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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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자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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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7월호>

미국에서 생활하던 필자가 주한 미국 대사관에 와서 잠깐 일을 했을 때, 차량 운전기사가 자기 친구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는 굉장한 부자여서 땅도 많고 건물도 있지만, 정작 몸이 아파서 입으로 밥을 먹을 수가 없는 신세라는 것이었다. 그는 수술을 받아 호전될 수 있었음에도 호스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가 수술을 거부했던 까닭은 3천만 원이라는 비용이 아까워서였다. 그런 사람도 다 있나 싶었다.

많은 것을 가지고서도 부요하지 못한 사람들, 특히 하나님 앞에 부요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누가복음 12:16-21에서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셨다. 『한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떤 부자의 땅이 수확을 많이 내는지라. 그가 속으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할까?’ 하고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들을 헐고 더 큰 것으로 지어서 거기에 나의 모든 곡물과 물건들을 쌓아 두리라. 그리고 나서 내 혼에게 말하기를, 내 혼아,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물건들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편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혼을 네게서 앗아가리니 그러면 네가 장만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그러므로 자신을 위하여는 보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 앞에 부요하지 못한 자는 다 이러하니라.”고 하시더라.』 돈을 모으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성경도 “돈”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모든 악의 뿌리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다(딤전 6:10). 돈은 벌어서 잘만 쓰면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줄 수도 있으며, 추운 사람에게 옷과 집을 줄 수도 있다.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쓴 단편소설 가운데는 어떤 사람이 “네가 걸어가서 해 질 무렵 전까지 돌아오면 그 밟은 땅을 전부 주겠다.”라는 약속을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람은 욕심이 넘쳤던 나머지 먼 거리를 있는 힘껏 뛰고 걸어서 마침내 돌아왔는데, 숨이 차서 그만 죽고 말았다. 그가 차지한 땅은 결국 무덤 크기밖에는 되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것은 두 가지다. 재물은 썩는다는 것이요, 재물을 가진 사람도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내가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은 비행기 안에서였다. 비행기는 이륙해서 목적지를 향해 간다. 그동안 조종사가 책을 보고 있든, 졸고 있든, 이야기를 하든, 무슨 생각에 잠겨 있든 비행기는 목적지로 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끝을 향해 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언제일는지는 모르지만, 비행기가 이륙했으면 착륙해야 하듯, 인생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나는 그 시간 동안에 “어떻게 해야만 내 인생을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인생이 끝에 도달하면 어떻게 되는가? 성경에서는 “회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죄를 자백하는 “회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 앞에서 내 삶에 대한 “회계,” 즉 계산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정해져 있다(히 9:27). 그때에 우리는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결산을 보아야 한다.

삶의 초점을 주님께 맞추면 영원을 지향하게 된다. 선교사로 자원한 사람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가? 계산을 해 보니 자신의 인생을 혼의 구원을 위해 바치는 것이 가장 값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요즘에는 먹고살려고 명목상 선교사가 되는 일들도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값진 인생이란 썩어 없어지지 않을 것에 투자하는 인생이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부요한 사람, 즉 현명한 사람이 된다.

누가복음의 부자는 수확을 너무 많이 해서 둘 장소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기존 창고를 헐고 더 큰 창고를 지어서 곡식을 쌓아 두고는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가겠다고 인생을 계획했다. 한 인간이 미래를 대비하고, 자식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재산을 남겨 주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이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셨는가? 이 농부는 사람의 생명이 자기가 소유한 것의 풍부함에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생명이 중요한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 땅에 무엇인가를 축적하는 일에 몰두해서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이었는지를 잊어버린다. 살려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죽으려고 일하는 것이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 즉 곡식, 재산, 돈, 명예, 땅 등은 사라진다.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가복음의 부자는 그것을 몰랐다. 사도 야고보는 말한다. 『해는 타는 열기로 솟자마자 풀을 마르게 함으로 풀의 꽃이 떨어져서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나니, 부자도 그의 길이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약 1:11). 야고보는 또 『이제 오라, “오늘이나 내일 우리가 어느 성읍으로 가서 거기서 일 년쯤 지내며, 사고 팔아 수익을 올리리라.” 하는 자들이여 너희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 오히려 너희가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겠고, 또 이것이나 저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 말해야 할 터인데 이제 너희가 너희의 자만 가운데 기뻐하고 있으니 그러한 기쁨은 다 악하니라.』(약 4:13-16)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썩지 않는 것에 더 관심을 두라고 하셨다.

썩어질 것을 소유한 사람은 결국 썩어질 것만을 가지게 된다. 반면 영원한 것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소유한다. 누가복음의 부자가 어리석다는 말씀을 들었던 것은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땅에 있는 것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위에 있는 것은 소홀히 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부자는 땅에서 구한 것을 쌓아 둘 육신의 창고만을 생각했지, 영원한 보물을 쌓아 둘 하늘의 창고를 짓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하늘에 영원한 보물을 쌓아 둘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누가복음 12:29-31에 제시되어 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도 말고 마음에 의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의 민족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런 것이 필요한 줄을 아시느니라. 오히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여지리라.』

금광이 아닌 곳에서 금을 얻겠다면서 1년 365일 밤낮으로 땅을 판다면 그 사람은 바보다. 금을 얻으려면 금맥이 있는 곳을 파야 한다. 영원한 보물을 얻을 수 있는 “금맥”은 주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나라”라는 우선순위를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을 수가 없다. 기도원에 들어가서 아무리 부르짖는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다. 기도라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한 관계를 맺은 하나님의 자녀가 그 올바른 관계 속에서 구할 때 응답되는 것이다.

(금광이 아닌 곳에서 금을 얻겠다고 1년 365일 밤낮으로 땅을 판다면 그 사람은 바보다. 금을 얻으려면 금맥이 있는곳을 파야 한다. 영원한 보물을 얻을 수 있는 “금맥”은 주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나라”라는 우선순위를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을 수가 없다. 기도원에 들어가서아무리 부르짖는다고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무엇인가를 하기에 앞서 먼저 땅에 속한 가치관을 더 높은 가치관으로 바꾼다. 우리는 소유든, 재산이든, 재능이든, 은사든, 능력이든, 지식이든 영원한 것을 위해 쓰겠다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과거에는 세상을 좇아 살았더라도, 말씀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바라야 하는 것이다. C.I. 스코필드나 찰스 피니 같은 사람들은 원래 변호사였다. 세상 법정에서 사람을 변호해 주는 일도 훌륭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부와 명예가 결국 썩어질 것임을 깨닫고 더 고상하고 가치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드렸다. 클라렌스 라킨은 건축 제도사였다. 그가 세상의 큰 집을 짓는 설계도면에만 만족했다면 위대한 세대주의 도표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우리는 훌륭한 선교사들을 안다.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 등은 그들의 본국에 있는 따듯한 집, 편안한 침대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지로 떠났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 100여 년 동안에는 왜 이런 인물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왜 세계 교회사에서 회자되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땅에 있는 것들을 위에 있는 것들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자기 교단, 자기 교회의 세력만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33-38은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들은 믿음을 통하여 왕국들을 정복하기도 하고 의를 이루기도 하며, 약속들을 받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소멸시키기도 하고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함 중에 강하게 되기도 하고 전쟁에서 용맹스럽게 되기도 하며, 외적들을 패주시키기도 하며 여자들은 그들의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굳이 면하려 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들이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함이라. 또 어떤 사람들은 잔혹한 조롱과 채찍질의 시련도 받았고, 더욱이 결박당하고 감옥에도 갇혔으며 돌로 맞고, 톱으로 켜지고, 시험을 당하고, 칼로 살해되었으며, 양의 가죽과 염소의 가죽을 쓴 채 유리하며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당했느니라. (세상은 그들이 살 만한 데가 못 되었으므로) 그들은 광야와 산속과 동굴과 토굴에서 유리하였느니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더 고상하고 가치 있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썩어질 것들에 소망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사도 바울 역시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얼마나 많은 수고와 매 맞음과 감옥에 갇힘과 죽음의 위협을 감당해야 했는지 고백한다. 그런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세 번이나 강조한다(고전 3:16,17; 6:19,20; 7:23). 고린도 교회가 하도 세속적이고 엉망이었기 때문에 이런 점을 깨우쳐 줘야 했다. 육신적인 교회에게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며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거듭 당부했던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썩지 않는 것”을 소유하겠다는 참된 가치관을 정립한 채로 그것을 얻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썩지 않는 분”으로 묘사되신다. 『이제 영원하신 왕, 썩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 1:17). 우리는 “썩지 않는 피”(벧전 1:18,19)와 “썩지 않는 말씀”(벧전 1:23)으로 구속받았고, 우리를 위해 마련된 하늘의 유업 또한 “썩지 않는 유업”(벧전 1:4)이다. 심지어 우리는 단장하는 것조차 “썩지 않는 영”으로 한다(벧전 3:4). 우리가 시험과 유혹에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하면 “썩지 않을 면류관”(고전 9:25)이 주어진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면 우리는 “썩지 아니하는 몸”(고전 15:52)으로 변화되어 영원히 살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썩어질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상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거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피터 럭크만 목사 역시 세상의 인정을 받는 사역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위해서 헌신했던 것이다.

나는 현명한 사람인가? 나는 나의 생명이 내가 소유한 것의 풍부함에 있지 않다고 믿는 사람이다. 재산을 많이 모아 무엇을 하려는가? 애써 모아 놓은 재산을 써 보지도 못하고 죽으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 채로 재물을 쌓는 데만 몰두해 있는 사람이야말로 성경이 지적하시는 가장 비참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현명한 사람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가치에 소망을 둔 채 살아간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라면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부요하다.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주님과 온전한 교제를 나눈다면, 세상에서 아쉬울 것이 없어질 것이요 세상에 아쉬운 소리를 할 일도 없어질 것이다. 조지 뮬러처럼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면 사람에게 구걸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모든 필요를 채움받을 수 있다. 만일 여태껏 썩어질 것에 소망을 두고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들었다면, 이제 돌이켜야 한다.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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