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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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하지 말라”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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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11월호>

『판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라』(마 7:1).

『그러나 너희에게서나 인간의 판단에 의해서 판단받는 것이 나에게는 아주 하찮은 일이라. 실로 나도 나 자신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자책할 것을 아무것도 알지 못하나 이것으로 내가 의롭게 되는 것은 아니니라. 그러나 나를 판단하시는 분은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주께서 오시기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주께서 어두움에 감추어진 것들에 빛을 비추시고 마음의 의도들을 나타내시리라. 그때서야 하나님께로부터 각 사람이 칭찬을 받으리라』(고전 4:3-5).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들을 판단하나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 2:15).


성경을 잘 모를 때 오해의 소지가 많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므로 성경을 알려면 공부해야 한다. 틀린 성경으로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정답을 얻을 수 없다. 이는 성경을 가르쳐 주시는 분은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을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에 무턱대고 아무 구절이나 하나 붙들고 그대로 따라 행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은사주의자들이 집회를 열 때마다 써먹는 성경 구절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성경에 무지한가를 쉬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사역자들 역시 성경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① 조성된 환경을 통해, ② 성령님께서 주시는 강박 관념으로(매번 그렇게 하라고 충동하심), ③ 읽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게 해 주신다. 사역자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이 어떤 중대한 일을 결심하고 실행하려 할 때,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면 매우 안타깝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두 가지가 다 좋아 보이는데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그렇다. 소요되는 자금이 넉넉하지 못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더욱이 시간이 매우 급할 때는 더 난감해지기도 한다. 영적으로 어린 사람은 조성된 환경을 잘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으며, 성령님께서 주시는 강박 관념을 처음 경험한 사람도 매우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실 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신다. 자기 몸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은 사람이나 거짓으로 드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진지하게 기도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과 장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사무엘상 3장에서 선지자 사무엘이 어렸을 때,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제사장 엘리가 부르는 것으로 세 번이나 오해했었다. 이에 엘리는 그 부르심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임을 어린 사무엘에게 알려 주었다. 사무엘이 주님의 부르심을 몰랐던 원인은 그가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무엘이 아직 주를 알지 못하였고, 주의 말씀이 아직 그에게 계시되지도 아니하였더라』(7절). 사무엘이 세 번 엘리에게 와서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에 내가 여기 왔나이다.” 하니, 엘리가 주께서 그 아이를 부르신 줄 깨닫더라』(8절). 엘리는 사무엘에게 『가서 누우라. 만일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너는 말하기를 ‘주여,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나이다.’ 하라.』(9절)라고 지시했다. 이후 사무엘이 성장하자, 주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셔서 그분의 말씀들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19절).


『주께서 실로에 다시 나타나셨으니, 이는 주께서 실로에서 사무엘에게 주의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음이더라』(21절). 주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으로 자신의 종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 누가 하나님의 종인가? 바른 말씀을 존중하고 그 말씀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목사들에게 “100문제 퀴즈” 중에 1번 문제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성경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20만 명의 목사들 가운데 199,500명은 탈락할 것이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 루터란, 나사렛, 성서침례교, 남침례교, 가짜 침례교 등 99.8%가 탈락임을 알아야 한다. 흔히들 “기도! 기도!” 하지만, 기도의 응답은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들만 받을 수 있다. 『율법을 듣는 데서 귀를 돌이키는 자는 그의 기도마저도 가증한 것이 되리라』(잠 28:9).


성경을 알지도 못하고 공부하지도 않으며 믿지도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잠언으로 가서 어찌어찌 한 구절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주셨다고 여긴다면, 그는 하나님을 점쟁이 정도로 아는 사람으로서, 결국 점쟁이 앞에 선 사람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위기에 처하면 하나님을 부르게 된다. 어머니를 불러도,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도, 어머니는 위기에 처한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위기에 처한 자기 애인을 구해 줄 수 없다. 비행기에서 낙하했는데 낙하산이 펴지지 않았을 때 소위 “주기도문”을 외워 보라. 무슨 응답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모든 제도화된 교단 교회들은 교인들에게 주기도문이란 것을 외우게 하고 있다. 중한 수술을 받는 환자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주기도문을 외워 보라. 그야말로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 된다. 소위 교회라는 곳에서 엉터리 목사들은 엉터리 교리를 가르치며 『이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헛된 반복을 하지 말라.』(마 6:7)라는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무슨 교회인가?


성경에는 상충하는 구절들이 있다. 예를 들어 “원수를 사랑하라는 구절”(마 5:44)이 있는가 하면, “원수를 진멸시키라는 구절”(삼상 15:3)이 있고, “이혼 증서를 써 주라는 구절”(신 24:1)이 있는가 하면, “아내를 버리지 말라는 구절”(고전 7:11)도 있다. “친구를 도와주라는 구절”(행 20:35)이 있는가 하면, “보증을 서지 말라는 구절”(잠 22:26)이 있고, 꿀을 “먹으라는 구절”(잠 24:13)이 있는가 하면, “먹지 말라는 구절”(삼상 14:24-26)도 있다. 그리고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구절”(마 7:1)이 있는가 하면, “판단하라는 구절”(고전 2:15)도 있다.


성경을 설교하고 가르치겠다고 나선 사람이 말씀을 공부하지 않으면 수치를 당하게 된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한글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은 “공부하라”는 말씀을 “드리기를 힘쓰라”로 변개시켰다. 그래서인지 이 나라 목사들은 “성경”이 아닌 “교단 신학”을 공부하고서 목회를 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그들은 계속해서 진리 대신 오류를 퍼뜨려 교인들을 오염시키고 있는데, 결국 그들은 성경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에게 판단을 받고 수치를 당하게 된다. 지면 관계상 본 글에서는 신약성경에서 판단에 관해 언급하는 주요 세 구절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한다. 잘 깨닫고 “판단에 대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1. 마태복음 7:1-5


이 구절은 진리이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상대가 범한 실수보다 더 큰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을 가지고 자기의 잘못과 무지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써먹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종사가 되려고 훈련을 받는 학생에게 이 구절을 적용해 보라. 학생이 교관에게 이 구절을 들이대면서 자신의 실수를 판단하지 말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너무 극단적인 사례 같은가? 필자는 군대에서 비행기를 배울 때 몽둥이로 엉덩이를 적어도 370대 이상 맞았다. 그래도 필자는 다른 동료들에 비해 100대 이상 적게 맞은 편이었다. 그때는 장비가 사람보다 귀한 때라서 사고 예방을 위해 매로 다스리는 야만적인 행위가 있었다. 조종사는 성경 교사처럼 완벽해야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의 귀한 생명과 재산도 지킬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죄인이 구원받지 못하여 지옥에 가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사실을 판단하지 않는다면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일, 곧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을 망각하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누군가가 엉뚱한 이단 교리에 빠져 예수 믿으면 복을 받고 병도 낫게 된다며 지상 삶에만 치중한 나머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지 않고 사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이를 묵인한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바른길로 돌아설 수 있겠는가? 예수님을 잘못 믿어 패가망신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며, 심지어 몸을 망치고 미쳐 버린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런 사람들이 잘못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수수방관하는 것이 과연 진리를 아는 사람의 도리인가? 일본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선로로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도 한일 양국에서 추앙을 받았다. 하물며 술에 취한 사람 같은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질고를 지신 그분을(롬 5:6-8) 전하겠다고 교회를 세운 목사들이 그 소중한 사역을 형식적으로 하면서 돈이나 벌고 있다면 말이 되겠는가?


마태복음 7장에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육신적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율법의 경륜 아래에서는 연약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 특히 성령님께서 내주하시지도 않는 사람들이 실수해서 죄를 짓는 것은 너무 뻔한 일이다. 배설물 같은 존재들이 다른 배설물을 탓하지 말라는 것이 마태복음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다. 마태복음 7:6을 보면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율법 시대에는 지금처럼 성령님을 통한 “거듭남”이 없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진리를 거부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개”(남자 목사)와 “돼지”(여자 목사)에 비유된다. 『참된 잠언대로 그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니 “개는 그 자신이 토해 낸 것으로 다시 돌아가고 또 돼지는 씻고 나서 그녀의 진창 속에서 뒹군다.” 하였도다』(벧후 2:22). 성경은 진리를 무시하고 자기들 멋대로 행하는 자들을,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개”와 씻고 나서도 진창 속에 다시 뒹구는 “돼지”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자들은 “진주”(그들에게 가르쳐 준 진리)를 발로 밟고 다시 돌아서서 공격하기까지 한다. 실제로 로마카톨릭은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매도하여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것이다(말씀보존학회에서 출간한 <피흘린 발자취>, <폭스의 순교사>, <신약 교회사> 참조).

2. 고린도전서 4:3-5


고린도 교회는 “육신적인 교회”였다. 교회 안에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듭났어도 여전히 어린애로 남아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위 본문에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신실함에 대해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임을 알 수 있다.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는 “자치적으로” 운영된다. 일단의 장로들이 운영하는 교단 교회도 아니요, 목사가 모든 권한을 휘두르는 은사주의 교회도 아니며, 회중들이 다수결로 처리하는 회중 교회도 아니다. 성경대로 믿는 교회는 모든 것을 자치적으로 운영한다. 우리 교회는 성도 100명당 한 명의 집사를 선임한다. 거리설교와 구령은 성도들 각자가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을 정할 수 있는데, 어떤 성도들은 수요일 오후 교회 근처에서 한다. 필자는 70세가 될 때까지 4년 6개월간 매주 목요일 오후 연세대학교 앞에서 거리설교를 했었다. 우리 교회 성도들 대부분은 토요일 오후 시내 곳곳에서 거리설교하고 구령한다. 휴일에는 주요 도시들로 나가 복음을 전파하면서 혼들을 이겨온다. 우리 교회에서 제작한 “복음 전도지”만 해도 23종류나 된다. 교회가 성도들의 섬김에 대해 지시하거나 강요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모두가 자신들이 은혜로 구원받고 영생을 얻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기기에 열매도 많다. 강제로 믿게 하고, 섬기게 하고, 바치게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믿음을 “종교 행위”로 바꾸는 요인이 되기에, 처음에는 성도들이 하는 체하다가도 조금만 지나면 금방 시들해져 버린다.

우리 교회는 지난 29년 동안 단 한 번도 일부러라도 출석과 헌금을 독려한 적이 없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장차 셋째 하늘에 올라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되면, 구원받은 이후로 섬겼던 모든 행위가 각인의 “하늘 구좌”에 상으로 쌓인다는 것을 알고 신실하게 행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몸으로 행한 것들이 금, 은, 보석이었는지, 아니면 나무, 짚, 그루터기였는지를 그날에 불로 태워 보신다고 말씀하셨다(고전 3:12-15). 자기가 선택한 교회가 하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줄 알면서도 그저 인정에 못 이겨 다니고 있다면 그는 빈털터리가 될 것이다. 새벽기도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다 해도 그것은 쓸데없는 것이기에 거기에는 어떤 보상도 없다. 왜 없는가? 그런 것은 성경에 없기 때문이다.
위 본문에서 말씀하는 판단은 성도가 신실하게 주님을 섬겼는가에 관한 판단이다. 다시 말해 성경대로 주님을 잘 섬기는 성도들은 자기들의 육신적인 잣대로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3. 고린도전서 2:15


성경은 율법하에서는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구원을 받았어도 아직 육신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판단하는 가운데 이 일 저 일 해 보라고 하면서 영적인 일을 권유해 봤자 할 수도 없다. 그런 자들은 판단하는 대신 모범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자원하여 섬길 수 있게 해야 한다. 자원함으로 행하지 않는 것은 믿음의 행보가 될 수 없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은 신실함과 거리가 멀기에 상도 없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판단만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올바른 가치관을 깨닫게 하고 실행하게 해서 그의 몸과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


위 본문에서는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누가” 영적인 사람이며, 또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영적인 사람”의 모습은 자연인이나 육신적인 사람과는 정반대다. “자연인”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고, “육신적인 사람”은 구원을 받았어도 성경적 기준에 따라 살지 않고 옛 성품대로 살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다. 제도화된 교단 교회들에서는 주일날 새벽부터 1부 예배로 시작해서 6부 예배까지 있다고 들었다. 아침 일찍 운동복 차림으로 교회에 나와 얼굴만 내민 후에 골프를 치러 가거나 등산을 가는 사람들 혹은 어딘가로 놀러 가는 사람들은 모두 육신적인 사람들이다. 하루에 30분 이상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쭉정이가 되는데, 그들은 이 점을 모르면서 교회에 다닌다. 그 교회들은 돈 좀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 직분을 맡긴다. 과연 육신적인 그들이 주님을 위해 무슨 영적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영적인 사람은 바른 성경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의 행보를 판단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비진리를 행하는 자들에게 그것은 “이단 교리”이니 집어치워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가짜 성경”이니 팔아먹지 말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마귀의 교리”이니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그런 짓을 하는 교회는 “마귀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외국에 나가서 사는 선교사가 구령도 못 하면서 선교비나 타 먹고 있다면, 그가 하는 짓은 선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시기나 증오나 편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잣대”(Canon)로 삼아 판단해야 한다. 만일 성경에 의해 판단을 받는 것이 성경으로 비춰 볼 때 잘못된 것이면 다시 성경으로 반격해야 한다. 그러려면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한글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으로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판단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을 보존하고 진리의 지식을 가르쳐서 일꾼을 양성하고 진리로 오류를 판단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마치 불이 났는데도 “불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과 같고, 도둑이 도둑질하는데도 못 본 체하는 것과 같다. 오류를 퍼트려 다른 사람들을 실족시킨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을 왜 귀한 하나님의 핏값으로 구속하셔야 했겠는가?
신약 교회 시대의 복음 전파자는 구약 시대의 파수꾼과 같다. 비성경적 교리를 실행하고 교인들을 오도하는 자들을 보고서도 입을 열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짖지 못하는 개들이라 평하셨고(사 56:10), 파수꾼이 경고하지 않는다면 그 핏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구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겔 33:6). 정직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행세하는 가짜 사역자들을 성경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사기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날 수 있다. 남을 판단하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성경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가 성경적으로 옳다면 그때 비성경적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 이 점을 오해하면 안 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면 판단받지 않으리라』(고전 11:31).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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