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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카톨릭의 비성경적인 교리 (4)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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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8월호>

십자가는 그것이 마치 기독교의 대표적인 상징인 것처럼 되어 있다. 이것은 카톨릭 뿐만 아니라 개신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를 세우면 지붕에 십자가부터 달아 놓아야 하고, 교인들이 바라보는 강대상 뒤에는 반드시 십자가가 걸려 있어야 한다.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이단시하기까기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그 나무 위에서 저주받으셨기 때문인가?(갈3:13)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있기 수 세기 전에 십자가와 똑같은 형태를 숭배하던 이교도들의 풍습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여기 그 대답과 함께 십자가가 기독교의 울타리 안에서 숭앙받기 시작한 원인을 밝힌다. <역자 주>


로마 카톨릭에서는 모든 것이 십자가로 시작해서 십자가로 끝난다. 모든 기도와 예배, 심지어는 걸음걸이 하나하나 마저에도 십자가 표시가 빈번히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자체에 위대한 마력이 있는 것으로 믿어 위험의 시기를 모면하게 해 주고 시험의 때에는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한다. 이렇게 십자가는 하나님 한 분께만 돌려져야 할 존귀를 가로채고 있다. 누구라도 신실한 카톨릭 신자 앞에서 이 십자가를 성경적인 용어로 “저주받은 나무”라고 부르면 그것은 최고로 신성모독적인 발언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 자체에 대해 그렇게 미신적인 감정을 갖는 것이나 인간의 손으로 만든 십자가에 경배하는 것의 근거를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즉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교리)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나니』(갈6:14)라고 한 바울의 말에서 찾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엉터리이고 얄팍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십자가가 마술적인 힘을 가졌다고 믿는 것과 그것을 숭배하는 관습은 결코 그런 데서 기원하지 않았다.

이교도들이 숭배했던 태양신 담무스의 머리글자 타우(T)

로마 카톨릭이 숭배하는 것과 똑같은 십자가가 바빌론 신비 종교에서 사용되었으며, 이교도들도 그것을 동일한 마술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였고, 동일하게 그것을 숭배했던 것이다. 현재 기독교의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원래 기독교의 상징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갈대아인들과 이집트인들이 사용하였던 신비의 문자 ‘타우’(mystic Tau) - 알파벳 T의 원형이자 담무스(Tammuz)의 머리글자 - 였던 것이다. 고대 갈대아어와 어원이 같은 히브리어에서 그 글자는 (동전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그림 1과 같은 모양이었고, 그림 2와 3은 각각 에트루리아(이탈리아 서부에 있었던 옛 나라)와 콥트(고대 이집트)의 타우의 모양이다. 이 신비의 문자 타우는 신비 종교에 입교하는 사람들이 침례받을 때 그들의 이마에 표시되었으며, 가장 성스러운 상징으로서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담무스를 태양과 동일시하기 위해 그림 4와 같이 타우 위에 동그라미가 더해지기도 했고, 그림 5와 같이 동그라미 안에 타우가 삽입되기도 했다. 카톨릭 주교들이 자기들의 위엄을 상징하기 위해 그들 이름에 덧붙이는 몰타 십자가가 글자 T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몰타 십자가가 명백한 태양의 상징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레야드가 밝혀냈듯이, 그것은 니느웨에서 태양을 나타내는 성스런 상징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신비의 문자 타우는 위대한 신을 상징하는 글자로서 “생명의 표시”(the sign of life)라 불렸다. 사람들은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 이 글자를 부적으로 착용하였고, 로마 사제들의 제복과 똑같이 사제들의 제복 위에 이 글자를 새겼으며, 왕들은 그들의 존엄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권위의 상징으로서 손에 이 글자를 들었던 것이다. 로마 제국에서 베스타 여신을 섬기는 처녀들은 현대의 수녀들과 똑같이 그것을 목걸이로 해서 목에 걸고 다녔다. 이집트인들도 마찬가지였으며, 유적이 증명하듯이 그들과 교류했던 여러 비문명국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중 어떤 부족들의 몸장식에 대해 윌킨슨은 이렇게 쓰고 있다.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귀걸이를 착용했으며, 종종 목걸이나 옷깃에 조그만 십자가를 달고 다녔다. 십자가를 착용하는 것이 그들 특유의 관습은 아니었다. 로트노(Rotno)의 제복에도 십자가를 달거나 그려 넣었고, 레보(Rebo)의 화려한 장신구에서도 십자가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가 시작되기 15세기 전부터 십자가 형태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그림6) 이교도 부족들 중 십자가를 사용하지 않는 부족은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교도 켈트족도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 훨씬 이전에 십자가를 숭배했다. 모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드루이드 교도들은 종종 숲속에서 가장 위풍당당하고 아름답게 생긴 나무를 골라서 그들이 경배하는 신의 상징으로서 가지들은 모두 잘라내고 그 중 가장 긴 것 두 개를 줄기의 윗부분에 부착시킨다. 그렇게 해서 두 개의 가지를 양쪽 방향으로 뻗은 인간의 양 팔처럼, 그리고 줄기는 몸처럼 보이게 하여 하나의 거대한 십자가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껍질 몇몇 군데에는 타우를 새겨넣었다.” 멕시코에서도 로마 카톨릭 선교사들이 발을 들여놓기 훨씬 전부터 십자가가 숭배되었는데, 그들이 세운 거대한 돌 십자가들은 비(雨)의 신을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널리 숭배되고 신성한 상징으로 여겨졌던 “십자가”는 바빌론의 메시아인 바커스(Bacchus) 신의 상징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는 그가 십자가로 뒤덮인 머리띠를 하고 있는 것으로(그림7)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바빌론 신의 상징인 이 십자가는 불교가 성행하는 타타르 지방에서도 사용되고 있는데, 십자가가 그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로마 카톨릭의 그것과 놀랍게도 일치한다. 윌포드(Wilford)는 그의 『아시아 연구(Asiatic Researche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교도들이 십자가를 숭배하는 것은 아니지만, 십자가는 분명히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상징이다. 마니교도들의 십자가 역시 같은 모양인데, 그들의 십자가에서는 나뭇잎과 꽃들이 피어나와 있는 점이 다르다. 나뭇잎과 꽃(필자가 듣기로는 과일까지도)을 내는 이 십자가는 신성한 나무, 신들의 나무, 생명과 지식의 나무라 불리며, 좋고 선한 것은 다 이 나무의 열매인데, 이 나무는 현재 지상의 낙원에 있다고 한다”.

이것을 로마 카톨릭이 십자가를 두고 사용하는 표현과 비교해 보면 양자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알 수 있다. 십자가의 기도에서(the office of the cross) 십자가는 “생명의 나무”라 불리며, 이어서 신도들은 이렇게 말하도록 되어 있다. “오 십자가여, 승리의 나무여, 세상의 참 구원이여, 나무 중에 잎과 꽃과 열매가 그대와 같은 것이 없나이다.... 오 십자가여,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여, 경건한 자들의 의는 늘려 주시고 죄인들의 죄는 용서하소서.”
성경에서 예수님이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로마 카톨릭에서 말하듯 “나뭇잎”이며, “꽃”, 심지어 “열매”까지 달린 십자가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바빌론 신비종교의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불교도들의 십자가가 바로 “모든 병을 낫게 하는” 겨우살이 나무의 가지로 알려진 담무스의 상징이라는 것을 볼 때 성스러운 머리글자(T)가 어떻게 해서 나뭇잎으로 덮여 있는 것으로 묘사되며, 그것을 도입한 로마 카톨릭이 어떻게 해서 그것을 “건강을 지켜 주고 병든 자를 낫게 하며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능히 하는” 나무로 부르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집트의 교회에서 처음으로 유입, 아프리카로 확산

이 이교도의 상징은 처음에는 이집트에 있는 교회 안으로, 그 뒤에 점차적으로 아프리카로 스며들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3세기 중반 경 터툴리안의 진술은 당시 카르타고(Carthage) 교회가 묵은 누룩에 얼마나 오염되어 있었는지를 말해 준다. 특히 복음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던 이집트는 이 이교도의 상징을 교회 안으로 유입하는 데 앞장섰던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의 십자가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 유적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곳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이교도의 타우, 즉 이집트인들이 “생명의 나무”라 부르는 것이었다.
윌킨슨의 다음과 같은 진술을 들어 보자. “이 상형문자(타우를 말한다)를 고려해 볼 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초대 이집트의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가 들어갈 자리에 이 문자를 유입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나중에는 완전히 십자가를 대신하게 되었고, 후대에는 십자가와 동일한 방법으로 비문에 새겨지게 된 것이다. 영(Dr.Young)은 기독교와 전혀 상관이 없는 오시리스의 묘에서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 에드몬스톤(A. Edmonstone)의 진술을 믿는 데 주저하지만, 필자는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으며, 수많은 비문들이 그 머리에 타우를 새긴 채 초대 기독교의 유적으로서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이같은 진술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즉 이집트에서 십자가라고 불리는 것의 초기 형태는 오시리스 및 다른 모든 이집트인의 신들이 들고 있는 “크룩스 안사타”(Crux Ansata) 즉 “생명의 표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의 ‘안사’(ansa), 즉 “손잡이”는 후에 없어졌으며 그것이 단순한 타우, 또는 오늘날 볼 수 있는 평범한 십자가가 된 것이다. 따라서 그 십자가를 비문에 사용하게 된 의도는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고 기독교식으로 개명까지 하였지만 여전히 그 마음과 감정은 이교도였던 자들에게 언제나 강하게 남아 있던, 이교도의 상징에 대한 뿌리깊은 애착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것이, 그리고 이것만이 유일하게 십자가 숭배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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