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증인 분류
부활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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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3월호>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은 죄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차원을 넘어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최대의 소망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영과 혼의 불멸을 부인하고, 지옥의 형벌을 부인하며, 주님의 가시적인 재림을 부인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과 더불어 천년왕국 또한 잘못 가르치고 있으며, 부활에 관한 지식도 단편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그들의 대표적인 이단 교리인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들로부터의 성도들의 부활과 죄인들의 일반적인 부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이 부활을 믿으며 그 날을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많은 이단들이 부활을 믿지 않았고, 믿는다 하더라도 잘못된 교리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시켰고 혼란을 가중시켜 왔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전제로 한다. 주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그분을 기다릴 수 없다. 주님의 부활은 그분이 확증해 주시며, 그분의 신성과 우리의 구원을 확증해 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올 영광과 소망을 준다. 부활이 없다면 그분을 믿고 따라야 할 근거가 무엇이란 말인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죽은 자에게 생명의 능력을 주는 이 놀라운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주의 이름을 부른다 한들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부활은 성경적 기독교가 서느냐 마느냐 하는 근거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즉 “내가 다시 와서...”(요 14:3)라고 하신 말씀의 전제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중요한 교리가 된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다.
여호와의 증인들도 부활은 인정한다. 그러나 부활 역시도 그들만의 사적인 교리로 오염시켜 놓았다. 그들의 부활에 대한 소망의 정의는 죽은 자나 산 자나 다 부활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성경에 의하면 죄인이나 의인이나 모두 다 부활한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그들은 부활을 마치 죄의 형벌로부터 면제해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부활에는 영원한 생명의 부활과 영원한 저주로 들어가기 위해서 심판받기 위한 부활이 있다(요 5:29). 그들은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던 로마서 6:7의 『이는 죽은 자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만일 사람들이 이전 생애에서 나타낸 행위에 근거하여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 점은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났다.’는 로마서 6:7과 일치하지 않는다. 또 단지 멸하기 위해서 부활시킨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5:28에서 앞으로 부활할 것을 지적하셨으며, 29절에서는 그들이 인간 완전성으로 높여지고 판결을 받은 후의 결과를 나타내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29절의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있다. 그들은 철저하게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만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저주의 부활이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바로 여호와를 증거한다는 여호와의 증인들이다. 그들이 선호하는 『의인과 불의한 자에게 다 죽은 자의 부활이 있게 되리라는 소망을 저 사람들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듯이 나도 하나님을 향하여 가지고 있나이다.』(행 24:15)라는 말씀을 저주의 부활로 나올 자신들의 복음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이 구절에서 상대하고 있는 무리들이 누구라는 것을 잘 알고 상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이 아니라 유대 총독 펠릭스라는 사실이다. 그는 바울에게 변호할 기회를 주었을 뿐이고, 성경적 교리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바울이 복음을 전했지만(행 24:24,25) 두려워만 했을 뿐 구원은 나중으로 미뤄 버렸고, 그에게서 뇌물을 바라고 2년씩이나 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인물이었다(행 24:26,27).
그런 자연인을 상대하면서 바울이 교리적인 사실들을 어렵게 늘어놓았을 것 같은가? 바울은 일반적인 부활만을 말했던 것이다. 바울은 생명의 부활과 저주의 부활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상대할 때는 그만큼 수준을 낮춰서 증거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봐라! 우리의 위대한 믿음의 선배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반가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수준이 펠릭스의 수준과 같다는 것을 증거할 뿐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성경 말씀을 왜곡시키는 방법은 창세기 3장에서 뱀이 이브를 속일 때 교묘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참 뜻을 변개시켰던 그 방법과 동일하다.
일반적인 부활은 기독교도들뿐만 아니라 많은 부류들이 믿고 있는 바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마르다가 일반적인 부활을 믿는다고 예수님께 말했다. 그 외에 바리새인, 이슬람교도들, 개신교도들, 카톨릭교도들, 여호와의 증인들이 믿고 있는 것이 바로 일반적인 부활이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성경에서 말하는 첫열매인 예수님의 뒤를 이어 많은 구약 성도들이 부활했으며, 앞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할 때는 첫 번째 부활로 부활할 것을 믿는다. 그리스도인이 부활할 때에는 예수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몸을 입은 33세 반의 피 없는 남성의 몸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 때에는 우리가 주님과 같이 될 것이기 때문이며(요일 3:2),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으므로(고전 15:50) 피 없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다음은 대환란이 끝난 후 예수님께서 지상 재림하실 때 환란 성도들의 부활을 믿는다. 추수에는 세 가지의 형태가 있다. “첫열매들”을 구약 성도들에게 적용하고 본격적인 “수확”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휴거에 적용할 수 있으며, 대환란을 통과해 휴거된 성도들을 “이삭줍기”에 적용할 수 있다. 유대인의 중요한 명절들인 무교절, 칠칠절, 장막절도 마찬가지로 순서적으로 적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천년왕국을 끝으로 큰 백보좌 심판석 앞에서 심판받기 위하여, 천년왕국에서 행위로 구원받고 죽은 성도들과 구약과 신약은 물론 환란과 천년왕국 기간에서도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죄인들이 심판을 받기 위하여 부활하게 되는데, 이 부활이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일반적인 부활이다. 첫 번째 부활과 일반적인 부활 사이에는 무려 천 년이라는 긴 간격이 있다. 이 사실은 세대주의적 관점에서 성경을 잘 나누어서 보면 너무나도 명백하고 간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천년주의자들과 후천년주의자들은 여호와의 증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 사실을 믿지 않고, 오히려 세대주의를 배격하고 있다.
다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이단적 교리가 여호와의 증인들 사이에는 물론이요, 제도권 교회 안에 얼마나 가증스럽게 자리잡고 있으며, 그들이 얼마만큼 진리를 가리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사역 기간 중에 제자들에게 여러 번에 걸쳐서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보다 더 앞서 다니엘 7:13에서 미리 예언되어 있었는가 하면 바울도 디모데전서 6:14에서 예언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구약을 통해서 1,500구절 이상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사도행전 1:10,11에서 천사들이 예언하였는데 주님이 승천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 있는 무리들에게 그들이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예언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분이 오실 때 『그가 구름들과 함께 오시리니,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계 1:7)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말씀을 믿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를 찌른 자들은 누구인가? 문자적으로는 로마 군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래전에 죽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의 참 추종자들을 비슷하게 박해하고 ‘찌르는’ 자들에 관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분명하게 모든 사람이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어떠한 어려움이나 오류가 없으시다.
말로는 주님의 재림을 얘기하면서도 성경에서 말하는 재림의 방법은 그들에게 있어서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재림하실 것인가? 요한복음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예수의 충실한 사도들]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제자들은 예수처럼 영적 피조물들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분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굽히지 않는 주님의 재림 모습에 관한 그들의 확고한 입장이다. 그러면서 친절하게도 『오직 그분만이 불멸하시며,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며,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니, 그분께 영원한 존귀와 능력이 있기를 원하노라.』(딤전 6: 16)는 말씀을 참고하라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 말씀 자체는 그들을 거치는 돌 앞으로 인도하고 만다. 그 말씀은 15절 말씀과 더불어 볼 때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예수는 피조된 신”이라거나 “하나님보다 열등한 신”으로서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그들의 주장을 스스로 뒤엎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들은 일관성이 없다. 이에 따른 또 다른 변명은 “요한복음 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예수께서는 자기의 몸을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도로 찾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다시는 몸을 입고 오시지 않는다는 그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각인이 본다는 말은 문자적인 뜻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호주 상공에 나타난다면, 유럽, 아프리카 및 남북 아메리카에서는 그분이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주님을 위해서 걱정도 많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주님을 돕기 위해서 성경을 왜곡해 가면서까지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주려고 애쓰고 있으니 친절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도움 없이도 각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재림하실 것이다. 주님의 속성인 무소부재하심을 몰라서 그런 염려를 하는 것인가?
그래서 그들이 주장하는 재림에 관한 부분에서도 아무리 성경 구절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교리는 그들의 망상에 불과하다. 그들의 또 다른 주장을 보면 1914년에 이미 마지막 날들이 시작됐다고 주장하면서 오심(Coming)과 임재(Presence) 사이에는 차이가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임재하고 계시며 앞으로 특정한 때, 즉 마지막 큰 날에 특별히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 집행관으로서 일하실 것이라는 주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서는 여호와의 증인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학자들이 서로 엇갈린 주장들을 해왔다. 이런 결과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억지로 풀다가 교리를 엉망으로 만드는 전형이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세 가지 다른 관점이 있다.
첫째는, ‘후천년주의’적 관점이다. 이 주장은 주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년왕국 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평화로운 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노력해서 천 년의 완전한 평화를 정착시킨 후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라는 주장이다. 둘째로는, ‘무천년주의’적 관점이다. 이 주장은 처음에는 ‘후천년주의’적 입장을 고수하다가 1,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평화로운 왕국의 출현이 실패할 것으로 보고 ‘무천년주의’로 돌아선 자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무천년주의’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서 통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셋째로, ‘전천년주의’적 관점이다. 이 관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이 땅 위에 어떤 형태로든지 완벽한 평화나 호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악한 세상에 평화의 왕이신 주님이 오셔야 비로소 완전한 평화를 정착시키는 천년왕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보는 관점이다. ‘전천년주의’적 관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대로 믿고 주님의 재림을 올바로 기다릴 수 있는 건전한 교리이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쓰여진 신약성경에서도 재림에 관해서 318번이나 언급되었다.
주님은 분명히 문자 그대로 재림하셔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을 의로 통치하시고, 모든 어두움에 감추어진 더러운 것들을 밝히 드러내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사망을 멸망시키시고,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그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고 약속하신 그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틀림없이 오실 것이다.
『이런 일들을 증거하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니라.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