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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즘의 형성 배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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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11월호>
진리의 영『진리의 영이신 그 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에로 인도하시리라』(요6:13).
영국 국교회(‘성공회’로 알려져 있음) 부흥운동을 주도하는 마이클 하퍼(Michael Harper)는 1980년 출간된 그의 책자 「은사주의의 위기」(Charismatic Crisis)에서 이렇게 말했다. “은사주의 부흥운동은 진리에 관한 한 특별히 뛰어난 기록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필자는 여기서 기독교의 진리를 언급하고 있다. 이 운동은, 적어도 이제까지는, ‘간증’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성경의 진리에 관해서는 아주 약한 입장을 취해왔으며 심지어는 진리를 무시하기까지 하는데, 이는 진리를 강조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연합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될까 하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과거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어 하나에 대한 의견대립과 서로 다른 교리로 인한 분파 싸움에 휘말렸었기 때문에, 서로간의 적개심을 해소하고,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나누는 원인이 되었던 커다란 이슈들을 접어두며, 개인적인 성령의 체험이라고 하는 새로운 화합점을 찾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화합은 ‘증거 신학’(testimony theology)을 그 기반으로 삼는 것이 가능한 동안만 지속될 것이며,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흥운동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은 성령 충만한 카톨릭 신자들이 이제 성경을 알게 되어 카톨릭 교회 내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믿었다. 성경의 진리들을 깨닫고, 미신과 우상이 사라지며, 전통은 무시되고, 로마카톨릭 체제 자체 내부로부터 극적인 개혁이 일어날 줄로만 알았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 부흥운동으로 새롭게 된 카톨릭 신자들이 그들 교회의 교리를 거부한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도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많은 에큐메니칼 카톨릭 신자들이 그들이 고수하는 교리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도 그들과 함께 교리에 대해 토론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톨릭에 개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견해는 최근 한 기독교 잡지에 보낸 젊은 카톨릭 신자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로마카톨릭 내의 전적으로 비기독교적인 제도에는 반대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카톨릭 교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서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거대한 개혁의 물결이 내부에서부터 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실상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케빈 래너건(Kevin Ranaghan) 박사는 1977년 캔사스 시티에서 열렸던, 주목할 만한 최초의 에큐메니칼 대회 및 뉴 올리언즈 1987 부흥집회의 의장을 맡았는데, 후자에서는 모든 강사들(케네스 코프랜드, 제임스 로빈슨, 존 윔버 등)이 대회에서 결정된 사항들에 서명했다. 그는 대회에서 “카톨릭 교회는 카톨릭 교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성령의 부으심이 카톨릭 교회 내에서 카톨릭 신자들에게 최근 일어났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흥운동 지도자인 로마카톨릭 신자 버트 게지(Bert Ghezzi)는 미국의 유명한 ‘프로테스탄트’ 은사주의 잡지 『카리스마』 紙의 편집인인데, 그는 감격에 차서 자신의 아내와 자신의 체험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카톨릭의 전통적인 헌신, 예를 들면 마리아를 위한 헌신 등과 같은 것들이 이제 우리에게도 의미있는 것이 되었다. 성도들의 성별된 삶, 특히 우리 부부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 하는 고행은 더욱 의미있는 것이 되었다.”(케빈 래너건, 『카톨릭 은사주의』 1969)
카톨릭의 복음주의와 부흥운동을 위해 조직된 단체인 ‘Fire’는 “신실한 카톨릭 신자들로 하여금 성사와 마리아, 교황, 주교 등을 위해 더욱 헌신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믿음과 도덕에 관한 문제를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령 및 세계 복음화운동을 위한 1987년 뉴 올리언즈 대회 때 ‘Fire’(믿음 Faith, 중보 Intercession, 회개 Repentance, 복음화운동 Evangelism의 약자)라는 제목으로 배포되었던 팜플렛의 메시지였다.
톰 포레스트(Tom Forrest)는 로마카톨릭의 ‘복음주의 10년’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는 인물로서 카톨릭 은사주의 부흥운동을 위한 전체 조직의 핵심 인물인데, 그는 명백하게 로마 교회에 속하는 교리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로마카톨릭 신자들을 위한 훈련 과정인 “인디아나폴리스 ’90”에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신앙의 부흥에 대해 열정과 확신에 차 이야기한 바 있다. 1990년대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그의 말을 인용해 본다.
“복음화운동에 있어서의 나의 임무, 나의 역할, 아니 우리의 역할은 단순히 그리스도인들을 만드는 데에만 있지 않다. 우리의 임무는 사람들을 카톨릭 안으로 데려옴으로써 그들을 풍성하고 또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결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카톨릭 신자가 되라고 말해야 한다. 사람들을 여러분의 교구 교회로 데려와 새로운 회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왜 그렇게도 중요한 것인가? 여러분에게 그 이유를 몇 가지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우선, 성사(聖事)에는 모두 일곱 개가 있는데 카톨릭 교회는 이 일곱 모두를 지킨다. 그리스도께서 일곱 가지 성사를 제정하셨다면, 그것 모두를 지켜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카톨릭 신자인 우리에게는 입교의 성사인 세례뿐 아니라 견진성사가 있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함에 이르게 해 주며, 맥키니(McKinney) 주교가 미사 때 말한 것처럼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임명하고 우리에게 능력을 준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으로서만 행하지 않는다. 제단 위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피를 마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제단 위에 제물로서, 또한 사랑의 향연으로서 살아계시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에서 나온 하나의 혼인 행위이다. 우리는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푸에르토리코의 한 교구 교회에서 병자에게 기름 바르는 성사를 수많은 교구 신자들에게 행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찼었다. 그 성사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병이 치유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다시 하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그 후 수개월 동안 사람들이 고해실과 사무실로 찾아와 자기들이 그 성사를 통해 온전하게 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들은 병만 나은 게 아니었다. 그 성사로 인해 낙원의 문이 그들에게 열렸으며, 죄로 인해 겪는 내적 형벌까지도 치유되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복된 성사인가! 이 얼마나 복된 교회인가!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아름답게 역사하시는가!
“여기에 우리는 2000년의 전통을 통해 지켜져왔고 완전케 된 믿음의 유산을 덧붙일 수 있다. 우리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마리아가 있다. 우리의 어머니 마리아, 낙원의 여왕은 영광중에 우리와 만날 때까지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 계시다.
“우리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베드로로부터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는 교황들의 역사가 있다. 우리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기초가 되는 반석이 있다.... 우리의 역사는 2000년에서 10년 모자란다. 이제 우리의 임무는 남은 10년을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카톨릭 안으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카톨릭 역사의 세 번째 천년기간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부흥운동의 초기에는 사람들을 로마카톨릭 안으로 끌어들일 것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위와 같은 내용은 CCR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선언되지 않았었다. 은사주의 집회의 부흥사들은 믿음과 실행에 관한 그 어떤 불일치도 일단은 뒷전으로 미루었다. 60년대 및 70년대의 영향력 있는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은 이 부흥운동이 개혁과 화합을 위한 길이라고 확신했다.
복음주의 진영의 분열
1977년 노팅햄에서 열린 ‘전국 복음주의 성공회 공회’(NEAC)에서 데이빗 왓슨(David Watson)은 종교개혁을 “교회 역사상 일어났던 가장 비극적인 일 중 하나”라고 말했으며, 또 더블린에서 열린 ‘카톨릭/프로테스탄트 은사주의 집회’에서 “자신의 몸이 분열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슬픔을 느끼셨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Evangelicals Tomorrow: John Capon, Collins, Glasgow).
마이클 하퍼(Michael Harper)는 에큐메니스트로서의 자신의 신앙 노정을 “현대 교회에 일어난 세 가지 중요한 영적 흐름”과 연관지어 표현했다. 그의 저서 「바로 오늘」(This is the day)에서 작중 인물 캐논 하퍼(Canon Harper)는 세 명의 자매에 대해 말하는데, 그들의 이름은 이반젤라인(Evangeline), 카리스마(Charisma), 로마(Roma)로서 각각 복음주의 및 은사주의 운동과 로마카톨릭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들이 “한때는 그에게 저주받을 이단이었으나, 이제 그는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심오하고도 사랑에서 우러나온 헌신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성 프란시스 성공회 협회의 라몬(Ramon) 형제는 그의 책자에서 영적 대립의 해소에 대해 이렇게 썼다.
“마이클이 한때 가졌던 편견이 사라지자... 그는 이전에 거부했던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며 그들을 통해 성령을 배우게 되었다. 카톨릭 신앙생활의 영적 보물창고가 그에게 활짝 열린 것이다. 성경적 교리는 뒷전으로 하고 그는 말한다. ‘성모 마리아가 생생하게 다가왔으며 이제 나는 복음주의를 통해 성 바울을 안 것과 똑같이 그녀를 알고 있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의 창조, 창조의 역사가 제공한 은사, 자연과 자연의 예술, 이 모든 것이 그에게 생명을 갖게 되었으며, 하나 된 교회는 종교개혁 이전에 교회 안에 존재했던 모든 풍요함과 함께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성사는 더 이상 생명없는 기계적인 의식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곳에서 효과적으로 역사하는 표적이 되었다. 로마를 만나면서부터 거룩한 교제(holy communion)는 타는 듯한 사막의 오아시스가 되었다.”(Brother Ramon SSF: Deeper Into God, PP. 81,83, Marshall Pickering, 1987)
WCC의 고문이자 유명한 복음주의자인 존 스코트(John Scott)는 노팅햄 NEAC 집회에서 “우리의 목표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시적인 연합이 되어야 한다... 또 복음주의자들은 로마카톨릭과 완전한 교제를 이루기 위해 영국 교회 내의 각 집단과 연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같은 해인 1977년에 존 스코트는 베니스로 가서 ‘선교에 관한 복음주의-로마카톨릭 대회’에 참석했다. 존경받는 복음주의 학자 패커(J.I.Packer)는 에큐메니칼 부흥운동을 지지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로마카톨릭 안에서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가? 프로테스탄트로서 본인은 로마카톨릭의 공식적인 주요 요소들이 왜곡된 기독교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어찌됐든 부흥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부흥운동이 지속되고 또 집중적으로 일어날 때 카톨릭은 기독교계의 나머지 부분들 및 우리 시대의 무지한 비기독교 세계를 위해 가장 많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New Covenant magazine, February 1988)
그러나 미국의 복음주의자 데이빗 클라우드(David W.Cloud)는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 “로마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목표, 즉 카톨릭을 굳건하게 다지고 카톨릭 지배를 재건하는 데 겉다르고 속다른 은사주의 운동보다 더 효과적인 도구가 없는 것이다. 이 운동은 카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로마의 사악한 비진리에 대해, 또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 배도한 집단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함에 대해 경고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게임은 로마의 승리로 돌아갔다.”
영국 성공회의 ‘교회 협의회’와 ‘개신교 연합’ 등은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하는 프로테스탄트 단체들로서, 은사주의 부흥운동과 ‘신복음주의’를 용납하는 것은 너무나 큰 대가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교회 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데이빗 사무엘(David Samuel) 박사는 1990년 그의 글에서 “우리는 교황의 권세에 초점을 맞추는 고대 종교체제의 부활을 목도하고 있다. 이것은 교황의 권세가 일시적으로 약화되었고 바티칸의 운명이 쇠퇴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던 1870년에는 짐작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우리는 이 종교체제의 놀랄만한 부활을 보았으며, 이것은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한 교회 제국(ecclesiastical empire)의 건설로 이어질 것이다.”(The End of the Ecumenical Movement: The Harrison Trust, 1990)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이제 압도적이지는 않더라도 상당한 세력을 확보했다고 보고 있다. 믿음에 있어서 결정적인 차이점들은 무시되었으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실제적으로 뒤바뀌어졌다. 개신교 연합의 서기 조지 애쉬다운(George Ashdown)은 그리스도인들이 다음의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고 믿는다.
“종교개혁을 이루었던 사람들(Reformers)은 카톨릭 체제를 반 기독교적이라고 보았다. 루터와 칼빈은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하기까지 했고, 위클리프, 틴데일, 매튜 헨리, 스펄전, 로이드존스,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로마카톨릭 체제를 계시록 17장에 생생하게 묘사된 신비의 바빌론,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로 보았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