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송오 목사 분류
한 갈릴리 어부의 성경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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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5월호>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사도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는 일을 생업으로 했던 직업 어부였다. 그가 기록한 “베드로전후서”는 놀라울 만치 깊이 있는 영적 지식을 보여 주고 있다. 그가 쓴 두 권의 책을 통해 본 그의 성경 지식은 지난 1,600년 동안 바티칸이 그의 이름을 도용하여 그가 최초의 교황이고 그가 로마에 왔다는 거짓말이 “그럴싸하다”거나 “그랬을 것”이라는 어떤 틈새도 허용하지 않는다. 로마카톨릭은 성경에 무지하기에 마태복음 16:18-20을 오해하여 헬라어 “πετρος”(페트로스)가 반석이 아니라 돌임에도 그 돌 위에 교회를 세웠다고 베드로 광장을 만들고, 베드로 성당을 지어 자랑해 왔다. 반석은 “Rock”이지 “Stone”이 아니다. 그 반석은 신구약 어디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시다(출 17:6, 신 32:4, 삼하 22:2, 시 18:2,31,46).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여정에서 모세가 반석인 베드로를 쳤더니 물이 나왔다는 말인가? 『모두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다는 것이라. 이는 그들이 그들을 따랐던 그 영적 반석에서 나온 것을 마셨음이요, 그 반석은 그리스도셨음이라.』(고전 10:4)라는 말씀과 『또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으니, 곧 불순종함으로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에게니라. 그들은 또한 그렇게 되기로 정해졌느니라.』(벧전 2:8)라는 말씀에서 “반석”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경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은 역대 교황들과 추기경들, 대주교들, 주교들, 사제들처럼 어둠 속을 헤매지 않는다. 마리아를 섬기는 천주교도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근원부터가 다르다. 로마카톨릭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베드로를 앉혀 놓고 반석을 운운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anti”(적) “Christ”(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1,600년 이상이나 세상 전역에 공개한 것이다.바티칸은 국가이지 교회가 아닌데도 그들은 바티칸이라는 국가를 “로마카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라고 부른다. 이것은 대단한 속임수인데 성경을 왜곡하고 변질시킨 오염의 원천이 바로 로마카톨릭임을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B.C. 63년 줄리어스 시저는 바빌론 종교의 교황이 되었다. 성경에는 바빌론이 세 번 나오는데, 첫 번째는 시날 땅에 님롯이 건설한 바벨, 즉 바빌론이었고(창 10:8-10), 두 번째는 유대인들을 민족적으로 노예로 삼았던 느부캇넷살의 바빌론이었으며(왕하 24,25장), 세 번째는 주홍빛 짐승 위에 앉은 여자로 묘사된 창녀인 로마카톨릭이다(계 17장). 성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성도라면 성경에서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또 그 여자는 자주색과 주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장식하고 손에는 금잔을 가졌는데 그 잔은 가증스런 것들과 그녀가 행한 음행의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찼더라. 그녀의 이마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하였더라』(계 17:4,5).
신약성경에 따르면 베드로는 로마에 간 적이 없다. A.D. 60년경에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문안했을 때 31명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했다. 만일 베드로가 로마 교회에 있었다면 그의 안부를 빠뜨릴 수 있었겠는가? 만일 베드로가 로마에 갔었다면 한 명의 혼이라도 구령하려 하지 않고 자기 이름을 딴 광장을 만들려고 땅을 보러 다녔겠는가? 베드로가 마가와 함께 바빌론까지 갔다는 기록은 있지만(벧전 5:13) 로마에 대한 언급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
로마카톨릭이 바빌론의 신비 종교를 로마카톨릭 교리로 옷 입혀서 교회라고 하는 것이나 베드로를 끌어다가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웠다고 하는 것이나 둘 다 엉터리임은 틀림없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있지도 않은 베드로의 무덤조차 로마에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수세기 동안 수많은 카톨릭 신자들을 속여 왔다. 만일 로마카톨릭이 베드로를 예수님보다 더 떠받들어 반석이라고 여겼다면 그들이 마땅히 해야 했던 일은 베드로가 쓴 “베드로전후서” 위에 그들의 교리를 정립해서 그 교리대로 실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톨릭이 그동안 실행해 온 모든 전통과, 또 그들이 교회라고 이름 붙인 카톨릭 교회의 의식과 교리가 베드로전후서와 일치한 곳은 단 한 군데,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점을 그들은 어떤 말로 변명할 것인가?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고 그것은 사람들을 속이려는 의도와 목적이기에 진리의 성경과는 거리가 먼 마귀들의 수작일 뿐이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의 직업 어부였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했을 때 토기장이이신 주님께서 빚으시어 쓰심으로써 가장 모범적인 목자 상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베드로처럼 양무리를 돌보는 목사들이 있다면 그들은 두말할 나위 없이 주님께 인정받는 일꾼들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 주님을 섬기는 체했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자들일 뿐이다(롬 16:18, 빌 3:19).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겠노라고 자칭 목사가 된 자들은 멀리 가지도 말고 베드로에게서 배우라. 베드로가 알고, 믿고, 실행한 대로만 따라도 일류급에 드는 설교자와 성경 교사가 될 수 있다. 베드로만큼 영의 거듭남과 혼의 구원과 유업의 소망을 지니게 하는 교리를 잘 정립한 사람은 일찍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부르시어 사역에 넣고 들어쓰신 일꾼들 중에서 사도 바울을 능가할 인물은 없다. 사도 바울은 14권의 신약성경을 썼고 신약 교회 교리들을 정립시킨 하나님의 선택받은 종이었다(엡 3:1-11). 사도 바울은 자기가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 전파를 맡고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을 맡았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오히려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자들에게 복음 전함을 맡음과 같이 내가 무할례자들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을 알았을 때 (베드로에게 효과적으로 역사하셔서 할례자들의 사도 직분을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도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이방인들을 위한 직분을 주셨느니라.)』(갈 2:7,8). 우리는 베드로가 바울이 쓴 모든 편지가 성경(정경)임을 밝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인 줄로 생각하라.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가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그렇게 썼고 그의 모든 편지에서도 이런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나 그 가운데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어 무식한 자들과 견고하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처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5,16).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서 목자 행세를 하는 자들은 그 누구라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왜 그들은 정확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가?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은 우선 갈릴리 호수의 어부였던 사도 베드로에게서 배워야 한다.
첫째, 베드로는 죄인들이 어떻게 해야 거듭나는지를 정확하게 기록했다. 『죽은 자들로부터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갖게 하셨으며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잔하지 않는 유업을 간직해 두셨으니 너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내려고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벧전 1:3-5).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둘째, 베드로는 혼의 구원에 대해서 기록했다. 『이 구원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관하여 예언한 선지자들이 열심히 조사하고 살펴보던 것이며, 그들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다가올 영광을 미리 증거하실 때, 그 영이 무엇을, 또 어떤 시기를 지시하시는지 탐구하던 것이니라』(벧전 1:10,11).
셋째, 베드로는 영이 거듭났고, 혼이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생활 규범도 일깨워 주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생각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끝까지 바라라. 순종하는 자녀들로서, 이전에 무지하던 때의 정욕에 너희 자신을 맞추지 말고 오히려 너희를 부르신 그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하라. 이는 기록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시기 때문이니라. 또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판단하시는 분을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다면 너희의 이곳 나그네 시절을 두려움 속에서 지내라』(벧전 1:13-17). 이는 우리의 구속이 세상에서 귀하다는 금과 은 같은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니라』(벧전 1:19).
넷째, 『그는 실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에 미리 정해지셨으나 너희를 위하여 이 마지막 때에 나타나셨으며 너희는 그를 통하여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셨고 그에게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니 이는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 안에 있게 하려는 것이라』(벧전 1:20,21).
특히 칼빈주의를 교리로 신봉하는 장로교, 개혁교단, 침례교인들은 사도 베드로가 알고 있는 성경적 진리를 습득하고 잘 이해하여 가장 비성경적인 칼빈주의 5대 강령을 버려야 할 것이다. 칼빈주의는 “구원의 영원한 보장” 때문에 주장된 것이다. 우리 성경대로 믿는 침례교인들도 그 점에 있어서는 칼빈주의자들이다. 하지만 칼빈의 5대 강령은 “이단 교리”이기에 거부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했기에 한 번 받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영으로 들어오시어 믿는 그 사람을 자신의 성전으로 삼아 주셨다(고전 3:16; 6:19).
“구원의 영원한 보장” 교리는 끝까지 견디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알미니안주의와 수세기 동안 교리적 대립을 이루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이 환란 시대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성경 구절(마 10:22; 24:13, 막 13:13)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칼빈주의자들 역시 5대 강령의 마지막인 “성도의 견인”으로 써먹고 있다. 실제로 칼빈주의자들인 A.W. 핑크, 루이스 벌콥, L.R. 쉘톤, 에디 가렛, 존 질핀, 밥 로스, 롤프 바나드, 댑니, 카이퍼, 핫지, 질 등이 쓴 책들을 보면 그들은 칼빈주의를 옹호하느라 이것저것을 들먹거리고 있지만 성경적으로 증빙할 수 있는 근거는 거의 없다. 보라! 한 번 어떤 “주의자”(ist)가 되면 그들과 동조하기 위해 성경을 부인하거나 성경적 교리를 고치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런 것은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부인하는 행위이다. 그들은 성경을 믿는 자가 아니다. 정통주의, 근본주의, 복음주의를 자랑하는 자들을 보라. 그들은 “직역 성경에 기초한 정통 신앙”(The orthodox religious belief based on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the Bible)을 말하면서도 실제로 그들의 손에는 직역 성경이 없다.
칼빈주의자들이 가장 모르는 교리는 “미리 아심,” “택하심,” “예정,”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등이다. 이 때문에 그들 모두가 칼빈주의를 교리로 정착시키는 데 실패하고, 대신 혼란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이전에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어』(엡 1:4).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에 따라 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목적과 은혜에 따라 하신 것이니, 이는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딤후 1:9). 『그는 실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에 미리 정해지셨으나 너희를 위하여 이 마지막 때에 나타나셨으며』(벧전 1:20).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기까지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없다. 칼빈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창세기 1:1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장사된 지 3일 만에 부활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칼빈은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시 2:7, 히 1:5; 5:5)를 이해하지 못하고 영원 전에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하나님을 낳았다고 해석했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시점만 달랐을 뿐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된 신이라고 여기는 여호와의 증인들과 한패인 것이다. 위의 말씀은 처녀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나신 첫 번째 사람, 곧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한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를 묵살하기에 신약이나 구약이나 구원받는 방법이 똑같다고 설정하고서는 창세기 1:1 이전에 자기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고 만들어 버렸다. 그들은 자기들이 구원받기로 선택된 사람들이라고 억지를 부리는데 이것이야말로 신학적 난센스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일깨워 주지 않으시면 그 누구도 진리를 알 수 없다. 갈릴리 호수의 직업 어부가 아는 것을 신학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자들은 모른다. “미리 아심”이 선택을 결정한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케 하심을 통하여,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으로 택함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전 1:2). 미리 아신 자들은 택함을 받아 예정된다. 이때 택함을 결정짓는 요인은 그들의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언제 어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지를 미리 아시고 그 사람을 택하신다. 이렇게 택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지로 그 일을 행하신다.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선택하여 임명하였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너희 열매가 남아 있어 너희가 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니라... 만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라.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내가 너희를 세상으로부터 선택하였느니라. 이로 인하여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6,19).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믿는 신실한 사람들을 주님의 특별한 사역에 임하도록 선택하신다. 열두 제자들의 부르심을 보라(눅 6:13). 또 사도 바울의 부르심을 보라. 『그러나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길을 가라, 이는 그가 이방인들과 왕들과 또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내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내가 선택한 그릇임이라』(행 9:15).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이 “토기장이”시기에 그 어떤 그릇도 빚으시고 들어쓰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선택하심은 지혜로운 자들로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선택하심은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선택하신 것은 없는 것들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만들려 하심이라』(고전 1:27,28).
얼마나 많은 자들이 토기장이 앞에서 자기의 학위, 지식, 지혜, 머리 굴림을 자랑하는가 보라!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은 자들이 설치면 영적 열매가 없다. 하물며 바른 성경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불러 쓰시겠는가? 사도 베드로는 신학교를 다녀 본 적도 없었고, 그때는 그에게 신약성경도 없었으며, 예수님의 가르침 외에는 구약성경도 지닐 수 없었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그의 선생님이셨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분은 자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다가올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요 16:13). 베드로는 지난 2천 년 동안 스스로를 썩 괜찮다고 여기는 목사들과 신학자들, 주석가들, 교사들, 선교사들보다 성경의 진수를 더 깨달아 “베드로전후서”를 기록하여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도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 그 일을 했던 것이다.
성경을 알고 싶으면 바른 성경이 필수이다. 그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면(딤후 2:15) 성령님께서 조명을 주시어 깨닫게 하신다. 교육 효용의 3단계는 “성경을 나누어서 공부하면 알게 된다. 알았으면 믿어야 한다. 믿었으면 바른 섬김이 있어야 한다.”이다. 설교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베드로에게서 배우라.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