지상에 없다는 말이다. 성도들의 휴거 이후에는 대환란이 있게 되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받을 환란을 말한다(렘30:7). 이때 이스라엘은 다시 광야로 가서 옛 출애굽 때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죽임을 당하고 144,000명만 남게 된다.
성경은 유대인과 이방인과 교회를 각각 대상으로 하여 기록되었는데, 환란은 기본적으로 “야곱의 고난”, 즉 이스라엘의 환란이며,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전무후무한 사건이기 때문에 이때에 지상에 남게 되면 모두 목베임을 당하게 된다. 이 일이 심각하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대환란을 네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계시록 5-6장에서는 인장으로, 8-11장에서는 나팔로, 12-14장에서는 적그리스도의 활동으로, 15-19장에서는 호리병의 재앙으로).
둘째, 서 목사가 모르는 것은 성경에는 두 가지 종류의 고난이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는 그리스도인이 생활 속에서 받는 고난이고, 두번째는 이스라엘이 받을 “야곱의 고난”, 즉 대환란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에는 이것이 각각 “환난”과 “환란”으로 구분되어 있다. 분명히 그리스도인도 이 시대에 환난을 당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면서 당하는 고난이다. 그러나 서 목사는 이것과 7년 대환란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는 앞에 나와 있는 것처럼 몇 가지 구절들을 예로 들면서 이 두 가지 종류의 고난을 구별없이 뒤섞어 놓았는데, 이것들을 구분하지 못함으로 인해 7년 대환란이 없다는 이상한 교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다니엘의 70째 주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69째 주는 곧 교회시대의 마감을 의미하는데, 교회시대의 마감은 주님의 교회, 즉 거듭난 성도들의 휴거로 끝난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보고 그 시기가 다가왔음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가! 우리는 역에 나간 사람들과 같다. 열차가 아직 오지 않았을 뿐 취소된 것은 아니다. 다니엘의 70째 주가 지났다면 서 목사는 왜 휴거되지 않은 채 이 땅에 남아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으면서 왜 예수를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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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목사의 주장 2
“7년 대환란을 믿게 되면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믿지 않게 된다. 교황은 항상 적그리스도였다. 예수님이 항상 그리스도이시기에 적그리스도는 항상 있어 왔다.”(요일2:18, 살후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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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주장도 성경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다.
첫째, 그는 Antichrist와 anti- christs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가 Devil과 devils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적그리스도, 즉 Antichrist는 한 명이다. Devil이 하나인 것과 같다. 그러나 anti- christs는 요한일서 2:18에서 “많은 적그리스도”로 표현된다. 이밖에도 God 對 gods, Angel 對 angels, Devil 對 devils가 있다[『너희 중에 하나는 마귀니라』(요6:70-71)].
둘째, 적그리스도(Antichrist)는 환란 때 지중해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다(계13:1-7을 읽어보라).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앞으로 끝없는 구렁으로부터 나와서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 또 땅 위에 사는 자들이 기이히 여기리니,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앞으로 나타날 그 짐승을 보고 놀랄 것이라』(계17:8). 그의 출현은 데살로니가후서 2:3-4에서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서는 그 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그리고 나서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리라. 그는 대적하는 자이며 또 하나님이라고 불리우는 모든 것과 숭배받는 대상 위에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처럼 보여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느니라』(살후2:3-4). 이 적그리스도는 대환란 동안에 죄의 사람이라 불리고 또 멸망의 아들이라 불리며,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처럼 흉내낸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들(antichrists)이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력들을 말한다. 역대 교황들은 물론이요 기독교 신앙을 박해한 제국주의, 군국주의, 공산주의의 괴수들이며 성경적 진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이단 세력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서달석 목사의 성경지식으로 어떻게 적그리스도를 제압할 수 있겠는가? 그가 양육하는 교인들이 무엇을 배워 어떻게 이 영적 전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싸워 이기겠는가?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서 목사를 하나님께서 목사로 부르셨다면 성령님께서 진리로 인도하시는 데 이렇게 어두운가? 하나님이 부르신 종은 ① 바른 성경 말씀을 거부하지 않는다. ②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을 분별할 줄 알며 그 종들을 까닭없이 비평하지 않는다. ③ 자신의 지식을 성경으로 조명해 진부를 가릴 수 있다. ④ 예수님을 자기의 유익으로 삼지 않는다. ⑤ 하룻밤 사이에 장로교 목사가 침례교 목사가 되지 않는다. ⑥ 자기의 경력을 부풀려 자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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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목사의 주장 3
“계시록은 1-22장 전부가 예수님 때부터 재림 때까지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기에 읽고 듣고 지키라 하셨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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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은 성경이므로 모든 성도에게 해당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것은 예수님 때부터 재림 때까지뿐만 아니라 천년왕국을 지나 백보좌 심판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시는 새예루살렘까지이다. 백보좌 심판은 허공에서 이루어지며 새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성경은 예언이며 예언은 성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곧 예언의 영이기 때문이다(계 19:10). 그러나 계시록 4:1에서 요한의 휴거는 곧 교회의 휴거를 말한다(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제 40호, p.8., “이리 올라오라” 참조). 그리고 교회가 휴거된 후 19장까지는 교회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 목사는, 지상에 그리스도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모든 성도에게 동일하게 주신 말씀이기에 사도 요한 때부터 재림 때까지 해당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상에 교회성도가 없는데 어떻게 이 말씀이 교회에게 해당되는가? 성경은 전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모두가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교리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가? 만약 모른다면 어떻게 남을 가르칠 수 있는가?


3. “성도들이 휴거될 때 피를 다 쏟아 놓고 떠난다고 하는 이송오 목사의 주장”

서 목사의 이론을 들어보자.
“고린도전서 15:1-58은 부활을 증거하는 말씀으로서 부활이전, 즉 현재 상태의 혈과 육(flesh and blood)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서 목사가 혈과 육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피를 쏟아놓고 간다는 말을 반박하는 것은 마치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들린다.

(1) 고린도전서 15:51에서는 성도의 몸의 변화를 신비라고 했다. 눈깜짝할 순간에 우리가 변화되는 것이다(52절). 40절에는 하늘에 속한 몸(Celestial body)과 땅에 속한 몸(terrestrial body)을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7장에서 자신의 몸을 땅에 속한 몸에서 하늘에 속한 몸으로 변형시키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가 입은 몸은 하늘에 속한 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눈깜짝할 순간에 변화될 때는 하늘에 속한 몸으로 변화된다. 우리가 저 북쪽 끝,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셋째 하늘까지 가려면 인간의 수치계산 속도로는 도저히 갈 수 없다. 빛의 속도가 초당 186,300 마일(약 400,000Km)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북쪽에 있는 별까지의 거리는 빛의 속도로 가도 500년은 족히 걸린다. 그런데 우리의 변형된 몸은 이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가는 것이다. 이것은 말로 설명이 안된다. 그래서 성경은 신비(mystery)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다.

(2) 아담의 죄는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의 열매를 먹었을 때 생겼고 그것은 피와 함께 생겼다. 우리가 죄인된 것은 나쁜 피를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인간 아버지를 가지셨더라면 예수님은 부활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처녀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나셨다. 그렇기에 그 분의 피는 인간의 피와 다르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으며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상속받을 수 없느니라』(고전15:50). 그러므로 영광스러운 몸, 예수 그리스도의 33세 반의 몸으로 바뀔 때 인간의 피를 가진 채로는 변화받지 못한다.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 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리라』(빌3:21).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 분이 계신 그대로 그 분을 뵐 것이기 때문이라』(요일3:2). 다시 말해서 거듭난 성도의 몸은 하늘에 적합한 몸으로 바뀐다(Heavenly being). 천사들은 피가 없으므로 구속(Redemption)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인간은 피 때문에 예수님의 피로 구속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때문에 인간의 구속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피는 필연적이었다. 창세기 6장에서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여 출산한 아이들은 다른 육체를 따른 자들이기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과는 무관하다(벧전3:19; 4:6). 서 목사는 이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일체의 조명을 닫아 버리신다. 한국교회 역사 120여년 동안에 이 나라 성도들의 지각을 열어줄 만한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쓴 사람이 있는가 보라. 변개된 카톨릭 성경으로는 절대로 조명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점이 증명해 준다.

(3)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다 쏟으셨는데 어떻게 살아나셨는가? 영광스러운 몸, 즉 “celestial body”는 지상에 있는 몸과 같지 않다. 이 몸을 영광스러운 몸이라 한다. 이 몸을 받으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성령님께서 그런 몸을 입을지 안입을지 일깨워 주신다.

(4)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는 피가 없었다(눅24:39).
우리의 몸에 있는 피로는 들림받지 못한다. 그 피로는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받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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