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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하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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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11월호>
∙ 시편 148:4<한글킹제임스성경>
『너희 하늘들의 하늘들과, 하늘들 위에 있는 너희 물들아, 그를 찬양하라.』
<개역한글판성경>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찌어다.』
개역성경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그 성경으로는 성경의 진의를 해석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개역성경으로는 하늘이 몇 개 있는지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늘 위에 물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으며, 하늘 북쪽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없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요 1:1). 말씀이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쳐 주시는 데도 이들은 그 사실도 모르고 있다.『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흰 말이 보이더라. 그 위에 앉으신 분은 신실과 진실이라고 불리며, 의로 심판하고 싸우시더라.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머리에는 많은 왕관이 있고, 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며, 피에 적신 옷을 입었는데,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더라』(계 19:11-13).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되어 있다. 또 예수님께서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친히 말씀하셨다(요 14:6).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말씀을 거역하고 진리를 거부하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의 행위이다. 이들은 말씀을 거역하고 진리를 거부하면 영적으로 눈이 먼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교회 성장을 자랑하고, 은사를 자랑하며, 연보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주님이 보시기에 자신들이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었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계 3:17). 영적으로 눈먼 소경이 하늘들과 하늘을 구별하지도 못하는 성경을 들고 회중 앞에 나가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 소경이 다른 소경을 인도하여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가? 둘 다 구덩이에 빠져 기어 나오지도 못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것이 어디 단순하게 성경만을 논하자는 것인가? 이것이 어디 비평으로만 그칠 수 있겠는가?
하늘은 세 개가 있다. 첫째 하늘은 구름이 떠 있고, 새가 날아다니고,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이 육안으로 보이는 그 하늘을 말한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두 제자의 시야에서 그 모습이 사라지신 하늘이 첫째 하늘이다. 둘째 하늘은 태양과 달, 별들이 있는 곳이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을 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북쪽이다. 나침반의 바늘이 항상 가리키고 있는 북쪽, 그곳을 진북(True North)이라 하는 것이 이상한가? 이 셋째 하늘은 별자리들을 지나고 성운들과 은하계, 성단들 너머에 있다. 이곳에 대해 기록한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잠시 살펴보자.
『북편에 있는 위대한 왕의 도성 시온 산은 그 자리잡은 곳이 아름다우며, 온 땅의 기쁨이니,』(시 48:2).
『이는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나 남쪽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시 75:6). 북쪽이 빠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북쪽을 대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영원에 거하시는 높고 우뚝 솟은 분, 그의 이름이 거룩이신 분이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사 57:15). 그곳이 높은 곳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민족들을 연약하게 하였던 네가 어찌 땅으로 끊어져 내렸느냐! 이는 네가 네 마음 속에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내 보좌를 하나님의 별들보다 높일 것이요, 내가 또한 북편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구름들의 높은 곳들 위로 올라가서 지극히 높으신 분같이 되리라.” 하였음이라』(사 14:12-14). 얼마나 정확하고 선명한가!
이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개역성경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이 창세기 1:2에서 “깊음의 표면”으로 표현되는 곳이다.『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이것은 창세기 1:6에서 하나님께서『“물들 가운데 창공이 있으라. 창공으로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게 하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늘들 위에 있게 된 물을 말한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물을 많은 수증기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증기는 하늘들 위의 물이 아니다. 개역성경도 하늘들 위의 물을 그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다.
시편 148:4의 하늘들은 하늘이 아니다. 이 물은 단수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수 하늘들 위에 있는 것이다. 물 가운데 나타난 창공은 해와 달과 별들을 포함시킨 창공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창공이 땅과 구름 사이의 공간이 될 수 있겠는가?
성경은 이 물의 표면이 얼어 있다고 말씀하신다.『물이 돌로 된 것처럼 감추어졌고, 깊음의 표면은 얼어 있도다』(욥 38:30).『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계 4:6). “얼어 있다”는 표현과 “유리 바다” 같다는 표현은 우리에게 그 실상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태평양과 인도양과 대서양의 물은 우리가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물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감추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깊은 물의 표면이다. 이 지구는 창세기 1:2에서 한 번 실제로 물에 잠겼고 또 노아 홍수로 두 번째 물에 잠겼다. 셋째 하늘에 있는 물은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의 물을 다 합친 것보다 30억 배나 더 많은 물이다.
이 물 아래 있는 인간들이 물고기로 비유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전 9:12, 합 1:14, 마 4:19, 막 1:17). 예수님께서 처음 뽑으셨던 네 제자들이 어부였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개역성경처럼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찌어다.”라고 하면 성경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씀을 거부하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바른 성경이 아니면 바른 믿음을 정립시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