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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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유산을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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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1월호>

『내가 주의 증거들을 영원히 한 유산으로 삼았으니 이는 그것들이 내 마음에 기쁨이 됨이니이다』(시 119:111). "인간 쇠락의 법칙"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재판관기"처럼 신약 교회사에서도 부흥과 배교와 회복이라는 영적 악순환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특히 영적인 대각성이 새롭게 일어난 뒤에는 항상 영적인 위기가 뒤따랐고, 그러한 각성이 그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또 그 세대도 모두 그들 조상에게로 합쳐졌고, 그들 후에 다른 세대가 일어났으나, 그들은 주를 알지도 못하며,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판 2:10).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상황인가! 마귀가 속삭이는 거짓된 보장에 안심하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믿음의 선대가 지녔던 "진리에 대한 확신," "영적인 활력," "생동감 넘치는 믿음" 등이 후대에게 자동적으로 전수되리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영적인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각 세대마다 참된 믿음과 의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복들을 붙잡는 것이다.

대각성을 뒤따르는 "위기"가 반드시 "재앙"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를 결코 떠나시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는다면, 그러한 위기와 시험은 오히려 승리를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이 말씀은 반드시 앞에 있는 7절 말씀과 함께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들려 주고 너희를 다스리던 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행실의 결과를 관찰하여 그들의 믿음을 따르라.』 다시 말해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둘씩 잠들어서 우리를 이끌던 영적 지도자들과 그 세대 전체가 하늘에 계신 주님 곁으로 가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비록 한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올지언정, 교회의 "반석"은 언제나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께서는 어제와 오늘을 연결해 주시는 "살아 있는 고리"이시자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의 시작부터 휴거 때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모든 성도들을 하나로 묶어 주신다. 동시대에 각지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시대와 장소와 사람이 달라지고 세대가 수없이 바뀌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교회의 영적인 "정수"(精髓)는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믿음의 영웅들, 믿음의 선두주자들, 귀감이 되었던 영적 지도자들이 이 세상을 떠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 뒤에 남겨 놓으신 후대들은 그 성경적인 믿음에 관한 한 조금의 손상도 입어서는 안 된다. "선생"이 현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의 "가르침"은 남는 법이다. 이와 관련하여 요한 웨슬리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일꾼들을 땅에 묻으시지만, 그분의 사역과 위대한 역사는 계속된다." 따라서 주님의 일을 하다가 결코 낙심하거나 지치지 말라. 하나님께서 항상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때로는 우리도 감옥에 갇히고, 거친 황야에 버려지며, 돌에 맞고, 톱으로 켜지고, 시험을 당할 수 있다(히 11:37). 하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가 뜨겁게 불타는 용광로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던 것처럼(단 3:20-27), 우리 역시 영적으로 어떤 해도 입지 않도록 주님께서 그분의 능력으로 지키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기는 자들보다 더 나으니라』(롬 8:37).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시기에 우리의 마음 역시 강하고 굳건해질 필요가 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소유로 삼으신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께 결코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우리 역시 신실함으로 응답해야 한다. "오늘"을 사는 성도들은 "어제"를 살았던 성도들에게 빚을 졌으며, 이들 모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없었다면 이 땅에 존재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먼저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뒤에 남겨진 성도들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거룩한 의무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짧은 인생은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가! 땅의 것들은 "진짜"가 아니다. 지금 이곳이 아니라 영원에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심각하고 진지하면서도 평온한 마음으로 더욱 용기를 내어,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무력함이 아니라 승리를 주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바라보며 일어나 전진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비를 받은 것과 같이 이 직분을 받았으니 우리는 낙심치 아니하노라』(고후 4:1).

창세기 24장에서 인생의 마지막에 다다른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의 신부를 얻기 위해 그의 종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있다. 『내가 하늘의 하나님이시며, 땅의 하나님이신 주를 두고 너로 맹세하게 하리니, 너는 내가 거하는 카나안인들의 딸들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얻지 말고 너는 내 고향 내 친족에게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얻으라』(3,4절). 그러자 그 종이 이렇게 묻는다. 『혹시 여자가 이 땅으로 나를 따라오기를 원치 아니하면,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그 땅으로 다시 데리고 가리이까?』(5절) 이에 아브라함은 매우 강력하고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답한다. 『너는 내 아들을 그곳으로 다시 데리고 가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그 여자가 너를 따라오고자 아니하면 그때는 나의 이 맹세로부터 네가 해제되리니, 내 아들만은 다시 그곳으로 데려가지 말지니라』(6,8절).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그다음 세대를 향해 얼마나 엄격하게 각인시키고 있는지 보이는가? "잘 들어라! 다시는 그곳으로 데려가서는 안 된다. 결코 그곳으로 데려가지 말라!" 하나님의 불러내심, 곧 그 "시작"은 절대로 변경 불가하다! 처음 세대가 믿음으로 이루어 놓은 것들을 두 번째, 세 번째 세대들이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후대는 선대가 남긴 믿음의 유산들을 신실하게 관리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 마지막 배교의 교회 시대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드물다며 한탄하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부흥의 시대인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에는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셨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슬퍼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죄의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면서 찰스 피니, D.L. 무디, R.A. 토레이, 조지 뮬러, 찰스 스펄전 등과 같은 영적인 지도자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순수한 열망에만 머물러 있을 뿐 정작 우리 자신은 변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기도에 전념하면서 주님께서 부흥을 주시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부흥을 기다리라는 명령은 없다. 부흥은 가깝든 멀든 미래의 일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당장 우리가 주님의 능력으로 채워져서 풍성하게 열매 맺는 삶을 "바로 지금" 살기 원하신다. 결코 "오늘"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는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미래는 우리의 기대 속에 존재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현재"이다. 말하자면 항상 존재하고 있는 현재를 통달해야 인생을 통달할 수 있는 법이다. 오늘 주님을 섬기지 않는 성도가 내일 주님을 섬기고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왕의 일은 시급하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성령님께서 오늘 복음을 전하라고 능력을 주신다면 오늘 순종해야 한다. 내일이 되면 사탄이 하나님의 음성에 따르지 말라면서 새로운 이유들을 수없이 들이밀 테니 말이다. 참된 섬김은 지금 당장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세에서 나온다. 『아들아, 오늘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마 21:28). 『네 손이 찾은 할 일은 무엇이든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전 9:10).

이처럼 당신 자신이 먼저 깨어나기 시작하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도 깨울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된다. "작은 변화의 시작"은 바다 물결처럼 멀리 퍼져 나갈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두드러져 보이는 존재가 아닐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저 이름 없이 조용히 당신을 사용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께 생을 모두 바친 이후로 끝까지 달린 당신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게 쓰셨는지 영원에서 알게 되면 "감사의 눈물"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당신의 뜻도 바로 지금 이 뜻에 맞춰져야 한다.

『이삭은 그들이 자기 아비 아브라함 때 팠던 그 샘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필리스티아인들이 그것들을 막았기 때문이라. 이삭이 그것들의 이름을 그 아비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창 26:18). 이 구절은 우리가 처한 영적 상황을 잘 보여 준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샘물들"을 파고 거기에 이름을 붙였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말씀의 샘물, 기도의 샘물, 성도들과의 교제의 샘물, 기쁨으로 전한 복음의 샘물, 선교사로 섬긴 샘물 등과 같은 하늘의 샘물들에서 물을 길러 그들의 믿음을 신선하게 유지했을 뿐 아니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다른 지체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다가 처음 세대가 주님 곁으로 가자 "필리스티아인들," 곧 죄들, 세상적인 것들, 형제간의 불화, 미지근한 마음,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사역에 대한 무관심, 복음을 전하는 것을 무서워함, 선교사로 주님께 헌신하는 일을 꺼려 하는 마음 등이 모든 샘물들을 차지하고 막아 버렸다. 결국 믿음으로 살던 삶이 시들해지고, 기도와 복음 전파에 게을러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에 참석하는 일이 꺼려지고, 인간적인 전통들에 얽매이고, 믿음의 시야가 아주 좁아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믿음의 선대들이 팠던 샘물들을 다시 파야 한다. 그들이 했던 것처럼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복음의 씨를 더 멀리 뿌리기 위해 선교사로 섬기고, 모이기를 힘쓰고, 지체를 사랑하고, 성도들과 교제하며, 교회와 선교의 필요를 채우는 데 기쁘게 동참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되고, 성령님께서 일하시도록 우리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샘물들을 다시 파라! 『또 주는 너를 계속 인도하여 가뭄에서도 네 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살찌게 하리니 그러면 너는 물 댄 동산 같을 것이며 물이 끊기지 않는 샘물 같으리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옛 황폐한 곳들을 세울 것이요, 네가 많은 세대들의 기초를 일으켜 세우리니 네가 '파괴된 곳의 보수자'라, 또 '거주지로 가는 길을 복구하는 자'라 불리리라』(사 58:11,12). 그러므로 믿음의 경주자여, 맥없이 처진 손과 쇠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 곧은 길을 만들라! 절뚝거리는 다리로 고침을 받게 하라! 화평함과 거룩함을 추구하라!(히 12:12-14) 그리고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계속 전진하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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