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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카톨릭의 비성경적인 교리 (3) ˝미사˝라는 이름의 희생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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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7월호>
미사라는 이름의 희생제사(The Sacrifice of the Mass)“미사는 한 마디로 가장 거룩하고 가장 완전한 제사입니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시어 인류의 죄를 씻기 위해서 하느님께 바쳐진 제사의 재현입니다.” 이것은 미사 중 소위 ‘성체성사’에 대한 어느 신부의 설명이다. 성체성사의 재료는 빵과 포도주인데, 사제는 그것을 “절대자에 대한 예배의 극치이며 감사와 구원의 행위로서” 제단에 바친다. 그런 후에 예수님의 살과 피에 대한 말씀을 사제가 읊는 그 순간 그 ‘동그란’ 빵과 포도주는 ‘실제적인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고, 신도들은 사제와 함께 그 제물을 나누어 먹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매 미사 때마다 실제적인 그리스도를 제단에 바치는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단번에 온전하게 하신 제사를(히10:10-14) 수만 번 반복하는 것이나, 진짜 사람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야만성은 뒤로 하고, 여기서는 그 “피없는 제사”를 받는 대상(하늘의 여왕)과 제사에서 드려지는 둥근 빵의 기원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겠다....<편집자 주>
바빌론에서 킬리키아로, 킬리키아에서 쿠프로의 파포로 전해진 “피없는 제사”
앞에서 우리는 “침례로 거듭남”과 “행위로 의롭게 됨”이라는 로마 카톨릭의 비성경적 교리가 갈대아에서 왔다는 것을 살펴보았는데(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93년 4, 5, 6월호 참조), 그들이 드리는 “피없는 제사”인 미사 역시 갈대아의 신비종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피없는 제사”의 기원이 바빌론이라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타시투스(Tacitus)에 의하면 파포(Papho) 사람들은 비너스 여신을 숭배했는데, 여신에게 바치는 제단에는 피를 드리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러 가지 증거들로 미루어 보아 그곳의 여신 숭배 의식은 킬리키아(Cilicia)에서 유래한 것이며, 이것은 다시 바빌론으로 소급해 간다. 그 이유는 킬리키아의 수도 타소(Tarsus)는 앗시리아 왕 세나케립(Sennacherib)이 바빌론을 모방하여 세웠던 도시였으며, 따라서 자연히 타소의 종교 또한 바빌론의 그것과 일치하게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쿠프로(Cyprus)에서는 볼 수 없는 “피없는 제사”가 킬리키아에서 온 사제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사실은 이 “피없는 제사”가 바빌론으로부터 킬리키아를 거쳐 쿠프로로 전해졌다는 가정이 성립되게 한다.
이러한 가정은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설명gks 다음과 같은 사실로 더욱 확실해 진다. 그는 바빌론에서 여신 ‘밀리타’(Mylitta)의 이름 아래 처녀들의 몸을 더럽히는 혐오스런 기관이 쿠프로에서는 ‘비너스’ 여신의 이름 아래 존재했었다고 말한다. 또한 역사가 포사니아스(Pausanias)는 결정적으로 아테네에 있는 벌칸신(Vulcan)의 신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신전의 근처에는 거룩한 여신 비너스의 신전이 있다. 처음에는 앗시리아인들이 그녀를 숭배하였는데, 이후에는 쿠프로의 파포인들이, 그 이후에는 팔레스타인의 아스칼로 시에 거주했던 페니키아인들이 이 여신을 숭배하였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인들로부터 그녀를 숭배하는 신성한 의식들을 전수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시리아인의 비너스, 다시 말하면 바빌론의 여신과 쿠프로인의 비너스가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것이며, 따라서 파포인들이 숭배했던 여신의 “피없는 제단”은 그녀의 전신인 바빌론 여신 숭배의 특징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들보다 더 자애로운 모습으로 부각되는 어머니 여신
갈대아의 여신 하늘의 여왕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녀의 팔에 안긴 아들과 정 반대의 성격을 가졌다. ‘아들’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피를 즐거워하는 잔인한 신으로 묘사되었다(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92년 6월호 참조).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와 반대로 “은혜와 자비”의 어머니로서, 하늘의 “비둘기”로서, 또 “온 세상의 소망”으로서 피를 혐오하며 자비롭고 온유한 성품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바빌론에서 그녀의 이름은 밀리타(Mylitta), 즉 “메디아트릭스”(Mediatrix, ‘중재자’라는 단어의 여성형 - 편집자 주)였다. 성경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라는 것을(딤전 2:5)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음을아는 사람이라면 로마 카톨릭이 마리아에게 “중보자”의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중보자” 외에 아프로디테(Aphrodite), 즉 “분노를 가라앉히는 자”라는 명칭을 가졌다. 즉 그녀가 갖고 있는 매력으로 쥬피터 신의 분노를 가라앉힐 뿐 아니라, 모든 신들과 인간들의 상심한 영을 달래 준다는 것이다. 그녀는 아테네를 비롯해서 로마, 인디아, 중국 등지에서 “자비로운 어머니”, “착한 여신” 등으로 불리면서 가장 자비롭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묘사되었으며, 그녀를 기리는 제일에는 “피있는 제사”를 절대로 드리지 않았다. 이 갖가지 이름의 어머니 여신에게 이렇듯 자애로운 성품을 부여하는 것의 근원지는 바로 갈대아이다.
아들에게 물렸던 젖으로 아들을 달래는 어머니
이렇게 해서 우리는 로마 카톨릭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온유하고 겸손하시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우셨고,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엄격하고 냉혹한 심판자”로 만드는 반면, 마리아는 죄인의 소망이자 범죄한 인간의 피난처로서 부각시키게 되었는지를 보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의 경건 서적들은 바로 이러한 원칙 하에 성모 마리아의 자비와 온유를 부각시키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깎아내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성 알폰수스 리궈리(St. Alphonsus Liguori)는 “그리스도께로 직접 가려고 하는 죄인은 그 분의 진노를 보고 공포 속에서 돌아오게 되지만, 동정녀 마리아를 중보자로 삼으면 아들에게 물려서 빨게 했던 그녀의 가슴을 아들에게 보여 주기만 하면 그의 진노는 즉시로 가라앉게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 어디에서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을 낳은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다.”라고 외친 여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이 있노라.”(눅11:27,28)고 대답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성경에서 발견할 수도 없고 또 성경이 분명하게 부인하는 그러한 개념이 이교도들의 영역에서는 널리 수용되었던 것이다.
그 예로 시바(Siva) 신과 그의 아내 칼리(Kali) 여신과 관련된 힌두교 신화 중 그 신이 어린아이로 나타났을 때의 이야기를 들 수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카톨릭의 그것과 완전히 똑같은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라잉가 퓨란(Lainga Puran)에 의하면 어느 날 그 신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는데, 칼리가 그를 안아들더니 그를 어르면서 그녀의 젖을 물려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화가 나게 되자 그녀는 그를 꼭 끌어안은 채 그가 만족해하고 기뻐할 때까지 그를 달랬다고 한다. 힌두교의 신화가 자기들의 가장 위대한 신을 그렇게 격하시키는 어조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면 로마 카톨릭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그가 빨았던 젖”을 어머니가 보여 주면서 “달래야만” 진노를 가라앉히는 분으로 묘사한 것은 얼마나 우리의 주님을 격하시키는 것인가? 이 모든 것은 영광스러운 아들보다 그 어머니를 더 자비롭고 더 인정많은 인물로 격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피가 없는 “빵”을 제물로 받았던 바빌론 여신
바빌론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섬겼던 하늘의 여왕에게 드려지는 제사는 그녀의 그러한 성품과 일치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유대의 여인들이 단순히 “ ”(렘44:19)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빵들은 그녀가 요구했던 “피없는 제사”였다. 신도들은 그 “피없는 제물”을 여신에게 바쳤을 뿐만 아니라 신비 종교의 의식을 거친 뒤에 여신에게 충성할 것을 새롭게 맹세하면서 그들은 그것을 먹었다.
4세기에 하늘의 여왕이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서 숭배되기 시작했을 때 이 “피없는 제사”역시 도입되었다. 에피파니우스(Epiphanius)는 빵을 신에게 바치고 그것을 먹는 관습은 아라비아의 여인들에게서 시작되었으며, 당시에는 그것이 이교도들로부터 수용되었다는 사실이 익히 알려져 있었다고 말한다.
태양신을 상징하는 둥근 빵
한편, 로마 카톨릭이 피없는 제사에 사용하는 빵의 모양 자체가 그것의 기원을 잘 말해 준다. 그것은 작고 얇은 “둥근” 모양의 웨이퍼(wafer)인데, 카톨릭 교회는 그것의 “둥근 모양”을 한없이 강조한다. 이 빵을 “신”(god)으로 묘사했던 존 낙스(John Knox)도 그것의 둥근 형태를 강조했다. “만일 어떤 빵이 둥글게 만들어지다가 부서지면 부서진 빵을 대신해서 다른 빵이 신으로 탄생되는 영광을 물려 받게 된다. 그리고 한때 신으로 만들어질 뻔 했지만 결국 부서져버린 가련한 빵은 아기에게 주어서 가지고 놀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로마 카톨릭으로 하여금 “피없는 제물”이 “둥글어야” 한다는 점에 그토록 연연해 하도록 만들었는가? 주의 만찬은 결코 아니다. 성경에 만찬과 관련된 내용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떼어 주셨던 빵은 그 “모양”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유월절 무교병에 대한 계명도 절대 아니다. 모세가 기록한 책에는 빵의 형태와 관련된 어떠한 명령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로마 카톨릭이 성체의 둥근 형태에 부여하는 중요성은 무언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이집트 신비 종교의 제단에서 발견된다. 윌킨슨은 “모든 제단 위에는 얇고 둥근 빵이 올려졌다.”고 말한다. 여기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집트인들이 숭배했던 모든 것에는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집트의 신성한 상징물에 자주 등장하는 “얇고 둥근” 모양은 바로 “태양”을 상징했다. 태양신으로 숭배되었던 오시리스가 육화하여 태어난 것은 인류를 위해 희생되는 동시에, 인간의 혼에 생명과 “양식”이 되기 위해서였다.
“생명의 빵”을 낳은 여신 케레스(하늘의 여왕)
이집트의 이시스가 로마와 그리스의 케레스 여신의 원형이라는 사실은 널리 인정되는 바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케레스가 곡물을 “발견한 자”로서 뿐만 아니라 “곡식의 어머니”로서 숭배되었다는 점이다. 그녀가 낳은 아들은 “씨앗”이었으며, 앗시리아에서 그는 주로 “바르”(Bar)로 불렸는데, 그것은 아들과 곡식 두 가지를 동시에 의미하는 이름이었다. 신비종교에 입교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의 육신을 살지게 해 주는 곡식을 내려 주는 케레스 여신에게 경외심을 가졌으나, 입교한 사람들은 여신이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선물을 주기를 원했다. 즉 그들의 혼을 살지울 양식,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빵, “인간이 먹으면 결코 죽지 않을” 생명을 내려 주기를 소원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이집트인들이 사용했던 상징들은 그 숨겨진 성격에서 유대인들의 그것과 유사했다.”고 말한다. 이교도들은 케레스 여신이 세상에 내려주는 “곡식”은 이 땅의 “곡식”이 아니라 신의 “아들”이며, 오직 그를 통하여 영적인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으로 믿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분명하고도 결정적인 증거를 “곡식”의 형상을 하게 된 신에 대해 드루이드교도들이 하는 아래와 같은 설명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신은 어떤 이유로 인해서 케레스 여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으며, 겁에 질려 여신으로부터 도망쳤다고 한다. 도망치는 중에 그는 새의 모양으로 변신하여 하늘 높이 날아갔으나 여신은 매로 변해서 그를 따라잡았다. 그녀가 막 그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 그는 바닥에 곡식 더미가 있는 것을 보고 그리로 뛰어들어가 곡식 낟알로 변신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검은 닭으로 변하여 곡식 더미 속에서 그를 찾아내고는 그를 삼켜 버렸다. 그리고 아홉 달 동안 잉태했다가 그를 다시 낳았을 때는 그가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기의 모습”이었기에 그를 죽이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곡식의 낟알이 분명하게 “사랑스런 아기”와 동일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것으로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바르”, 즉 “곡식”의 어머니로만 알려진 케레스 여신이 입교한 자들에게는 “바르”, 즉 “아들”의 어머니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천구 위에 “손에 밀 이삭을 들고 서 있는 동정녀”의 그림이 상징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정녀의 손에 있는 밀이삭은 동정녀 어머니의 팔에 안긴 어린아이의 또 다른 상징에 불과한 것이다.
이집트의 위대한 여신이 “내가 낳은 열매는 태양이니라.”고 내린 신탁으로써 우리는 “곡식”으로 상징된 이 아들이 바로 육화한 태양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육화한 태양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신의 빵”을 사용했다면, 그가 “태양”신임을 나타내기 위해 둥근 웨이퍼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시스, 또는 세레스 여신이 낳았다는 이 신은 얇고 둥근 빵, 즉 생명의 빵으로서 여신에게 드려졌다. 이 신이 실제로는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는 태양, 즉 무시무시한 몰록이었으나, 이 제사에서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그의 본성은 베일에 가려지게 된다. 이렇게 빵이라는 상징물을 통해 그는 자비로써 심판을 누그러뜨리며 모든 영적 축복의 근원이 되는 자비로운 어머니 여신에게 바쳐진다. 그리고 여신 숭배자들은 어머니로부터 축복을 받은 그를 생명의 근원이며 혼의 자양물로서 먹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 여신은 가장 사랑받는 신으로서 떠받들어졌다. 그리고 이와 완전히 유사한 이유로 해서 로마 카톨릭의 마돈나는 “은혜와 자비의 어머니”로서 그녀의 아들을 능가하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의 신도들은 자기들이 미사 때마다 살살 녹여서 먹는 동그란 빵이 예수 그리스도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다름아닌 태양신의 상징이며, 그들이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바친다”고 생각하는 행위는 사실상 하늘의 여신에게 빵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